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gyuhang.net/archives/2001/04/10@10:27PM.html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어떻게 보나.
텔레비전 덕에 다큐멘터리가 양적으로 늘어났다고들 하지만 실은 텔레비전이 다큐멘터리를 말아먹었다. 텔레비전 덕에 다큐멘터리의 모든 형식과 방법이 굳어버린다. 텔레비전에서 요구하는 형식이 있다. 친절해야 하고 뭔가 깔끔해야 하고 시청률 때문에 소재주의나 선정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항상 시간에 쫓기느라 최소한의 예술적 고민이 어렵다. 구조적으로 많은 걸 포기한 작품일 수밖에 없다. 방송사 밖에서 만들어지는 다큐라 해도 텔레비전이 거의 유일한 상업적 경로이기 때문에 텔레비전이 요구하는 걸 염두에 두고 작업하게 된다. 텔레비전 이전에도 다큐는 있었다. 우리는 텔레비전 다큐를 다큐의 전부처럼 생각하지만 그건 3, 4십 년밖에 안된 거다. 텔레비전 이전의 다큐들은 자유분방했고 예술적으로도 훌륭했다.
외국의 경우에는 VJ들이 스스로 아이템을 잡아 촬영하고 나래이션 넣어 우리로 말하면 9시 뉴스 같은 데 팔고 한다. 우리 방송사는 그런 걸 허용하지 않는다.모든 걸 자기네들이 한다는 생각으로 방송사 안으로 흡수하려 하기 때문에 언제나 하청구조에 머물게 된다. VJ들의 문제라기보다는 구조적인 문제다.근래 한국영화의 형편이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모든 가치 기준이 산업 차원으로 흐르는 건 한심해 보인다. 투기업자가 영화판에 들어와 주인 행세를 하는가 하면, 어떤 평론가는 할리우드에 비하면 한국영화는 다 독립영화라는 엉뚱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선생은 독립영화협회 대표이고 실제로 독립영화인들의 맏형 노릇을 하고 있는데.
2년 전 스크린쿼터 싸움할 때 독립영화 쪽도 참여했는데 한편에선 독립영화와 스크린쿼터가 무슨 상관이냐는 비판이 있었다. 당시 나는 오락영화나 영화적 환상도 필요하다, 영화문화의 다양성을 지켜야 한다는 차원에서 참여했다. 문제는 스크린쿼터를 내세우며 영화가 하나같이 블록버스터를 지향하고 그런 영화만이 살아남게 되는 구조가 되어간다는 거다. 이제 우리는 스크린쿼터 싸움에 참여하지 않는다. 우리가 요구할 것은 독립영화 전용관과 문화로서의 영화다. 한국영화 구조가 이젠 완전히 할리우드를 빼 닮아가고 있다. 산업적 외형에서 나아졌다지만 속으론 더 악화되었다. 옛날에는 그나마 잘 만든 영화와 못 만든 영화가 있었는데 지금은 재미있는 영화와 재미없는 영화만 있을 뿐이다.
새로운 시도란 무엇인가.
독립 다큐가 독립 다큐라는 이유만으로 옹호 받고 지지 받는 단계는 넘어설 때가 되었다. 밖에서 어렵다면 안에서라도 비판해야 할 시점이다. 두가지 변화가 필요하다. 하나는 운동으로서 다큐라고 했을 때 이젠 내부 갈등도 드러내고 그것을 이슈화 할 필요가 있다. 둘째는 개인을 다룬 작품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내 가족 이야기, 연애 이야기 같은 개인사들 말이다. 물론 그 목적은 진보여야 한다.
목적이라 했나.
다큐멘터리는 현실을 기록하는 예술이고 소재나 대상은 달라진다 해도 언제나 그 목적은 현실이 변화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의 목적은 진보다.
선생의 가난한 카메라가 이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