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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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나폴레옹 다이나마이트 (Napoleon Dynamite)
 
 
 

2. 100만원짜리 영화 제작자 강영만 필름 http://www.youngmankang.com


 
이 영화를 보고, 평을 찾아볼까 해서 둘러보다 보니, 오직 한 사람의 리뷰만 나온다.
강영만 필름 (http://www.youngmankang.com/knote.htm)의 리뷰가 그것이다.
강영만 감독은 미국에서 오직 100만원 가량의 돈으로 인디영화를 찍어 기네스북에 올라
화제가 되었던 인물이다.
이 사람의 사이트도 엄청난 컨텐츠로 가득차 있으니 살펴보기 바람.
 
2004년 7월 31일
나폴레옹 다이나마이트 (Napoleon Dynamite, 2004)
감독: 재러드 헤스
바보도 영웅이 되는 시대
‘나폴레옹 다이나마이트’ 는 선댄스 영화제를 통해 배출된 독립 저예산 작품으로 스튜디오 영화사에 픽업되어 성공한 영화중의 하나다. 올해에 들어 ‘나폴레옹 다이나마이트’ 이외에 성공한 저예산 작품으론 아메리칸 정크 푸드 햄버거를 실랄하게 비판한 다큐멘터리 ‘수퍼사이즈 미(Super Size Me, 2004)’가 있다.
‘나폴레옹 다이나마이트’는 변명답지 않은 바보에 대한 영화다. 괴짜는 ‘Geek’ 이고 ‘Nerd’는 바보 멍청이다. 이 영화에서 나폴레옹(존 헤더)은 이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다. 우선 나폴레옹은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다. 무선 외모에서 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 예로 전쟁광 부시를 집요하게 비판한 ‘화씨 9/11(Fahrenheit 9/11, 2004)’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크게 성공한 마이클 모어 감독은 학창시절 뚱뚱하고 못난 외모 때문에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었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멀대같이 큰 키에 깡말랐다. 머리는 산발한 곱슬머리로 싼 가발처럼 보인다. 커다랗고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으며 무표정한 얼굴에 입은 항상 헤하고 벌어져 있다.
이 영화에서 나폴레옹은 현실세계와 판타시 세계를 구별하지 못한다. 그는 우물쭈물 거리며 부정확한 발음으로 말하며, 말할때는 언제나 자기 방어적인 소극적인 쑥 들어가는 말투를 쓴다. 고등학교에서 완전 바보로 찍혀 조롱당한다. 물어보는 여자마다 거절을 당해 댄스파티에 함께 갈 여자도 없다. 그러나 종국에는 학회장 선거운동 프로모션에서 요상한 댄스시범을 멋지게 보여 최고의 인기를 얻게된다. 잔잔한 웃음을 선사하며 학창시절을 회상케 하는 영화다.
오하이오 프리스톤 출신으로 24살로 감독 데뷰한 재러드 헤스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바보가 된 순간이 있다. 심지어 멋장이도 마찬가지다.’
탐 행크스가 주연한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 1994)’에서 주인공은 본인의 바보성향 때문에 자기자신이 느끼지도 못한 체 그의 삶의 여정에서 미국역사를 바꾸는 중요한 인물이 된다.
바보 스타는 나폴레옹외에 윌리엄 헝(William Hung)이라는 중국계 미국인이 있다. 그는 아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쇼에 출연하여 노래에 재주가 전혀없다는 이유로 심사위원들에게 조롱을 받으며 예선 탈락한다. 그 순간 그 바보의 변병과 멍한 표정은 프로그래머의 눈에 들어 바보 윌리엄 헝이라는 캐릭터가 탄생하게 된다. 윌리엄 헝은 마케팅 툴로 변신하여 일약 스타로 둔갑한다.
온라인 스토어와 로컬 토이 스토어에서 GeekMan 토이 장난감 캐릭터를 살수있다. GeekMan은 마르고 검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다. 검은 뿔테안경을 끼고 왼속에는 커피 컵이 들려있다. 허리춤에는 전자계산기가 달려있고 티 셔츠 앞 호주머니에는 연필과 볼펜이 꽂혀있다.
컴퓨터 Geek은 현대에 가면 갈수록 옛날의 Geek의 단순 의미가 아니다. 그들은 온라인 상에서 대단한 파우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부 ’또라이’ 기질을 가지고 있다. 그 또라이들은 종종 훌륭한 아티스트로 인정받을 때도 있다.   - 강영만 감독 리뷰 中에서 -
 
 
3. 꾸미지 않는 스타, 윌리엄 헝 (William Hung) - http://www.williamhung.net/
 
 
 
4. 폐인들의 우상, 긱맨 (Geekman) - http://www.happyworker.com/geek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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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in.naver.com/open100/entry.php?docid=175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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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속의 다빈치코드

 

얼마전 베스트셀러인 '다 빈치 코드'를 읽고 나서 들었던 생각을 정리한다. 그 생각이란 [워쇼스키] 형제(이제는 남매가가 되었다지만)가 만든 [매트릭스] 시리즈 1~3편이 '다 반치 코드'로 범벅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 빈치 코드'를 책의 내용에 비추어 나름대로 정의를 내려 보겠다. '다 빈치 코드' : 성서로 대표되는, 현재 사람들이 인식하는 기독교의 세계와 상징에 나타나는 이교도적 코드.

책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이러한 정의가 크게 어긋나는 정의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전체는 아니지만 가장 대표적인 '다 빈치 코드'라고 생각되는 부분들 을 특별한 순서 없이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 본다. 이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나 색다른 주장은 모두 환영하지만 비생산적인 종교적인 논쟁은 거부한다.

0. 왜 매트릭스가 '다 빈치 코드'의 범벅이라 보는가?

매트릭스는 매우 흥미있는 영화였다. 전자공학을 전공하여 학사 졸업을 앞두고 있는 본인을 비롯하여 컴퓨터를 공부하고, 프로그램과 네트워크를 공부한 모든 사람들에게 매트릭스는 블록버스터 이전에 여러가지 이야기 거리를 제공하였다.

영화에서 나타나는 해킹, 쿠키, 백도어, 키메이커, 모빌역, 프로그램, 가상현실 등등은 이미 인터넷을 돌아다니면 아주 많은 곳에서 관련 내용을 접할 수 있다. 이런 내용에 한 줄 더 추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여기서는 아주 순수하게 매트릭스에 나타난 '다 빈치 코드'에 대한 내용만 쓰려한다.

그럼 왜 매트릭스가 그런 코드들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하느냐. 매트릭스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위와 같은 다소 전문적인 얘기를 제외하고 전체적인 내용 구성이 어떤 이야기와 가장 닮아있는지를 물어보면 십중팔구 '성경'의 '예수'이야기를 따왔다고 말할 것이다. 거기에 동양철학 과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오마쥬를 담았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워쇼스키 형제 감독들은 단순히 성경의 이야기 구조를 일본식 애니메이션의 상상력과 동양철할적인 내용을 담아서 이 영화를 만든 것인가.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매트릭스는 분명히 '성경'의 '예수'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이야기를 둘러싼 거의 모든 것들이 '이교도'적인 것들 투성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의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것이다.

1. 메로빈지언

매트릭스가 '다 빈치 코드'로 이뤄져 있음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다. 소설 다 빈치 코드(이하 책으로 표현)에서 가중 충실한 '다 빈치 코드' (이하 코드로 표현)이다.

소설에서 프랑스의 메로빙거 왕조는 예수의 후예이고, 이 때문에 교황청도 함부로 못하는 권력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 역사속에서 교황청에 의해 비밀 스럽게 처리되는 것처럼 묘사된다.

소설의 내용을 믿어보면 메로빙거 왕조는 예수의 비밀(즉 신약의 비밀)을 알고 있고(심지어 그 후손이고), 예수의 비밀을 밝히면 곤란한 교황청을 상대로 모종의 거래를 통해 권력을 잡은 것으로 나온다.

그 메로빙거가 바로 영화의 메로빈지언(영어식 발음으로는 메로벤지엥)이며 그가 권력을 잡은 이유도 영화에서 나온 내용과 책의 내용이 일치한다. 메로빈지언도 매트릭스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있고, 시온과 매트릭스의 관계를 이용하여 가상현실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지 않는 대신 매트릭스에서 이익을 챙길 권한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영화를 본 사람들 사이에 논란이 일었던 것 처럼 메로빈지언은 네오 이전 에 The one...즉 예수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개인적으로는 실제로 그러 했으리라 본다)

1대의 the one으로부터 그 이후의 the one(니오가 7번째였다)이 모두 같은 계보(영화상에서는 이것이 핏줄로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에 있다는 것은 메로빈지언이 예수의 후예라는 책의 내용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영화에서 메로빈지언은 당연히 프랑스인이다.

2. Neo

영화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듯이 Neo는 One의 애너그램이다. 애너그램은 같은 철자를 재구성하여 다른 의미를 갖는 단어로 바꾼 것을 말한다. 절대자 니오는 하지만 굉장히 neo하다. neo가 새롭다라는 뜻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의미심장한 설정이다.

바이블을 따르는 예수는 신격화 되어 있다. 하지만 영화 전체에서 니오는 그러한 예수와는 다르다. 그는 분명히 기적을 일으키고 결과적으로 시온과 인류 를 지키지만 순교한다.

