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릴케 현상 > 문

허균/본지전문위원,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문은 특정 공간을 드나들 때 이용되는 건축구조물이다. 건축적인 의미로 보면 ‘하나의 공간적 영역을 이루는 경계와 그 영역에 이르기 위한 통로가 만나는 지점’이 문인 것이다. 따라서 문은 독립적인 구조물이라기보다는 담?벽 등의 경계 요소와 같이 있을 때 그 기능과 의미를 다한다고 할 수 있다. 방문?광문?중문?대문?성문 등이 그 예이다.

그런데 문은 문틀을 세우고 문짝을 단 것이 대부분이지만 한국인에게 있어서 문이란 꼭 이런 형식의 구조물로 인식되는 것만은 아니다. 옛날 신라와 백제 사이의 국경에 있던 나제통문(羅濟通門)은 암벽을 뚫은 동굴 모양이고, 담양소쇄원의 오곡문(五曲門)은 담장의 한 부분을 잘라놓은 형태이다. 사찰의 일주문이나 왕릉의 홍살문은 두 개의 기둥으로만 되어 있다. 이런 문은 개폐(開閉) 기능이나 문과 문틀로 짜인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공간적 성격과 함께 상징적 의미를 가진 문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문은 음양오행과 풍수지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실제로 양택(陽宅)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주실(主室)을 어느 위치에 두고, 대문(정문)을 어디에 어떤 방향으로 내는가하는 좌향(座向)의 문제이다. 방위가 비록 나침반을 기준으로 하는 자연과학적 방위와 같다 해도 전통적인 한국인의 공간인식 형태에서는 독특한 현상을 보인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음양오행 원리의 적용을 통해서 공간의 질서화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민속에서 보는 문은 사람은 문론 귀신들의 통로이다. 그래서 문신(門神)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설날?입춘?단옷날이 오면 그림이나 글씨를 대문짝에 붙이기도 했다. 집 안에 잡귀가 대문을 통하여 들어온다는 인식 때문에 유독 주술적인 벽사(?邪) 풍습이 많았다. 문은 또한  행복과 불행까지도 출입하는 통로이다. ‘개문만복래(開門萬福來)’라는 말도 이런 관념의 소산이다.

한옥의 문 이름은 문살 짜임의 형태에 따라 붙여지기도 한다. 완[卍]자문, 아(亞)자문, 용(用)자문은 문살 짜임이 각각의 글자를 닮았기 때문이고, 귀갑살문, 꽃살문, 교살문 등은 문양이 그와 같은 모양이기 때문이다. 문살을 짜는 일은 집을 아름답게 꾸미는 중요한 일이 된다. 좌우상하 대칭을 기조로 변화와 균제의 미, 그리고 절묘한 공간 분할을 특징으로 하는 문살 짜임은 기둥과 비례되어 섬세하고 정갈한 멋을 연출해 낸다.

문은 기능성과 상징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문의 용도와 구조가 기능과 관련된 것이라 한다면, 문의 위치와 향방, 그리고 문과 관련된 민속과 주술 등은 상징성과 관련되어 있다. 현대인들은 문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보다 기능성만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기능성의 추구는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해 줄 수 있어도 인간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 주기는 어렵다.

경복궁 광화문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正門)이다. 남쪽 문, 즉 오문(午門)을 정문으로 설정한 것이다. 남문을 정문으로 한 것은 남쪽이 동?서?북쪽보다 막중한 주술적?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문이라는 이름에는 임금의 명령과 교지가 반드시 이 문을 거쳐서 나가고, 보고(報告)와 현명한 인재도 모두 이 문을 통해서 들어오기 때문에, 나가고 들어올 때 깊이 살피고 허락함에 있어서 반드시 정(正)에 본을 둔다는 뜻이 투영되어 있다.

직산 향교 솟을삼문
평삼문(平三門)은 종묘나 재실?사당?향교?서원 등에 많이 사용되는데, 중앙 칸은 신도(神道)로서 혼령만이 출입하며, 협간은 제주(祭主)들의 출입구로 이용된다. 공통적으로 문짝에 붉은 단청을 바탕으로 칠하고 커다란 태극무늬를 그려 넣는다. 동양철학의 궁극적 도형인 태극을 그림으로써 사당건축의 내면적 의미, 즉 조상에 대한 영원한 숭배를 상징한다. 평삼문의 중앙 칸의 지붕을 양 옆 칸의 것보다 높게 꾸미면 ‘솟을삼문’이 된다.


건원릉 홍살문
능(陵)·원(園)에서 주로 볼 수 있는 홍살문[紅箭門]은 일주문처럼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다. 중국의 군주?제현(諸賢)?태수 등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그 거처와 고을에 세웠던 석궐(石闕)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높은 나무기둥 두 개를 세워서 그 위에 가로대를 가로질러 기둥에 꿰고, 여기에 홍살을 수직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놓고, 석간주 칠을 해 놓은 것이다. 중앙에 태극문양을 장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태극문양 위의 지창(枝槍)은 2지창과 3지창의 두 가지로 구분되어 있다

