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 은밀한 그러나 잔혹한 - 서양이 저지른 기나긴 테러의 역사
노엄 촘스키.안드레 블첵 지음,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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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현상을 냉철히 바라보고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낸다는 것,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지식인은 많으나 행동으로 실천하는 이가 적은 시대에, 세계의 양심이요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일컫는 노엄 촘스키나 슬라보예 지젝만큼 호소력 있고 울림이 큰, 우리 시대의 지성이 또 누가 있을까? 이 두 분과 관련되는 책은 괜히 눈이 가더라. 언어학자인 촘스키는 국제 문제에 있어 프로파간다 모델을 통해 주로 미국(또는 서양의 강대국)의 부당한 횡포를 고발하고 비판하는 반미 성향인데 비하여, 지젝은 라캉, 헤겔, 마르크스 사상과 이론으로 무장하여 주로 자본주의의 병폐에 포괄적으로 간여하는 약간의 차이가 있어 보인다. 어쨌거나 두 분 모두 좌파 사회운동가로 통한다. 그런데 우리는 군사적으로 미국에 의존적이고 신자유주의에 가까운 자본주의를 지향하고 있는데도 이 두 분이 그렇게 불편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어쩌면 소통 없는 일방적 국가정책이나 완연한 기업 친화적 경제에 대한 우리의 현실적 괴리감과 고민이 투영되었기 때문은 아니련지…….

 

  촘스키나 지젝의 네임벨류가 상당하다보니 이들의 이름이 들어간 책은 제법 여러 권 읽었지 않나싶다. 촘스키의 최근 책들은 대부분 대담집(인터뷰)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이번에 읽은 <촘스키, 은밀한 그러나 잔혹한: 서양이 저지른 기나긴 테러의 역사> 또한 그러한 책이었다. 이런 류의 책은 대담 주인공(인터뷰이)의 견해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담 진행자(인터뷰어)의 역량에 따라 흐름과 수준이 결정되는데, 이 책의 인터뷰어 '안드레 블첵'은 지구촌의 분쟁지역을 누비면서 취재·보도하는 저널리스트이자 기록영화 제작자이다. 그래서인지 현장 경험적, 실증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꽤 깊이 있는 담론을 무리 없이 이끌어나가더라. 촘스키의 미국과 서양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_'식민주의와 파시즘에 대한 참된 자유로의 갈구'라고 표현하면 될까?_, 불편한 진실을 은밀하게 가리는 프로파간다 모델의 실상을 도발적으로 파헤치는 게 제법 인상적인 인터뷰라는 느낌을 받았다.

 

  

  머리말을 읽으면 이 책의 요지가 바로 보인다. 지구의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침략과 전쟁, 그리고 잔혹한 분쟁은 "그 모든 비극의 거의 전부가 서구의 지정학적 혹은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촉발되었고 조종되고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 잔혹한 사건들에 관한 '정보'라는 것은 터무니없이 제한되어 있었고 왜곡되어 있었다는 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와 현실이 다른 이유는 뭘까? "실패로 끝난 봉건국가들이 '활기 넘치는 민주주의'로 칭송받고, 시민을 억압하는 종교적 정권이 '참을성 있고 온건한' 나라로 묘사된 반면, 국민주의 국가나 사회지향적인 국가들은 끊임없이 악마 취급을 받았고 그들 고유의 대안적 개발 모델 및 사회 모델은 혹독한 비난을 받고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암울한 색채로 그려졌다(17쪽)"는 말이 이 책의 전체 흐름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게다가 런던과 워싱턴의 영리한 선전원들은 지구촌 시민들을 '불편한 진실'로부터 확실히 '보호'_프로파간다와 대중매체의 속임수_했다고 하니 안 봐도 비디오인 셈이다.

 

우리는 언제나 선택할 수 있다. 우리의 상황에 대해서 무언가를 행하든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든지. (21쪽)

 

  목차만 따라가도 이 두 분의 색채가 보인다. 그 첫 번째 제목이 "식민주의의 포악한 유산"이다. 2차 대전이 끝난 이래 자유와 민주주의 같은 고매한 슬로건 아래 자행된 서구의 식민주의와 신식민주의로_서양이 일으킨 전쟁, 친親서방 군사쿠데타, 기타 형태의 분쟁_ 인해 5,000~5,5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건데, 무서운 것은 서구 민중의 대다수는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은밀한, 그러면서도 잔혹한' 서양의 범죄적 이기주의를 고발하고 있는데, "그런 범죄를 저지르고도 서양의 문화는 어찌어찌 처벌을 모면했으며, 지금도 자신들이 일종의 도덕적 권한을 거머쥐고 있다는 확신, 자기네 조직과 미디어와 가치관을 통해서 이 세상을 좌지우지할 권리를 지니고 있다는 확신을 온 세상에 심어주고" 있는 서양인들의 놀라운 성과가 어떻게 된 건지에 대해 인터뷰어는 촘스키에게 묻고 있다. 그 실례의 하나만 들어보면, 제노사이드(집단학살)협약에 "미합중국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단서조항이 있다는 사실……. 음~

 

미국이 급진적인 이슬람에 반대한다고 믿는다면 그건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세상에서 가장 극단적으로 원리주의적인 회교국가가 바로 미국의 총애를 받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다. (189쪽) 