가장 핵심은 이것이다. 그는 순교한다. 그리고 '부활하지 않는다' 이것이 Neo One...새로운 절대자이다. 지극히 인간적인... 그는 순간순간 고민하고 판단한다. 하지만 그 고민과 판단이 어떠했는가를 생각 해보자. 그는 인류를 위한다는 자각보다는 트리니티에 의한 영향으로 움직이는 것 처럼 보인다. 그는 트리니티를 구하기 위해 슈퍼맨이 된다.

3편에서는 트리니티와 노골적인 배드신(많은 사람들이 황당해 한)까지 보인다. 바이블의 예수가 마치 금욕주의의 최고봉이고, 로마 카톨릭이 중세와 현재까지도 성에 대해 죄의식을 갖는 것과 다르게 소설에서는 예수도 마리아 막달레나와 결혼하여 후손을 본 것으로 나온다. 뭐..이것을 믿고 안믿고는 둘 째 치고, 그냥 믿어 본다면, 매트릭스가 그러한 이야기 구조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연 이라고 볼 수 있을까.

트리니티와의 관계는 암시만으로 끝났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노골적으로 보여준 것은 감독들이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미치는 것이다. 소설에서 예수가 마리아와 키스하곤 했다는 내용 이 나온다. 영화에서 니오와 트리니티의 키스신이 몇 번이나 나오는지 보라.

그리고 매트릭스1이 나온 년도는 짜맞추듯 1999년이었다. 영화속의 설정은 2199년이었고. 세기말에 대한 환상...뉴밀레니움에 대한 종말론자들의 관심과는 다르게 이 영화는 1999년에 1편을 보이며 3부작임을 재천명했다. 즉 세기말에 대한 종말론자들의 이야기를 비웃은 것이다.(이미 워쇼스키는 기독교적인 종말론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 하다.)

3. 트리니티

트리니티가 삼위일체라는 것 역시 매우 잘 알려져 있다. 보통 니오와 트리니티와 모피어스가 시온을 구한다는 의미로 해석되곤 하는데, 나는 매트릭스가 '바이블' 의 이야기 구조를 따왔음을 알려주는 것으로서의 역할이 가장 크다고 본다.

즉 우리는 트리니티라는 이름으로부터 마지막 니오의 죽음까지의 이야기가 성서의 예수 이야기를 따왔다고 믿는 것이다. 트리니티의 이름이 만약 다른 이름 이었다면 우리는 그렇게 간단하게 1편부터 매트릭스의 이야기 구조가 성서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가상현실과 복잡한 인물 구성에서 니오가 '절대자'이고 구원자이다...라는 내용만으로는 3편까지 그러한 줄기로 이야기를 끌어갈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힘들었을지 모른다. 그러한 내용은 굳이 성서가 아니어도 다른 종교적인, 혹은 영웅의 이야기에서 자주 등장하는 플롯이니까.

트리니티는 니오와 교감하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그녀는 용감하고, 니오에 대해 가장 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여자'이다. 전사이고, 조언자이고, 니오의 정신적, 육체적 안식처이다.

책의 내용을 따르면, 카톨릭이 남녀차별을 당연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부자연 스러운 것이라고 한다. 태초의 신앙은 여자의 역할이 중요했고, 여사제가 보편 적이었으며, 권력 또한 강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로마가 카톨릭을 국교로 삼으 면서 변질되어 여성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여성을 전면에 내새운 이미지가 모두 '이교도'적인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매트릭스를 보라. 매트릭스에서 절대자 니오를 끝까지 믿고 지켜주는 것은 남자들이 아니다. 바로 트리니티인 것이고, 그녀는 절대자의 아내로서의 역할까지 한다.(3편을 상기하라) . 영화에서 수많은 여자들의 중요성을 생각 하면, 이것은 시대를 반영했다고 쉽게 볼 성질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매트릭스의 이야기 구조는 '성서'를 따온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시온이 침공받을 때 햄머호 함장의 판단 미스(나이오베가 로고스호를 니오에게 빌려주고 햄머호를 조정할 때 그 남자 함장의 판단미스를 말함) 우왕좌왕하는 남자 사령관의 모습 등과 비교하여 여자들의 역할은 얼마나 대단하였는가. 드릴머신을 처치한 것도 여전사 2명에 의해서였고, 위기의 순간 시간을 번것도 나이오베(나이오베가 멋진 비행을 하는 동안 옆에서 돕고 있던 모피어스의 카리스마 제로의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라)였으며, 중요한 역할은 죄다 여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라클, 새로운 오라클이 될 인도 여자 꼬마, 니오에게 키메이커를 알려준 메로빈지언의 아내 페르세포네등 매트릭스에서 여성의 존재와 그 역할은 이전에 나온 그 어떤 영화보다도 적극적이다.

제목으로 나온 매트릭스도 보라. '자궁'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4. 모피어스

자...이제부터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대놓고 '이교도'적이라는 것을 먼저 밝힌다. 무슨 소리냐하면 기독교 신화와 전혀 관련 없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왕창 따온 이름들이기때문이다. 기독교 이야기를 따오면서 성경속의 지명이나 이름을 상징으로 사용하지 않은것 부터가 이 영화가 코드를 따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한다.

(기독교..라기보다 몇 몇 단편적인 설정만 가지고 매트릭스를 묵시록에서 영감을 얻었다느니(모피어스의 함선이 느브갓네살로 묵시록에 나오는 유대의 왕 이름이다.) 성서의 재해석이니 하는 의견 자체가 기독교입장에서 보면 심히 불경스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에도 반하며, 그리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을 딴 등장인물의 이름, 그 이름의 내용은 어찌보면 카톨릭 입장에서는 불경스럽기까지 한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워쇼스키 형제는 단 한마디 로 비껴가는데 이 말이 참 가관이다. '워쇼스키형제는 재패니메이션광이다"

어떤 등장인물이 나오던 일본 애니메이션의 소재가 다양하고 여러 이야기 구조가 퓨전되는 것처럼 이러한 상징들을 '그럴수도 있지'라는 식으로 받아들이게 한 것이다. (참 머리 좋은 놈들이다.) 모피어스는 꿈의 신이다. 그는 밤에 꿈을 꾸듯 항상 선글라스를 끼고 있고 검은 옷을 입고, 심지어 흑인이다.

모피어스의 영향인지는 모르지만, 니오와 트리니티도 선글라스와 검은 가죽옷을 입고 다닌다. 선의 상징이 흰색이고, 악의 상징이 검정인 것을 생각해 볼 때 패션을 위해서 검정을 선택했다, 혹은 비쥬얼만을 생각했다 고는 보기 힘들지 않은가. 반대로 니오가 싸워야만 했던 존재들..즉 메로빈지언이나 그 수하인 트윈스(이녀석들은 머리도 흰색이다), 아키텍트가 흰 옷을 입은 백인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것 또한 의도적인 장치이고 코드가 아니겠는가.

5. 스미스

스미스는 니오의 대척점이다. 많은 해석이 오고갔고, 좀 전문적인 설명들(스미스의 탄생과 능력, 죽음에 관련된 컴퓨터, 네트워크에 관련된 지식들을 동반한 설명)은 여러 검색엔진을 찾아보면 다 나오는 내용이니 여기서는 간단하게 스미스의 애너그램과 그 상징 의미를 본다. 스미스는 Smith로 금속을 다루는 사람들을 지칭하고, 영미권에서 가장 흔한 성씨중 하나이다. 스미스는 영화 내내 마치 사탄과도 같은 이미지로 보여진다.

그는 아키텍트가 만든 매트릭스내의 에이전시(요원)이었는데 이것은 어찌보면 가상세계안에서는 천사와 같은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하고, 창조주의 의견을 반영하고, 지키는 역할... 신의 메신저인 엔젤이 생각나지 않는가.

하지만 그는 열심히 일을 수행하는 도중 니오와의 대결 이후 시스템으로 부터 독립하여 엄청난 능력을 갖게 된다. 마치 신의 가장 가까운 천사였다 사탄이 되어버린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인간 사이를 오고가고, 인간을 이용하며(싸이퍼의 몸에 침투하기까지 한다) 무한복제의 능력은 악의 이미지가 얼마나 빨리 전파되는지, 그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 보여준다. 그는 세상을 멸망시키려 하고 니오를 적대시한다.(이것 역시 성경의 이야기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탄의 이미지는 파괴의 이미지가 강하다. 카톨릭에서는 이러한 이미지를 병적으로 싫어하는 듯 하지만, 사실 동양철학이나 고대 그리스 로마신화, 인도 종교등을 보면 파괴의 신, 지옥의 신은 카톨릭과 같은 이미지가 아니다.

이것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볼 때 너무 자연스러운 이미지... 즉 창조와 파괴, 생명과 죽음의 자연스러운 순환의 느낌인 것이다. 인도의 파괴의 신으로 알려진 시바는 사탄과는 달리 최고의 대우를 받는 신이다. 그리스 로마신화의 지옥의 왕 하데스도 제우스와 친척관계( 제우스의 아우)였고, 우리나라의 염라대왕은 옥황상제와 긴밀한 관계 를 맺고 있다.

즉 사탄의 이미지는 지금과 다른 이미지일수 있으며, 그렇다면 이러한 이미지는 결국 각종 신화의 뒤섞임이 낳은 존재인 것이다. Smith의 애너그램 miths는 신화들을 의미한다.(영어로 myths이지만 miths라고도 씀) 즉 하나의 신화가 아닌 여러 신화의 파괴의 신의 이미지를 가져다 놓은 등장 인물이 Smith인 것이다.

