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째 매미 사건 3부작
가쿠타 미쓰요 지음, 장점숙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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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7년이라는 긴 시간을 땅 속에서 보낸 매미가 지상에 나와 사는 시간은 단 7일. 그래서 매미는 그토록 서럽게, 짧은 시간동안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귀가 따갑도록 울어댔나 보다. 그런데 8일째가 되어도 죽지 못해 혼자 살아있다면 얼마나 슬플까...소설 말미에서 에리나가 속마음을 비유하는 부분이다. 유괴범(기와코)이 기른 딸(가오루 혹은 에리나)이 유괴범과 헤어진 뒤 18년이 지나서도 그 기억에 사로잡혀 현실을 마주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유괴범인 기와코는 가오루를 키울 수 있었던 시간동안 불안했지만 눈물나도록 행복했다 말한다.


기와코는 직장상사이자 유부남인 다케히로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의 아이를 가졌지만 낳지 못하고 다케히로의 아내인 에쓰코에게 온갖 협박과 모욕의 말을 들어야 한다. 부부에 대한 원망이나 복수심때문은 아니었던 던 것 같다. 단지 그 둘의 아이를 가까이서 한 번 보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꼬물거리는 아이를 보는 순간,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이를 안고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온다. 친한 친구인 야스에의 집에서 며칠을 머물다 도망치고, 거리를 헤매던 중 철거가 코앞인 낯선 할머니의 집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하루 불안과 초조속에 자신의 처지를 위장한 채 숨어들 수 있는 엔젤홈이란 곳에서 2년의 시간을 보내고 정체가 탄로날 위기에 처하자 그 곳을 나와 쇼도시마란 섬으로 마지막 도피를 감행한다. 섬에서 정착한 것도 잠시, 신문에 난 한 장의 사진으로 경찰에게 붙잡히게 되며 가오루와 헤어지게 된다. 
 

기와코와 헤어진 가오루는 원래 이름은 에리나로 18년을 보냈다. 하지만 냉랭한 가족들과 적응할 수 없는 현실에 괴로워하고 자신을 유괴했던 기와코를 증오하며 그녀와 보냈던 시간들은 트라우마가 되어 끈질기게 따라다닌다. 게다가 기와코처럼 자신 역시 유부남을 좋아하게 되며 그의 아이까지 갖게 된다. 자신은 남자의 도움없이 아이를 낳아 키우기로 결심하며 오래전 엔젤홈에서 함께 살았던 지구사의 도움으로 과거의 장소들을 되짚으며 그토록 도망치고 싶어했던 기와코와의 시간을 좀 더 누그러진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기와코와 같은 처지가 되고보니 그녀의 마음을, 그녀의 모성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녀와 헤어진 도노쇼항에 발을 디딘다. 그녀가 내뱉은 마지막 말을 생생히 떠올리며...


노련한 여성작가답게 디테일한 상황과 심리묘사가 공감을 이끌어냈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한 여성이 뜻하지 않은 실수로 유괴범이 되는 과정이 억지스럽지 않았고, 가오루와의 행복이 흔들리는 한 가닥의 밧줄에 의지해야할만큼 절박했다는게 모성애를 지닌 같은 여성으로서 동정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한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흉악범이라고 몰아붙일 수 없을만큼 기와코의 내면이 마치 내것인양 마음을 휘젓기도 했다. 자신을 매미의 허물처럼 빈껍데기나 유령이라고 표현할 때는 참 가엾게 여겨졌다. 하지만 뒤이은 장에서 나오는 에리나의 미래모습에서 그 기억들은 트라우마가 되어 오랫동안 따라다니게 되고 원래의 가족이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와 과거때문에 괴로워하는 그녀를 보자 그제야 죄는 죄일 뿐이라고 냉정히 생각하기도 했다. 

  
기와코처럼 아빠없이 키워야할 아이를 임신하게 된 에리나는 기와코도 엄마이고 싶어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혼자 살아남은 8일째매미가 결코 슬프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지구사의 말에 위안을 얻는다. 그리고 에리나는 기와코를 용서해던 것 같다. 나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더군다나 아이는 가져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기와코의 심정이, 가오루를 향한 애정이 진심이었을거라고 굳게 믿게 되었으며 그렇게 생각하자 그녀가 가오루와 함께 조금만 더 일상의 평범한 행복을 맛보았으면하고 바라게 되었다. 그러나 에리나가 가족들에게 느꼈을 소외감과 타인들의 섣부른 관심에 현실에 적응하지 못해 겉돌 수 밖에 없었던 괴로움을 알게 된 후에는 기와코의 행동이 어리석었다는 걸 몇번씩 되새겨야 했다. 언뜻 피해자와 가해자의 시선인 듯했지만 소설을 읽으며 그녀들의 속사정을 알게될수록 그 의식은 옅어졌다. 둘의 시선이 겹치는 부분에서 나 역시 죄의 본질을 떠나 관대한 모성본능의 힘을 조금은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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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만화책 - 캐릭터로 읽는 20세기 한국만화사, 한국만화 100년 특별기획
황민호 지음 / 가람기획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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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만화책이라... '내 인생의' 라는 단서가 붙으니 사뭇 거창해지는데 만화책이라는 부분에서 마음이 살짝 가벼워진다. 그리고 어떤 책이 있었나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아무래도 성인이 된 지금보다는 학창시절에 읽은 만화책의 양이 훨씬 많았고, 내 인생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미친 만화책은 그 시절에 읽은 것들이었다. 내게는 감수성 예민한 여고시절 늘 끼고 살았던 순정만화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이 책에는 순정만화에 대한 부분은 전혀 없었다. 한국만화 100년 특별기획으로 제작된 책이라 90년대에는 한번쯤 언급할 줄 알았는데 없다보니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가만보니 저자는 [소년챔프], [영챔프], [주니어챔프]등의 소년잡지의 편집장을 지낸 분이셨다. 자신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 만화책을 기준으로 시대별 만화를 정리하다보니 순정만화는 당연히 제외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보니 1990년대까지 거슬러올라왔지만 TV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둘리나 독고탁, 까치의 캐릭터말고는 딱히 공감되는 부분이 별로 없기도 했다. 그러나 애정이 묻어난 캐릭터위주의 설명과 해석은 전혀 접하지 못한 만화였지만 언젠가 보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친숙하게 만들어주었던 것 같다. 우리네 이웃처럼 익숙하고, 잘났지만 밉지 않고, 엉뚱한 행동으로 웃음을 주는 책 속의 여러 캐릭터들은 시대에 맞게 변화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세상은 고바우가 그저 일상의 틀에만 안주할 수 있는 태평성대가 아니었다. 정치는 혼란했고 사회는 어지러웠다. 민중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잠든 의식을 깨워줄 시대의 증인으로서의 열활이 필요했고 더구나 정론지에서 만화라는 독특한 표현수단을 갖고 있다는 조건들이 고바우의 변신을 부채질했다.    -p.39
 

