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릴케 현상 > 문

허균/본지전문위원,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문은 특정 공간을 드나들 때 이용되는 건축구조물이다. 건축적인 의미로 보면 ‘하나의 공간적 영역을 이루는 경계와 그 영역에 이르기 위한 통로가 만나는 지점’이 문인 것이다. 따라서 문은 독립적인 구조물이라기보다는 담?벽 등의 경계 요소와 같이 있을 때 그 기능과 의미를 다한다고 할 수 있다. 방문?광문?중문?대문?성문 등이 그 예이다.

그런데 문은 문틀을 세우고 문짝을 단 것이 대부분이지만 한국인에게 있어서 문이란 꼭 이런 형식의 구조물로 인식되는 것만은 아니다. 옛날 신라와 백제 사이의 국경에 있던 나제통문(羅濟通門)은 암벽을 뚫은 동굴 모양이고, 담양소쇄원의 오곡문(五曲門)은 담장의 한 부분을 잘라놓은 형태이다. 사찰의 일주문이나 왕릉의 홍살문은 두 개의 기둥으로만 되어 있다. 이런 문은 개폐(開閉) 기능이나 문과 문틀로 짜인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공간적 성격과 함께 상징적 의미를 가진 문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문은 음양오행과 풍수지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실제로 양택(陽宅)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주실(主室)을 어느 위치에 두고, 대문(정문)을 어디에 어떤 방향으로 내는가하는 좌향(座向)의 문제이다. 방위가 비록 나침반을 기준으로 하는 자연과학적 방위와 같다 해도 전통적인 한국인의 공간인식 형태에서는 독특한 현상을 보인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음양오행 원리의 적용을 통해서 공간의 질서화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민속에서 보는 문은 사람은 문론 귀신들의 통로이다. 그래서 문신(門神)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설날?입춘?단옷날이 오면 그림이나 글씨를 대문짝에 붙이기도 했다. 집 안에 잡귀가 대문을 통하여 들어온다는 인식 때문에 유독 주술적인 벽사(?邪) 풍습이 많았다. 문은 또한  행복과 불행까지도 출입하는 통로이다. ‘개문만복래(開門萬福來)’라는 말도 이런 관념의 소산이다.

한옥의 문 이름은 문살 짜임의 형태에 따라 붙여지기도 한다. 완[卍]자문, 아(亞)자문, 용(用)자문은 문살 짜임이 각각의 글자를 닮았기 때문이고, 귀갑살문, 꽃살문, 교살문 등은 문양이 그와 같은 모양이기 때문이다. 문살을 짜는 일은 집을 아름답게 꾸미는 중요한 일이 된다. 좌우상하 대칭을 기조로 변화와 균제의 미, 그리고 절묘한 공간 분할을 특징으로 하는 문살 짜임은 기둥과 비례되어 섬세하고 정갈한 멋을 연출해 낸다.

문은 기능성과 상징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문의 용도와 구조가 기능과 관련된 것이라 한다면, 문의 위치와 향방, 그리고 문과 관련된 민속과 주술 등은 상징성과 관련되어 있다. 현대인들은 문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보다 기능성만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기능성의 추구는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해 줄 수 있어도 인간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 주기는 어렵다.

경복궁 광화문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正門)이다. 남쪽 문, 즉 오문(午門)을 정문으로 설정한 것이다. 남문을 정문으로 한 것은 남쪽이 동?서?북쪽보다 막중한 주술적?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문이라는 이름에는 임금의 명령과 교지가 반드시 이 문을 거쳐서 나가고, 보고(報告)와 현명한 인재도 모두 이 문을 통해서 들어오기 때문에, 나가고 들어올 때 깊이 살피고 허락함에 있어서 반드시 정(正)에 본을 둔다는 뜻이 투영되어 있다.

직산 향교 솟을삼문
평삼문(平三門)은 종묘나 재실?사당?향교?서원 등에 많이 사용되는데, 중앙 칸은 신도(神道)로서 혼령만이 출입하며, 협간은 제주(祭主)들의 출입구로 이용된다. 공통적으로 문짝에 붉은 단청을 바탕으로 칠하고 커다란 태극무늬를 그려 넣는다. 동양철학의 궁극적 도형인 태극을 그림으로써 사당건축의 내면적 의미, 즉 조상에 대한 영원한 숭배를 상징한다. 평삼문의 중앙 칸의 지붕을 양 옆 칸의 것보다 높게 꾸미면 ‘솟을삼문’이 된다.


