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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라이시의 자본주의를 구하라 - 상위 1%의 독주를 멈추게 하는 법
로버트 라이시 지음, 안기순 옮김 / 김영사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멈춰라, 생각하라. 그리고 분노하라.
'멈추라, 생각하라'는 말은 슬라보예 지젝의 외침이다. 여기에 작금의 현실을 더하여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를 외치고 싶은 오늘이다.
최근 두 번의 이변(?)으로 주식시장에서 마음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 한번은 영국이 EU에서 탈퇴하겠다는 브렉시트였고, 또 하나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후보가 당선한 일이었다. 무작정 언론을 탓하기엔 세상사 그림자를 잘못 읽은 내 탓이지 누구 탓도 아니다. 이러한 이변의 핵심은 '불평등'이란 것은 누구나 찝어낼 수 있었는데도 난 그 위중(危重)함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다. 자본주의의 두 기둥인 미국과 영국은 그래도 시스템이 잘 짜여 있으니 잘 해결해 나가리라 믿었다. 하지만 부의 양극화와 소득 격차에 대한 분노와 소외감이 중하소득층에서 폭발한 것이다. 그 깊은 원인은 '1%의 확장'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지난 60년간 경제는 급성장했지만 그 결과를 놓고 보면 중산층의 몰락, 빈곤격차 심화, 일자리 축소의 현실만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현상의 중심에는 바로 경제계와 정치계를 장악한 대기업, 거대 은행, 부자들이 있다. 어찌 보면 사회적 불평등은 그동안 신자유주의를 이끌어온 미국과 영국에서 보다 광범위하게 골병이 들었을 것이다. 2011년 월스트리트에서 일어난 'Occupy Wall Street' 저항운동에서 자본주의는 심각성을 인식하고 재빨리 처방전을 냈어야 했다. 월가는 자본주의의 심장이 아닌가. 이곳에서 "We are ninety-nine"이라는, 1%에 대한 99%의 분노가 폭발했다는 것은 작금의 현실에 대한 일종의 '미리보기' 였던 것이라 하겠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도 별다르지 않다. 국민을 개·돼지로 취급하는 1%에 대해 지금까진 어떻게 저항할 구체성을 확보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그 1%에 대항하기 보다는, 같은 처지의 99%끼리 아등바등 치고 박으면서 '의자뺏기놀이'를 하고 있었던 거다. 이번에 우리는 최순실 사태를 통해 우리에게 가치와 시스템을 강요하던 이들의 추악한 이기주의를 보았다. 이번 일은 어쩌다 일어난 일탈의 한 장면이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이 땅에 뿌린 자본주의의 일상인 것이다. 그 종기가 이번에 곪아 터졌다. 고름을 확실하게 빼내고 제대로 치료하지 않는다면 그 흉터는 안 봐도 비디오... 99%여, 하던 일을 멈추라, 생각하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았다면 분노하고 일어서라.
이번에 읽은 책은 로버트 라이시의 <자본주의를 구하라>이다. 그 부제가 '상위 1%의 독주를 멈추게 하는 법'이다. 저자는 자본주의 자체는 잘못된 시스템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그는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존재는 더 이상 공산주의나 파시즘이 아니라, 바로 "현대 사회가 성장과 안정을 추구하는데 필요한 신뢰의 지속적인 쇠퇴"라고 진단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모든 현상을 반전시켜 소수가 아닌 다수를 위해 가동하도록 경제를 재창출할 힘이 있다. 칼 마르크스의 생각과 달리 자본주의에는 가차 없이 경제 안정을 추구하며 불평등을 확대하는 요소가 없다. 자본주의를 지배하는 기본규칙은 영구적이지 않으며 사람이 결정하고 실행한다."면서 자본주의 회복 방안을 이야기 한다.
