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릴케 현상 > [퍼온글] 파니 핑크 (Keiner Liebt Mich, 1994)



  어릴 때 한동안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많이 보던 때가 있었다. 일요일 점심무렵의 그 프로그램들에서 무슨 영화인지 모른채 인상깊은 장면으로 만난 영화가 있었다. 왠 해골분장을 한 사람이 케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 그 장면에 매혹되어 찾아보게 된 영화가 바로 이 영화 <파니핑크>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29살의 노처녀 파니 핑크. 그녀는 직장도 집도 친구도 모두 가지고 있지만 딱 하나 자신과 인생을 함께 할 남자가 없다. 하루하루 죽음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그녀에게 어느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심령술사가 등장한다. 그녀에게 한 남자가 그녀 앞에 나타날 것이고 23이라는 숫자가 그 남자의 징표라고 알려준다. 과연 머잖아 그녀 앞에 2323이라는 차번호판을 가진 남자가 나타나게 되고 그녀는 위험을 무릅쓰고 적극적인 행동을 시작하는데...

  영화 속에서 "겁내지마. 과거는 죽음 뒤의 뼈 같은 거야. 미래가 네 앞에 있어. 과거와 미래가 함께 하며 가끔 너와 대화할거야. 너를 보고 좀 앉아 쉬라고 할거야. 휴식을 취하라고 할 거야. 네게는 무엇인가 마실 것을 주며 무슨 이야기를 할거야. 그러나 믿지마. 계속 앞으로만 가. 시계는 보지마 항상 '지금'이라는 시간만 가져"라는 말을 남겨놓는 심령술사 오르페오의 대사는 내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29살 노처녀 파니핑크의 모습도 꽤 재미있게 다가왔고 그녀의 행동들도 너무도 귀엽게만 느껴졌다. (특히나 사랑하는 남자를 덮치겠다고 속옷차림으로 차 트렁크 뒤에 숨어있었던 장면이란.)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파니 핑크의 모습을 보며 그녀 앞에 진정한 '한 남자'가 나타났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가 앞으로 그녀의 삶을 좀 더 남들이 보기에 정상적이 될 것이고 그녀 자신도 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것도. 

  독일 영화는 많이 접해보지는 않아서 사실 보기 전에는 다소 철학적인 내용이 아닐까하는 우려를 했었다. 하지만 정작 접해보니 헐리우드식의 감상에 치우친 영화도 아니었고, 지극히 철학적이라 따분한 영화도 아닌 꽤 흥미로운 영화였던 것 같다. 특히나 영화의 후반부에 몇 번이고 흐르는 non, Je ne regrette rien이라는 곡은 인상깊게 남았다.  

덧) 영화에 심령술사로 등장하는 오르페오의 이름에 약간의 호기심이 발동. 원래 오르페오는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뮤지컬의 제목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오르페오는 오르페우스와 같은 삶의 절차를 밟아가고 있었던 것일까?! 흠. 별게 다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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