건원릉 홍살문
능(陵)·원(園)에서 주로 볼 수 있는 홍살문[紅箭門]은 일주문처럼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다. 중국의 군주?제현(諸賢)?태수 등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그 거처와 고을에 세웠던 석궐(石闕)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높은 나무기둥 두 개를 세워서 그 위에 가로대를 가로질러 기둥에 꿰고, 여기에 홍살을 수직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놓고, 석간주 칠을 해 놓은 것이다. 중앙에 태극문양을 장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태극문양 위의 지창(枝槍)은 2지창과 3지창의 두 가지로 구분되어 있다

예천 용문사 일주문
일주문은 기둥이 일렬로 서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주문은 기능성보다 상징성이 큰 문이다. 구조는 통로와 직각이 되게 일직선상의 기둥 2개를 세워서 그 위에 창방과 평방을 가로대고, 또 여기에 양쪽 기둥 위에서 十자형으로 짧은 창방과 평방을 짜 그 위에 공포를 짜 올려 도리와 서까래를 걸고 부연(副椽)을 올린 형식이다. 이와 같은 일주문의 구조는 신성한 사찰 경내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씻고 일심(一心)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남한산성 동문
동문을 일명 창룡문(蒼龍門)이라고도 부른다. ‘푸른 용’의 문이라는 뜻으로 좌청룡, 우백호 등 사신의 배치와 관련이 있다. 실제로 수원 화성의 동문 이름이 창룡문이다. 만물은 생성(生成)하는데, 동쪽은 생(生)하는 방위이고, 서쪽은 성(成)하는 방위이다. 그래서 성문을 낼 때 동문을 중요시하여 그 규모를 장대하게 한다. 오행으로 보아 동쪽은 목(木)에 해당하고, 서쪽은 금(金)에 해당한다. 반대되는 위치에 서문은 동문과 상호 보완 관계를 가진











농촌 민가 대문
우리나라 건축에서 대문과 정문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나, 엄밀히 구분한다면 대문은 출입에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는 제일 큰 외문을 의미하고, 정문은 그 건물의 정면, 즉, 앞면에 위치한 문을 말하는 것이다. 대문은 사람은 물론 귀신, 행복과 불행 등 모든 것이 드나드는 통로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대문과 관련된 풍속이 많이 생겨났다. 신춘에 입춘방이나 용?호랑이 등을 그린 세화(歲畵)를 붙이는 곳도 대문이고, 출산 했을 때 금줄을 내다 거는 곳도 대문이며, 가뭄이 들거나 장마 피해가 클 때 음?양의 기를 조절하기 위해 여닫는 것도 대문이다. 이렇게 보면 한옥의 대문은 민속자료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창덕궁 영화당 분합문
대청에 주로 설치하는 분합문(들어열개)은 평소에는 경첩으로 기둥에 고정해 놓고 여닫이처럼 사용하다가 날씨가 덥거나 공간을 넓힐 필요가 있을 때는 모든 문짝을 포갠 뒤 함께 들어 올려 처마 밑에 매달아 놓는다. 궁궐이나 사대부 집 처마에 말굽모양 또는 타원형의 철물이 드리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방문을 걷어 올려 매달기 위한 장치이다. 문을 매달아 놓으면 방문에 의한 경계선은 일시에 사라지고 공간은 기존의 구별을 떠나 하나의 공간으로 융합된다

독립문
갑오경장 이후 자주독립의 결의를 다짐하기 위해 사대외교의 표상인 영은문(迎恩門)을 헐고 그 자리에 세운 문이다. 문이라고 하지만 문짝이 없다. 중앙에 홍예(虹霓)가 있고 내부 왼쪽에 정상으로 통하는 돌층계가 있으며, 정상에는 돌난간이 둘러져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홍예의 이맛돌에는 이화문장(李花紋章)이 새겨져 있고, 그 위의 앞뒤 현판석에는 각기 한글과 한자로 ‘독립문’이라는 글씨와 그 좌우에 태극기가 새겨져 있다

 


 