금속을 다루는 스미스는 또한 인간 문명에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금속에 대한 이미지는 무기와 전쟁의 이미지를 낳기도 하고 즉 여러가지 뜻이 뒤섞인 존재가 스미스인 것이다.

6. 오라클

그리스의 '여'사제를 뜻한다. 시스템을 구성하는 두 축(아키텍트와 함께) 가운데 하나이다. 현재의 교황청이 남성 위주로 이뤄지는데 반하여 매트릭스는 대놓고 '여'사제를 내세웠다. 거기다 흑인이라니... 그녀는 예언자이고, 모든 상황을 점치는 듯 보인다.

오라클을 가만히 보면 그녀의 이미지는 점쟁이와 다르지 않다. 집시나 무당같은 니오와의 선문답. 이해하지 못할 애매모호한 말들은 점쟁이들이 하는 말과 다르지 않다.

위에서도 말했듯 가장 중요한 신의 말씀을 듣고 전하는 사제의 역할을 '여자'가 맡고 있으며 그 후계자로 내정된 인물도 역시 여자이다.(인도 꼬마애) 카톨릭에서 신과 가장 가까운 이미지인 교황이 대대로 남자 였던것과 추기경조차 남자들 뿐이라는 것과 비교해 보라. 교회에서 목사가 남자뿐이고...

7. 나이오베

역시 그리스 신화에서 최초의 인간 여성으로 태어난 인물이다. 영화에서 여전사이며, 니오를 믿어주는 인물이다. 강하고, 자기 주장이 강하고, 세속적인 권력욕도 있다.(그녀는 모피어스의 전 애인이고 총사령관의 여자이다.) 햄머호를 과감하게 조정하여 그 성능을 극한까지 끌어내는 능력, 이성적인 판단으로 위기를 떨치는데 게임 엔터 더 매트릭스에서 고스트와 함께 평행한 이야기 구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역시 여성성의 부각이라는 측면과 성경에서 나타나는 최초의 여자 '이브'(또는 '하와')와 비교되는 인물이다. 성경에서 최초의 여자인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 에덴에서 쫓겨난것과는 달리(이 일로 원죄의식을 들먹여 남성위주의 종교적인 장치가 마련된다) 매트릭스에서 나오는 나이오베(그리스 신화의 최초의 인간여성)는 스스로의 판단으로 시온을 지키는 전사이다.

그녀가 함장으로 있는 함선의 이름은 '로고스호'이다. [로고스]는 법칙과 준칙을 인식하고 이를 따르는 분별과 이성을 뜻한다. 이 모든 이름에 관련된 상징이 아무렇게나 지어진 것이 아닌 것이다. 특히 성경을 믿는데 있어서 가장 방해가 된다고 보는 것이 이성적 판단이고, 그러한 판단을 넘어선 '믿음'으로 성경을 봐야한다는 현재의 카톨릭의 관점을 볼 때 이러한 내용이 얼마나 의미 심장한지 보라.

8. 페르세포네

사랑의 감정을 갈구하는 메로빈지언의 아내이다. 전대의 the one 으로 추정되는 메로빈지언은 인과관계만을 중요시한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의 감정을 원한다. 그래서 결국 메로빈지언 몰래 니오일행과 키메이커를 만나게 해준다.

페르세포네는 대지의 신 [데메테르]의 딸이다. 그녀는 [제우스]의 계략으로 제우스의 동생 '지옥의 왕' [하데스]에게 시집가는 불운 의 여자이다. 그녀의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았음은 신화에도 나타난다.

이부분에서 좀 확대해석을 해보자. 위에서 메로빈지언은 전대의 절대자라고 했다. 책에서는 메로빈지언 이 예수의 후예라고 했다. 성스러운 존재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메로빈지언은 역사속에서는 세속의 권력을 좇은 왕이 되었고 영화에서도 모종의 거래를 통한 세속적인 권력자로 변질된다. 영화에서는 한 술 더 떠서 사랑없이 권력만 갖은 메로빈지언을 페르세포네의 남편으로 만들어 지옥의 왕을 만들어 버린다.

절대자의 자질을 가졌지만 세속에 물든 지옥의 왕...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하지 않다. 오히려 상당히 불손하지 않은가. 지옥의 왕과 절대자의 후예...

9. 니오의 순교

위에도 말했듯이 니오는 스미스를 해치우는 것을 거래로 시온을 지킨다. 그는 스미스를 죽인후 십자가의 형태로 죽는다. 명백한 예수의 상징이다. 하지만 그는 예수처럼 부활하지 않는다. 그가 그 전에 이뤄놓은 기적을 볼 때 그가 부활하는 내용이 어색 한것도 아니다. 그리고 성경의 이야기 구조를 따른다면 그는 오히려 부활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죽어버렸다.

즉 절대자 니오는 인간이었다. 그는 죽었다. 라는 것이 매트릭스 전체의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다. 그는 한 여자를 사랑한 인간이었다. 니오가 아키텍트를 만나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그가 선택한 것은 시온을 구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상기하자. 그는 사랑을 위하여 모든것을 버렸다.

그렇게 보면 성서에서 사랑 사랑 외치지만 이 사랑은 결국 통상적인 신에대한, 혹은 인간 세상에 대한 넓은 의미의 사랑이 아니라 세속적이라고 볼 수 있는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책에서는 예수는 사랑을 위해 죽음을 선택하지 않은 것으로 나온다. 현재의 프랑스땅으로 망명해서 마리아와 결혼하여 후손을 본 '인간'적인 예수로 나온다. 자궁(매트릭스)안에서 아직 참 세상을 못본 사람들인 가상세계의 사람들이 참 세상을 안다고 해서 행복할 것인가. '다 빈치 코드'라는 소설이 낸 결론도 얼추 비슷하지 않은가. 진실을 밝힌다고 과연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

매트릭스의 끝부분에서 아키텍트와 오라클이 나누는 대사를 보자. 아키텍트는 오라클에게 매트릭스를 나가길 원하는 사람들을 내보내 주겠다는 말을 전한다. 하지만 그러길 원하지 않으면 그 상태로 놓겠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책의 마지막도 마치 이러한 판단을 스스로 할 것을 권한다. "이것이 진실이니까 당신은 속은거야!!" 라고 말하지 않는다.

10. 3편에서 시온이 공격받기 전에 있었던 파티

이 부분은 매우 개인적인 생각이다. 시온에서 모피어스의 일장 연설 후에 사람들이 춤을 추는데 그 춤이 매우 섹시한 이미지를 풍긴다. 땀, 남녀의 뒤섞임 등이 마치 집단 성교를 연상시키며 영화를 볼 당시에 이것은 멸망하기 전의 부패(마치 소돔과 고모라 의 멸망처럼)를 보여주는 것인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부분은 히에로스 가모스의 상징이 아닌가 본다. 의식으로서의 성행위 생명을 낳는 성스러운 행위와 의식의 상징으로 볼 수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뭐 이런 해석은 좀 너무 많이 뛴 느낌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인 코드에서 이런 해석도 가능하지 않은가

11. 이외에도 영화본지 오래되어 잘 기억나지 않는 많은 상징들과 해석이 있다. 확실한 것은 매트릭스를 비롯한 sf와 판타지류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스 로마신화를 잘 알면서 성경을 분석해 본적이 있거나 다빈치 코드를 읽고 매트릭스를 보신 분들의 건설적인 의견 교환을 기다린다. 위에도 밝혔듯 비생산적인 종교적인 논쟁은 일체 거부한다.

또한 기술적인 설명은 반대하지는 않지만 권하진 않는다. 이미 인터넷의 바다에 그와 관련된 내용은 산처럼 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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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oxov 2004-12-31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mandel 님의 이의제기에 따른 내용추가 (2004-10-20 작성)

메로빈지언이 과거의 The one이라기보다 구버젼의 오라클이라는 이의가 들어왔는데요...

사실 메로빈지언이 과거의 The one이었는지 아니었는지 확실히 모릅니다. 다만 이 영화가 다빈치 코드를 따른다면(제가 보기에는 따르는 것 같습니다만) 메로빈지언의 등장 자체가 The one..혹은 그 후예정도의 선으로 볼 수 있겠다 싶은 것이 제 생각일 뿐입니다.(많은 분들이 니오 이전의 The one으로 스미스나 셰라프, 메로빈지언을 꼽고 있는데 모두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 정황상 그럴 수도 있겠다...혹은 그렇게 봐도 의미상 이상할 것은 없을지 모르겠다...뭐 그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쓴 의도는 제 생각을 정리하고, 혹시 이런 쪽으로 더 재미난 해석을 하는 사람은 없을까...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다양한 관점과 해석을 통해서 새로운 숨은그림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죠.



지금 미처 생각하지 못한 오류나 비약이 있을까봐 다시 영화를 보고 있는 중입니다. 방금 The matrix를 다 봤네요. 다시 봐도 재미있네요.



1편의 내용으로 볼때..그리고 제 기억으로 볼 때 메로빈지언이 구버전의 오라클이라는 내용은 좀 받아들이기가 어렵네요.



