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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A 마나가 - comics artists' creative time
MANAGA 편집부 지음 / 거북이북스 / 2014년 10월
평점 :
1. 만화 in 추억
어릴 적 만화 안보고 자란 사람 있을까? 돌이켜보면 참 만화를 즐겼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만화 삼매경에 빠졌다가 고만 지각하여 벌로 운동장 한 가운데 혼자 서있었던 추억. 이 생각을 하자마자 퍼뜩 떠오른 그 시절의 만화 캐릭터는 '땡이'._이거 우습다야~ 머릿속에 아직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이……._ 만화방에 코 묻은 용돈을 더러 밀어 넣기도 하였지만 나에게 큰 행운(?)이 있었으니……. 중학교에서 사귄 친구 집이 서점을 하는 거 아닌가. 놀려가서 돈 안내고 만화 많이 봤다. 이즈음에 기억나는 게 요괴인간과 바벨2세. 로뎀, 로프로스, 포세이돈의 이름은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다._이후 일본판 만화 여러 권 봤지만 그 시절만큼의 즐거움은 아니었다._ 대학 때는 고우영 만화를 모두 찾아봤고, 한땐 방학기 만화에 흠뻑 빠지기도 했다. 한창 성에 눈뜰 때 한희작의 성인만화, 이거 야하지도 않은 것이 참 대단했다._아직도 눈에 선~하다^^_ 그 이후로도 박봉성, 허영만, 하승남의 만화를 즐겨 봤다. 아이가 커가면서 일본 망가도 더러 재미있게 보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단 한명의 만화가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재학을 떠올린다. 이재학 만화의 히트 아이콘 '추공'! <검심검귀>로 부터 시작하는, 가을하늘이 맑고 깊어 그런건지 그 이름만큼이나 허무를 짊어진 추공의 이미지는 잊히지 않고 가슴 깊이 박혀있다._추억은 이제 그만... 흠흠..._
2. MANAGA
세월이 흐르니 만화의 트렌드나 사회적 시각이 많이 바뀌더라. 지적인 어른들이 봐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제법 감상적 난이도를 가진, 소설처럼 완결 형태의 괜찮은 그래픽노블이 많이 등장하더라. 특히 프랑스 앙굴렘 수상작들은 만화에 대한 나의 알량한 통념을 바꾸기에 충분하였다. 그리고 최근에 자주 보게 되는 웹툰! 가끔 이러저러한 보던 내가 웹툰을 다시 본 건 윤태호의 <이끼>였다. 섬뜩한 긴장감이 절로 그림 속으로 빠져들게 하더라. 정말 대단했다. 그러다가 전혀 다른 느낌을 <미생>을 만났다.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사실성이 짜릿하더라. 나는 미생을 통해 ‘윤태호’라는 만화가를 다시 봤다. 직장인의 애환을 이렇게 치밀하게 그려내는 그의 내공에 어찌 감탄하지 않겠는가. 미생이 시리즈 책으로 나왔을 때 꾸준히 리뷰를 올리기도 했으니 은근 팬이 된 셈이다.
얼마 전 <MANAGA>란 책이 눈에 들어왔다. 만화는 즐기지만 만화가에 대해서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최근의 웹툰 인기와 관련하여 컴퓨터와 스마트폰 시대의 만화 창작은 어떻게 하는지 참 궁금하더라. 무크_mook : 잡지와 단행본의 특성을 동시에 갖는 부정기적 출판물_ 형식으로 발행된 이 책은 특이하게 국영문 혼용으로 편집되어 있었다. 발행인의 글을 읽어보니, 우리 만화가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 욕심을 내었다고 한다. 10명의 만화가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그들의 창작 현장과 작업과정을 제법 볼만하게 전해준다.
3. 예술 혼?
웹툰은 보되 그 작가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 윤태호 만화가처럼 최근 지속적으로 히트작을 내거나 하는 경우를 빼고는. 소개되는 10분 중 장태산이나 박소희 같은 분은 얼른 이름을 알아봤지만 다른 분은 아름만으론 잘 모르겠더라.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통해 만화가 '최규석과 백석민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최규석이란 이름은 몰랐어도 네이버 화제의 웹툰 '송곳'은 몇 번 본 적이 있다. 이 시대, 비정규직의 아픔을 잘 이토록 잘 그려내는 만화는 어디에서도 없었는데……. 난 '송곳'을 보면서 사회파 만화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특히나 이번에 개봉되는 영화 '카트'를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웹툰이기에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송곳'이 바로 이 분의 창작물이라네. 그렇구나.
백성민의 '춤'은 전율이 일더라. 단순해 보이는 붓질 몇 번으로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듯 역동적이고 강렬한 춤꾼이 태어나다니……. 이런 경지에 오르기까지 작가의 노력과 땀이 그 얼마였겠는가. 크로키croquis 기법을 활용하여 결이 갈라지듯 빠르게 흐르는 붓선이 춤꾼의 움직임과 균형을 거의 완벽하게 포착하여 이미지화하고 있는데, 작가의 대단한 내공이 느껴지더라._춤의 웅장한 무게감과 깃털 같은 가벼움을 내 붓의 놀림만으로 재해석하고 싶어. 하지만 춤이 가진 ‘본질’은 살아 있어야 해. 그렇게 그리고 싶어._
장태산의 <몽홀>도 굉장하더만. 몽골의 푸른늑대를 보는 순간 김형수 소설 <조드>의 폭풍 같은 서사가 떠오르더라._조드 1권을 읽어보면 글빨이 장난 아니다_ 하여튼 장태산의 만화엔 힘이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4. 에필로그
재주 있는 그림쟁이나 음악쟁이를 보면 너무 부럽다. 그들의 자유로운 영혼과 창조적 힘은 도저히 내가 꿈꾸기 어려운 영역이다. 하긴 사람이 어찌 모든 걸 잘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자조적 합리화로 스스로를 다독거리지만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이 무크지를 보면서 약간의 아쉬움도 있었다. 무엇보다 글꼴 크기가 너무 작아_8포인터인가?_ 보기 너무 불편했다. 왜 이렇게 했을까? 만화쟁이들은 다 눈이 좋은가보다. 여백도 많은데 1포인터 정도만 더 키웠으면 좋았겠다._요즘 내 눈이 침침한가?_ 그리고 국영문 혼용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영어가 필요 없는 사람들에겐 괜한 낭비(?)가 될 뿐이지 않겠는가. 그리고 책소개 글을 보니 "글과 사진 그리고 만화 작품을 감각적으로 구성한 레이아웃은 한 차원 높은 편집 디자인의 수준을 보여준다."라고 되어 있는데, 쉬이 동의하기 어려웠다. 뭐 특별히 잘못된 건 없는데, 어쩐지 대학교지 편집 수준이라고 생각한 건 너무 박한 평가일까? _그래서 홍보부 동료에게 잠시 보여줬더니 사진은 정말 잘 찍었다네, 느낌이 살아있단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잘 만든 책이란다. 음~ 아마와 프로의 인식 차이인가 보다_ 그래도 만화인들에게 이런 무크지가 있어 그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자리 매김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만화 산업을 위해서도 다행한 일이라 생각한다. 어쨌거나 만화쟁이들의 공간을 살풋 들어다본 눈이 즐거운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