민가의 띠살문
띠살문은 한옥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문이다. 수십 개의 장살(수직 살)을 좁은 간격으로 내리고 여러 개의 동살(수평살대)을 상중하에 무리를 지워 교차시킨 모양을 기본으로 한다. 장살 무리를 가로지르는 동살 무리를 보면 상하의 살대 수가 음의 수(짝수)일 경우는 중의 살대를 1-3개 많은 양의 수(홀 수)로 하고, 그 반대일 경우는 1-3개 적은 음의 수를 택하고 있는 것을 흔히 본다. 평범한 문살의 짜임 속에도 음양의 조화를 추구하는 한국인의 정신세계가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외암리 민가의 격자문
격자문은 일정한 간격의 여러 개의 장살과 동살을 직각으로 교차시켜 짜 맞춘 문을 말하는데, 한자의 우물 정(井)자와 비슷해서 정자문(井字門)이라 하기도 하고, 혹자는 넉살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격자문은 일견 체나 그물을 짜 놓은 것처럼 보이는 이 문은 ‘체와 야광귀(섣달 그믐날 밤에 나타나 신발을 훔쳐간다는 귀신)’ 이야기와 관련되어 벽사(?邪)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즉, 그믐밤에 집으로 침입하려던 야광귀가 대문에 매달아 놓은 체를 보고 호기심이 발동하여 가는 올을 하나하나 다 세다가 새벽이 오자 놀라 도망갔다는 이야기이다.


창덕궁 낙선재 상량정 월(月)문
창덕궁 낙선재는 국상을 당한 여인들이 삼년상의 기간동안 근신하며 사는 집이다. 궁중 여인들의 공간에서 두꺼비(교태전 석분)나 토끼(대조전 굴뚝) 문양 장식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 문양은 모두 달을 상징한다. 두꺼비와 토끼 장식이 간접화법이라면 상량정의 월문은 직접화법이다. 궁중 여인들의 가장 큰 소망은 달의 선녀인 항아(姮娥)처럼 사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낙선재 뒤뜰을 달로 만든 것이다.

담양 소쇄원 오곡문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의 유입을 막지 않으려는 배려에서 탄생한 문이다. 계곡 바닥에서부터 돌기둥을 일정한 간격으로 쌓아 올려 주변 평지와 높이를 같게 한 후 그 위에 돌담을 쌓았다. 담 밑으로 흘러드는 물이 다섯 번 굽이쳐 흘러내린다고 오곡문(五曲門)이라 한 이름에서 자연과 함께 했던 옛 선비들의 풍류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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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balmas > 두발 자유, 청소년인권 보장 촉구 거리행진

6/18 두발자유, 청소년인권 보장 촉구 거리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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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사랑방 

청소년인권을 위해 직접행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청소년, 비청소년 누구나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걸어서 행진하실 분은 몸둥이 하나로,

자전거로 행진하실 분은 자전거를 끌고,

휠체어를 타고 행진하실 분은 휠체어를 타고

3시 명동성당으로 모여주세요~


2006년06월16일 0:3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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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퍼온글] 인문학도에게 자연과학의 지식이 필요한 이유

내일 아침 신문들을 검색해보다가 '서울대 2008 논술 예시문항'이라는 타이틀이 눈에 띄었다. 예시문항 중 "인문과학을 공부하는 학생에게도 자연과학의 지식이 필요한가에 대해 그 이유를 들어 논술하시오"란 문제가 그래도 흥미를 끌어서 잠시 생각해보려고 한다. 제시문의 출처자 진 캐리의 <지식의 원전>이라고. 개인적으론 박사과정 수료 후에 몇 년간 중고생들에게 논술을 지도해본 경험이 있는데, 아직도 '가락'이 남아있는지 확인도 해볼 겸.

 

 

  

 

-과학이 무신론이고 윤리와는 거리가 멀다는 견해는 스페인의 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말하는 ‘문화인’들 사이에서 과학에 대한 반감을 더욱 부채질하곤 했다. 이 두 가지 반감의 원인이 타당한 것인지는 좀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과학자도 신의 존재를 믿을 수 있고, 더 나아가 신의 존재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찾으려 할 수도 있다. 무신론자들에게는 이것이 지루한 과학과 극단적 기독교의 만남 정도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같이 저명한 과학자가 분자구조를 이용해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던 것을 비웃을 수는 없다(*물론 모든 과학자가 무신론자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에 대한 '과학적 증명'을 시도하는 과학자는 많지 않다).