3부로 나누어져 있는 이 책은 1부 "자유 시장, 시장을 둘러싼 오랜 논쟁과 통념" 편에선 자본주의를 구축하는 다섯 가지 구성요소를 통해 자유 시장의 메커니즘을 짚어보고, 2부에서는 일과 가치, 즉 왜 어떤 사람은 부유하고 어떤 사람은 빈곤한지를 진단한 후, 3부에선 소수가 아닌 다수를 위해 자본주의 구하기 즉 부와 힘의 상향 분배를 끝낼 수 있는 '대항적 세력'을 제시하고 있다.
짧게 요약하면 상대적으로 소수이면서 경제적·정치적 힘을 장악한 대기업과 부자는 '자유'를 사용해 게임의 규칙에 영향력을 행사해서 힘을 강하게 다지고 확대하는 방식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책은 진실하고 현명한 반면에 반대하는 정책은 잘못되고 결점이 있다고 대중을 설득시키는 홍보 활동을 펼친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유'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회의가 일지 않을 수 없다.
자본주의를 구축하는 다섯 가지 구성요소. 자유시장을 형성하려면 다음 사항을 결정해야 한다.
○ 재산: 무엇을 소유할 수 있는가
○ 독점: 시장 지배력을 어느 정도로 허용하는가
○ 계약: 무엇을 어떤 조건으로 사고팔 수 있는가
○ 파산: 구매자가 대가를 지불할 수 없을 때 무슨 일이 발생하는가
○ 시행: 어떻게 해야 아무도 규칙을 어기지 못하게 할 수 있는가
사회적 불안의 원인인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소득의 재분배'를 이야기 한다. 정부가 세금과 이전지출을 통해 부유층에서 빈곤층으로 소득을 재분배하는 건데, 이는 전체 그림의 작은 일부일 뿐이다. 실제적으로 최근에는 소득의 재분배가 소비자·근로자·소기업·소형투자자에서 고위 기업임원, 자본자산의 주요 소유주로 '상향 이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향 재분배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시장 규칙 안에 숨어 있다. 따라서 시장 구조 안에서 상향 분배가 먼저 이루어지고 난 후에 정부가 나머지 소득을 빈곤층에게 하향 재분배하는 것이다. 간단히 표현하면 거대 기업, 권력자, 부자가 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과를 창출하였기에 불평등이 심화된 것이다.
자의성과 불공정성이 사회에 널리 확산되면서 몇 가지 방식으로 경제 기관의 기반이 약해진다. 첫째, 규칙을 어기는 경향이 만연하다. 경제는 신뢰를 바탕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게임이 상위층에 유리한 방향으로 조작되었다고 여기면 자신이 부정행위를 저질러도 용인되리라 착각한다. 둘째, 게임이 조작된 것처럼 보이고 신뢰가 무너진다면 근로자에게 충성심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전반적으로 적당, 무사안일, 복지부동, 구태의연의 기회주의적 모습만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어째 우리나라의 현주소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러므로 이를 막기 위해선 소수가 아닌 다수를 위한 공정한 새로운 규칙이 필요하다. 어떻게?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끊임없이 부를 축적해가는 부유한 소수의 의견에 반응하는 정부냐, 아니면 상대적으로 더욱 빈곤해지고 경제적으로 더욱 불안정해지는 다수의 필요에 반응하는 정부냐를 선택해야 한다."는 거다.
결론적으로 저자의 진단을 정리해 보면, 문제는 상위층이 소유한 힘이나 영향력 자체가 아니라는 거다.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힘이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문제다. 가진 자들의 정치적 힘은 점점 커지는 데 반해 이를 억제하거나 균형을 맞출 만한 대항적 세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저자는 의문을 던진다. 어떻게 하면 중산층과 빈곤층이 더욱 광범위한 번영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재조직하기에 충분한 대항력을 다시 갖출 수 있을까? 다수에 반응하는 정부? 솔직히 우리의 정치 역량은 '수준 이하' 아닌가. 국민을 바라보지 않고 그들의 권위적 리더에 종속하는 정치인들이 아직도 많은 우리네 현실... 결국 99%가 일어서야 한다. 멈춰라, 생각하라. 그리고 분노하고 일어서라... 이것이 지금의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