예천 용문사 일주문
일주문은 기둥이 일렬로 서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주문은 기능성보다 상징성이 큰 문이다. 구조는 통로와 직각이 되게 일직선상의 기둥 2개를 세워서 그 위에 창방과 평방을 가로대고, 또 여기에 양쪽 기둥 위에서 十자형으로 짧은 창방과 평방을 짜 그 위에 공포를 짜 올려 도리와 서까래를 걸고 부연(副椽)을 올린 형식이다. 이와 같은 일주문의 구조는 신성한 사찰 경내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씻고 일심(一心)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남한산성 동문
동문을 일명 창룡문(蒼龍門)이라고도 부른다. ‘푸른 용’의 문이라는 뜻으로 좌청룡, 우백호 등 사신의 배치와 관련이 있다. 실제로 수원 화성의 동문 이름이 창룡문이다. 만물은 생성(生成)하는데, 동쪽은 생(生)하는 방위이고, 서쪽은 성(成)하는 방위이다. 그래서 성문을 낼 때 동문을 중요시하여 그 규모를 장대하게 한다. 오행으로 보아 동쪽은 목(木)에 해당하고, 서쪽은 금(金)에 해당한다. 반대되는 위치에 서문은 동문과 상호 보완 관계를 가진











농촌 민가 대문
우리나라 건축에서 대문과 정문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나, 엄밀히 구분한다면 대문은 출입에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는 제일 큰 외문을 의미하고, 정문은 그 건물의 정면, 즉, 앞면에 위치한 문을 말하는 것이다. 대문은 사람은 물론 귀신, 행복과 불행 등 모든 것이 드나드는 통로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대문과 관련된 풍속이 많이 생겨났다. 신춘에 입춘방이나 용?호랑이 등을 그린 세화(歲畵)를 붙이는 곳도 대문이고, 출산 했을 때 금줄을 내다 거는 곳도 대문이며, 가뭄이 들거나 장마 피해가 클 때 음?양의 기를 조절하기 위해 여닫는 것도 대문이다. 이렇게 보면 한옥의 대문은 민속자료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창덕궁 영화당 분합문
대청에 주로 설치하는 분합문(들어열개)은 평소에는 경첩으로 기둥에 고정해 놓고 여닫이처럼 사용하다가 날씨가 덥거나 공간을 넓힐 필요가 있을 때는 모든 문짝을 포갠 뒤 함께 들어 올려 처마 밑에 매달아 놓는다. 궁궐이나 사대부 집 처마에 말굽모양 또는 타원형의 철물이 드리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방문을 걷어 올려 매달기 위한 장치이다. 문을 매달아 놓으면 방문에 의한 경계선은 일시에 사라지고 공간은 기존의 구별을 떠나 하나의 공간으로 융합된다

독립문
갑오경장 이후 자주독립의 결의를 다짐하기 위해 사대외교의 표상인 영은문(迎恩門)을 헐고 그 자리에 세운 문이다. 문이라고 하지만 문짝이 없다. 중앙에 홍예(虹霓)가 있고 내부 왼쪽에 정상으로 통하는 돌층계가 있으며, 정상에는 돌난간이 둘러져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홍예의 이맛돌에는 이화문장(李花紋章)이 새겨져 있고, 그 위의 앞뒤 현판석에는 각기 한글과 한자로 ‘독립문’이라는 글씨와 그 좌우에 태극기가 새겨져 있다

 


 

민가의 띠살문
띠살문은 한옥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문이다. 수십 개의 장살(수직 살)을 좁은 간격으로 내리고 여러 개의 동살(수평살대)을 상중하에 무리를 지워 교차시킨 모양을 기본으로 한다. 장살 무리를 가로지르는 동살 무리를 보면 상하의 살대 수가 음의 수(짝수)일 경우는 중의 살대를 1-3개 많은 양의 수(홀 수)로 하고, 그 반대일 경우는 1-3개 적은 음의 수를 택하고 있는 것을 흔히 본다. 평범한 문살의 짜임 속에도 음양의 조화를 추구하는 한국인의 정신세계가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외암리 민가의 격자문
격자문은 일정한 간격의 여러 개의 장살과 동살을 직각으로 교차시켜 짜 맞춘 문을 말하는데, 한자의 우물 정(井)자와 비슷해서 정자문(井字門)이라 하기도 하고, 혹자는 넉살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격자문은 일견 체나 그물을 짜 놓은 것처럼 보이는 이 문은 ‘체와 야광귀(섣달 그믐날 밤에 나타나 신발을 훔쳐간다는 귀신)’ 이야기와 관련되어 벽사(?邪)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즉, 그믐밤에 집으로 침입하려던 야광귀가 대문에 매달아 놓은 체를 보고 호기심이 발동하여 가는 올을 하나하나 다 세다가 새벽이 오자 놀라 도망갔다는 이야기이다.


창덕궁 낙선재 상량정 월(月)문
창덕궁 낙선재는 국상을 당한 여인들이 삼년상의 기간동안 근신하며 사는 집이다. 궁중 여인들의 공간에서 두꺼비(교태전 석분)나 토끼(대조전 굴뚝) 문양 장식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 문양은 모두 달을 상징한다. 두꺼비와 토끼 장식이 간접화법이라면 상량정의 월문은 직접화법이다. 궁중 여인들의 가장 큰 소망은 달의 선녀인 항아(姮娥)처럼 사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낙선재 뒤뜰을 달로 만든 것이다.

담양 소쇄원 오곡문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의 유입을 막지 않으려는 배려에서 탄생한 문이다. 계곡 바닥에서부터 돌기둥을 일정한 간격으로 쌓아 올려 주변 평지와 높이를 같게 한 후 그 위에 돌담을 쌓았다. 담 밑으로 흘러드는 물이 다섯 번 굽이쳐 흘러내린다고 오곡문(五曲門)이라 한 이름에서 자연과 함께 했던 옛 선비들의 풍류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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