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 매큐언의 책은 언제나 옳다! (이러면 그의 작품을 다 읽은 것 같지만 이 책을 포함 모두 세작품을 읽었다 ㅎㅎ)
그의 책을 읽고 있으면 이 작가 너무 지적인거 아닌가 하고 감탄을 하게 되다가, 너무 치밀한 묘사에 그만 질려버리기도 하다가, 마지막엔 뒤통수를 한번 탁! 때려주고, 결국 책장을 다시 앞으로 되돌리게 한다. 그래서 그의 책은 항상 두번 읽게 되는데 두번째 읽을 땐 그의 진가가 드러나서 나는 이 작가에게 빠져 헤어나오질 못하게 된다. 그가 촘촘히 쌓아놓은 문장은 어느 하나 허투루 쓴 게 없다. 모든 문장이, 모든 상황이 복선이 되어 주인공의 캐릭터를 만들어간다. 트집을 잡아 보려고 `이게 뭐야.. 왜 뜬금없이 이러지? 이건 너무 과한데?` 하고 꼽아 두었던 부분도 두번째 읽고나면 내가 틀렸음을 인정해야 한다. 홍상수 영화를 패러디해 보자면 그는 늘 나에게 `이언 매큐언은 맞고 나는 틀리다`를 요구하는 사람같다.


체실 비치에서를 읽으면서도 처음엔 플로렌스의 두려움이 너무 과한게 아닌가? 마지막에 에드워드는 왜 그렇게 분노해야만 하지? 사랑하니까 좀 더 이해해 줄 순 없나? 작가는 왜 이혼 후 그들의 삶의 모습을 그렇게 그렸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리고 플로렌스의 두려움의 원인으로 작가가 살짝 풀어놓는 이유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나 사건이 끝까지 나오질 않아서 내심 `그렇게까지 몰아가지마...제발 그런건 아니기를...` 하고 바랬던 나는 조금 안도하기도 했지만, 두번째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모든 의문이 풀리는 경험을 했다. 그는 차곡차곡 다 설명하고 있었는데 내가 딴데 신경쓰느라 눈치채지 못했던거다.


첨엔 플로렌스가 너무 바보같이 느껴져서, 왜그래, 그게 뭐라고, 그렇게 사랑하면서 왜 그 정도의 문제를 같이 해결하지 못해! 하고 안타까웠는데 이젠 그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는 성적인 부분에서 트라우마가 있지만 그 외의 부분에서는 리더쉽이 있고 뚜렷한 목표가 있는 강한 여자다. 그녀가 꿈을 이루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에드워드에게는 이제껏 잘 참고 교양있게 잘 버티다가 왜 마지막에 그리 폭발해야만 했냐고, 아무리 모욕적이어도 사랑하니까 적어도 서로가 차분해질때까지 기다릴수는 없었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다시 읽어보니 그도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는 플로렌스가 유독 성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를 끝까지 확실하게 말하지 않는 것도 너무 좋다. 몇가지 상황들에서 충분히 유추가능하지만 마지막 판단은 끝까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그리고 마지막을 에드워드의 회한으로 마무리 한 것도 너무 좋다. 그의 삶을 너무 망가뜨리지 않으면서도 그가 마지막까지 플로렌스을 잊을 수 없었던 것과 플로렌스의 진심을 늦게나마 이해한게 고맙다.


책을 덮으며 깊은 여운을 느낀다. 역시 이언 매큐언은 항상 옳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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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11-09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가 읽어보려다가 밀리고 있는 <속죄>를 하루 빨리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글입니다 ㅎㅎ 어디선가 날개짓 소리도 마구마구 들리구요 ㅋㅂㅋ 이언 매큐언. 잊지않을께요^~^

살리미 2015-11-09 13:12   좋아요 0 | URL
ㅎㅎ 속죄를 읽으면서 초반엔 애 좀 먹었어요.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되기까지 너무 서술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본격 궤도에 올라타면서부터 정신없이 몰입했어요. 끝나고 다시 앞장으로 돌아가는데..... 이 두꺼운 걸 또다시 읽어야 하나 싶어 잠시 망설였지만 금새 잘했다 싶더라고요~ 초반에 쓸데없다 느꼈던 장면이 모두 복선이에요. 그는 정말 쓸데없는 문장은 하나도 쓰지 않는거 같아 보였어요. 근데... 이 소설도 그런거예요!!
모든 소설이 두번 읽어야 더 좋다고 하기도 하고, 영화도 두번은 봐야 진짜 이해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두번 보기 싫은 영화나 소설도 있잖아요. 근데 이언 매큐언은 딴건 몰라도 `두번 읽어도 좋은 소설`임엔 분명해요^^

해피북 2015-11-09 13:19   좋아요 0 | URL
밥을 먹고 정리중이였는데 방금 접시가, 접시가 식탁에 떨어졌어요~ 쾅 소리와 함께 ㅋㅋㅋ 깨지지 않았어요. 하 하한 번도 아니구 두,두번을 읽어야 느낄 수 있으며 한 쓸데 없는 문장이 없다시니 막 설레이면서도 섣불리 시도할 수 없을것 같은 이기분! ㅋㅂㅋ 그래도 오로라님이 정말 행복해 하시는 모습을 보니 저도 꼭 읽어야할 리스트에 올렸습니다 ㅋ 점심식사 맛있게하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1-09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큐언 소설 좋죠. 다 읽고 나면 아주 정교한 모자이크 작품이란 생각이 듭니다. 매큐언 작품은 왜 대부분 다 읽고 나면 신나서 첫 장부터 다시 음미하기 시작하잖아요..ㅎㅎ

살리미 2015-11-09 19:53   좋아요 0 | URL
그죠? ㅎㅎ 곰발님도 그렇게 생각하신다니 기분 좋네요^^ 항상 다 읽고 나면 신나서 앞으로 돌아가게 되요. 두번째 읽을 땐 정말 모자이크 조각 맞추듯 복선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고요. 이름도 너무 멋진 것 같아요 ^^

인디언밥 2015-11-10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칠드런 액트밖에 안읽어봤는데도 신뢰가 생기더라구요. 이 사람 내공이 엄청나구나 하고. ㅎ_ㅎ

살리미 2015-11-10 10:16   좋아요 0 | URL
저 칠드런 액트도 두번 반복해서 읽었어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