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인터넷에 동영상 떠돈 군산 신풍초등학교 등을 찾아 사건의 진상 심층취재 … 6월27일 청각장애아 포함 15명 폭행 피해… 반 전체학생들은 현재 심리치료중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 이혜민 인턴기자 taormina@hanmail.net
▣ 김민경 인턴기자 yukishiro9@naver.com
“보조기구를 착용한 청각장애인 아이를 어떻게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때릴 수 있죠? 담임 선생님이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학교만 그만두면 문제가 다 해결된 건가요?”
군산 신풍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의 뺨을 때리거나 책(또는 노트)을 머리에 던진 50대 여교사의 체벌 동영상이 인터넷에 떠돈 지 열흘이 지난 7월6일 오후.
청각장애인 2급인 아들을 둔 학부형 O씨는 솟구치는 분노를 간신히 참고 있었다. 몇 달 전 수술을 마치고 ‘오른쪽 귀’에 외부 소리를 감지하는 ‘인공와우’라는 기계를 끼고 있는 아이의 ‘오른쪽 뺨’을 멍들게 한 선생님의 처우에 화를 참을 수 없다고 했다. O군은 인터넷에 공개된 동영상에는 등장하지 않았다.
청각장애아도 오른쪽 뺨 멍들다
6월27일 뉴스를 보다 뒤늦게 아이 반에 사건이 일어난 것을 알게 된 O씨는 손으로 머리를 치는 시늉을 하며 아들(8)에게 “너도 맞았니?”라고 묻자, 아이가 손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렸다고 했다. 손가락 하나를 펴들며 “한 번 맞았어?”라고 묻자,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섯 손가락을 차례로 접어 보이며 여러 번이냐고 말하자 고개를 끄떡이었다. “뭘로 맞았냐”고 하자 아이는 O씨 손바닥 위에 ‘수학책’이라고 적었다. 아이는 뭔가를 표현하려다 잘 안 되자 울음을 터트렸다. 다음날 학교 앞에서 아이 친구에게 물은 뒤 O씨는 아들도 그날 맞았다는, 믿기 싫은 사실을 확인했다. 오른쪽 볼에 붉게 달아오른 상처는 그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물이었다.
그러나 O씨는 가해자인 담임 교사 이아무개(53)씨가 6월28일 학부모들에게 일괄적으로 보낸 문자 메시지 이외에 어떤 사과도 직접 받지 못했다. 보도 다음날인 28일 O씨는 사표를 낸 이 교사한테서 직접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는 생각에 이 교사를 고소했다. “장애아인 아들이 상처를 받았는데 아이 앞에 나타나서 사과하거나 감싸줘야 하지 않겠어요. 어른들만 형식적으로 사과하고 끝내면 진정한 사과가 아닙니다.”
<한겨레21>의 현지 취재 결과 사건 당시 휴대전화에 찍힌 2명의 피해 학생 말고도 O씨 아들인 O군처럼 이 교사에게 폭행당한 학생들은 더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최소한 15명이 당일 이 교사한테서 폭력적 체벌을 당했다고 여러 학부모들이 증언한 것이다. 그러나 학교 쪽은 여전히 피해자를 2명으로 파악하고, 군산시교육청에서도 피해자를 3명으로 보고 있었다. 시교육청이 파악한 피해자 명단에는 O씨 아들 O군은 없었다.
반 학부모 28명 가운데 <한겨레21>의 전화 취재에 답해준 이는 모두 11명이었다. 학부모들은 대부분 피해자 수를 15명으로 알고 있었다. 동영상 자료가 보도된 당일 밤 9시30분에 학부모들이 모였을 때 “15명이 맞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 학부모는 “그날 뺨을 맞고 책으로 맞은 아이는 5명이고, 뺨만 맞은 애들은 반의 60% 정도(전체 학생 수 28명)이니 15명 정도가 맞은 게 맞다”고 좀더 구체적으로 확인해줬다.
학부모들은 숨겨둔 속내를 조금씩 드러내기도 했다. 학부모 ㄱ씨는 “아이가 평상시에 학교에 갔다 오면 우울해했다”고 털어놨다. 문제집을 풀 때도 자로 손을 맞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학부모 ㄴ씨는 “동영상이 나오는 TV를 보면서 ‘저렇게 매일 한다’고 말하는 아이를 보면서 마음이 무척 아팠다”며 “동영상을 볼 때 귀에 이어폰을 꼽으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 너무 슬펐다”고 말했다. 학부모 ㄷ씨는 “책을 잘 던진다는 얘기는 소문으로 들었지만 일이 이렇게까지 크게 터질 줄은 몰랐다”며 “선생님이 끝내 일을 내는구나 하는 느낌이었다”고 밝혔다.