 

 

 



-물론 과학자들 중에는 무신론자도 많이 있다. 동물학자인 도킨스는, 모든 종교는 무한히 복제되는 정신적 바이러스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갖고 있었다(*문화적 밈의 일종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확고한 유신론자들의 관점에서는 이 모든 과학적 발견 역시 신에 의해 계획된 것을 발견한 것이므로 종교적 지식이라고 할 수도 있다. 따라서 과학의 본질을 무조건 비종교적이라고 간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과학자나 종교학자가 모두 진리를 찾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과학과 신학은 동일한 목적을 추구한다고도 할 수 있다(*그래서 신학이 포퍼 등이 말하는 '반증가능성'에 개방되어 있는지?). 과학이 물리적 우주에 관한 진리를 찾는 것이라면, 신학은 신에 관한 진리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신학자들이나 혹은 어느 정도 신학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믿고 우주를 통해 신과 만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신과 우주가 근본적으로는 뚜렷이 구분되는 대상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많은 과학자들이 과학과 종교는 서로 대립되는 개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신경심리학자인 리처드 그레고리는 ‘과학이 전통적인 믿음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기 때문에 과학과 종교는 근본적으로 다른 반대의 자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바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종교가 가지고 있는 변화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유럽에서 일어난 모든 종교개혁운동은 전통적 믿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시도였다.

-과학은 증거에 의존하는 반면 종교는 계시된 사실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이들 간에 극복할 수 없는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종교인들에게는 계시된 사실이 바로 증거이다. 지속적으로 신에 관한 증거들에 대해 회의하고 재해석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신학을 과학이라고 간주하더라도 결코 모순은 아니다. 사실 그것을 신학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신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본 바와 같이 과학적 연구가 몇몇 과학자를 신에게 인도했던 것처럼, 신학연구가 그 신학자를 무신론자로 만들지 않을 이유는 없다(*하지만, 그때의 무신론자를 우리는 여전히 신학자라고 부를 수 있는가?).

 

 

 



-과학의 정반대에 서 있는 것은 신학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이다. 과학은 지식의 범주에 있지만, 정치는 견해의 범주에 속한다(*견해/의견의 영역으로서의 정치는 진리와 무관하다는 얘기이다. 한데, '신학정치론'은?). 정치는 좋아하느냐 마느냐를 문제 삼는 분야로, 단지 말잔치를 통해 진리의 위치로 상승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정치는 인물과 웅변술에 의존하고, 사회계층과 인종, 그리고 민족을 핵심적인 요소로 하고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은 과학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리고 정치는 갈등을 기반으로 존재하고 적대세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대립구도가 와해된다면 정치는 더 이상 존재할 수가 없다. 즉 완벽한 의견일치를 보이는 세상에서는 정치가 존재할 수 없다(*따라서 전체주의에는 정치가 부재한다. 정치는 '민주주의'를 범형으로 갖고 있기에).



-반면에 과학은 대립이 아닌 상호 협조의 운명을 지니고 있다. 물론 과학사는 지독한 논쟁과 고뇌, 그리고 반대이론의 파괴로 점철되어 있다. 하지만 의견일치에 도달하면 과학은 붕괴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발전한다(*종교 또한 그러한가?). 또 다른 핵심적인 차이로 정치는 인간을 구속하려 든다는 점이다. 정치의 주된 관심은 권력의 집행에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정치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폭력(전쟁, 학살, 테러 등)을 사용할 수도 있으며, 가끔 실제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학은 전혀 그렇지 않다. 열역학 제2법칙과 같은 진리를 규명하기 위해 전쟁을 한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는가?(*전쟁까지야 불사하지 않겠지만 테러 정도라면?) 물론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정치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고 정반대 의미의 과학이 존재하는 이상적인 상태가 실제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다. 실제로는 다른 모든 것처럼 과학도 정치에 의해 유린되고 왜곡되는 것이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 그러나 과학이 호전적이고 파괴적인 도구로 사용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은 본질적으로 과학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는 정치의 책임이다.