미국이 그 나라들을 침공하여 파괴할 때는, 그걸 '안정'이라 부른다. 미국의 적들이 상업적·정치적 관계를 강화하려고 시도할 때는, 그게 '안정을 해치는' 요소라 부른단 말인가? 그런 것이 바로 이란의 위협이다. 
(203쪽)


  그런데 중국과 소련에 대한 촘스키와 블첵의 호의적 미화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소련(러시아)과 중국 등 공산(사회주의)권 국가에 대한 촘스키의 평가는 정말 후하다. 소련은 파시즘에 투쟁하느라 수천만 명을 희생하였으며, 동유럽에게 보조금을 주면서까지 도와 그들보다 동유럽이 더 잘살게 하였고, 제국주의와 인종주의와 온갖 차별에 대항하는 투쟁의 선봉에 서서 그들이 전 세계를 위해 행한 '해방운동'은 아주 훌륭한 일이지만, 서구의 프로파간다에 의해 모든 선한 의도가 곡해되었다는 거다. 그러면서 드는 사례 중의 하나가 '소련이 지원하고 있을 때의 아프가니스탄엔 그나마 희망이란 게 있었다'는 거다. 쿠바가 아프리카 해방을 위해 싸운 일도 극찬하고 있다._솔직히 이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_ 중국에 대해서도 서구의 프로파간다가 헐뜯어서 그렇지 실제 방문해 보면 서양의 보도와 '너무나도 완전히 딴판인 국가'라고 평하고 있다. 우리가 프로파간다 시스템에 의해 세뇌되었다는 건데, 이건 너무 한쪽(서구권)을 내려까기 위해 다른 쪽의 좋은 면만 보려는 '착시'현상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런 면에서 나는 촘스키보다 지젝의 논지와 행동이 더 끌리게 된다.

 

블첵 : "소련이 지원하고 있었을 때의 아프가니스탄은 어땠습니까?"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교육자 : "아, 우리나라가 희망을 지닌 적이 있었다면 바로 그때뿐이었습니다. 여자들도 남자들처럼 교사로 일할 수 있었고 남자들과 동일한 권리를 누렸으며, 그나마 나라가 국민을 위해서 발전하고 있던 때는 소련이 들어와 있었을 때뿐이었지요." 
(128쪽)


  알고 보면 모든 것이 '탐욕'에서 출발한 거라 생각해 본다. 블첵도 머리말에서 "세계 전역에서 수많은 인간들의 고통을 야기하는 사건들의 대다수는 탐욕의 결과였으며, 지배하고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 그리고 이는 전적으로 '구대륙'과, 거기서 대서양의 반대편으로 건너갔던 그들의 무자비한 후손들이 저지른 것이었다. 그들의 명분이야 얼마든지 다양한 이름을 달고 나타날 수 있지만 -식민주의, 신식민주의, 제국주의, 기업의 탐욕- 이름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것이 몰고 오는 것은 오로지 고통뿐인 것을!(14쪽)"이라고 하더만. _그러고 보면 탐진치貪嗔痴의 삼독三毒이 제일 무섭다는 부처님 가르침이 정곡일침이여_ 주장하는 껍데기가 어떻든 '유럽과 미국은 자못 거만하고 완전히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태도로써' 뻔뻔하게 세상을 농단하고 있다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는 일들이 어디 한 두어 가지인가. 이 책에서 느길 수 있는 촘스키의 주장이 어느 정도 좌경화 되어있다고 감안하더라도 그 원천은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 Unbearable pity for the suffering of mankind.'임을 나는 믿는다. 하여튼 2차 대전 이후 미국과 유럽, 그리고 그 동맹국들이 저지른 반인륜 범죄를 짚어본 이 책, 촘스키를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권할 만하다.(몇 권 읽어본 독자라면... 그게 그거 아닐까? 아~ 그리고... 한국에 대한 언급도 두어군데 있더라...)

 
▒ 사족 ▒ :

  이해 안 되는 것 하나. 번역자나 편집자는 이 책에서 왜 경어체(블첵)와 반말(촘스키)로 구분했을까? 경어로 묻는데 반말로 답한다? 아무리 촘스키가 블첵보다 나이가 많고 인지도가 높다한들 건조한 반말로 인터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_다른 대담집은 서로 경어체를 쓴다_ 그리고 이런 이중적 언어의 흐름은 어떤 이질감과 독자의 몰입을 정말 방해하더라. 이해가 안되어도 한참 안되더라. 왜 그랬는지 정말 묻고 싶다.

 

참고로 촘스키와 블첵의 '서양의 테러리즘'에 관한 7분짜리 인터뷰 동영상을 소개.