메로빈지언이 오라클의 눈을 원하는 것은 amandel님의 의견처럼 시스템을 더 정확히 보기 위해서라는 내용은 크게 틀리지 않지만, 그가 오라클의 눈을 원하는 이유는 과거의 시스템이었던 인과론으로는 현재 진행되는 새로운 변화를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만으로 그가 구버젼의 오라클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듯 하네요. 거기다 차기의 오라클 후보는 사띠라는 여자애로 정해집니다. 아키택트가 남성성과 규칙성, 논리성을 뜻한다면 오라클은 여성성과 선택을 통한 예외성, 감정(이것은 니오때의 일이긴 하지만)을 뜻하며 이 둘이 시스템을 유지해가고 있다고 봐도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뭐 음양이론이니 뭐니 이런걸 제쳐두고라도 그 둘의 역할은 실제적으로 그렇습니다. 그 상황에서 남성성인 메로빈지언이 여성성을 상징하는 오라클의 구버젼이라는 내용은 여러가지 면에서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리로디드에서 아키택트와 니오의 대사로 이 이의제기를 정리합니다.

아키택트 : 내가 매트릭스의 아버지라면 그게 매트릭스의 어머니야

니오 : 오라클..



지금 스크립트를 보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저도 여러 글들로부터 니오가 7번째인줄 알았는데(왜 그렇게 기억되었는지 모르겠네요-_-) 현재의 매트릭스가 6번째 매트릭스이고 니오에 의해 구성되는 매트릭스가 7번째 매트릭스네요.



5번의 리셋이 있었다는 것은 현재가 6번째라는 얘기가 되고 6번째 리셋 후에는 7번째 매트릭스가 시작되겠죠.



makdongjs 님의 이의제기에 따른 내용추가 (2004-10-23 작성)

스미스가 금속을 다루는 사람이라는 부분에서 삘을 받았습니다만...



스미스의 존재가 프리메이슨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 가미되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비록 '다빈치 코드'에서는 시온 수도회 및 템플 기사단이라는 존재로 덮어져 있지만



템플 기사단을 모체로 한 현대 집단은 프리 메이슨이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레이엄 핸콕'의 '신의 암호'라는 책에서는 '다빈치 코드'에서 막달레 마리아로 상징되는 성배코드를 고대 이집트의 전승을 따른 성궤라 말하고 있습니다.

성궤를 통해 고대 전승을 전수 받은 템플기사단이 서양에 고딕 양식 같은 고급 기술을 펼쳤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를 통해 부를 쌓았고 현재의 프리메이슨 같은 비밀스러우면서도 장악력이 큰 집단으로 탄생되었다는 것입니다.



프리메이슨은 석공 연맹이며 당시 성궤 코드 중 돌을 다루는 기술이 그들이 습득한 기술중 하나라면



전자로 점철된 매트릭스에서는 금속을 통해 쌓은 전자 기술로 발현되었고 스미스가 현재의 프리메이슨과 유사 조직으로 은유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지나친 비약이 있지만...나름 재미있는 생각이지 않나 싶어 의견 보냅니다.



이의 제기라기보다 그냥 의견으로 들어온 내용입니다.



kapdragon2 님의 이의제기에 따른 내용추가 (2004-10-26 작성)

메로빈지언이 옛날의 The One 이라는 주장은 잘못된것입니다.



메로빈지언은 구버전의 오라클이 맞습니다.



작성자께서 과연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얼마나 이해하고 이 글을 작성하셨는지 의문입니다.



우선 예전 매트릭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죠.



초창기 매트릭스가 너무나 완벽했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계시리라 믿고 설명 안합니다...



때문에 아키텍트는 인간을 이해할 필요성이 있었죠.



그래서 아키텍트는 자신을 대신해 인간을 연구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냅니다.



그 프로그램이 바로 메로빈지언입니다.



메로빈지언이 인간을 연구하는 방법은 바로 '인과론'입니다. 원인과 결과.



영화상에서 (2 리로디드에서) 메로빈지언이 원인과 결과, 작용과 반작용 운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메로빈지언 프로그램은 인간을 완벽히 예측할수는 없었지요. 즉, 인간은 모든 영역에서 인과론에 의해 파악되지 않았던 겁니다.



그 예로, 리로디드에서 보면.



네오가 소스앞까지 가서 아키텍트와 대화하는 장면을 떠올려봅시다. 네오가 그곳에 간 이유는?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



그럼 네오는 소스로 가야지요. 근데 아니죠? 트리니티를 구하러 갑니다. 여기서 치명적 오류가 발생해서 매트릭스 3로 내용이 이어집니다.



어쨌든. 메로빈지언으로는 인간을 모두 이해할수 없었던 아키텍트는 인간을 연구하는 전혀 색다른 프로그램을 만들어냅니다.



그게 바로 오라클이죠.



오라클의 인간연구방법은 바로 선택과 인간의 사사로운 감정입니다.



거기다 미래예측도 가능해졌죠.



오라클의 등장으로 메로빈지언은 삭제위기에 처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힘을 이용해 매트릭스가 간섭할 수 없는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고 그곳에 숨어살고 있습니다.



오라클의 등장으로 삭제위기에 처한 메로빈지언은 그래서 오라클을 미워하죠. 오라클의 눈을 원하는 것은, 자신이 가지지 못했던 것을 오라클이 가진것에 대한 질투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3편에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메로빈지언이 오라클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흑인의 몸으로 오라클이 옮겨갔지만..





자 이제 세라프 이야기를 해봅시다.



세라프란 어떤 프로그램인가?



알고 계시겠지만, 세라프는 인간연구프로그램을 보호하는 보안프로그램입니다. 연구프로그램(오라클)과 접속하려는 모든것은 세라프를 거쳐야합니다.



이쯤되면 짐작이 가시나요?



세라프는 예전엔 메로빈지언을 모시던 프로그램입니다.



왜냐면? 당연히 구버전의 인간연구는 메로빈지언이 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오라클의 등장 후 그는 매트릭스의 명령에 따라 오라클을 보호하게 되었지요.



매트릭스 3 리로디드 대사를 보면... 메로빈지언이 세라프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 오 돌아온 탕아로군"





자세한 매트릭스 이야기는 매트릭스 전문 카페를 이용하셔도 되겠구요. (갠적으로 다음카페의 '매트릭스의세계'라는 카페 추천입니다.)



반박하실 내용 있으시면 kapdragon2@naver.com으로 메일 주시기 바랍니다.



오픈사전엔 확실한 내용만 적어주시길 바랍니다. 자신의 개인의견이나 추정등은 오픈사전이란 이름에 맞지 않습니다.



라는 이의 제기가 들어왔습니다.



아주 합리적이고 좋은 의견입니다.



뭐...반박이라기보다...저도 메로빈지언이 the one이었을지 모른다는 이유를 몇 개 들어보겠습니다. 의견을 반박한다기보다..이부분은 상당히 애매하죠. 앞 뒤의 사건과 대사로부터 추정해야하는데



답글에도 남기긴 했지만 니오가 메로빈지언을 만나러가기위해 엘리베이터를 탈 때 101이라는 숫자가 보입니다. 건물의 층수인지는 모르겠지만 니오의 첫 등장이 101호방에서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무렇게나 나온 숫자는 아닐것입니다. 페르세포네의 대사...그는 예전의 니오같았다는 얘기...아키텍트의 대사...나는 매트릭스의 아버지고 그녀는 매트릭스의 어머니이다. 시스템의 두 축으로써의 구성으로도 오라클은 여자인것이 자연스럽다. 오라클은 상당히 오래 오라클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는 대사...셰라프와 메로빈지언의 관계도 이전의 더 원과 보안프로그램사이라면 당연히 구면이다. 메로빈지언이 만약 전대(그것은 니오 바로 이전이 아니라 몇 대 전의 더 원일 수 있습니다.)의 더 원로써 이전의 오라클(오라클은 같은 오라클이지만 아직 버젼업 되지 못한..)이 예상하지 못한 부분을 가지고 있었다면(의무감이 아닌 권력욕이라던지...) 그는 소스로 돌아가주는대신 아키텍트와 거래를 했을지 모르고 그 거래의 결과가 삭제되지 않고 이전의 내용을 가지고 있는 과거의 더 원이라는 것이지요. 이로써 메로빈지언은 매트릭스를 리셋해주는 대신 아키텍트의 간섭을 받지 않는 권력을 갖게 되죠. (코드의 내용입니다)



초기 매트릭스와 니오의 얘기를 제외하고 이전 더 원이 각각 어땠는지는 영화 내용에 나오지 않으니 앞뒤상황으로 이런 추정도 가능하고 그러면 영화의 내용을 해치지 않으면서 해석을 다양하게 할 수 있죠. 버젼업된 오라클의 미래 예측능력은 메로빈지언에게 위협이 되죠. 새로운 매트릭스가 구성될 때마다 삭제될지 모른다, 더이상 거래를 할 수 없게될지 모른다(권력의 상실로 이어지죠)는 위협에 떨던 메로빈지언은 키메이커를 더이상 내주기 거부하고 강금하여 더이상 매트릭스를 갈아 엎는것을 막으려 하고, 그래서 니오 일행을 보고 달가워하지 않죠. 메로빈지언 스스로는 키메이커를 안내어주려고 하지만, 폐르세포네에 의해 뺏기고 말고, 이런 이해관계와 스미스의 폭주등에 의해 시스템 전체 붕괴를 우려한 오라클은 중간계에 빠진 니오를 구하기 위해 적극적인 개입(셰라프를 통한)을 하게 되죠(스미스의 위험을 상대적으로 모르는 메로빈지언은 니오를 내주길 거부하죠). 아키텍트의 말마따나 기계들은 인간이 없어도 사실 사는데 별 지장 없음이 나옵니다. 즉 매트릭스를 리셋하지 않아도 오라클을 비롯하여 여러 프로그램들은 적당히 살아있을 수 있습니다. 꼭 인간을 붙잡아둘 필요는 없는 것이죠. 이렇게 보면 전대의 더 원에 대한 해석도 무리가 없고(매트릭스 리셋이 자신에게 영향을 줄 지 모른다는 위협은 몇 번 키메이커를 내주고 나서 자신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을 확인한 것을 원인으로 하여 메로빈지언이 낸 결과가 결국 매트릭스 리셋을 막는 것입니다.) , 세라프와의 반목도 이해가 가는 부분입니다.



