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

박정희는 죽었다.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다.하지만 박정희의 유령은 다시 반복 재생산되어 우리 앞에 드리워져 있다.어째서일까.어느 때보다 경제위기다 실업위기다 뭐다해서 이마에 주름살이 팍 잡힐 때 누군가 파워풀한 리더쉽으로 우리를 저 먼 지옥불에서 극락세계로 데려다 줄거라는 환상에 사로잡힌 것일까.아니면 보릿고개를 넘겨주신 성은을 잊지 못해 그를 기다리는 것일까.모르겠다.어쨌거나 그는 18년동안 독재권력을 무소불위로 휘두루며 무고한 사람들을 자기 멋대로 족쳤다.

박정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아마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줬다는 말일 것이다.하지만 수많은 민중들의 피와 눈물,그리고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이 아니였으면 그것이 가능했을까.박정희가 궁정동 안가에서 여러 여자들 끼고 놀아났을 때 잠자는 시간 빼놓고는 다리가 퉁퉁 붓도록 오로지 일만하다 죽어간 전태일같은 노동자가 서있었다.

올해 정부가 발표한 결식아동 추정치만 해도 30만명을 훌쩍 넘는단다.이많은 아동들이 밥도 제대로 못먹는 작금에 과연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됐다고 그대는 생각하는가.내 대답은 아니다.서민들은 지금도 내 아이가 뒤쳐지지 않기 위해 뼈빠지게 번 돈을 사교육비에 갖다 바치고 아파도 돈이 없어 병원에 못가고 있다.지금도 여전히 아스팔트의 차디찬 기운이 감도는 도심 한 복판에서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이렇게 서민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우리사회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됐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먹고 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로 들어도 무방하다.

이 책에서는 우리사회가 알게 모르게 싸질러 놓은 박정희 신화을 산산조각낸다.조갑제류에 길들어진 독자들은 상당히 불쾌하겠지만 이건 엄연한 사실관계의 문제다.그는 철저한 일제인으로서 같은 민족인 조선인들을 배신하고 죽였다.왜?조선은 모자란 녀석들 투성이기 때문이다.저자의 말따라 그는 정말 슈퍼 일제인이였다.육군사관학교를 입학하기 위해 생년월일도 조작하고 손가락을 그어 충성 혈서를 쓰고 일제에 대한 충성심으로 말미암아 새벽에 일어나 힘껏 나팔을 부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고 한다.더불어 김재규가 쏜 총탄에 맞아 쓰러지는 순간까지 일제가 선사한 금시계를 금이야 옥이야 차고 있었다.그렇게 그는 죽는순간까지 일본인이였다.

이 책을 보면 확실히 박정희란 인간에 대해 치가 떨릴 정도로 묘사가 되어있다.알몸으로 벗겨진 그의 몰골을 보고 있으니 어째서 이런 하찮은 인간에게 이 나라가 당하고 살았나라는 생각을 해본다.그로 인해 폭력의 질서가 만연한 사회,지역주의가 판치는 사회,반공논리와 국가보안법이 설치는 사회,국민교육헌장 따위나 을퍼대는 지금에 우리가 과연 박정희의 마수에 깨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과거 청산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ps.이 책이 그렇다고 완벽한 것만은 아니다.가령 일본인들은 단순하다니 단세포동물과 하등 다를 바 없다니 하는 류들의 논조는 전체적인 내용을 깍아먹은 듯 하다.요런 부분들만 걸러내면 괜찮은 책 일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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