http://youtu.be/Pee06rnp-s0 <Chomsky and Vltchek: ON WESTERN TERRORISM (working title) 7 min. tea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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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A 마나가 - comics artists' creative time
MANAGA 편집부 지음 / 거북이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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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화 in 추억
어릴 적 만화 안보고 자란 사람 있을까? 돌이켜보면 참 만화를 즐겼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만화 삼매경에 빠졌다가 고만 지각하여 벌로 운동장 한 가운데 혼자 서있었던 추억. 이 생각을 하자마자 퍼뜩 떠오른 그 시절의 만화 캐릭터는 '땡이'._이거 우습다야~ 머릿속에 아직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이……._ 만화방에 코 묻은 용돈을 더러 밀어 넣기도 하였지만 나에게 큰 행운(?)이 있었으니……. 중학교에서 사귄 친구 집이 서점을 하는 거 아닌가. 놀려가서 돈 안내고 만화 많이 봤다. 이즈음에 기억나는 게 요괴인간과 바벨2세. 로뎀, 로프로스, 포세이돈의 이름은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다._이후 일본판 만화 여러 권 봤지만 그 시절만큼의 즐거움은 아니었다._  대학 때는 고우영 만화를 모두 찾아봤고, 한땐 방학기 만화에 흠뻑 빠지기도 했다. 한창 성에 눈뜰 때 한희작의 성인만화, 이거 야하지도 않은 것이 참 대단했다._아직도 눈에 선~하다^^_ 그 이후로도 박봉성, 허영만, 하승남의 만화를 즐겨 봤다. 아이가 커가면서 일본 망가도 더러 재미있게 보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단 한명의 만화가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재학을 떠올린다. 이재학 만화의 히트 아이콘 '추공'! <검심검귀>로 부터 시작하는, 가을하늘이 맑고 깊어 그런건지 그 이름만큼이나 허무를 짊어진 추공의 이미지는 잊히지 않고 가슴 깊이 박혀있다._추억은 이제 그만... 흠흠..._

 

2. MANAGA
세월이 흐르니 만화의 트렌드나 사회적 시각이 많이 바뀌더라. 지적인 어른들이 봐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제법 감상적 난이도를 가진, 소설처럼 완결 형태의 괜찮은 그래픽노블이 많이 등장하더라. 특히 프랑스 앙굴렘 수상작들은 만화에 대한 나의 알량한 통념을 바꾸기에 충분하였다. 그리고 최근에 자주 보게 되는 웹툰! 가끔 이러저러한 보던 내가 웹툰을 다시 본 건 윤태호의 <이끼>였다. 섬뜩한 긴장감이 절로 그림 속으로 빠져들게 하더라. 정말 대단했다. 그러다가 전혀 다른 느낌을 <미생>을 만났다.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사실성이 짜릿하더라. 나는 미생을 통해 ‘윤태호’라는 만화가를 다시 봤다. 직장인의 애환을 이렇게 치밀하게 그려내는 그의 내공에 어찌 감탄하지 않겠는가. 미생이 시리즈 책으로 나왔을 때 꾸준히 리뷰를 올리기도 했으니 은근 팬이 된 셈이다.
얼마 전 <MANAGA>란 책이 눈에 들어왔다. 만화는 즐기지만 만화가에 대해서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최근의 웹툰 인기와 관련하여 컴퓨터와 스마트폰 시대의 만화 창작은 어떻게 하는지 참 궁금하더라. 무크_mook : 잡지와 단행본의 특성을 동시에 갖는 부정기적 출판물_ 형식으로 발행된 이 책은 특이하게 국영문 혼용으로 편집되어 있었다. 발행인의 글을 읽어보니, 우리 만화가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 욕심을 내었다고 한다. 10명의 만화가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그들의 창작 현장과 작업과정을 제법 볼만하게 전해준다.

 

3. 예술 혼?
웹툰은 보되 그 작가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 윤태호 만화가처럼 최근 지속적으로 히트작을 내거나 하는 경우를 빼고는. 소개되는 10분 중 장태산이나 박소희 같은 분은 얼른 이름을 알아봤지만 다른 분은 아름만으론 잘 모르겠더라.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통해 만화가 '최규석과 백석민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최규석이란 이름은 몰랐어도 네이버 화제의 웹툰 '송곳'은 몇 번 본 적이 있다. 이 시대, 비정규직의 아픔을 잘 이토록 잘 그려내는 만화는 어디에서도 없었는데……. 난 '송곳'을 보면서 사회파 만화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특히나 이번에 개봉되는 영화 '카트'를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웹툰이기에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송곳'이 바로 이 분의 창작물이라네. 그렇구나.