사실 니오 이전에 원인과 결과만으로 예측하는 프로그램이 오라클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것도 너무 구버젼의 느낌입니다. 인과 관계로 보는 인간의 예측은 상태전이에 의한 오토마톤이라는 느낌이 강한데...이것은 확률이론에 따른 인간 이해보다도 더 구식입니다. 인과관계에 의한 결정론적 사고 이후 나올 가능성이 높은 것이 선택에 대한 결정의 확률이고(바로 니오 이전입니다.), 그 이후에 나온 것이 인간 감정의 미묘한 변화...즉 케이아스에 의한 예측 불가능성을 염두에 둔 인간 이해입니다. 저기서 인간 감정이란 영화에서 사랑으로 강조를 했구요. 결국 이 수준에 이르러서는 매트릭스의 프로그램중 일부 조차 그 감정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사띠와 사띠의 부모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예이고 그 여자애는 차기 오라클의 후보죠)



이의 제기하신 분은 개인 의견이나 추정은 오픈사전에 맞지 않다고 했지만 어떤 내용에 대한 해석은 개인의견이나 추정일 수 밖에 없고 뭐...매트릭스의 해석은 다양하고 꼭 정답이라고 볼 수 없는 것도 많기 때문에

사실 그 동호회에 가보진 않았습니다만 거기의 내용도 결국 각자 생각한 내용을 글로 남긴 것일테니 사실이라기 보다 개인 의견과 추정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런 내용이 오픈사전에 오르면 안되는 것도 아니죠.



그런식이면 철학에 관련된 것도 오르면 안되고(인간 사유의 결과물로 결국 개인 의견이고 추정이죠) 과학적인 사실이나 사건만 오픈사전에 올라야 하게요?^^

이런 해석(각자의 해석)들이 왔다 갔다 해서 놓치고 있는 부분도 알게 되고 더 큰 사고의 틀로 나가게 될 수 있는거 아닐까요?(사실 온라인 오픈사전의 의미는 이런것이 더 크다고 봅니다만...오픈 사전의 내용중 틀린

내용 무지하게 많죠. 기존 사전과 다른 점은 이건 이러저러해서 틀리다, 잘못됐다고 피드백되는 과정 아닐까요)



쓰고나니 반박이 아니라고 했다가 반박이 되어버린 느낌도 있지만...그렇다고 위 해석이 정답도 아니라는 것은 읽는 분들도 아실겁니다.



다만 제가 이 글을 쓴 의도...즉 매트릭스와 다빈치코드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라는 입장에서 메로빈지언이 프랑스의 왕조 이름이라는 것을 제외하고 이중적인 의미가 없는(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름이라는 것은 매트릭스 전체를 볼 때 명백한 작명 실수일 것입니다. 하지만 전 다빈치 코드와 접목시켜봤을 때...그리고 위에 제가 반박한 글로 이전의 내용이 전개되었다고 이해할 때...메로빈지언은 제대로된

이중 의미를 가지고 있게 되죠. 매트릭스에서 생각없이 작명된 이름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여전사 지의 경우도 네트워크에서 잡음을 표현하는 의성어이면서 그렇게 하찮은 존재로 보지만(심지어 필요 없는 존재) 대단한 활약을 보이는 인물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으니까요. 메로빈지언이 전대의 오라클이라고 생각하는 글이 합리적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위처럼 복잡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메로빈지언이 오라클의 역할을 했었다면 그와 관련된 이름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겁니다. 메로빈지언의 이름이 뜻하는 의미가 프랑스 왕조 이름이라는 ...권력자다...라는 하나의 의미로밖에 해석이 안되는 부분은 많은 부분을 놓칠 수 있다는 거죠.(재수없는 프랑스인?이라는 이중 의견은 웃고 맙니다^^;;)



아무튼 이와같은 이의 제기는 대 환영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매트릭스의 숨겨진 이야기 까지 뽑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니까요...그나저나 ETM에 대한 질문을 올렸는데 답변이 없네요...흑...





kapdragon2 님의 이의제기에 따른 내용추가 (2004-10-26 작성)

메로빈지언은 구버전의 인간연구프로그램이라는 이의제기를 했던 사람입니다.



일단 답변 잘 읽었습니다만.^^



제가 알려드린 메로빈지언에 대한 이야기는 저만의 개인적인 추측이나 의견이 아닌... 정식 스토리라인입니다..



ㅡㅡ;;







엔터 더 매트릭스를 안해보신 모양입니다만...



그 게임을 해보신다면 매트릭스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더 잘 알게 되실 것입니다.



예를 들면, 키메이커에 대한 이야기죠. 키메이커는 옛날부터 오랫동안 잡혀있던 사람(?)이 아닙니다. 잡힌지 얼마 안되는 사람이죠.



몇 분 전에 여기다가 ETM스토리를 적으려다가.... 너무 길답니다...어려워서.. 직접 플레이 해보시는걸 추천합니다.







세라프에 대한 이야기에서.



돌아온 탕아라는 의미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자신에게서 가까이 있다가 멀어진, 떠나간 사람이란 말입니다.



더원과 보안프로그램의 관계에서의 구면이라면 이상할게 없다고 하셨습니다만.



레볼루션에서 모피어스, 트리니티, 세라프가 메로빈지언에게 가기 전 입구에서 만난 메로빈지언의 부하들이, 세라프를 알아보는 대목에서의 대사를 보시면 금방 수긍이 가실겁니다.



그가 더원이라면 부하들이 세라프를 알아볼 이유는 없겟죠?





게다가 메로빈지언이 과거 더원이여서 아키텍트와 거래를 했다는 주장은 너무나도 과장된 추측입니다. 전혀 어디서도 근거를 찾을 수 없구요..



메로빈지언이 메로빙거(Merovinger) 왕가에서 따왔다는 사실은 저도 예전부터 알곤 있었습니다. 그가 권력을 가지고 있고, 이름이 권력을 연상시킵니다만, 그게 더원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그는 이미 자신이 초기 매트릭스의 반대급부였던 시절부터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라클의 등장은 2번째 매트릭스부터였으니까, 오라클도 많이 자신의 위치를 지키긴 했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메로빈지언의 정체는 리로디드에서 알수 있는데요.



오라클이 키메이커가 메로빈지언에게 잡혀있다는 말을 하며 메로빈지언을 소개할때 오라클이 그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우리 중 가장 오래된 프로그램"

"one of the oldest of us"



하지만 아쉽게도 한글자막에는 나오질 않죠.



"위험한 프로그램" 이란 말밖에는..

"very dangerous program"



매트릭스 한글자막에 생략이 많아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내용이해를 잘 못한다는 건 이미 아시고 계셨으리라 생각합니다만. 혹시 자막문제를 모르고 계셨다면.



영어자막버전을 천천히 다시 보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작성자님의 의견도 말이 안되는건 아닙니다만, 일단 공식스토리라인은 메로빈지언이 예전의 중요한 프로그램이었고 지금은 삭제위기다 라고 이미 알려진 사실이구요.



(여러 인터뷰나 영화발표 후 나온 감독의 해석본(?)이라고 해야되나... 그런거에 나와있답니다. 영문이지만..)



너무 추측의견이 많으십니다...



이러지 않았을까. 이렇게 해석해도 무리없지 않은가. 등등의...



제가 이렇게 이의제기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다른 모르는 사람들이 잘못된 사실을 알고 있는게 싫어서였습니다.. 너무 기분나빠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제 이의제기 내용을 이메일계정까지 모두 공개하시면 쑥쓰럽답니다... 메일계정은 없애주시길..^^



라고 이의 제기 해 주셨습니다. 질문하신분도 매트릭스에 관심이 많으시고 또 게임을 좋아하셔서 ETM도 해보신듯...



http://mm.dreamwiz.com/media/index.asp?page=2&uid=mann&folder=11



이의 제기하신 분의 질문 답변중 있던 링크입니다. 매트릭스에 대해 정리를 잘 해 놓으셨네요.(거기다 직접 쓰신 글입니다.)



여기에 ETM에 대한 정보도 간단히 있지만...그리고 메일 계정은 일단 이의 제기 처리 후에는 글을 고치지 못하도록 되어 있어서;;



이 글을 보신 분은 메일 계정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다. 얍!!





rag523 님의 이의제기에 따른 내용추가 (2004-11-03 작성)

느브갓네살로 묵시록에 나오는 유대의 왕 이름이다

이라고 하셨는데요, 다니엘서 (구약입니다) 1:1에 보면 유다 왕 여호야김이 위에 있은 지 삼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것을 에워쌌더니

라고 되어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유대의 왕이 아닌 바벨론의 왕입니다. 바로잡아 주세요.



