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플라톤과 유럽의 전통
최근에 나온 국내 철학서들 가운데 가장 묵직한 책은 아마도 이상인 교수의 <플라톤과 유럽의 전통>(이제이북스, 2006)일 것이다. 지난주 대부분의 언론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책인데, 여기서는 경향신문에 게재된 김재홍 연구원의 서평을 옮겨놓도록 한다. 예전 같으면 언론사 리뷰들을 알라딘에서도 읽고 참조할 수 있었는데, 새삼스럽지만 그게 법적으로 불가능하게 된 모양이고 이젠 손품을 좀 팔아야 한다. 리뷰/서평의 유익이란 그 책이 읽을 만한가, 읽을 만하다면 언제쯤 읽을 것인가 등을 가늠하도록 해준다는 데 있다. 그건 '프리뷰'의 가장 중요한 취지이기도 하다.

경향신문(06. 06. 24) 고대철학의 오해-왜곡-재해석
-‘플라톤 이래로 서양 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각주(脚註)다.’ 영국의 철학자 화이트헤드의 말이다. 에머슨이란 시인은 단적으로 ‘철학은 플라톤이고, 플라톤은 철학’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서양 사상이나 철학 관련 책을 펴놓고 읽다 보면 ‘플라톤’이란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 책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유럽 철학 전통 자체가 ‘플라톤적’인지도 모른다. 유럽적 사유의 전통에서 플라톤이 차지하는 위치는 그만큼 중요하고, 그를 통하지 않고는 서양 사상을 논할 수조차 없다. 정작 문제는 그렇게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플라톤이라는 거대한 봉우리를 오른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서양을 바라볼 때, 유럽적 사유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는 오늘날 우리 문화 전반에 깔려 있는 유럽적 사유의 본질적 현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과연 유럽적 사유의 실체는 무엇일까?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본래의 사고 토양을 고대 그리스·로마로 놓고 그들의 사유의 뿌리를 찾으려 했다. 서양을 극복하려면 유럽적 사유체계를 이해해야만 한다. 오늘의 유럽인을 유럽인으로 만든 유럽적 사유의 전통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선적으로 플라톤을 봐야 한다(*즉, 유럽적 사유 -> 그리스/로마 -> 플라톤으로 수렵된다는 것).
-지금까지 우리는 늘 유럽적 사유의 뿌리를 유럽인의 근대적 시각을 통해서 바라봐야만 했다. 우리의 ‘고유한’ 시각은 어디에 있었나? 이제는 플라톤을 해석한 근대의 철학자들의 관점을 넘어 ‘플라톤 자체’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플라톤을 ‘전근대’라는 전통 속에 가두지 않고 우리의 눈으로 플라톤 그 자체를 보기 시작하는 것이며, 우리의 시선으로 플라톤을 해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유럽인의 눈을 통해 플라톤을 해석하는 작업도 멈춰야 한다. 이제는 우리의 ‘고유한’ 시각으로 플라톤을 바라 볼 때가 됐다.
-누군가 우리와 같은 고전 학자들을 향해 “가라사대 철학”이라고 평가절하하는 발언을 했다. “누군가가 말하기를”이라고 하지 않고도 철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플라톤을 말하지 않고 어떻게 서양 철학을 논할 수 있단 말인가? 고전을 전공하는 어느 선생님은 “고전을 공부하기 위해선 10년가량 면벽(面壁)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만큼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이다.






-서구적 사고의 원천인 고전 그리스 사유의 중심에 선 플라톤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의 저서를 읽는 것이다. 아직 플라톤 원전에 대한 온전한 우리말 번역이 다 나와 있지 않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몇몇 작품만이 제대로 번역돼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플라톤 원전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가 등장하기란 어렵다. 그렇다고 고전 전문가들이 원전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했다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근대의 자기이해와 고대의 해석’이라는 프로젝트의 영향 아래 구상되고 저술됐다. 이 책은 거대한 학문적 꿈을 가지고 있다. 고전을 지난 시대의 ‘전근대’라는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고, 오늘의 관점으로 동시적으로 바라보려는 태도가 그것이다. 저자의 원대한 학문적 꿈은, “고전학자는 과거의 대양에서 현재의 ‘그물’만으로 작업해서도 안 되고, 현재의 ‘그물’과 구별되는 과거의 ‘그물’을 찾아내고, 그것을 이후에 짜인 ‘그물’과 더불어 미래의 철학의 법정에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학문적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저자는 그리스인들이 큰 축으로 삼았던 ‘지각과 이성’ ‘인식과 방법’ ‘경험과 과학’ ‘개인과 국가’라는 네 가지 얼개를 제시한다. 이를 바탕으로 현상을 구제하고, 세계를 해석하는 방법을 플라톤 철학의 문제 제기와 해결 방식을 통해 해명하고자 한다. 이런 연구 작업을 통하여 근대의 ‘역사적’ 고대 해석 경향을 넘어 고대의 ‘철학적’ 자기 이해를 규명하려는 학적 야심을 전개해 가고 있다. 네 얼개로 구성되는 일련의 작업이 5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제1장인 고대와 근대로부터 출발해서 각 장에서 별도로 논의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논의를 통해 유럽적 사유의 전통을 플라톤으로 대표되는 고대 철학에서 찾고자 시도한다. 고대의 관점에 따라 재단된 ‘고대 철학 고유의 모습’을 드러내고, 역사적 연속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려진 잘못된 규정을 통해 고대가 어떻게 오해되고 왜곡됐는지를 밝혀내고 있다. 저자는 이 연구를 통해 ‘서양 고대’를 도식적인 해석으로부터 구제하고, 고대 철학을 다시 현대의 철학으로 만날 수 있는 방식을 제기하고자 한다.
-저자의 학적 능력이 되는 독서는 플라톤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 이전부터 시작해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학파, 신피타고라스주의, 히포크라테스, 그리고 근대 헤겔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영역에 학적 역량이 미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책의 부피도 만만치 않다. ‘큰 책은 큰 악(惡)’이란 말이 있지만, 저자의 작업에는 큰 책만큼 큰 악은 없고, 작은 악만이 있을 뿐이다. 독서하기가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저자의 날렵한 필치가 유럽적 사유를 좇는 그의 날카로운 시선에 머물도록 독자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김재홍|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
06. 06.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