백성민의 '춤'은 전율이 일더라. 단순해 보이는 붓질 몇 번으로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듯 역동적이고 강렬한 춤꾼이 태어나다니……. 이런 경지에 오르기까지 작가의 노력과 땀이 그 얼마였겠는가. 크로키croquis 기법을 활용하여 결이 갈라지듯 빠르게 흐르는 붓선이 춤꾼의 움직임과 균형을 거의 완벽하게 포착하여 이미지화하고 있는데, 작가의 대단한 내공이 느껴지더라._춤의 웅장한 무게감과 깃털 같은 가벼움을 내 붓의 놀림만으로 재해석하고 싶어. 하지만 춤이 가진 ‘본질’은 살아 있어야 해. 그렇게 그리고 싶어._
장태산의 <몽홀>도 굉장하더만. 몽골의 푸른늑대를 보는 순간 김형수 소설 <조드>의 폭풍 같은 서사가 떠오르더라._조드 1권을 읽어보면 글빨이 장난 아니다_ 하여튼 장태산의 만화엔 힘이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4. 에필로그
재주 있는 그림쟁이나 음악쟁이를 보면 너무 부럽다. 그들의 자유로운 영혼과 창조적 힘은 도저히 내가 꿈꾸기 어려운 영역이다. 하긴 사람이 어찌 모든 걸 잘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자조적 합리화로 스스로를 다독거리지만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이 무크지를 보면서 약간의 아쉬움도 있었다. 무엇보다 글꼴 크기가 너무 작아_8포인터인가?_ 보기 너무 불편했다. 왜 이렇게 했을까? 만화쟁이들은 다 눈이 좋은가보다. 여백도 많은데 1포인터 정도만 더 키웠으면 좋았겠다._요즘 내 눈이 침침한가?_ 그리고 국영문 혼용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영어가 필요 없는 사람들에겐 괜한 낭비(?)가 될 뿐이지 않겠는가. 그리고 책소개 글을 보니 "글과 사진 그리고 만화 작품을 감각적으로 구성한 레이아웃은 한 차원 높은 편집 디자인의 수준을 보여준다."라고 되어 있는데, 쉬이 동의하기 어려웠다. 뭐 특별히 잘못된 건 없는데, 어쩐지 대학교지 편집 수준이라고 생각한 건 너무 박한 평가일까? _그래서 홍보부 동료에게 잠시 보여줬더니 사진은 정말 잘 찍었다네, 느낌이 살아있단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잘 만든 책이란다. 음~ 아마와 프로의 인식 차이인가 보다_ 그래도 만화인들에게 이런 무크지가 있어 그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자리 매김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만화 산업을 위해서도 다행한 일이라 생각한다. 어쨌거나 만화쟁이들의 공간을 살풋 들어다본 눈이 즐거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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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 보이스 - 0.001초의 약탈자들, 그들은 어떻게 월스트리트를 조종하는가
마이클 루이스 지음, 이제용 옮김, 곽수종 감수 / 비즈니스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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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_ 소설이 아닌 논픽션!
증권 직접투자로 재미 보는 개미들이 얼마나 있을까? 잠시 짭짤한 수익으로 기뻐할 순 있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도박처럼 결국 다 잃고 마는 게임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 특히나 공매도 제도가 도입되면서 자본력과 정보를 가진 기관투자자가 거의 100% 이길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펀드 등의 간접투자도 선구안을 가지고 선택하지 않으면 그다지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지 싶다.
각설하고, 전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든 2014 최고의 화제작이라는 <플래시 보이스 : 0.001초의 약탈자들, 그들은 어떻게 월스트리트를 조종하는가. Flash Boys : A Wall Street Revolt>는 표지를 보는 순간 읽지 않고는 못 베기겠더라. 논픽션인 이 책은 미국에서 출간 즉시 아마존과 뉴욕타임스 등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토마 피케티 교수의 <21세기 자본 Capital in the 21st Century>과 함께 파이낸셜타임스(FT)가 매년 말 발표하는 '올해의 경영서' 최종 후보에 올라 유력한 수상작으로 꼽히고 있으니 어찌 관심이 안 갈 수 있으랴.