 

 

 

 

-우리는 이러한 과학의 비정치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과학이 초윤리적(超倫理的)이라는 비난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읽다 보니까 아주 나이브한 견해이다. 과학적 탐구 자체는 비정치적일지 모르지만, 과학자는 지극히 정치적이지 않은가? 한편, 과학이 초윤리적인 만큼 종교 또한 초윤리적인가?).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과학의 초윤리성을 과학의 문제점이 아니라 오히려 강점과 순수성으로 인식해야 한다.

-한편, 정치는 윤리로부터 절대 분리될 수 없다. 정치는 창자 속의 촌충처럼 윤리성 혹은 개념의 선악을 규정함으로써 발전해간다. 따라서 과학이 초윤리적이지 않고는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는 것이다(*이 또한 정치에 대한 한 가지 견해, 혹은 편견 아닌가? 정치에서 문제되는 것은 도덕적/윤리적 알리바이이지, 도덕/윤리 자체가 아니다. 정치는 마키아벨리즘의 영역이다).

 

 

 



-윤리적인 용어로 냉정하고 논리적이며 비인간적인 인생의 접근방식을 종종 ‘과학적’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과학적 방법을 윤리적 관점으로 단순히 연결시키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학은 그것이 냉정한 것이든 아니든 윤리적 관점과의 연결을 결코 용인하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서는 동일한 과학적 명제들이 매우 상반되는 윤리적 평가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가령 인간을 원숭이와 관련짓는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을 격하시키는 것처럼 비추어졌고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브루스 프레데릭 커밍스는 이 진화론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다(*요컨대, 과학자도 춤을 춘다는 것. 한데, 작가 카잔차키스는 진화론 때문에 가출했다).



 

 

 

-나로서는 내가 다른 동물들과 가까운 친족관계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나는 나의 유인원 조상들을 선망하며, 그들이 자랑스럽다. 내가 한때는 숲 속에 사는 무수히 많은 털을 가진 유인원이었으며, 바다의 한천류로부터 활유어, 물고기, 공룡, 그리고 원숭이를 거치는 지질학적 시간대를 통해 지금의 내 틀이 완성되었다는 생각은 언제나 나를 즐겁게 한다. 누가 이런 생각을 에덴동산에서 어슬렁대는 한 쌍의 남녀와 바꾸려 들까?(*과학고 신학은 동일한 목적을 갖고 있다는 주장은 어디로 갔는가?)



 

 

 

-과학자 개개인은 연구를 추구하는 윤리적 혹은 초윤리적 이유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들이 그들의 발견에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으며, 그 발견이 발견자의 동기와는 전혀 무관하게 옳은 것이 될 수도 혹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신학/종교 또한 그러한가?). 데이비드 보다니스처럼 파스퇴르의 대중을 혐오하는 성향과 그가 밝혀낸 질병과 박테리아 사이에 어떤 관련성을 찾으려고 시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파스퇴르가 밝혀낸 사실의 과학적 신뢰성은 인간을 불신하는 그의 성향으로 인해 강화되지도 혹은 약화되지도 않는다.



 

 

 

-이처럼 과학이 윤리나 종교적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왜 독자들이 구태여 과학을 알아야 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좋은 답은 과학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지식)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지식에의 의지는 우리를 과학으로 이끈다?). 이에 대한 반대는 무지일 뿐이다. 콜리지는 이러한 점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최초의 과학자는 관찰대상이 그에게 식량이나 피신처, 무기, 도구, 장신구, 또는 장난감을 제공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안다는 것의 희열을 찾기 위해 사물을 관찰하는 사람이었다(*아르키메데스 이후에 스트리킹한 사례를 더 들어보지 못했다. 그 많던 희열은 다 어디로 갔는가?).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과학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지게 된 무지의 크기도 커졌다(*'부정적 발견의 시대'라는 표현은 이러한 무지의 확대도 내포한다. 종교니 윤리니 들먹이지 말고 차라이 이 문제에 더 집중하는 게 좋을 뻔했다). 문학이나 예술분야에서만 교육 받아온 사람들에게는 20세기 후반의 현대적 지식 대부분에서 몽매한 암흑의 영역이 크게 확대되었다. 무지의 추방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의 역사상 처음으로 새로운 형태의 무지한 지식층이 생겨난 것이다(*필자가 빼먹고 있는 지적은 전문화되어 있는 과학 또한 이러한 무지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층 중에서 그래도 나은 사람들은 자신의 무지를 통렬히 후회하는 사람들이다. 20세기 미국의 뛰어난 문학비평가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라이오넬 트릴링은 ‘근대사의 특징적 성취라고 불리는 상상적 형태로부터 배제됨으로써 지적 자기만족에 큰 상처를 입게 되었다’고 탄식했다(*트릴링의 책은 번역된 책이 한권도 없는 것인가? 참고로 평론가 유종호 선생의 학위논문이 트릴링의 소설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좀더 최근에는 과학에 대한 무지가 어느 정도의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받기도 했는데, 과학을 지구 오염의 주범으로 몰아세운 녹색운동이 이러한 부분에 기여하였다. 또한 과학을 남성중심적 권력의지의 발현으로 몰아세우는 페미니즘도 마찬가지이다(*필자의 비판은 '다른 과학'에 대한 주장인 듯하다).

