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재구성’으로 하루 아침에 떠 버린 최동훈 감독은 한때 억세게 운 없는 사나이였다. 여기서 운(運)을 운운(云云)할 수 있는 것은 어쨌든 ‘관객수 3백만명’을 넘보는 이 영화 한 편으로 실력은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2년 과정의 영화 아카데미에 좋은 성적으로 들어가고도 졸업 작품은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글 꽤나 읽었다고 자신하던 차에 시나리오에 도전했으나 번번이 미역국만 먹었다. “10편 정도 썼는데 모든 시나리오 공모전에 다 떨어졌다”고 했다.
최감독은 거의 2년 넘게 ‘범죄의 재구성’ 시나리오를 만지작거렸다. 고치고 또 고쳤다. 그리하여 정교하게 맞물리는 한 편의 드라마가 완성됐을 때 그는 작가 로렌스 샌더스를 제일 먼저 떠올렸다.
“어느 헌책방에서 이 사람의 ‘앤더스 테이프’라는 책을 찾아 읽었는데, 거기서 시나리오 구성에 큰 영감을 받았지요. 지금도 홍익대 맞은편에 있는 헌책방에는 가끔씩 들르는 편입니다.”
대학(서강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그는 어릴 때부터 소설이 그렇게 좋았다고 한다. “초등학교때 밥상머리에서 소설책 본다고 아버지한테 꾸중들었다”는 얘기는 약과다. 중학교때 벌써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접했고, 나중에는 국내외 소설을 마구잡이로 읽어나갔다.
“영화는 비주얼 예술이지만 그 뼈대는 이야기입니다. 서사(敍事)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 영화에 관객은 재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 이야기를 꾸리는 데 소설은 큰 힘이 되는 것이죠.”
이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최근 몇 년 간은 거의 범죄소설 읽기에만 주력한다는 것. 그는 “영화 ‘재키 브라운’(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원작인 엘모어 레오나드의 ‘럼 펀치’, 그리고 제임스 엘로이의 ‘LA 범죄 3부작’을 무지 좋아한다”고 말했다. 범죄물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물었더니 “1970년대 것을 좋아하는 취향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영화도 그렇고 소설도 그렇고 그때의 반항적이고 남루한 삶이 좋습니다. 또 하나,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알려면 악당의 모습을 봐야 하지 않나요.”
그는 “이름 없는 출판사에서 낸 번역소설 중에 굉장한 것들이 상당히 많다”고 역성을 들었다. “그런데도 이런 책은 제대로 빛도 못보고 절판되는 때가 많으므로 나왔을 때 빨리 사둬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경험론이다. “대여섯시간 동안 저를 꼼짝 못하게 할 그런 소설을 간절히 고대합니다.”
〈글 조장래·사진 박민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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