 

플래시 보이스  Flash boys?
플래시 보이스란 무슨 뜻일까? 일단 역자는 '초단타매매(High Frequency Trading ; HFT)를 하는 트레이더들'로 정의하고 있는데, 이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데이트레이딩 Day Trading이나 스캘핑 Scalping과는 다른 개념이다. 미국 증권시장의 거래소가 매매주문 정보가 공개되기 전 몇 분의 1초 동안 그 정보를 '순간적으로 노출해주는'_flash_ 대가로 수수료를 챙긴다는 건데, 이 극도의 짧은 시간 동안 먼저 정보에 접근한 약삭빠른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이 부도덕하고 비양심적인 수법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게 '100% 합법적인 절도 행위'라는 거다. 플래시보이스들이 거래소 안에 컴퓨터를 설치하고 _이를 코로케이션 co-location이라 한다_ 속도가 훨씬 빠른 자신들만의 최신판 주식정보 프로세서(SIP)를 구축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이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 뭐~ 상대편 패를 미리 알고 치는 카드 도박과 같다고 보면 되겠다.

 

아니 어떻게?
우리나라는 한국거래소(KRX) 한 곳에서 주식 거래가 이루어지지만, 미국은 13개의 일반 거래소와 44개의 비공개 거래소가 있다._미국 주식시장에 대해 아주 잘 정리된 자료가 필요하면 여기 참조. http://fdata.hdable.co.kr/global/americaguide.pdf_ 뉴욕증권거래소를 비롯하여 시카고, 필라델피아, 퍼시픽, 보스턴, 신시내티 등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다 보니 물리적인 거리차가 생길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누군가의 주식시장 주문이 도착하는 시간이 거래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 극도의 짧은 틈을 이용하여 선행매매를 하는 것이다. 즉 투자자 A가 어떤 종목의 주식매수 주문을 내면, 고성능 컴퓨터로 이를 파악해 매도자의 주식 물량을 마이크로세컨드(100만분의 1초)의 속도로 먼저 매수 후 그대로 원 매수 희망자에게 팔아치워 차익을 얻는 방법이다. 영화 스팅(The Sting)이 연상되는 장면이다. 그러다보니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은 남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매매할 수 있기를 원했고, 그들의 컴퓨터와 거래소 컴퓨터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를 줄이기 위해 그들의 매칭엔진(매수 · 매도 주문을 자동으로 연결하는 프로그램)을 최대한 거래소 서버 가까이에 두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된다. 이런 짓도 능력이랄 수 있을까? 이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불공정한 게임이고 약탈의 다른 모습이 아닌가.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
플래시보이스를 읽으면서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있었음을 떠올렸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바로 뜨네. 제목은 "ELW 스캘퍼 기소 : 증권사, 스캘퍼에 '초고속망' 내주고 수수료에 뒷돈까지 챙겼다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1042665541". 2011년도 사건인데 잠시 소개해 보면 "주식워런트증권(ELW) 시장에서 스캘퍼(초단타매매자, 일명 슈퍼메뚜기)와 증권사만 돈을 벌고 일반 투자자들은 잃는 구조가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 스캘퍼와 증권사는 서로 공생관계를 유지하면서 수십억~ 수백억 원의 이익을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 스캘퍼는 수수료와 뇌물을, 증권사는 ELW 투자수익을 내는 데 필수인 '속도'를 제공해주는 방식이었다. 2009년 한 해 동안 일반 투자자들은 5000억여 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드러나 '상(商)도의' 논란까지 일고 있다._자세 내용은 위 링크 참조_" 기소된 스캘퍼들이 증권사로부터 특정 서버를 제공받아 독점 사용했다는 건데, 플래시 보이스의 행태와 거의 비슷한 자본주의의 질 나쁜 사례라 하겠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FBI, 뉴욕 검찰 수사 착수와  IEX 신설
이 책은 올 초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FBI와 뉴욕 검찰은 초단타매매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고, 월스트리트에서도 초단타매매의 진상과 그 용인 정도에 대해 갑론을박_143쪽 참조_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리고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이 코로케이션을 활용하여 거래 정보를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획득하는 행위를 못하도록 막으려는 사람들의 시간 '늦추기' 노력도 대단하더라. RBC_캐나다왕립은행_ 뉴욕 지점의 브래드 카추야마는 인텔 주식을 매수하기 위해 엔터키를 누르는 순간, 사고자했던 물량이 사라져버린 이유를 알지 못해 고민한다. 그러다가 그 원인이 초단타매매에 있음을 알고 투자자들에게 그 위험성과 실체를 고발함과 동시에 '옳은 일'을 위한 험난한 여정에 오르게 된다. 그는 투자자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거래소를 만들기 위해 고심하다가, 코로케이션을 허용하지 않고  모든 시장참여자들이 거래소로 부터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으면 속도 때문에 생기는 이점을 대부분 제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새로 거래소를 설립_2013.10.25_하게 되는데, 이 신설 거래소가 '투자자들의 거래소(Investors Exchange, IEX)'이다.

 

모든 것은 탐욕에서 시작되었다.
아무도 IEX가 출범하자마자 엄청난 성공을 거두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IEX가 실패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음해세력의 방해를 극복하고 시장점유율에서 120년 역사의 아메리칸 증권거래소(AMEX)를 앞지를 정도로 성장한다. 골드만삭스는 "미국 주식시장에 변화가 필요하며 IEX가 변화의 시발점"이라고 주장하면서, IEX가 공정성과 안정성을 위한 최적의 거래소라고 기꺼이 인정했다.
돌이켜보면 속도에 가격을 매기고, 시간차를 이용한 약탈적 초단타매매가 이루어진 것은 결국 인간과 자본주의의 '탐욕'에서 시작된 일이다. "모든 조직적인 시장의 부정행위는 그 이전의 부정행위를 바로잡고자 마련한 규정의 허점에서 생겨났다(137쪽)."고 한다. 자본력과 기술로 정보를 움켜지고 더욱 더 많은 부를 갈구하는 저 '탐욕'의 끝은 어디일까? 극심한 빈부격차와 금융위기로 자멸하는 자본주의가 그려진다. 그나마 IEX와 같은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이 미국의 힘이라고 하겠지...

 

<출처 : 위는 구글지도 이용, 아래는 http://gizmodo.com/getting-lost-down-the-rabbit-hole-of-private-infrastruc-1562782580 >

 

에필로그
이 책의 마지막에 아주 의미 있는 숫자가 시선을 끈다. 빨간색 원형 곡식창고(Red Round Barn)를 지나서 월스트리트 근교 산꼭대기에 가면 극초단파 송신탑이 있는데, 그 울타리에 적혀있다는 <FCC License No. 1215095>... '그 송신탑에 알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하루만 인터넷을 탐색해보면 믿기 힘들지만 사실일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월가 이야기와 만나게 될 것이다.'라면서 미스터리하게 마무리를 하고 있다. 당연히 구글링하여 찾아봤다. 그것은 펜실베니아 Potter Township (Lat: 40.849278 Lon: -77.710778)에 있더라. _혹시 오리엔티어링이나 지오캐싱에 관심 있는 분은 http://www.geoplaner.com/ 또는 http://www.maps.ie/coordinates.html 에서 쉽게 좌표놀이 할 수 있음_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해답을 적기보다는 관련 사이트를 소개하니 이후 독후자는 참고하시길…….^^
(http://www.annrbrocklehurst.com/2014/04/the-mystery-ending-of-michael-lewis-flash-boys-fcc-license-no-1215095.html )

 

○ 한줄 단상 : <플래시 보이스>의 읽는 재미는 다소 떨어지지만, 의미있는 화제의 논픽션이란 점을 높이 평가했다. 올해의 경영서는 아무래도 <21세기 자본>이 될 것만 같다. 라고 생각했다가도 이런 고급 논픽션은 정말 오랜만이지라 판단이 쉽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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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전 박한영 한시집 - 니르바나총서 7
서정주 지음 / 동국역경원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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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서 간단한 메시지가 왔습니다. 가을 날씨가 추워지기에 흔히 보내오는 일종의 안부 연락이지요. 흘깃 보고 ‘음~ 그렇나?’ 하고 흘려버렸는데, 이상스레 마음 한 편에 그 흔적이 남는 거 아니겠습니까. 어떤 서늘하면서도 선선한 기운이 저를 감싸는 느낌, 뭐 그런 거였습니다. 어떤 내용이었기에 그러냐고요? 잠시 옮겨볼까요.