이미 리플에 관련된 글이 있어서 그렇다고 했는데 역시 이의제기가 들어왔군요.



이의제기대로 바빌론의 왕입니다.

역시 굉장히 이상한 작명입니다. 시온의 느브가넷살...



wontranks 님의 이의제기에 따른 내용추가 (2004-11-03 작성)

아마도 메로빈지안은 오라클을 없애려 미리 시도했었을것입니다. 이미 오라클의 눈을 가지면 자기가 알고있는 현재와 더불어 미래까지도 알게되어 매트릭스와 현실(시온이 있는)까지 다 알게 되는 선악과와 같은것이죠. 그래서 부하들을 이끌고 오라클과 한판 붙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설정을 하면 메로빈지안과 그 부하들이 세리프를 알고 있다고 해도 무리가 없죠. 또 세리프의 존재에 대해서는 agent를 한번 이겼을 정도로 능력이 세지만 오라클의 종 노릇을 하고있으니 메로빈지안의 부하들이 그를 놀려 (wingless)라 부른거일꺼구요.



이의 제기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들어온 이의제기 막지 않으니~



이번 기회를 빌어 조금 쓰자면



일단 돌아온 탕아(성경에서 나오는 얘기)를 비추어보면 메로빈지언이 구 오라클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고 저도 영화를 드디어 다시 한 번 보고 ETM의 줄거리나마 보게 된 후로 상당히 근접한 얘기라고 고쳐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찜찜한 것은 이의 제기나 리플에도 남겼듯

다른 상징들과 대사들이 걸리기 때문에 그 부분을 완벽히 해석해 주는 다른 비하인드 스토리가 필요하다고 여전히 느끼는 것입니다.



모든 상징을 설명하는 꼭 맞는 비하인드 스토리...이게 쓸데없는 짓일지 모르지만 메트릭스는 단순한 오락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과제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몇가지의 간단한 가정과 설정으로 모든 이야기들과 상징들이 메로빈지언과 세라프와 스미스와 오라클과 아키텍트와 시온과 매트릭스와 중간계의 관계를 딱 들어맞게 하는 부분을 찾는 것이 영화가 개봉한지 5~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숙제로 남아있군요.



저는 그것을 연결하는 고리를 소설 '다 빈치 코드'로부터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유신론자이면서도 현재 종교에서 말하는 신의 존재를 그들이 말하는 대로 생각해주지 못하는 일종의 사고의 편협함(?) 때문에 이야기로써의, 소설로써의 경전 읽기(바이블, 불경, 도덕경, 인도의 힌두경전)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진득하니 이러한 책들을 접하지 않은 사고의 얕음이 여러 약점을 나타내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이야기 구조에서 그리스 신화, 불교(라기보다는 인도의 철학), 도교, 이집트 신화를 차용한 것은 재패니메이션의 광이라서라는 이유를 넘어서는 숨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니오가 해킹한 자료를 담아뒀던 책

"시뮬라르끄와 시뮬라시옹"



시뮬라시옹은 대상물의 재현이나 복사. 라는 작용을 의미하고.



시뮬라르끄는 그런 시뮬라시옹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물을 말한다는데...이것이 성경의 이야기 구조를 따르는 매트릭스의 니오 이야기(니오 전기?) 의 초반부에 나왔다는 것은 간과할수 없는, 간과해서는 안되는 해석의 실마리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듭니다.



 

동네에 있는 만화대여점 중 하나가 점포정리를 한다.거기서 삼천원에 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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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eekly.donga.com/

김훈 열라 짜증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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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엔 노동자 의식이 있어야 한다”

나는 가끔 이무영이 된다. 시청자들 중에는 나와 이무영을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객관적으로 우리 두 사람이 그렇게 닮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손해 보는 사람은 나다. 바로 그 이무영을 만났다.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경찰청장을 지낸 이무영을,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국 현대문학 초창기에 농민문학을 개척한 작가 이무영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이무영은 영화감독이다. 그는 10년 전엔 음악 칼럼니스트였다. 그리고 5년 전엔 시나리오 작가였고 방송 진행자였다. 우리는 가끔 시사회 같은 데서 얼굴이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곤 했다. 둘 다 ‘방송 밥’ 먹고사는 처지고 또 멀티플레이어이기 때문에 서로를 호의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왜, 특별한 이유 없이 괜히 좋은 사람이 있지 않은가. 적어도 나에게는 이무영이 그랬다. 그도 나와 똑같은 마음이었는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우리는 술을 마셨다. 난 주량에 비해 꽤 많이 마셨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후두둑, 봄날 저녁도 아니고 12월인데, 눈이 아니라 비가 내렸다. 건물 베란다에 유리로 천장을 만들어 실내처럼 아늑하게 꾸민 카페에서 비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기분이 좋아졌다. 칠레산 와인을 3병 마시고 다시 오뎅 바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뉴저지주 케인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부전공으로 선택한 연극을 접하면서 새로운 인생이 열렸다. 뉴욕에 체류하던 연극인 장두이를 도와서 주로 한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극을 기획했다. 그는 내가 잘못 알고 있던 그의 결혼 뒷이야기를 수정해주었다.

음악 칼럼니스트·시나리오 작가로도 명성

나는 1993년부터 95년까지 KBS의 아침 정보 프로그램 ‘전국은 지금’에서 영화 소개 코너를 맡아 했다. 영화 코너 앞뒤에 ‘오늘의 날씨’가 있었는데, 날씨 담당 리포터와 나는 자신의 방송 차례를 기다리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 리포터는 영화에 관심이 많았다. 그녀가 장수영씨다. 그녀의 오빠는 나중에 ‘조폭 마누라’의 백상어 역, ‘야인시대’의 문영철 역으로 인기를 얻은 장세진이다. 내가 SBS 아침 정보 프로그램으로 옮기고 나서, 그녀가 이무영과 결혼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전국은 지금’을 하는 동안 유럽여행 때문에 2개월 정도를 비운 적이 있는데, 그때 나 대신 영화 코너를 진행한 사람이 박찬욱 감독이었다. 박 감독이 자신의 절친한 친구 이무영을 장수영씨에게 소개해줘서 결국 두 사람이 결혼하게 되었다고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무영은 그게 아니라고 했다. 그전에 손범수 진양혜 아나운서가 결혼할 때, 각각 남자 쪽과 여자 쪽 친구로 참석해 결혼식에서 처음 만났다는 것이다. 이무영은 정말 추호도 흑심을 품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여자 쪽에서는 언제 연락이 오나 기다렸다는 것이다. 추석 전날, 가족도 없이 혼자 있던 이무영은 후배의 부추김으로 장수영씨에게 전화를 한다. 그녀는 송편 만들다가 뛰어나왔다.

이상이 남자 쪽 진술이다. 올바른 상황 판단을 위해서는 여자 쪽 진술도 들어야 하지만, 가끔 한쪽 말만 듣고도 믿을 필요가 있다. 나는 이무영의 말을 믿는다. 그를 만나본 사람이라면, 그가 충분히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그는 낯선 사람과 마주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말 하면 믿지 않겠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이다. 방송하는 사람들 중엔 의외로 대인관계에서 소극적인 사람이 많다. 그는 가깝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 억지웃음 짓는 일을 가장 곤혹스러워한다. 기자 시사회나 VIP 시사회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노출해야 하는 곳에는 가능하면 참석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모든 시스템 옹호자들을 다 저주한다. 그리고 모든 시스템 파괴자들을 다 존경한다. 나는 귀족들을 혐오한다. 기네스 펠트로 아버지는 할리우드의 거물 영화 제작자인데, ‘어린 시절, 저의 여덟 살 생일날 스필버그 아저씨가 인형 들고 와서 즐거웠어요’ 이런 말 들으면 화난다. 나는 완벽한 차별주의자다. 출신 성분이 좋으면 차별한다. 그러고도 미안한 마음이 없으면 경멸한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으면, 그것을 누리고 20~30년 살았으면,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말하지 않았나. ‘저 아래 있는 자들은 자기가 뭐 하는지 모르고 있다’고.”

그러나 신을 믿는 아나키스트는 없다. 그는 매일 아침마다 기도한다. 그의 아버지는 목사다. 그 역시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영화는 노동자 의식이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만들어야 한다. 요즘 영화 시상식 분위기, 정말 싫다. 한국 영화가 갑자기 할리우드 영화가 되고, 대종상이 갑자기 아카데미가 된 것 같다. 그렇게 자존심이 없나? 내가 한다면, 큰 고깃집 빌려서 하겠다. 양복은 대중화돼서 그래도 견딜 만하지만, 화려한 의상 입은 여배우들 보면 정말 불쌍하다.” 그때 이무영의 휴대전화가 깜박거렸다. 문자메시지가 온 것이다. ‘날씨 추운데 감기 조심하세요. 전화번호 바뀌었습니다’라는 내용이었고, 문자를 보낸 사람은 공효진이었다. 그는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따뜻한 대화가 이어졌다. 공효진은 그의 두 번째 영화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에서 태권소녀 역을 맡았다. 나는 그의 데뷔작 ‘휴머니스트’를 보고 실망했다. 기대를 너무 많이 하기도 했지만, 미학적으로 덜 다듬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철.파.태’를 보고 ‘언젠가 한번 큰일 낼 사람’이라는 데 동의했다. 그가 훨씬 가능성 있는 상태로 진화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 판단은 아직도 유효하다.

