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은 두 권의 일본소설은 우연히도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않은 주부`가 등장한다. 아니, 결혼이 행복하지 않은 주부의 이야기가 원래 흔한가? 그런거 같기도 하다. 마치 이 시대에는 결혼을 해서 불행하거나 결혼을 하지 않거나 두 선택지가 있는 것처럼.
<종이달>과 <나오미와 가나코>는 스토리가 재밌어서 책이 술술 잘 읽히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주인공의 미묘한 심리를 같은 주부로서 너무나 알것 같은 기분에 왠지 공감이 갔다.
결혼을 하고 전업주부가 되는 순간 어쩐지 자신감이 없어지고 자신이 점점 초라해지는 기분, 아무리 살림을 야무지게 하고 주부로서의 일들을 완벽히 해낸다고 하더라도 어쩐지 매일 매일 나는 가라앉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종이달>에서 `남편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한심하다는 걸 알면서, 충실한 매일을 보내는 마사후미를 보고 있으면 리카는 따돌림을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거나 `또 작은 위화감이 리카의 마음속에 퍼졌다. 하지만 리카는 그걸 말로 할 수 없었다.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를 모르겠다` 같은 문장을 읽을때 그 마음을 너무나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 자꾸 낯설어지고 `진짜 나`는 어디 다른 곳에 존재할 것만 같은 느낌. 다행히도 나는 그런 기분들을 그때 그때 잘 다스려서 (내 경우는 책을 많이 사 제끼는 버릇이 그때부터 생겨난듯 한데 다행히 책은 좀 저렴해서 리카처럼 거액을 횡령하지는 않아도 되었고, 쌓여가는 책들을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자주 제정신으로 돌아왔고, 무엇보다 남편이 정말 착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느낌들은 일시적인 주부 우울증으로 끝날 수 있었다ㅋ) 별일 없이 살고 있지만 나는 리카의 동기를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나오미와 가나코>에서는 주인공 가나코가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한다.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것이다. 처음 가나코는 모든 것을 포기한 모습으로 나오는데 ` 전차에서 치한을 만나더라도 소리치지 않는 여자. 다툼이 무서워 자신이 참는 쪽을 선택`하는 여자였다. 오히려 어려서부터 부모의 가정폭력을 겪어온 친구 나오미가 더 적극적으로 폭력남편의 제거를 권유한다. 그런데 그녀들의 허술한 계획이 실제로 실행되고 나서는 의외로 가나코는 결단력있고 강단있는 모습으로 나오미까지 보듬는다.
˝나 말이야, 마음 속에 대피장소를 만들게 됐어.˝
˝남편의 폭력과 마주할 때 지금의 나는 가짜 인생을 살고 있다, 진짜 인생은 다른 곳에 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나, 오늘밤 다쓰로씨를 제거했지만 트라우마가 되지 않을 자신 있어. 대피장소와 현실을 마음속에서 맞교환하면 될 뿐이니까.˝
이렇게 가나코는 범행 후에 오히려 `진짜 나`가 되었기에 나오미보다 더 강한 여자가 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두 소설 모두 요즘 사회를 잘 반영한 충분히 개연성있는 소재여서 흥미롭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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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밥 2015-07-28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먼 소재여서 더 끌리네요 ㅎㅎ

살리미 2015-07-28 10:09   좋아요 0 | URL
멀다함은... 아직 미혼이시라는거죠? ㅎㅎ 미혼이시라도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거에요^^ 결혼 생활에 대한 환상은 좀 깨질 수 있겠지만.. ㅎㅎ

인디언밥 2015-07-28 10:13   좋아요 0 | URL
네 흐흐흐 제가 어떤 환상을 갖고 잇는지 확인차 읽어봐야겟네요~

자몽 2015-07-28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로라님 리뷰읽으니 빨리 읽고싶어지네요..
저역시 이런 느낌을 잘 알기에..ㅋㅋ

결혼 10년 넘어 결혼 생활에 온전히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이 몇이나 있겠어요..누구나 크고 작은 문제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기에 이런
주제가 고전에서부터 지금까지 다뤄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겠지요..

두 소설이 과연 보바리 부인을 능가할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살리미 2015-07-28 16:58   좋아요 0 | URL
아!! 보바리부인이 원조격인가요? ㅎㅎ
특별히 불만도 없고 콕 집어 말할 수도 없지만 뭔지 모르게 느껴지는 답답함.. 이럴때 살짝 어긋난 톱니 하나가 인생 전체를 삐걱거리게 하는 것을 <종이달>에서 잘 표현한 듯 해요. 같은 주부의 마음으로 그 처음의 미묘한 심리를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래서 나이가 들 수록 소설이 재밌어지나봐요^^

cyrus 2015-07-28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외로 결혼 생활에 불만이 많은 아내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마담 보바리, 적과 흑, 레이디 체텔리, 안나 까레니나 등등. 저만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결혼 생활에 불만 많은 남편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이런 소재의 소설을 만나기가 드물어요.

살리미 2015-07-28 18:41   좋아요 0 | URL
남편이 차라리 누가봐도 못된 사람의 경우라면(가나코의 남편처럼 폭력을 휘두른다던가) 결혼 생활의 불만을 얘기하기가 더 쉽죠. 누구에게나 터놓고 고민을 말할수도 있고 누구라도 공감해 줄테니까요. 제가 결혼 초 힘들었던 부분은 남편이 특별한 잘못도 없고 오히려 너무 잘하는 편인데도 저는 자꾸만 작아지고 뭔가 말로 표현을 못하겠는 불만들이 쌓여간다는 것이었어요. 내 문제라고만 생각해서 결국 나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감정들.. 남들에게 얘기 할 수도 없고 얘기해도 아무도 이해 못하고 니가 복에 겨워 그런다 할것만 같은 그런 고민들요... 결혼 생활에 내공이 쌓이다보니 이젠 많이 무뎌지고 둥글어졌지만 소설 속 그런 심리에 유독 공감이 가네요. 그래서 단정했던 리카가 조금씩 무너질 때 참 안타까웠죠.
저만 해도 옛날 사람이고 ㅎㅎ 요즘은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남자들이 와이프 눈치보느라 고생 많이 한다고들 하던데 아마 어딘가에 불만 많은 남편을 소재로한 소설도 있지 않을까요?? 아직까지는 여성이 사회적 약자였기 때문에 소설이 여자들의 편에 서 있었던 적이 많은 것 같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