 

나그네가 사립문을 열 때 / 새로이 서늘한 바람이 나무를 흔들고 초승달이 미세하게 생겨난다.

 

바쁜 나날인지라 그런 상태로 며칠을 보내다가 문장의 원전이 뭔지 너무 궁금하여 폭풍 검색 들어갔습니다. _친구는 좋은 문장이 있으면 자주 메시지를 보내지요_ 바로 찾아지더군요. D일보 오피니언에 실린  문태준 시인의 <가을의 둘레를 걷다. http://news.donga.com/3/all/20131011/58155163/1>란 글 첫 구절이었습니다. 이어서 조금 더 인용을 해보면 “근대 한국불교의 선지식 석전 박한영 스님이 쓴 시 ‘새로운 가을밤에 앉아’의 한 부분이다. 빗장을 열 때 추풍이 유입되어 생기는 변화를 풍광뿐만 아니라 심경(心境)에 두루 걸쳐 포착한 절창이 아닌가 한다. 게다가 높은 고독도 있다.”...

 

석전 박한영 스님? 새로운 가을밤에 앉아?  스님도 궁금하고 시의 전문(全文)도 궁금해졌습니다. 다시 검색을 합니다.
석전(石顚) 박한영(朴漢永) 큰스님은 20세기를 전후해 한국불교계의 가장 뛰어난 큰 인물로 시호(詩號)가 석전(石顚)이고, 법호(法號)는 ‘영호(映湖)’요 법명(法名)이 ‘정호(鼎鎬)’라고 나오네요. 금봉(錦峯)ㆍ진진응(陳震應) 스님과 함께 근대불교사의 3대 강백(三大 講伯)으로 추앙받았던 선승(禪僧)으로 당대 ‘선지식 중의 선지식’이라고 평가하고 있더군요.
오호~ 대단하신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더더욱 시의 전문을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가을밤에 앉아’라는 시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어떤 자료도 찾을 수 없더군요. 대신 미당 서정주 선생이 번역한 <석전 박한영 한시집>이 동국역경원에서 2006년에 출간되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바로 책을 주문했지요.

 

책의 해제(解題)를 읽어보니 서정주 선생과 석전 스님의 관계가 잘 나타나 있었습니다. 미당 선생이 중앙고보와 고창고보에서 퇴학당하고 정신적으로 방황할 때 제자로 삼아 이끌어 주신 분이 석전 스님이더군요. 그래서인지 선생은 석전 스님을 자신의 “뼈와 살을 데워준” 큰 스승으로 여겼다는군요.
어쨌거나 급하게 책을 넘기면서 ‘나그네가 사립문을 열 때~’를 찾아도 안 보이는 거 아니겠습니까. 어? 이 책이 완역이 아닌 선역(選譯)이라더니 빠진 게 아냐? 순간 의심을 하면서 다시 찾아도 안보입니다. 약간 당황하면서 목차부터 살펴보니 <새 가을밤에 앉아 新秋夜坐> 가 있습니다. 얼른 펼치니 3개의 7언절구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런~ 번역이 다릅니다. 문태준 시인의 글귀는 미당 선생의 번역을 인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잠시 볼까요?

 

나그네 화산서 와 판자문을 열 때 / 서늘한 바람결이 숲을 흔들고 초승달이 비치는구나

客自華山款板扉 / 新涼撼樹月生微


‘맛_느낌’이 너무 다릅니다. 일단 한시 전문을 읽어보니 그 시어의 의미가 가슴 속에서 울리는데, 정작 미당 선생이 특유의 서정성으로 번역해 놓은 문장은 도무지 가슴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짧은 한문 능력상 더 이상 언급하기는 좀 그렇지만, 어쨌든 어떤 기대치에 미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은 미당 선생 생전에 출간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유고(遺稿)더군요. 일종의 미완성의 작품인거지요. <영호대종사어록> 출간 당시 미당 선생이 번역을 감수한 듯했다는데, 뭔가 번역이 미진하여 이 원고를 쓰고 계셨나 봅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영호대종사어록>과 <석전시초>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허허 참... 대학도서관에서 <영호대종사어록> 빌렸는데...
아니 3수로 되어있는 <新秋夜坐>가 여기엔 1수만 실려 있었습니다. _이건 왜지? 대략 난감_ 뭐가 잘못인가 싶어 다시 <석전선생문집>를 빌려 찾아보니 3수가 맞네요.

 

新秋夜坐
露下涼天月始波 / 梧雲如水滿庭多 󰁚 紛然秋夢難收得 / 環海名山第幾過
雨晴祺動碧山空 / 病眼捲華秋水中 󰁚 斷壑風生明漢見 / 讀書聲自剔燈紅
客自華山款板扉 / 新涼撼樹月生微 󰁚 絶憐昨夜狂風雨 / 倒折蘭花濕不飛

 

한자를 알고 한시 구조에 대해 약간의 지식이 있어 의미는 잡힙니다만 전문가가 아니니 말을 다듬고 문자화하기엔 턱없이 부족함을 잘 압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서정주 선생의 번역을 그대로 인용해 봅니다. _그래도 느낌상 약간의 아쉬움이 남습니다. 또 그리고 석전선생문집에는 新涼撼樹로 되어있는데, 박한영 한시집에는 新凉撼樹 涼→凉으로 되어 있더군요. 뭐 약자이니 같다고 봐야죠._

 

이슬 밑 맑은 하늘 달은 밝아 물결치고 / 구름은 물과 같이 뜰에 가득하여라
어지러운 가을 꿈 거둘 길 없어 / 명산대천을 몇 번이나 돌았는지 모르겠다.

