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규항넷
 
임을 위한 행진곡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리
산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은 광주민중항쟁에서 마지막까지 총을 들고 싸우다 전사한 윤상원과 그의 들불야학 동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 바쳐진 노래다. 노래는 그 유래에서, 그 가사와 곡조의 서정성과 비장미에서 남한 진보운동의 역사를 대표하는 노래라 할 만하다.

노래는 탄핵반대 시위(파시스트의 도발에 대한 당연한 분노였지만, 개혁 대통령을 민주주의의 순교자로 만드는 의식이기도 했던)에서 널리 불렸다. 그 사실은 노래의 유래와 윤상원의 정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다.

총기 반납과 계엄군과의 타협을 거부한 채 끝까지 싸우다 죽어간 전사가 파시스트의 도발에 분노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전사가, 제 배를 가르고 제 몸을 불사르는 농민과 노동자들에게 “이제 분신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시절은 지났다”라고 지껄이는 더러운 입에 조금이라도 이로움을 주는 일을 상상할 수 있는가.

탄핵과 관련하여 우리가 감히 윤상원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상상은 그가 누구보다 먼저 그리고 누구보다 끝까지 ‘민중에 의한 탄핵’을 외쳤을 것이라는 것뿐이다.

80년 5월 27일 새벽, “저승에서 만납시다.”라고 인사하며 각자의 전투 위치로 갔던 윤상원과 광주의 마지막 전사들이 지키려고 했던 건 무엇인가. 다들 말하듯, 그것은 ‘시민의 민주주의’였던가. 그랬다면 그들은 굳이 죽음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걸 지키려 했던 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갔듯이 말이다.

그들, 윤상원과 광주의 마지막 전사들이 지키려고 한 건 ‘민중의 나라’였다.

“당신은 윤상원을 기억하는가?”

자신이 개혁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이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할 사람은 없다. 그래서 질문은 좀더 정확하게 수정되어야 한다.

“당신은 총기 반납을 거부했겠는가?”
“당신은 도청에 남아 싸우다 죽었겠는가?”

이제 자신이 개혁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없다.

언제나 그렇듯,
살아남은 현실주의자들은 죽어간 원칙주의자의 정신을 훔쳐 먹으며 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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