쑤퉁. 모옌, 위화와 함께 중국문학의 3대 작가라는데 그의 작품은 읽은 기억이 없어서 도서관에 갔을 때 찾아보았다. 이 책은 세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일단 그의 분위기를 파악하기 쉬울 듯 하여 골라왔는데, 첫 작품 <처첩성군>을 읽다보니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영화 `홍등`의 원작인거다. 소설을 읽으며 오래전 보았던 영화 속의 기억이 하나씩 떠올랐다.
처첩성군(妻妾成群)은 아내와 첩들이 무리를 이룰만큼 많다는 뜻으로 중국의 축첩제도의 현실을 표현한 말이다. 오~~ 아내의 무리라!! 부러운 분들이 많겠지만, 소설 속 천줘첸 나리는 `마누라들 때문에` 몸이 학처럼 말랐다.
소설은 네번째 부인 쑹렌이 들어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녀는 대학을 일년 다니다 집안 사정으로 그만두게 되고 계모의 권유로 첩살이를 시작했다. 그렇게 들어오게 된 천줘첸의 저택, 소설은 이 거대한 저택 안에서만 사건이 전개되고 감옥같은 저택안에서 네 명의 부인과 하인들 사이에 치열한 암투가 펼쳐진다.

예전에 영화 `홍등`을 보면서는 중국의 축첩제도가 얼마나 한심한지 정도만 느꼈던 것 같다. 저렇게 살던 시대도 있었구나. 저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게 다행이야. 일부일처제가 얼마나 고마운가!! 뭐..이정도?
아직까지도 홍등이 밝히던 붉은 빛의 인상이 강렬하고 공리가 너무 이뻤던 기억이 나지만 지금 소설을 읽다보니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바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듯하다.

일단 영화 속에서는 주인 나리가 그날 잠을 자는 거처에 홍등을 밝히는 것이 굉장한 상징이 된다. 그건 소설 속에는 없는 것이고 감독 장예모가 극적인 장치를 추가한 것이다. 홍등과 발마사지! 이 강렬한 시각적 자극과 발마사지 하는 소리의 청각적 자극은 그 자체가 권력을 상징한다. 주인 나리가 많이 찾을수록 집안에서 입김이 세지고 하인들의 태도도 달라진다.

넷째부인 쑹렌은 베이징에서 대학도 다니던 여자였지만 이 집안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집안의 분위기가 마음에 안듦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경쟁구도 속으로 뛰어든다. 바깥 세상과도 완전히 차단된 거대한 벽속의 사회에서 그들은 스스로 위로하고 도우며 살지 못하고 경계하고 침묵하고 살기를 띄고 경쟁한다. 이 모든 것을 틀어쥔 권력자인 천줘첸의 실체는 사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다. 그 권력자가 만들어 놓은 사회에서 모두가 같은 것(남편의 사랑)만을 욕망함으로써 그들은 스스로 경쟁관계에 놓이게 되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남성중심의 전근대적인 권력관계를 더욱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체제안에서라면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는데, 권력자가 허용한 것 이외의 것을 욕망하면 죽음이 기다리는데, 담장 밖을 보지못하고 체제 내에서 싸우는것. 결국 갑은 보이지 않고, 을끼리만 피터지게 싸우는 현대 사회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영화에서 엘리트를 상징하는 쑹렌은 이 체제를 변혁할 인물로 기대되었지만 그녀 역시 애정경쟁에 끼어들면서 결국은 추잡한 모습만 보이고 봉등(다시는 불을 못켜게 등을 검은 천으로 감싸버린다, 영화에서 묘하게 죽음의 이미지를 풍겼던 기억이 난다)을 당한다. 살아있지만 죽은 것이다. 더이상 살아 있지 못하는 그녀는 결국 미쳐버리고 만다. 아니 미치지 않으면 살아 갈 수 없는거겠지.

안타깝다. 그녀들은 왜 벽 바깥을 보지 못하고 담장에 갇혀서 자기들끼리 싸워야 했을까. 권력자가 자기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체제안에서만 사고하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대안이 없다. 영화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에서 보았던, 편의점 사장이 갑인 줄 알았더니 결국은 그도 `을`이었던, 그 싸움은 결국 을끼리의 싸움이었던게 생각난다. 축첩제를 비웃었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런 사회제도안에서 살아가는게 아닌가. 마르크스가 말하길 `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싸움은 노동자끼리의 싸움이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두들 같은 욕망을 품고 경쟁하는게 아니라 기성의 것과 다른,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사회. 그게 가능한 사회가 진짜 건강한 사회다. 쑹렌도 첩으로 들어오면서 천줘첸의 사랑을 기대하고 온 건 아니었다. 애초에 그는 쑹렌의 욕망의 대상이 아니었는데, 다른 것을 용납못하는 분위기에서 그녀도 천줘첸의 사랑만을 욕망하며 비극은 커진다.

쑹렌을 말한다. ˝나는 여자가 대체 뭔지, 무엇에 속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개, 고양이, 금붕어, 쥐, 온갖것과 다 닮았는데, 사람하고는 닮지 않았어요.˝
이 집안에서 여자는 애완동물보다 못한 존재다. 주인의 욕망만을 위한 존재. 그건 인간적인 존재가 아닌것이다.
이 대목이 이젠 ˝나는 사람이 뭔지˝로 읽힌다. 우린 과연 사람같이 살고 있는가. 진짜 원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누군가의 소모품으로 살고 있는건 아닌가. 그 소모품끼리의 경쟁이 결국은 우리를 더 숨막히게 하는 것인데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건 아닌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피북 2015-10-25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글을 읽고나니 영화와 책 모두 보고 싶어집니다. ㅎ 그리구 중국문학의 3대 작가도 알게 되었어요 ^~^

살리미 2015-10-25 22:40   좋아요 0 | URL
책을 읽으며 영화 <홍등>에 대해서도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예전에 영화를 봤을 땐 배경음악이나 화면이 매혹적이긴 했지만 왜 주인공이 미쳐버렸는지 잘 이해 할 수가 없었거든요^^

보슬비 2015-10-28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중국 소설들을 이때쯤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같은 동양권이면서도 또 다른 이질감이 느껴져 좋았던것 같아요. 그후 쑤퉁의 책들 여러권 읽다가 최근에는 찾지 않았는데, 오로라님 글을 읽으니 쑤퉁의 읽지 않은 다른책들이 있는지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살리미 2015-10-29 00:29   좋아요 0 | URL
중국 소설들이 우리와 정서가 비슷하면서도 굉장히 색다른 점이 많아서 흥미롭게 읽히는것 같아요. 저도 쑤퉁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고 싶어질만큼 이 책이 재밌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