-이러한 비난을 제기하는 것 자체는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과학을 포기해야 하는 정당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과학이 정치에 의해 잘못 사용되어졌기 때문에 발생한 공해문제의 해결은 과학적 수단을 통해서만 해결이 가능하다(*환경문제의 해결도, 성차별의 문제도 '과학적 수단'을 통해서만 해결 가능하다?). 가장 기본적 레벨에서조차 위험에 처한 식물이나 동물을 조사하고 보호하며 보존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과학적 노력에 의해서 달성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흔하게 하는 말이지만, 과학은 목적합리성에 대해서 질문할 수 있는가?).

 

 

 



-과학이 남성의 목적이나 태도에 의해 지배된다고 불평하는 페미니스트들도 여성의 과학에 대한 무지와 배타적 성향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오히려 과학교육과 연구 분야에 여성의 참여를 확대하는 것이 더욱 시급한 일일 것이다(*이러한 판단은 '과학적 판단'인가?). 이러한 관점은 가장 강경한 여권운동가 중 한 사람인 에블린 팍스 켈러의 저서 <성과 과학에 관한 고찰>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그녀는 수리생체물리학자였고, 노벨상을 수상한 유전학자인 바버라 맥클린톡의 자서전을 집필하기도 했다. 켈러는 과학적 지식이 ‘남성적 발현의 결과’라는 식의 파괴적인 표현을 쓰기 보다는 오히려 이상적인 ‘공동의 목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페미니스트 등 과학에 비판적인 사람들에게 힘을 더해준 책은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이다. 이 책으로 인해 이성적이어야 할 과학자들이 실제로는 이성적인 사람들이 아니며 문화적 조류에 따라 흔들리고 객관적 진리와는 전혀 관계없는 이유에 의해 한 패러다임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 생각을 바꾸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유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개념이 확신을 얻게 되는 과정에 관한 쿤의 설명은 그 개념에 대한 진위 여부를 규명하려는 노력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과학자들의 비판을 받기도 한다(*대개의 과학자들은 쿤의 주장이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을 평가절하하는 이러한 다양한 움직임들은 무지를 정당화하고 나아가 미화하기까지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영국의 대학교수들은 대부분의 문학이나 예술계 학생들이 그들의 학창시절에 배운 미미한 과학적 지식마저도 쉽사리 잊어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최근 옥스퍼드 대학의 한 문학 세미나에서 나는 존 던의 시 한 구절을 인용하였는데, 그가 이 시를 쓴 1612년에는 아무도 피가 어떻게 심실에서 다른 심실로 이동하는지 모른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 세미나에서 학생들이게 실제로 피가 어떻게 이동하는지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그곳에는 학위과정의 막바지에 와 있는 30여명의 매우 지적인 학생들이 앉아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바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한 학생만이 머뭇거리며 일어나 삼투현상 때문일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들은 피가 몸속을 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것 같았다(*'두 문화' 문제의 반복적인 제기이다).