“첫 번째 영화는 제작사와 안 좋았다. 두 번째 영화는 연말이라는 너무 나쁜 상황에서 개봉했다. 두 번의 저주를 받았으니까 세 번째는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그는 2004년 봄, 류승범을 주인공으로 ‘영원한 남편’을 찍기 위해 준비했다. 캐스팅이 끝나면 제작 준비가 다된 거나 마찬가지인 충무로였지만, 그 영화는 엎어졌다. 그 이후 준비한 ‘겨울 방랑자’도 때를 놓쳤고, 지금은 ‘부전자전’을 준비하고 있다. 인간의 자유 의지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버지와 규범대로 살아가려는 아들 사이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작품이다. 그는 지금 당장 영화화할 수 있는 자작 시나리오를 6편이나 가지고 있다. “나 혼자 낙오되어서 벌판에 혼자 서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내가 존경하는 아나키스트들의 삶은 다 비참했으니까. 그것을 영화 ‘아나키스트’에서 표현하고 싶었지만, 그 영화의 감독은 국수주의자였다. 아나키스트는 하나의 패션이 돼버렸다. 만약 지금 이 삶이 모두 허구이고 모순이라면, 자연의 섭리를 주관하는 신이라는 존재가 없어서 내가 생각하는 방향대로 안 된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 견디기 힘들 것 같다. 영화에서도 박찬욱이나 김기덕처럼 비주류에 있다가 자기의 파워를 갖는 사람들은 지금, 자기점검을 해야 한다.” 나는 그에게, 소설가 김훈에게서 들은 아나키스트 묘지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경기 벽제 어디에 있다는 한국 아나키스트들의 묘지에는 주로 일제시대에 활약했던 사람들이 묻혀 있다. 묘지 앞의 퇴색한 나무 팻말에 ‘권력이 있는 곳에 정의는 없다’라고 쓰여 있다는 것이다. 이무영의 눈이 반짝거렸다.

‘휴머니스트’ ‘철·파·태’로 내공 쌓고 세 번째 영화 도전 준비

우리는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안주로 삼았다. “사극을 한다면, 허균을 제대로 한번 그리고 싶다. 우리나라 역사인물 중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허균이다. 그가 엎으려고 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너무나 엄청나다. 내가 생각하는 영화적 장치는 광해군과 허균을 베스트 프랜드로 설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충격일 것이다.” 이무영은 지금까지 2편의 영화를 감독했고(‘휴머니스트’ ‘철.파.태’), 감독한 영화의 각본을 포함해서 모두 7편의 영화 시나리오를 썼으며(‘본 투 킬’ ‘삼인조’ ‘공동경비구역 JSA’ ‘아나키스트’ ‘복수는 나의 것’), 3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박찬욱과 이무영의 성을 따서 만든 기획사 ‘박리다매’는 박찬욱 감독의 놀라운 성공으로 잠시 휴식 상태에 있다. 94년 ‘펄프 픽션’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 한국에서 개봉되었을 때, 감독인 타란티노가 한국을 방문했다. 한 영화 잡지사에서 타란티노 감독의 인터뷰를 기획했고, 박찬욱 감독이 대담자로 결정되었으며, 통역을 맡은 사람이 이무영이었다. 결국 이때의 인연은 10년 후 ‘올드보이’가 칸영화제에 진출하면서 이어진다. 심사위원장인 타란티노 감독은 ‘올드보이’가 심사위원 대상을 받는 데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물론 작품이 좋아서 상을 받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큰상을 받는 데는 좋은 인연도 따라야 한다. “타란티노는 소주를 거의 물고기가 물 먹듯 마셨다. 그때는 그가 30대 초반이었으니까 아직 애였다. 얼떨결에 칸에 가서 상 타고 얼마나 황당했겠나. 그는 B급 영화의 거두인 몬티 헬만의 비디오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타란티노가 먼저 비디오를 보내주겠다고 내 주소까지 물어보고 적어갔는데, 아직 안 보내주었다. 그때 소주를 7병이나 마셨으니까 취한 상태의 약속이라고 잊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계속 비가 내렸다. 오뎅 국물이 너무 맛있어서 청주 3병을 연거푸 비웠다. 우리는 비틀스와 핑크 플로이드, 그리고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킹스와 후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그의 다음 작품에 배우로 써달라고 했다. 나는 분명히 캐스팅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술값을 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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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고 싶을 때 이 글을 보면 그런 마음이 싹 가신다.요즘은 허접한 글도 안써진다.

http://armarius.net/bbs/view.php?id=profanus&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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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의 절대 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 그들은 평생동안 살아있는 자연만을 마주하고 살아간다. 죽어있는 글자 따위는 눈에 담지 않는다. 책이 그들의 삶에 파고들 여지는 전혀 없으며 그런 까닭에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과 같은 게 있을 수가 없다. 책을 읽지 않는 그들은 자연과 자신의 일치 속에서 살아가므로 원초적으로 행복하다. 또한 그들은 지구에게도 행복을 준다. 지구가 원하는 것은 한치의 어김도 없이 순환의 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인데 그들은 나무를 베어 그걸로 책을 만들고 한 쪽 구석에 쌓아놓는, 이른바 순환의 톱니바퀴에서 이빨을 빼내는 짓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나 얼룩말처럼 평생을 살다가 어머니인 대지의 품에 안겨서 잠든다. 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한번의 자기반성도 하지 않는다. 마치 사자가 지금까지의 얼룩말 잡아먹기를 반성하고 남은 생을 풀 뜯어먹으면서 살아가기로 결심하지 않는 것처럼.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나는 이 글에서 '왜 책을 읽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내놓을 수가 없다. 대신 전 지구인의 입장에서 보면 한 줌도 되지 않을 책 읽는 사람들이 책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를 서술하고, 그에 이어서는 책을 어떻게 읽는 게 좋은지, 몇 권이나 읽는 게 좋은지 따위와 같은 하찮은 문제 등을 생각해보는 것에 그치려 한다.


2.
책 읽는 방식은 몇 가지로 유형화될 수 있다.

2.1 동화책 읽기
누구나 세상에 태어나서 조금 자라면, 그가 이른바 '문명세계'에 살고 있다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지상명령을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문자를 알지 못하므로 누군가 옆에서 책을 읽어준다. 그러니까 최초에 하는 일은 읽기가 아니라 듣기인 것이다. 이렇게 듣다가 문자를 깨우치게 되면 스스로 읽는 단계에 접어든다.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왜 책을 읽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고 그저 읽을 뿐이다. 어린 시절만이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든지 초보자는 무작정 듣는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스스로 읽는 단계에 들어설 수가 없다. 가령 대학원생이 되어 논문을 쓰겠다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그는 학문 세계의 초보자이다. 그가 논문을 쓰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 그가 아무리 이전에 책을 많이 읽었다해도 논문을 쓰기 위한 책읽기는 해본 적이 없으므로 그는 사실상 어린아이이다. 그가 책읽기를 하려면 먼저 듣기를 해야 한다. 듣기 단계를 거치지 않은 학생들은 약간의 지식을 가지고 논문 하나, 잡글 서너 개 쓰고 만다.

2.2 교과서와 하이틴 로맨스 읽기
인간은 육체적 존재다. 책은 기본적으로 정신에 호소하는 것이므로 인간은 본능적으로 책을 멀리하게 되어 있다. 굳이 책을 읽어야 한다면 몸에 좋은 책을 읽는 것이 순리에 맞다. 이런 책들이 하이틴 로맨스와 무협지다. 하이틴 로맨스, 무협지와 더불어 읽는 책은 교과서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책만이 교과서는 아니다. 사실을 담고 있다고 여겨지는, 반드시 외워야 한다고 기성체제가 강요하는 책들이 교과서이다. 교과서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사람은 어떤 판단이나 행동을 할 때 그것의 근거를 확실해 보이는 사실에서 찾는다. 청소년기에 읽게 되는 교과서는 대한민국 사람의 의식의 저변에서 그 역할을 한다. '돈이 많으면 세상살이가 편하다', '어떤 직업을 가지면 돈벌이가 괜찮다',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는 건 빨갱이다' -― 이 모든 것들이 교과서에 나온다. 체제 유지를 위한 사실 묶음으로서의 교과서와 피곤하고 괴로운 현실의 휴식처로서의 무협지, 하이틴 로맨스라고 하는 두 가지 줄기는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기는 하지만 평생에 걸쳐 남아 있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에는 강의 시간에 교재로 쓰이는 책에서 시험 치르기에 필요한 사실들을 외우고 남은 시간에는 위안을 가져다주는 환타지 소설을 읽으며 보낸다. 인간 존재의 근본을 흔드는 책읽기 경험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직장에 들어가서도 이 줄기는 바뀌지 않는다. 업무에 필요한 매뉴얼 읽기와 따라 해보기, 그리고 가끔 읽는 '누가 내 치즈...' 류의 책들이 그들의 삶을 채운다. 이런 식의 독서가 이어져 나이가 들면 눈이 어둡다는 핑계로 저절로 책을 읽지 않게 된다. 더 이상 매뉴얼 읽지 않아도 된다면 더 이상 읽을거리를 찾지 않게 된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치매예방을 위한 두뇌활동으로서의 고스톱 치기와 술자리에서의 토론을 위한 테레비 보기뿐이다. 많은 이의 책 읽는 활동이 이 유형에 속한다. 심지어 책 읽고 글쓰는 것을 직업으로 한다는 사람들도 이 유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공부를 하고 논문을 쓰는 과정이 자신의 실존적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높은 외면적 지위를 얻게 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러한 필요에 따라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그 필요에 잘 맞춰진 논문을 만들어낸 다음에는 공인 학술지에서 요구하는 조건에 맞추어 논문을 쓴다. 가끔씩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멋스러운 글도 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일정한 위치에 올라서면 책읽기가 불필요해진다. 회사원들이 직장에서 짤리지 않기 위해 업무에 도움이 되는 책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학교라는 직장에서 버티기 위해 필요한 만큼만 책을 읽고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 세계의 변화와는 무관한 글을 만들어내는 게 학술활동의 전부가 된다. 그러다 퇴직을 하면 편안한 노후를 보내게 된다.