비 갠 뒤 푸른 산은 비었는데 / 눈 떠보니 가을 물 맑기도 해라
구렁에 바람 일고 은하수도 뚜렷할 때 / 글 읽는 소리소리 등잔 속을 파고드네

나그네 화산서 와 판자문을 열 때 / 서늘한 바람결이 숲을 흔들고 초승달이 비치는구나
애석하다 어젯밤 거센 풍우 / 난초꽃 꺽어놓고 젖어서 날지도 않네

 

아 참... <영호대종사어록>엔 1수의 번역을 이렇게 해 놓았네요.

이슬내린 하늘에 달빛이 구비치니 / 오동잎 그림자 뜨락에 질펀하다.
어지러운 가을 꿈을 가누기 어려워서 / 명산찾아 헤매온지 몇 번이던가?
(영호대종사어록 133쪽)

 

여하간 석전스님의 한시엔 맑은 기운이 넘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종의 문기(文氣), 즉 선기(禪氣)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향기롭더군요. 실은 <석전 박한영 한시집>보다 석림수필, 석전시초, 불교지 게제문(佛敎誌 揭載文) 등이 실린 <영호대종사어록>에서 그런 느낌을 더 많이 받았습니다. _이 책은 1988년 비매품으로 나온거라 고서적을 뒤져도 매물로 나온 것이 없더군요._ “나그네가 사립문을 열 때 / 새로이 서늘한 바람이 나무를 흔들고 초승달이 미세하게 생겨난다.”라는 문장 하나에서 알게 된 석전 스님! 그 분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인연이요 나의 복덕(福德)이라 생각해 봅니다.
비록 원하는(?) 문장은 찾지 못했지만 _문태준 시인 자신이 번역했을 수도 있겠지요. 나중에 물어보렵니다._ 참으로 좋은 공부가 된 시간이었습니다. 뭔가 더 적고 싶지만 오늘은 여기서 이만 해야겠습니다. 모든 게 고마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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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코 서점 북스토리 재팬 클래식 플러스 4
슈카와 미나토 지음, 박영난 옮김 / 북스토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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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사치코 서점>을 읽었다. <꽃밥 花まんま>으로 제 133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가 슈카와 미나토 朱川湊人의 기묘한 미스터리 걸작이란 카피가 눈에 들었기 때문이다. 전부터 부담 없이 읽을 만한 책이란 말을 듣기도 하였고... 읽어보니 일본문화의 그로테스크한 원형이 제법 따뜻한 모습으로 변형된 괜찮은 작품이네. 생활 속에 자리 잡은 신사(神祠)와 신도(神道)의 흔적이랄까. 현실과 이계(異界)의 경계, 즉 유령 비슷한 시공을 초월한 이탈의 공간과 사념(思念)을 작품 속에 잘 녹여내었구나~, 작가의 필력이 상당하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사치코 서점>의 원제는 かたみ歌_카타미우타_인데 かたみ를 사전적으로 찾아보니 "(특히, 죽은 사람이나 이별한 사람의) 유물; 유품"이라고 나온다. 이 소설의 전체적 플롯이 죽음을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우리식으로 적당하게 번역하자면 만가(挽歌.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노래)쯤 되겠다. 그런데 소개되는 7편의 단편이 모두 각각 독립된 스토리이지만 모든 흐름은 헌책방 사치코 서점의 주인과 가쿠지사_覺智寺. 이 절 어딘가가 저세상과 이어져 있다네_를 살짝살짝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마지막 [마른 잎 천사] 편에서 서점 주인장의 이야기로 모든 궁금증_원제가 왜 카티미우타인가, 우리 제목은 왜 사치코 서점인가  등등_을 해소하면서 대미를 장식한다. 그래서 하나인 듯 하나가 아닌, 문득 불교의 '불이(不二)'를 떠올리게 하더라. 책의 이런 짜임은 약간의 감동으로 이어졌고, <사치코 서점>이란 제목이 더 살갑게 다가오더라.

 

사실 첫 작품 [수국이 필 무렵 紫陽花のころ]을 다 읽었을 땐 '이거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이야기야~'하는 느낌이었다. 요즘 말로 하자면 '허접하다' 정도... 남편과 장애아를 버리도록 유부녀를 꾀어 도망쳐온 소설가 지망생이, 강도에 의해 살해된 라면가게 주인의 유령을 보게 되는 그런 이야기... 그 유령의 가족사랑에 마음 찔린 아줌씨가 원래의 가족으로 돌아간다는 약간의 시니컬(?)한 스토리. 그런데 이 단편에서는 제목처럼 수국이 주요 소재가 되는데, 이 수국에 어떤 숨은 의미가 있나싶어 그 꽃말을 찾아보니 ‘변덕과 진심’으로 되어있다. 수국은 그 꽃이 연한 자주색으로 피었다가 하늘색에서 연한 붉은 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변덕 또는 바람둥이라는 의미가 붙은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책의 내용과 얼추 어우러지지만, 그보다는 정말 도쿄 근교의 절가엔 수국이 많이 피는 듯하다. 구글링하니 의외로 많이 나타나네. 그냥 장소풍경의 소설적 장치로 넘어가자, 괜히 머리 아프다.