-매년 영국의 대학에서 문예 분야의 강좌를 듣기 위해 몰려드는 엄청난 수의 수강신청자에 비해 미미한 숫자의 과학계 강의 수강신청자들을 보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과학을 포기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러한 점은 고쳐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문예 분야가 쉽기 때문에 더 인기가 있으며 문예계열의 학생들은 과학계 강좌에서 요구하는 지적 수준을 충족시킬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더 일반적이다(*일부 대학은 문예계열 학생들에게도 자연과학도와 똑같이 과학과목을 이수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문제는 각 대학이 가진 커리큘럼이며, '과학적 지식'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대우이다.) 

 

 

 

 

-우리는 이러한 견해에 대해 반대하는 피터 메다워 경의 생각을 한번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메더워는 1953년 크릭, 윌킨스, 프랭클린과 함께 DNA의 분자구조를 발견하여 노벨상을 수상한 미국의 유명한 젊은 과학자 제임스 D. 왓슨의 경력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왓슨과 같은 재능 있고 천재성을 가진 학생들이 문예계열의 연구에 치중되어 있었던 것 같다. 분자생물학의 첫 세대가 활동하던 1950년대에 영국의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대학의 영문학부에서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졸업생들을 배출하였다. 그들은 왓슨 수준에 버금가는 젊은 과학자들보다 훨씬 더 총명하고 창조적이며 똑똑하고 논리적이었다. 그러나 왓슨은 그들이 가지지 못한 뛰어난 장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매우 똑똑하면서도 어떤 대상에 관심을 가질 것인가를 아는 현명함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점은 지식을 탐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과학자들만의 장점이며, 그들은 이러한 장점을 능력에 관계없이 향유하고 있다."(*왓슨은 천재적인 과학자이지만, 좋은 성격의 과학자는 아니다. '좋은 성격'이 과학자에게 필수적이지 않은 것처럼, 과학적 지식도 인문학도에게 필수적이지 않은 것은 아닐까?)

-똑똑하다는 것이 최고의 과학자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은 아니다. 또한 이것이 최고의 과학자가 되기 위한 충분조건은 더더욱 아니다. 과학적 연구에 의해 일어난 위대한 사회적 혁명 중의 하나는 배움의 민주화였다. 어느 누구나 통상의 상식과 보통수준의 상상력을 복합시킬 수만 있으면 창조적인 과학자가 될 수 있다(*같은 논리라면 어느 누구나 창조적인 시인이 될 수 있다). 또한 사람이 가진 능력의 한계를 넓힐 수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행복이 결정된다면, 그는 적어도 행복한 과학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메더워의 주장, 특히 과학자들은 현명한 어떤 것을 가지고 있는 데 반해 문예계열의 학생들은 그렇지 않다는 주장은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연히 셰익스피어나 톨스토이가 전혀 현명한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냐는 항의를 들어야만 했다. 한편 과학이 천재들뿐만 아니라 보통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의 핵심적 메시지는 바로 이 부분이다.

-영국이 경제난국에 처하지 않기 위해 과학을 계속하여야 한다는 식의 얘기는 젊은이들을 과학 분야로 끌어들이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과학이 국가경쟁력이라는 얘기도 마찬가지겠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글을 통해 메더워가 말하는 기쁨과 자기만족이 사실이라는 점을 보여준다면, 많은 젊은이들이 과학계통의 일에 종사하게 될 것이다(*행복을 위한 과학? 이게 정말로 유인이 되는 것인지? 더불어, 기쁨과 자기만족은 초과학적이다. 즉, 과학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러니 왜 하필 과학을?).

-만약 독자들이 문학교수인 내가 무슨 생각으로 각종 지식 원전들을 한데 모으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기쁨과 자기만족을 위해, 그리고 콜리지의 말처럼 ‘알게 된다는 것의 희열’을 느끼기 위해 만들었다고 대답할 것이다.(*<지식의 원전>이란 편저의 서문인 듯한데, 사실 이 한 문단으로 족하다. 앞부분은 장황한, 게다가 재미없는 서두는 '무슨 생각'으로 집어넣었는지 모르겠다. 문학교수에게 문학적 자질이 요구되는 건 아니더라도 과학적 논리는 필요하다는 걸 이 '싱거운' 서문은 보여준다. 어쨌거나 인문학도에게 자연과학의 지식이 필요한 이유는 기쁨과 자기만족을 위해서란다. 왜 아니겠는가? 하지만 왜 그것뿐이겠는가?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06. 06. 16.  