군산시교육청의 ‘제 식구 감싸기’의혹
학부모들은 그동안의 불만을 내놓았지만, 학생들은 피해 상황에 대해 오히려 입을 다물었다. 학교 정문 앞에서 그 반 학생들에게 피해 상황을 물었지만 “선생님이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라거나 “말 절대로 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고 달아나는 아이들이 많았다.
피해 상황이 축소·왜곡된 것은 이 교사가 사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사표까지 냈는데 더는 책임을 묻기 곤란하다는 인식이 교육 주체들 사이에서 폭넓게 퍼져 있는 것이다.
군산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사가 눈물로써 사죄하는 마음으로 사직서를 낸다고 한 마당에 나머지 학생들이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 안 되기 때문에 더 이상 사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표는 수리하면서 징계 절차를 진행시키지 않는 것에 대해서 ‘제 식구 감싸기’나 ‘면죄부가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30년 동안 계속해온 교사직을 책임을 지고 그만둔 것을 도의적 책임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군산시교육청은 징계 절차를 위한 조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 교사의 사표를 수리한다는 결정을 함으로써 결국 이 교사가 파면 처분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또 제대로 된 조사를 벌이지 못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군산시교육청은 피해 학생이 3명뿐이라고 결론지었다. 또 이 교사가 폭력적 체벌을 가한 이유에 대해 “학생들이 노트 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사건 당일 말고 학기 초부터 가해진 체벌의 유형과 정도에 대한 조사는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교육청 관계자는 “그런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해 교사는 학교를 떠났지만, 남겨진 아이들은 아직도 폭력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반의 전체 학생들은 현재 전북서부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과 군산시교육청과 장수군교육청의 전문상담 교사와 함께 미술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피해를 당한 학생들의 그림을 분석한 임신일 전문상담 교사는 피해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피해 학생인 O군의 그림에는 사람이 없고 학교 외관만 그려져 강박적인 모습과 불안한 상태를 여과 없이 보인다. 자신도, 교사도, 친구도 없을 만큼 어려운 관계 형성을 설명하고 있다. 또 다른 피해 학생 O양의 경우에는 학교 생활을 그리라고 하자 그리지 못하고 그냥 자기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렸다. 나무 그림에서도 큰 트라우마를 발견했다.”
동영상 체벌 사건 이후 곳곳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의 체벌 사건이 터져나오고 있다. 전남 장흥초등학교에서는 1학년 박아무개(54) 교사가 학생에게 스스로의 뺨을 때리도록 강요한 사실이 밝혀졌다. 박 교사는 독서를 하는 자습시간 도중에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기 위해 일일반장에게 떠드는 아이의 이름을 칠판에 적게 했다. 그리고 적힌 아이들을 앞으로 불러내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뺨을 10여 차례 때리도록 했다. 한 학부모는 “우리 애는 아플 때까지 때리는 벌칙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겨레21>이 체벌이 이뤄진 반 전체 학부모 30명을 상대로 전화 조사를 벌인 결과 무응답자를 뺀 22명 가운데 ‘교사의 체벌에 불만이 있다’고 대답한 학부모가 13명이었다.
그러나 문제 제기를 사람은 ㅂ씨뿐이었다. ㅂ씨는 언론사에 폭력 체벌을 제보한 뒤 현재 취학유예 신청을 내 아들 ㅂ군은 학교에 다니지 않는 상태다. 취학유예 사유는 ‘담임 교사의 폭력으로 인한 학교 기피’다.
법적으로 금지된 것인가, 허용된 것인가
이 사건의 경우 교육당국은 문제의 원인을 학부모의 교육관으로 돌리려고 해 말썽을 빚고 있다. 장흥교육청의 경위서와 조치사항 문건을 보면 체벌 사실에 대해서는 시인하면서도, 근본적인 원인과 관련해서는 “학부모의 독특한 교육관 탓”이라고 했다. 실제로 경위서는 체벌 실태 위주로 기록되지 않고, 학부모와 박 교사의 마찰 관계를 시간순으로 정리하고 있다. 폭력적인 체벌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 규명과는 거리가 먼 해법인 셈이다.