 

[여름날의 낙서 夏の落し文]. 첫 단편의 밋밋함에 여기서부터 은근 흥미로워지더라. 정말 자랑스러운 형이 알고 보니 친형이 아니네. 앞일을 예지하는 듯한 종이가 마을에 나붙고, 자신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저승사자(사신)같은 유령(?)과 싸우고 사라져버린 형을 찾는 기묘한 이야기. 어린 시절의 딱지치기놀이가 그리워지는 "신비한TV 서프라이즈'의 한 장면 같은 단편이었다. 형이 동생에게 멋있는 말을 하는데 소개해 보면, "내가 너한테 잘해줘서 기쁜 생각이 들었다면 너도 누군가에게 잘해주면 돼. 그러면 언젠가는 이 세상 모두가 친절해질 테니까."……. 좋은 말이다.

 

[사랑의 책갈피 栞の恋]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사랑의 러브레터가 주된 내용인데, 그 무대가 사치코 서점이다. 우리도 그 옛날엔 책이 귀하고 비싸 헌책방을 많이 이용하곤 했었지. 사치코 서점의 책 한권_랭보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연구한 책_에 끼워져 오가는 책갈피 속에 피어나는 사랑._요즘 아이들은 아마도 이런 느린 사랑은 죽어도 못할 거야_ 그러나 그 사랑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거더라. 그래서 더 여운이 있는 기묘한 이야기이다. 

 

[여자의 마음 おんなごころ]은 안개와 같다던가. 그 참 가슴 아픈 이야기가 담겨있구먼. 남녀 간 인연의 끈은 아무도 모른다지만 나쁜남자를 좋아하여 얻어터지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여자들의 심리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급사한 남편이 일주일이 지나자 매일 밤 11경이 되면 찾아온다는 게 아닌가. 그리고 술도 마시고 밥도 먹고 돌아간다는……. 엄마가 돌았나~싶어 아이에게 물어보니 맞데. 그런데 아빠의 머리 뒤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린다고 그러네. 어~ 무서워라. 이 동네는 저세상과 이어져 있다는 절 때문에 뭔가 뒤틀려버렸나 보다. 가쿠지 절에는 150센티미터 정도의 퇴색한 석등이 있는데, 돌 처마 밑에 있는, 불 주머니라고도 불리는 구멍_정식 용어로 보면 석등 화사부火舍部의 화창火窓_"석양이 질 무렵 이쪽에서 들여다보면 때때로 죽은 인간의 모습이 보인데요.(146쪽)"……. 그런데 말미에 은근슬쩍 [여름날의 낙서]편의 전단지를 언급함으로써 전체가 하나일 수 있다는 암시를 넌지시 비치네. 

 

[빛나는 고양이 ひかり猫]같은 이중적 장치가 내포된 소설이 난 좋더라. 고양이끼리의 싸움 소리에 짜증이 난 만화가 지망 총각이 창문을 거칠게 연 순간, 하얀 호랑이 같은 갈색 고양이_이름은 차타로_ 한마리가 휙~ 방 안으로 들어와 숨더니 매일 찾아오더라. 어느 날 차타로 대신 5센티미터 정도의 흰 공 같은 어슴푸레한 푸른빛이 들어와 고양이 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거 아니겠나. 차타로의 영혼인가 싶었는데 아니더라는 거다. 그럼 이게 뭐람? ^^

 

[따오기의 징조 朱鷺色の兆]. 일본에서는 연한 핑크색을 따오기색이라고 하나 보다._그렇다면 제목을 따오기색의 징조라고 할 것이지 왜 따오기의 징조라 했을까? 괜히 새를 생각했잖아._ 사람들에게 저승사자가 붙여놓은 죽음의 징조_핑크색의 꽃다발, 머리띠, 머플러, 털실 모자 등등_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레코드가게 아저씨의 이야기 이다. 뭐~ 그래서 불편한 감정도 많았겠지만 그래서 예쁜 아내를 얻었으면 횡재지 뭐~.

 

자~ 이제 마지막 단편, 사치코 서점의 비밀이 풀리는 [마른 잎 천사 枯葉の天使]이다. 남존여비의 편협한 사상을 지닌 문학도 남편에게 시집간 천재 시인 미소노 사치오. '문학은 부녀자의 영역이 아니다'는 남편의 질투에 찬 모멸을 견디지 못한 그녀는 서른 살의 젊은 나이에 자살하고 만다. 사치오와 사치코 사이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 책의 큰 클라이맥스가 여기에 있으므로 더 이상의 언급은 자제해야겠다. 분명한 것은 짧지만 어떤 강렬함이 나의 마음 한쪽을 움직였고, 이 [마른 잎 천사]로 인하여 전체가 꿰어지고 문학적 작품성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모든 편이 죽음과 영혼(유령)을 다루는데도 그렇게 괴기하거나 무겁지 않다. 오히려 차분하고 잔잔한 여운이 감돈다고 하겠다. 처음 읽을 때의 시답잖은 느낌은 읽어나갈수록 점증적 흡입력으로 몰입하게 되더라. 최고의 미스터리 작품이나 기묘한 이야기라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나름의 읽는 맛이 분명히 있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일곱 개의 단편인지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것 또한 하나의 장점이 되는 소설, 시간이 아깝지 않은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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