2.3 <<교양>> 읽기
아주 가끔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교양>>같은 책을 읽는 이를 만날 수 있다. 두서없이 헛소리를 해대던 사람이 지금 <<교양>>을 읽고 있다는 말을 하면 얼마나 황당한지 모른다. 그들은 떠들기 위해 책을 읽는다. 이 분야 저 분야로 옮겨 다니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책을 읽는다. 'xx아카데미'에 다니기 위해 책을 읽는다.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세 미나를 하면서 집단적인 최면 상태에 빠져들기 위해 책을 읽는다. 방대한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상대방을 주눅들게 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스스로가 독서인임을 자랑스러워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과시적으로 책을 읽는다. 사람들이 잘 안 읽는 책만 골라서 읽는다. 이 사람들은 늙어서도 책을 읽는다. 늙어서까지 출판사에게는 가장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인생은 낭비되었고 그들의 지식은 그들의 몸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곁에 쌓여 있을 뿐이다.


3.
지금까지 말한 세 가지 정도의 책읽기 유형 중에서 자신은 어디에 속하는지 한번 체크해보기 바란다. 어느 유형에도 속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연인이다. 사자와 마찬가지다. 첫번째 유형에 속한다면 인생의 행복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다. 두번째 유형에 속한다면 빨리 책읽기를 그만두는 게 좋다. 세 번째 유형에 속한다면 계속하라. 내가 그만두라 한다해서 그칠 사람이 아닐 테니까. 이제부터는 책읽기와 글쓰기의 방식에 대해 말하겠다. 이 방식은 아주 이상적인 것이다.

3.1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정답은 하나다 --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세상에는 좋은 책이 없다. 이 책은 뭐가 부족하고 저 책은 또 뭐가 모자란다. 그러니 좋은 책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일단 아무 책이나 읽어야 한다. 어떤 주제에 관한 책 하나를 읽어서 별로였다 싶으면 다른 책을 골라서 읽어야 한다. 맘에 드는 책을 만날 때까지 읽어야 한다. 관심 주제가 걸쳐져 있는 범위에서 아무거나 골라서 다섯 권만 읽으면 저절로 선별이 될 것이다. 처음부터 좋은 책을 골라서 읽겠다는 건 한심한 결심이다. 책을 읽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고를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도 어이없는 일이다. 무지하기는 매일반이니 특별히 책에 관한 도사가 아니면 누구에게 물어볼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3.2 어떻게 읽을 것인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꼼꼼히 읽어야 한다. 세상사에 그리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고전을 붙잡고 한 자 한 자 정성들여 읽는 게 좋다. 이른바 원전강독이라는 게 이런 식으로 읽는건데 요즘처럼 바쁜 세상에 이 짓을 하는건 바보로 여겨지지만 최소한 두 권은 이렇게 읽어야 한다. 도서관에 가지 말고 방구석에 쳐박혀서 혼자서 읽어야 한다. 무슨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많은 사람들은 대개 함께 읽을 사람들을 찾아서 세미나라는 걸 한다. 그렇게 여럿이 모여 읽으면 다 읽어도 내가 다 읽은 게 아니다. 다섯이 모여서 백페이지를 읽었다할때 내가 읽은 건 사실 20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데도 다 읽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3.3 얼마나 많이 읽어야 하는가
절대로 장서가의 꼬임에 넘어가서는 안된다. 만 권의 책을 읽었다는 말에 현혹되면 안된다. 만 권을 가지고 있을지는 몰라도 그걸 다 읽었다는건 거짓말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많이 가지고 있고 많이 읽었다해서 대단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면 안된다. 중세 시대 최고의 도서관 중의 하나였던 이탈리아 보비오 수도원의 장서는 666권이었다는 사실을 늘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중세가 아니니 더 읽어야 한다는 말 따위에 귀기울이면 안된다.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관심을 가지게 될 분야는 셋을 넘지 않으니 각 분야당 100권씩 읽으면 300권이고 거기에 고전 50권을 덧붙여서 350권이면 충분하다. 이 만큼만 꼼꼼하게 읽고 죽으면 후회하지 않는다.

3.4 글은 어떻게 써야 하는가
책읽기에서 그치면 더없이 좋으나 글을 쓰고 싶어지는 사람이 가끔 있다. 그러나 될 수 있으면 글을 써서는 안되고 책을 쓰겠다는 생각은 더더욱 해선 안된다. 도저히 참기가 어려우면 100:1의 공식을 떠올려라. 책 한 권 쓰려면 먼저 100권을 꼼꼼히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글 한 페이지 쓰려면 100페이지는 읽어야 한다. 이 공식을 머리에 담아두면 뭘 쓰겠다는 욕 심이 저절로 없어진다. 그래도 이 공식을 다 충족시켰고 뭘 쓰겠다는 생각이 들면 다음과 같은 일을 하라. 1) 자신이 읽은 책을 하나도 빠짐없이 요약 정리하라. 요약 정리는 중고등학교때부터 많이 해봤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것은 책을 읽고 내 머리로 요약한 것이 아니라 남이 정리해놓은 것을 되풀이해서 읽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내 머리로 다시 읽고 내 손으로 요약정리를 해야 한다. 책을 한 권 쓰고 싶으면 반드시 100권의 책을 꼼꼼하게 읽고 반드시 요약 정리해야 한다. 2) 요약 정리를 하면서 기본적으로 중요한 개념들은 따로 정리하여 개념 카드를 만들어라. 세상에 굴러다니는 대부분의 글은 자신이 쓰는 개념에 대한 정리가 안된 상태에서 시작되고 끝나며 그에 따라 의사소통 불능상태로 공적인 토론 영역에 던져진다. 개념카드 만들기는 이런 무책임한 글쓰기를 방지하는 핵심적인 장치이다. 개념카드가 있어야 자신이 내놓은 글을 가지고 나중에 다른 사람과 토론을 할때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가 있다. 3) 개념카드와 요약정리를 되풀이해서 읽으며 자신이 쓰고자 하는 주제에 관해 가장 잘되었다 싶은 글 하나를 골라서 필사한다. 컴퓨터 워드 프로세서에서 타이핑하는 것 말고 자신이 직접 손으로 종이에 필사를 해야 한다. 필사를 해보지 않으면 글을 쓰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지 못한다. 필사를 하다보면 의식이 몽롱해질 때가 있는데 사람들은 자신의 글을 쓰면서도 그렇게 몽롱한 상태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남의 글 베끼기도 제대로 된 정신상태에서 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자신의 글을 세상에 내놓겠는가. 필사는 문장연습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쯤되면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질 것이고 그에 따라 글쓰기를 단념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4) 그래도 기어이 글을 쓰고싶다면 써보라. 단 글을 쓴 다음 적어도 세 달을 묵혀두고 나서 다시 읽어 보라. 그때 괜찮다 싶으면 다시 또 세 달을 묵혀두고 다시 읽는다. 그래도 괜찮다 싶으면 그때 주변 사람에게 보여라. 그들이 괜찮다 하면 다시 세 달 후에 보여라. 그래도 괜찮다고 하면 그때 가서 세상에 내보여라. 세상에 내보인 다음에는 곧바로 잊어라.


4.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그렇게 하고 있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책을 350권만 읽었느냐고, 당신은 글을 그렇게 쓰느냐고 물을 것이다. 아니다. 난 책을 350권 더 읽었다. 뻔뻔한 대답이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저 아무 생각없이 저지르는 일일 뿐이다. 다른 할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책을 읽는 것이다. 회사에서 일을 잘하기 위해 책을 읽는 일도 없다. 그냥 자신의 도락과 심심풀이를 위해 책을 읽을 뿐이다. 글도 나는 그렇게 쓰지 않는다. 이렇게 청탁을 받아서 후다닥 뚝딱쓰는 게 습관처럼 되어 있다. 그러니 그에 걸맞는 대접을 받는게 옳다고 본다. 이 글을 읽은 다음 독자 여러분은 이 글이 실린 신문을 곧바로 접어서 구석에 쌓아 두었다가 자장면을 먹을 때 받침으로 쓰기 바란다. 다 먹고 난 다음 그릇을 싸서 현관 밖에 내놓으면 더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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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 대학원신문 2002.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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