군산 내흥초등학교의 경우 최아무개(67) 교사의 체벌이 문제가 됐다. 음악 교사였던 그는 상습적으로 작은 북채로 아이들을 때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남학생들은 주로 뺨을 때렸다. 그는 정년퇴임을 한 뒤 특기적성 강사를 맡고 있었으며, 보도 직후 그만뒀다. 학교운영위는 7월6일 회의를 열어 음악 과목을 폐지하고 주산·암산 과목을 새로 만들었다. 체벌 문제로 교과과목 수업 하나가 없어진 것이다. 폭력적 체벌 문제가 심각한 교육권 침해로까지 이어진 경우다.
최근 발생하고 있는 초등학교 저학년 상대의 폭력적 체벌은 일반적인 학생 체벌과는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학교와 교사, 교육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맞게 되는 폭력적 상황이 이후 학교 생활의 성공 여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상자기사 참조).
체벌 문제는 우리 사회의 오랜 화두 가운데 하나였다. 이전 시대에는 체벌을 암묵적·공개적으로 허용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학부모와 학생, 교사 등 교육 주체들의 인권 의식이 높아지고 체벌 없는 교실을 추구하는 일부 교사들의 움직임이 확산되면서 몇 년 전부터는 과도기적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교사 사회 내부에서도 체벌을 대하는 태도가 천차만별이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초등학교 저학년의 폭력적 체벌 사건들에서 가해자가 대부분 50대 교사들인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전 시대의 가치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교사들이 과도기의 변화상을 읽지 못하는 ‘문화 지체’를 겪는 과정에서 빚어진 결과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이번 기회를 통해 체벌 문제를 법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법적으로 체벌은 ‘금지’된 것도 ‘허용’된 것도 아니다. 교육부 학생인권 담당인 김석언 연구사는 “거칠게 말하면 묵묵부답이라고 하는 게 정확하다”고 말했다. 학교와 교육당국의 기준은 없고 대법원의 판례가 그 기준이 돼 있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2004년 6월10일 대법원은 ‘교사의 학생에 대한 체벌이 정당화되기 위한 요건’을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체벌은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 △다른 교육적 수단으로는 교정이 불가능한 경우 △그 방법과 정도가 사회 통념상 용인되는 경우로 제한했다. 이와 함께 △교정의 목적 없이 지도 교사의 감정·성격에서 비롯한 행위 △학생의 신체나 정신 건강에 위험한 물건 또는 교사의 신체 일부를 이용해 부상의 위험이 있는 학생 신체 부위를 때리는 행위 △다른 사람이 없는 곳에서 개별적으로 훈육·훈계할 수 있었음에도 낯모르는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체벌·모욕하는 행위 △학생의 성별·연령·개인적 사정에서 견디기 어려운 모욕감을 주는 행위 등은 정당한 체벌이 아니라는 기준도 제시했다.
우발적 사고로 여기는 한 사건은 반복
그러나 이같은 기준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수준의 모호성을 지니고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또 피해자가 형사고소나 고발을 통해 형사사건화할 경우에만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이기 때문에 형사처벌 수준이 아닌 폭력적 체벌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언어폭력’과 같이 새롭게 제기되는 인권 개념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다.
현재 체벌이라는 단어가 포괄하는 개념은 ‘교육적 벌’로부터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신체적 가해행위’까지다. 애초부터 모호하고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이럴 바에야 폭력적 체벌, 즉 신체적인 위해를 가하는 모든 종류의 체벌과 모욕 수준의 언어폭력은 법으로 금지하는 한편 훈육·훈계만을 교육현장에 남기는 게 합리적이다.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은 이른바 ‘학생인권 법안’(초중등교육법 개정안)에서 신체적 체벌 전체를 금지하는 조항을 처음으로 만들었다. 현재 이 법안은 국회 교육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체벌 금지의 법제화와 함께 체벌 문제를 교사의 자질론에 국한해 바라보는 사회의 선입견도 깨져야 한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저런 교사는 퇴출해야 한다’는 반응이 쏟아져 나오지만, 체벌을 부적격한 교사 개인의 우발적인 사고로 여기는 한 비슷한 사건은 반복된다. 교사들은 (개인의 의지보다는) ‘이렇게 교육하라’라는 사회적 기대, 사회적 지시에 의해 교육을 하게 된다. 그 기대가 통제·관리 위주였을 때 폭력적인 지도 방식도 용인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사회가 통제된 인력 양성을 원하고 폭력적인 방법론에 관대하다면 교육 공간 역시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마련이다. 아무리 ‘우리 주변엔 폭력 교사는 없다’라고 확신해도, 질서 유지를 위해선 체벌을 용인할 수 있다는 전제가 공유되는 한 우발적인 사고는 언제든 튀어나올 준비가 되어 있다.
