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물만두 > 호박방 1 중에서
예카테리나궁 [Ekaterina]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남쪽 교외의 푸슈킨에 있는 18세기 바로크 양식의 궁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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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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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 |
| 소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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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남쪽 교외의 푸슈킨 |
| 건립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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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6년 |
| 건립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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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라스트렐리 |
| 설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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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라스트렐리 |
| 건축양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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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
| 규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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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306m, 방 55개 | |
1756년 건축가 B.F.라스트렐리에 의해 건설되었다. 일명 여름궁전으로 불린다. 18세기 러시아의 바로크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당시의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 남쪽 교외의 푸슈킨에 있다. 명칭은 표트르 1세의 황후인 예카테리나 1세의 이름을 그대로 딴 것이다.
궁전 길이는 306m이며, 방이 55개가 있다. 궁전은 프랑스식(式) 정원으로 둘러싸여 있고, 각 방마다 색깔에 따라 '녹색 기둥의 방', '붉은 기둥의 방', '호박(琥珀)방' 등의 이름이 붙어 있다. 궁 안에는 총 2만여 점에 달하는 소장품이 있었는데,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를 침략한 독일군이 6톤에 달하는 호박방의 호박을 약탈해 감으로써 이 방은 빈 채로 남아 있었다.
약탈당하기 전까지 호박방은 정교한 장식과 화려함으로 인해 세계 8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그러나 독일군의 폭격으로 인해 많은 건물이 파괴되고, 호박도 약탈당하였다. 뒤에 건물이 복원된 뒤, 소련 정부는 1979년부터 호박방의 복원을 위해 종적이 묘연해진 호박을 찾았으나 모자이크 일부만을 찾았을 뿐 나머지는 찾지 못하였다.
그 뒤 800만 달러의 예산과 30명의 전문가를 동원해 11년에 걸친 복원작업을 했으나,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작업은 중단되었다. 그후 1999년부터 다시 복원작업을 시작해 2003년 6월 호박방이 재현되었는데, 칼리닌그라드산(産) 호박과 꿀벌색 석재만도 7톤이나 들었다. 사방 14m, 높이 5m의 방으로, 원래 이 방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표트르 1세에게 선물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전의 호박방
코사크 족
러시아어인 ‘카작(Kasak, Kazak)’이 바뀐 말로 스스로를 카작으로 불렀는데 이 말은 터키어의 ‘자유인’을 뜻하는 말을 기원으로 삼고 있다. 또한 집단으로서의 카자크를 가리키는 러시아어는 카자체스트보이다.
전사집단으로 특화된 슬라브계 민족 으로 남부 스텝 러시아 국경지대 살던 슬라브 민족이 이 지역의 투르크계 민족들과 혈통적-문화적으로 융합되면서 형성된 민족 이다. 이색적으로 러시아어를 쓰며, 러시아 정교를 믿는 특이한 민족이다. 코사크 정신의 핵심은 승무와 의리 그리고 애국심과 충성심인데 이는 종교가 다른 이민족들과의 접경지대에서 생존해야만 했던 탓이다.
이들은 16세기 이반 대제 이후, 러시아 황실로부터 봉급을 받으면서 군역에 종사하는'특수민족'으로 발전했다. 무사집단이지만 농도제를 기반으로 성장한 서구의 기사와는 다르며 코사크는 '무장한 자유인'을 뜻한다. 그래서 아직도 러시아 정부의 관료나 지도자와는 별도롤 전통적인 통치제도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선거에 의해 수장을 선출하여 모든 중요한 문제를 합의로 결정하는 민주적인 자치를 행하고 공동으로 러시아·폴란드·리투아니아의 봉건제후, 그리고이웃한 투르크 타타르계 유목부족 등과 싸워 자기의 토지를 확대하였다.
16∼17세기의 타타르 및 투르크의 침입에 위협을 느낀 러시아와 폴란드 ·리투아니아는 카자크에게 무기 ·탄약 ·식량 ·자금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국경을방비케 하였다. 러시아 제정의 강화와 더불어 위정자는 카자크 상층부에 갖가지 특권을 주어 회유하면서 카자크 자치의 축소를 기도했으나 17세기 후반의 S.라진, 18세기 후반의 푸가초프를 지도자로 한 농민전쟁은 이에 대한 하층 카자크의 반항이었다.
18세기에 이르러 유력수장(首長)들은 정부의 관등(官等)을 얻어 지주귀족화하였고 카자크는 광대한 토지와의 교환조건으로 제정 러시아의 비정규군으로서 전투집단에 재편성되었다.
20세기 초기에는 전국에 걸쳐 11개의 카자크 군단이 각 지방 군관구에 소속되어 있었다. 1912년 카자크 총인구는 약 400만, 그 중 약 45만이 군사요원이었는데 그 주력은 기병 150연대였다. 10월혁명 후 국내전에서는 대다수의 카자크는 중립을 지켰으나 극빈층은 새로운 소련정권을 지지하였고 부농층은 백위군 측으로 돌았다.
소련체제의 확립과 더불어 특권계층으로서의 카자크 집단은 해체되었고 부농박멸운동과 농업집단화가 진행되었다. 1936년 카자크의 적군 참가 제한이 폐지되었고, 새로 편성된 카자크 사단은 독 ·소전쟁에서 용명을 떨쳤다.
호박 [琥珀, amber]
| 지질시대의 수지(樹脂)가 석화한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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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굳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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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
| 비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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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
| 색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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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황색·납황색·적갈색 | |
화학성분은 C40H64O4이다. 단괴상·역상(礫狀)을 나타내며 밀황색·납황색·적갈색으로 투명 또는 반투명하다. 지방광택을 가지며 패각상의 단구는 무르다. 굳기 2.0∼2.5, 비중 1.0∼1.1이다. 287℃에서 녹고 불꽃을 내고 타며 특유한 냄새가 난다. 또 알코올·에테르·벤졸로 다소 침식된다. 퇴적암 속에서 발견되며 특히 탄층(炭層)에 수반되는 경우가 많다. 발트해에서 투명하고 아름다운 것이 산출되며 오래 전부터 파이프나 장신구 등으로 귀하게 쓰이고, 특히 속에 벌레가 들어 있는 것은 값이 비싸다. 호박은 해수보다 가볍기 때문에 해안에 있는 모암(母岩)으로부터 바다에 떨어져 파도에 밀려 기슭으로 밀려와 이전에 발트해에서는 바닷속에 들어가 그물로 건져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