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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 스노든, NSA, 그리고 감시국가 ㅣ 스노든 시리즈 1
글렌 그린월드 지음, 박수민.박산호 옮김, 김승주 감수 / 모던타임스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다큐멘터리 영화 <시티즌포>가 개봉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 보려고 했으나, 집 주변에 네다섯개의 영화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영하는 곳이 없었고, 반나절 이상 시간을 내어 멀리가야 하는 상황이라 차일 피일 미루다보니 그나마 내가 찾아 갈 수 있는 영화관에서도 내려버려서, 아쉬운 마음에 도서관에 가서 이 책을 빌려왔다.
2013년 5월, NS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미국 정부에 의한 대규모 비밀 감시 시스템이 세상에 알려졌다. 미국내 통신사와 인터넷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감시시스템을 폭로한 이 책은 그 때 스노든과 함께 이 문제를 밝혔던 기자 글렌 그린 월드가 당시 상황을 자세히 기록한 것이고, 영화 <시티즌포>는 당시 동행해서 취재했던 다큐멘터리 감독 로라 포이트러스가 촬영한 것이다.
미국도 9.11이후 사회가 더욱 경직되어 테러에 대한 위험을 이유로 국민의 자유는 조금 침해되어도 상관없다는 인식이 점차 팽배해지는 와중에 스노든은 자기가 근무하는 NSA에서 위험인물들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과 나아가서는 전 세계 국민들까지 무차별적으로 감시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것을 폭로하기로 결심한다. 우리가 북한의 존재이유로 국가보안법을 가지고 개인의 자유가 침해당하고, 연일 카카오톡의 감청여부가 이슈가 되고 네이버, 다음같은 인터넷회사가 이미 정권에 아부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어떻게 어떤 범위로 대국민감시가 이루어지는지 너무 잘 알고 있는 스노든은 그만큼 철저하게 폭로 준비를 하고, 자기의 입장을 외압에 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변해 줄 수 있는 기자와 다큐멘터리 감독에게 메일을 보내 도움을 요청하는데 그들이 어떻게 접선을 하고 폭로를 준비했으며 그 후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자세히 다룬 내용을 읽다보면 미국이라고 우리와 다를게 전혀 없고,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믿었던 데 반해 오히려 오바마 행정부가 더욱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감시를 실시하며 언론과 내부고발자들을 탄압해왔는지 그 실체를 알고나면 허무해지기까지 한다. (오바마...너마저ㅠㅠ)
폭로를 결심한 스노든이 어떤 사람인지, 그가 왜 내부고발자가 되어야 했는지를 읽는 것도 아주 흥미롭다. 그러나 내가 더욱 놀랐던 건 미국 사회에서도 이미 언론이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서 [워싱턴 포스트]나 [뉴욕 타임스] 같은 언론사에서는 이미 정보를 알고 있어도 일부러 기사를 실어주지 않는다던가 단발성 보도로 끝내거나, 제보자에 대한 인신공격들으로 몰아가서 사건을 은폐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까지 다 고려하여 스노든은 민권변호사 출신의 저널리스트이고 당시 [가디언]지의 기자였던 글렌 그린월드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스노든은 자신이 내부고발자임에도 불구하고 기사가 나간 후에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바로 공개해서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것을 최소화 했다. 그로 인해 그는 아직도 망명중에 있으며 폭로의 댓가로 오랫동안 사귄 여자친구, 천국같은 하와이에서의 삶, 가족, 안정적인 직업, 두둑한 봉급,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삶을 모두 포기해야 했다. 글렌이 처음 스노든을 접선 했을때, 이 어마어마한 파장이 우려되는 폭로를 하는 사람은 당연히 나이가 지긋해서 모든 삶을 놓아버려도 많이 아쉽지는 않을 사람일거라 생각했다가 너무나도 젊은 29세의 앳띤 청년이라는 사실에 놀란것도 이해가 가는 일이다.
이 책은 디지털 사회는 개인의 해방과 정치적 자유를 가져올 것인가, 과거 촤악의 폭군조차 생각 못한 무차별 감시체제를 탄생시킬 것인가하는 질문을 던지며 우리 사회에서도 너무나 익숙한, 너무나 오래된 숙제인 안전과 자유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미국 역시 대다수의 보수 언론들이 '헌법에 보장된 시민적 자유를 존중하지만 죽고나면 시민적 자유가 무슨 소용있는가' 하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편다. 다른 모든 가치에 앞서 물리적 안전을 중요시하는 국가는 그 댓가로 자유를 포기하고 당국이 거머쥔 모든 권력을 허락할 것을 요구하지만 그 절대적 안전이라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개념이라는 것은 우리도 너무 뼈저리게 경험하지 않았나? 정작 중요하게 보호받아야 할 안전은 물에 빠진 국민을 단 한명도 구해내지 못하는 안전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 대량 비밀 감시 시스템을 운영하는 국가가 지닌 위험성은 역사상 어느 시점보다 지금 훨씬 더 섬뜩하다. 국가는 감시를 통해 자국민의 행동을 점점 더 많이 아는 반면, 국민들은 비밀이라는 벽에 둘러싸인 정부가 하는 일을 점점 더 모르게 된다. (...)
건강한 민주 국가는 이와는 반대다. 민주 국가는 책임과 국민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국민이 자신의 이름으로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지 알아야 한다. 이런 사회는 드물게 예외가 있지만 국민이 정부 관리가 하는 일을 모두 알고, 그렇게 때문에 이들을 공공부문에서, 공직에서, 공공 기관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근거로 한다. (...) 투명성은 공무를 처리하고 공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에게 필요하다.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프라이버시가 필요하다. (270쪽)
정부와 언론이 투명하지 못한 현실에서 이런 내부자의 고발과 목숨을 걸고 알리리려는 양심있는 기자들과 각종 탄압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돕는 사람들의 존재가 그나마 희망을 준다. 그래서 더욱 건강한 시민의식이 간절해진다.
* 영화 <시티즌포> 예고편
* 스노든의 위험한 폭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