학부모가 집에서 체벌을 당연시하면서 학교만 체벌의 청정지대이길 기대할 순 없을 것이다. 아이를 때려서라도 ‘딱 잡아주길’ 기대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이런 체벌관은 아이들에게도 내면화돼 있다. 아동권리 전문기관 세이브더칠드런의 조사 결과 응답 아동의 41.1%가 ‘체벌은 아동의 잘못을 바로잡아준다’는 항목에 ‘예’라고 답했다. 한국사회조사연구소의 최근 조사에서도 청소년의 57.1%가 ‘내가 잘못을 했으므로 맞은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자신이 맞아야 교정된다고 인정하는 학생은 자신이 선생님과 인간 대 인간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통제와 관리에 자신을 맡긴다. 체벌은 교사-학부모-학생 사이의 행복한 공범 관계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폭력과 체벌은 민주주의의 문제
대한민국에서 합법적으로 상대방을 때릴 수 있는 직업은 교사와 군인뿐이다. 군인이 가졌던 권한의 대부분은 ‘얼차려’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교사들뿐이다. 폭력은 철저하게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에 지배당한다. 폭력은 폭력을 부르고 대물림될 뿐이다. 폭력적 체벌은 민주주의 문제다.
육체는 굴욕을 기억한다
정신과 전문의들이 경고하는 어린 시절 체벌의 심각성
초등학교 저학년에 대한 체벌의 후유증은 정신분석학의 오래된 주제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초등학교 저학년에게 가해지는 폭력적 체벌의 후유증은 인생 전반에 치명적인 해악을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신적 면역력이 전혀 없고 대인관계의 패턴이 부모와 교사로 단순화돼 있는 상태에서 절대 권위의 대상인 교사가 미치는 폭력의 영향은 치명적인 독소와도 같다”면서 “성폭력을 너무 일찍 당한 아이들의 경우 그 피해의 의미를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알게 됐을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고 말했다.
그는 동영상 사건에서 교사에게 빰을 맞고 공책을 집어던져도 그냥 주워서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아이의 모습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상황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당한 폭력이라는 것이다. 청소년기만 됐더라도 분노를 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는 어린아이라는 얘기다. 의식적으로는 모르지만 무의식적으로 아는 것인데, 일정한 시점에서 그 정신적 피해가 의식의 영역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 후유증은 상상의 범위를 넘어선다. 약물로는 치유할 수 없는 마음의 병을 앓게 될 수도 있다. 정 박사는 “이런 점에서 초등학교 교사는 대학교수보다 정신적인 성숙도가 높아야 하는 직업”이라고 덧붙였다.
어린 시절에 받은 부정적 교육이 이후의 삶에 미치는 정신적 영향을 연구해온 앨리스 밀러는 자신의 저서인 <사랑의 매는 없다>에서 이렇게 정리했다. “체벌을 당연하게 여기는 교육을 받은 이는 고통과 굴욕을 부인한다 → 고통과 굴욕을 부인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는 감성적으로 둔감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 둔감해진 감성은 정신적 외상을 입지 않으려고 뇌 속에 장벽을 설치한다 → 사고가 폐쇄된 청소년과 성인들은 새 정보를 얻어 가공하고 낡은 프로그램을 삭제하는 데 방해받는다 → 육체는 굴욕을 기억하며 이 기억은 과거의 굴욕을 무의식적으로 다음 세대에 전가한다.”
그에 따르면 정신적으로 상처를 받으면 사고가 폐쇄되고 폐쇄된 사고로는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게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것을 예방하려면 과거를 반복하도록 충동하는 이유를 어린 시절의 얘기를 통해 밝히겠다고 결단해야 하는데 결단을 내리는 이는 드물다. 바로 이 점이 “아이들을 매로 키워야 한다는 조상의 가르침을 대부분의 사람이 되풀이하는 까닭”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