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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 사계절 1318 문고 2 ㅣ 사계절 1318 교양문고 2
로버트 뉴턴 펙 지음, 김옥수 옮김 / 사계절 / 2001년 8월
평점 :
절판
지독한 가난과 더불어 살아가는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이라고 썼다가 고쳤다. 가난을 긍정적으로 살아가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어린 소년의 이야기를 읽다가 엉뚱하게 '성향'에 관한 잡념들만 피어올랐다.
대물림하는 가난에 찌들린 사람들이 갖게 되는 그악스러움과 악착, 생존을 위한 몰염치 등에 대해, 그 가난을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이 쉽게 욕할 수 있는 것인가하는 따위의.
누군가 씁쓸하게 써놓았던, 부자들에 대한 단상.
부자, 그들은 모두 어느만큼 거만하고 보잘 것 없는 인격을 가진데다, 졸부다운 모자람과 빈약한 교양을 가지고 있을 거야 하며 가볍게 치부해버리고 싶은 부자가 아닌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오히려 그러한 바람을 지닌 자의 치기를 가볍게 눌러버리는 가진 자의 여유와 너그러움, 풍성한 교양, 나눔의 미덕, 온화한 표정에 대해서도, 가지지 못한 자의 다친 자존심만 다독거리게 된다.
그저, 막연히 심정적으로...가난한 사람들을 쉽게 욕하지 말라, 당장 눈 앞의 것들을 쥐지 않으면 다시는 갖지 못할 것에 대한 절박함이, 지금 누군가에게 모두 주어버려도 뒤돌아서서 다시 장만할 수 있는 넉넉한 부를 가진 사람들이 갖는 여유에 빗대서 쉽게 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고싶은 심정.
물론 책 속의 소년에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그저 '가난'에 대해서 그런 잡념이 들었던 것 뿐이다.
문자도 몰라서 자기 이름도 쓰지 못하는 소년의 아버지는 남의 땅을 빌어 농사를 짓고, 돼지백정 노릇을 하며 가정을 꾸려나가는 가난한 가장이고,
소년 또한 학교를 다니면서도 매일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그런 아빠를 따라다니며 상당한 노동을 감당해내는 열 세 살 아이이다.
어쩌면 책 속의 소년은 정말 긍정적으로 가난을 이겨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웃에게 선물 받은 돼지를 애지중지 키우고 그 돼지를 데리고 더 번화한 도시의 동물 전시회에 나가기도 하며, 어쩔 수 없이 어느 날 그 돼지를 아버지 손에 의해 죽여야 했고, 매일 꾸준히 반복되던 노동 후에 기어이 외양간에서 숨진 아버지의 장례를 의연히 치러야 했던 소년.
...그렇게 책은 끝났다. 자전적 성장소설이란다.
나는 가슴 뜨듯하게 읽어내며 속으로 '힘겹지 않은 10대들이 얼마나 있으랴?' 싶었는데
운동장에서 축구공 차며 뛰어노는 게 최고인 줄 아는 발랄한 열 세 살 내 아들은 "뭐야, 이거?" 한다. 특별한 이야기도, 갈등도, 대단한 결말도 없는 이야기가 '뭐야, 이거?' 정도로만 느껴지나보다. 네 녀석이랑 나랑은, 자라는 세상이 너무 다른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