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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사고방식, 생활방식을 미리 땡겨서 겪고 있는 대학생들이 안타까워요" '대학을 나서면' 이라는 말이 있었다. 학생신분을 완전히 털어버리고 사회로 나간다는 의미. 바꾸어 말하면 학창시절은 사회와는 다른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을 갖는 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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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후의 부속품 인생을 미리 부터 살려는 대학생들이 불쌍하다"고 말하는 서점 그날이오면 김종운 대표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 과연 그럴까? 14년째 서울대 앞에서 '인문사회과학 서점'을 고집하며 살고 있는 서점 '그날이오면' 김종운 대표를 만났다. 14년 동안 서울대 학생들을 지켜봤던 그는 요즘 대학생들이 '나중에 겪을 문제, 생각을 미리 당겨서 겪고 있다'며 걱정했다. "나이도 그렇고 여러 조건이 그렇죠. 성장하면서 느끼고 알고 있는 것들을 종합해서 상을 형성하는 시기이고 완성하는 시기가 대학시절, 학창시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업이나 이익이라는 이해관계에 시달리면 인생 전체, 사회를 보지 못하죠. 거기서 자유로운 시절이 바로 학창시절입니다." "몸은 대학생이지만 모든 조건들은 기성사회에서 요구하는 구조화된 부품으로 필요로 하는 인간으로 소속되기 위한 준비만 하고 있는게 요즘 대학생들의 생활이죠. 부속품 인간형이 돼서 대학을 보내는 상황은 너무 불행하지 않나요?" "삶의 보람, 행복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없다면 인간으로써의 직무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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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삶의 보람, 행복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없다면 인간으로써의 직무유기" 라고 말한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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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종일 책에 둘러싸여 살아온 지 14년. 조그마했던 그날이오면도 14년동안 커졌지만 여전히 가게는 비좁았다. 책장이 차고 넘쳐 꽂혀 있는 책 위로 다시 책을 얹고 또 얹어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쌓여있는 책들이 있을 정도. 서점에는 빼곡한 책장들 사이로 조그마한 의자들이 간간히 놓여있다. "왜 책을 읽어야 할까요?" 우문을 던졌다. 세상에나 10여분 동안 그는 쉬지 않고 분야별로 어떤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설명했다. 정치경제학, 분단과 한반도, 환경 등등 그냥 듣고만 있었다면 이 사람은 몇 시간이고 얘기할 태세다. 그만큼 책을 권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가 '책'을 설명하면서 잊지 않고 전하는 말이 있다. "책은 인류가 그동안 고민해 왔던 사회의 근본적 문제에 대한 성찰과 고민을 바탕으로 하죠. 특히 읽어볼만한 책들이 그렇죠. 거기에 새롭게 제기된 문제의식과 현대의 상황이 종합돼서 새로운 책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알고 있고 어찌 보면 당연하고도 지루한 말이다. 책에는 인류의 역사가 들어있다. 그는 최근 대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혹은 '통일적이지 않고 단편적인' 지식들을 전부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을 통해 얻는 단편적 지식이나 수업시간에 듣는 지식만으로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죠. 자기 내면은 형성이 되지 않고 지식이 머릿속에서 굴러다닐 뿐이죠. 삶과 인생, 가치와는 상관없는 지식만 있는 것입니다." "당장 사람들이 돈을 벌면서 힘들고 취직 못해서 아등바등 하고 있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이득을 보는, 이런 현실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책을 읽어야 한다고 봐요." "도대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까? 그런 고민을 했던 책들이 너무 많아요. 우리가 의문을 갖는 대부분의 것들은 책 속에 답이 있습니다. 먼저 고민한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요."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아무리 취직을 해서 출세를 해도 해외로 나간다면 모를까 전쟁나면 모든 게 파괴된다는 생각. 우리 일상에서 겪는 환경과 여러 문제들이 사실은 모르고 자기 입장이 없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을 영유할 수 없죠."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면서 산다. 하지만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김종운 대표는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이 그것을 위한 고민의 결과물이라고 전했다. "아까운 책들, 한 권도 버리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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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이오면에는 아주 오래된 사회과학서적부터 신간까지 있다. 대형서점에서도 찾을 수 없는 책도 있다고 김 대표는 전한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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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점 그날이오면에는 너무 오래돼 누렇게 바랜 책들도 신간들 사이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8-90년대 책들이 낡은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 게 안타까워요. 