P.S. 논술의 요체는 한 가지이다. '말이 되게' 쓰는 것. 즉, 말(語)를 가지고 썰(說)을 푸는 것, 성설(成說)하는 것이 논술이다. 어불성설이 난무하는 담론의 시장에서 '성설'은 '성인(成仁)'만큼이나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시험'을 보며, 그래서 '장사'가 된다. 논술로 먹고 사는 이들의 기쁨이요 자기만족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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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키노 > 뮤지션들의 인생을 바꾸게 한 앨범들 4



Peter Buck(REM)
Patti Smith, Horses (Arista, 75)
음악에 한창 빠질 때의 나는 올맨 브러더즈 밴드와 레너드 스키너드 등 주로 서던락을 집중적으로 듣곤 했다. 그러다가 패티 스미쓰의 이 앨범을 접하면서 음악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이 바뀌었다.



Phil Collen(Def Leppard)
Prince And The Revolution, Purple Rain (Warner, 84)
처음 이 음반을 접했을 때의 감동이란. 이 음반은 나를 완전히 휩쓸어 버렸던 것이다. 음악적인 면에서는 락, 퓨전, 댄스 등 여러 요소들이 고루 혼합되어 있었고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너무도 강렬했던 작품이다.



Robby Takac(Goo Goo Dolls)
Husker Du, New Day Rising (SST, 84)
허스커 듀의 이 앨범은 내가 그동안 들었던 그 어떤 음악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Robby Krieger(Doors)
Bob Dylan, Bringing It All Back Home (Columbia, 65)
밥 딜런은 대단한 인물이다. 이것은 그의 또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앨범이다.




Slash(GNR)
Aerosmith, Rocks (Columbia, 76)
결코 적지않은 음악을 들었으나 그중에서도 특히 이 앨범은 내 삶의 지침을 뮤지션으로 바꾸게 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Steve Jones(Sex Pistols, Newrotic Outsiders)
The New York Dolls, The New York Dolls (Mercury, 73)
이것은 내가 항상 자주 듣는 앨범 중의 하나이다. 무언가를 생각하기 이전에 몸부터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앨범이다.




Steven Tyler(Aerosmith)
James Brown, James Brown Live At The Apollo Volume 2 (Rhino, 85)
제임스 브라운의 보이스는 실로 폭발적이다. 그리고 영적인 에너지로 넘쳐 있기도 하다. 이 실황음반은 아마도 보컬리스트라면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다이나마이트와도 같은 위력적인 창법을 들려준다. 비록 추구하는 음악적 스타일은 다를지라도 제임스 브라운은 내 보컬 선생임은 분명하다.


Sting
Miles Davis, Bitches Brew (Columbia, 69)
재즈와 락큰롤을 혼합했다고 알려지고 있는 이 음반을 접한 순간 소름끼치는 스릴을 느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Ted Nugent
Rolling Stones, England's Newest Hitmakers (London, 64)
롤링 스톤즈는 참으로 멋진 밴드이다. 이 앨범은 나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어떤 쪽으로 음악을 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Ulrich J. Roth
Jimi Hendrix, Electric Ladyland (MCA, 68)
열기와 도를 넘는 초월적인 영역, 이 음반에서 볼 수 있는 이런 세계는 지미 헨드릭스 기타의 완결이다.




Vernon Reid(Living Colour)
Ornette Coleman, Free Jazz (Atlantic, 60)
오넷 콜맨을 들으며 기타 연주 방식에 대한 내 사고가 바뀌게 되었다. 어떠한 규칙이나 질서 등을 거부하는 그의 무정형적인 접근을 보며 나역시 락 기타에 그것들을 응용해보려 했다. 이 앨범의 파괴력은 지미 헨드릭스 만큼이나 굉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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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balmas > 축구왕 방송사!!!

 

축구왕 방송사!!


 






13일 하루동안

 

SBS는 24시간 중에 21시간을,

MBC는 24시간 중에 18시간 30분을

KBS1은 24시간 중에 14시간 40분을

KBS2는 24시간 중에 11시간을.

 

드라마를 볼 권리를 달라!

개그프로를 볼 권리를 달라!

월드컵 방송 외에 다른 프로그램을 볼 권리를 달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알게 해달라!!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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