그 책들의 가치만큼 제대로 대접받고 있지 못하죠. 사실 새롭게 나오는 책, 이론, 담론 들이 과거의 사상이론을 올바로 극복하면서 나온 것도 아니죠." "그저 안 팔린다고 폐기하거나 버리는 출판사도 책을 단순히 경영마인드로 다루고 있는 것이에요. 아주 오래된 책이고 지금 당장 팔리지 않아도 버리지 않고 다 모아둘 겁니다. 아무리 찾기 힘든 책이고 절판됐어도 '그날이오면에는 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요." 꽉들어찬 책들로 비좁아 보이는 서점. 요새 어렵지 않은 소규모 서점이 있겠냐만 한국에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문사회과학 서점으로써 그날의오면이 잘 운영되고 있다면 그만한 거짓도 없을 것이다. 학교 앞 게시판, 그날이오면 핸드폰이 없던 시절, 학교 앞 주요 서점은 학생들의 '약속 게시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 게시판에는 약속은 물론 주장이나 농담도 등장했었다고 한다. 쪽지에 농담을 쓰면 누군가가 농담을 받아서 다른 쪽지를 붙여놓는, 이른바 댓글도 등장했었다. "개강 초에는 게시판이 모자라서 옆 벽까지 메모지가 넘쳤어요. 서로를 연결시켜 주는 게시판이었죠. 학생들 생활 동선이 학교에서 나오면 이 앞을 들렀다가 집에 돌아갈 정도였으니까요. 최근까지만 해도 졸업한 사람들이 여기를 약속장소로 잡곤 했는데 요새는 그마저도 없어요." 모임이 줄었다는 말이다. 그날이오면은 예전에 학생들에게 돈을 빌려주기도 했단다. "그랬죠(웃음). 지금도 빌려줘요. 물론 많이 줄었죠. 예전에는 끈끈한 정이 있었어요. 학생들 사이에도, 학생들과 저 사이에도. 요새는 사람 관계가 건조해 지다 보니 저도 학생들한테 조심스러워요." "풍족해졌는지는 모르겠는데 옛날처럼 꼭 사람을 만나 술한잔 하면서 얘기를 나누고 싶다는 의욕이 줄어든 건 확실해 보여요. 또 시위한다고 문건을 찍거나 다쳐서 돈 빌리는 학생은 없어졌어요." 하나 남은 인문사회과학 서점 그날이오면, "불씨는 지키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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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고 있는 학생. 90년대 중후반부터 서점운영이 매우 힘들어졌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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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인문사회과학서점들은 줄줄이 문을 닫았다. 전국 150여개에 달했던 서점들이 급격히 사라지기 시작한 것. 서울지역 주요 대학 앞에 있던 인문사회과학서점들은 이름을 지키고 있기도 하지만 예전의 '전문서점' 역할을 하고 있지는 못하다. "이제 유일하게 남은 인문사회과학 서점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날의오면'의 운명을 제 임의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날이오면'이 해야 할 공적 역할이 있다고 봅니다." "상황이 어려워 진다고 해도 그것이 항상 끝이 아니잖아요? 다시 불타오를 때가 있겠죠. 그렇게 될 때까지 불씨가 꺼지지 않아야 불이 다시 타오를 수 있고 그런 역할을 어렵지만 하고 있어요." 그는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읽게 하기 위한 활동과 모색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그날에서 책읽기'라는 책자를 꾸준히 냈고 저자와의 대화, 세미나 등 책과 관련한 행사에 대해서는 그 만한 전문가도 드물다. 이런 활동을 위해 김 대표는 서점 2층에 책 읽는 까페를 만들기도 했었다. 그러나 불씨를 지킨다는 것은 불을 피우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날이오면'은 월 227만원의 월세를 내야하는 큰 매장이다. 문제는 언듯 생각해봐도 예상할 수 있다. 그 만큼의 책이 팔리지 않는 다는 것. '그날이오면'을 힘들게 하는 또 다른 문제는 인터넷서점과 대형서점의 폭력적 시장잠식이다. "학생들이 책을 보다가 사려고 하면 친구가 그래요. '왜 여기서 사? 인터넷이 더 싼데' 여기서 책을 골라보고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것이죠. 서점가는 자본주의적 시장논리가 철저히 구현되고 있어요. 인터넷 할인, 대형서점 마일리지, 대형출판사의 횡포..." 도서정가제가 도입되지 않아 중소규모의 서점들이 문 닫고 있다는 얘기는 이제 뉴스가 아니다. "누군가는 사상과 철학, 정치, 경제적 이론과 판단을 여전히 모색해야 하고 그런 모색들을 담고 있는 책이 있어야 하고 또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해야 하고..." 그는 '사명감'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김 대표는 '그날의오면'을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수줍어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눈빛이 그의 의지를 대신 말한다. 대형서점 한켠에 놓여있는 각종 사회과학 신간들이 눈길을 끈다. 읽어볼만한 책도 많지만 한국 제1서점이라고 불리는 서점에서 조차 찾을 수 없는 책을 보유하고 있는 인문사회과학서점의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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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유일의 인문사회과학서점 그날이오면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 인터뷰를 마치고 문을 나서자 '딸랑~'하는 문에 달린 종소리와 함께 토익학원의 플랑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이 앞을 가득 채웠던 학생들은 지금 어디 있을까? '그날의오면'에 다시 사람들이 붐비는 '책읽는 상상'을 하며 버스에 몸을 실었다. 눈길이 자꾸만 뒤로 돌아간다. 서점 한 켠에 놓여있는 좁은 의자에 앉아 책을 들여다보는 휴일을 기대하며 의자 깊숙이 몸을 맡겼다. ‘아쉽다. 책 한권 사올 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