가장 재미있는 캐릭터로는 1940년대 찰리채플린같은 면모를 보인 김용환의 코주부와 신문에 연재 후 50주년동안 사랑받아온 김성환의 고바우, 문명사회의 병폐를 지적하고 성을 생활양식으로서 담론화시킨 박수동의 고인돌, 공룡캐릭터하면 빼놓을 수 없는 둘리와 90년대 누이의 초상을 그렸다는 김동화의 이화는 두고 두고 기억에 남는 캐릭터였다. 특히 박수동의 고인돌하면 떠오르는 아이스크림 스크**와 CF음악은 만화를 보지 못했어도 고인돌을 기억에 오래 각인시키고 친숙하게 만들어주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지만, 지면에서 튀어나와 살아움직이게 만든 영상의 힘보다 생생한 캐릭터가 갖는 매력에 있는 듯 했다. 책의 지면을 통해 할애된 4컷이나 16컷만화는 캐릭터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고 더 보고 싶다는 생각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을 담고 있는 스토리와 서민들의 정서를 대변한 캐릭터,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만화라는 매체를 통해 오랜 시간동안 사랑받은만큼 지금의 만화가들 역시 책임과 소명의식을 갖고 좀 더 좋은 만화를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책은 책이되 만화책이라면 부정적이고 불건전한 오락거리쯤으로 여겨왔던 사람들이 이 책을 본다면 만화에 대한 선입견이 조금은 옅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만화와 캐릭터는 허황되고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다. 진정 힘들고 우울했던 시대를 함께 살아갔던 평범한 샐러리맨(김수정의 고도리)이거나 아이들의 순수함을 공감한 명랑만화 캐릭터들(땡이, 요철이, 꺼벙이), 그리고 성인만화의 영역을 넓힌 한희작의 여자와 변금련등의 만화는 동시대의 현실성을 그대로 반영했기에 시간이 지나 다시 읽고 곱씹을수록 진한 맛을 더해가는 것이다. 

 
뒤돌아서면 씁쓸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지언정 만화를 읽는 동안만큼은 시름을 잊고 행복해질 수 있는 것. 그것이 만화가 주는 긍정적 효과라는 것을 일깨우는 책이었다. 그리고 TV나 인터넷의 보급으로 만화책을 보는 이들이 많이 줄었지만, 다시 100년이 흐른 뒤에도 지금의 시대상을 비판하고 풍자할 수 있는 만화와 한국인만의 정서를 담은 다양한 캐릭터들이 나와 이 책에서처럼 회자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보다 더 풍요로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만화를 찾아 읽는 이유는 현실에서 얻지 못한 삶의 위안을 만화를 통해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중압감을 덜거나 행복해지고 싶고 위로받고 싶기 때문이다.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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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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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눈동자에 등푸른 생선 고등어, 뇌를 활성화시켜주는 DHA가 많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생선, 서민의 생선이라 우리 식탁에 자주 오르는 고등어를 금한다니? 제목부터 발칙하다 생각했다. 아니면 어떤 깊은 속사정이 있는 것일까?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친다는 부제에 나는 여러 가족의 이야기를 모은 책인건가 짐작하기도 했다. 요즘 한창 대두되고 있는 대안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라면 관심있는 주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의 저자는 50대 우리 엄마와 같은 또래의 여자분이었다. 남들보다 빨리 행복의 노하우를 가족안에서 깨우친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이 나이에 자전적 이야기라면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믿어의심치 않기 때문에 모든 귀결을 자랑으로 일관되게 점철한 것이 아닐까 거북한 것도 사실이었는데, 읽다보니 열린 자세와 긍정적 사고의 또렷함은 그런 거부감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우선 엄마인 그녀는 현재 독일에서 거주하고 있다. 꼬장꼬장하고 패기없지만 누구보다 가족과의 시간을 위해 승진까지 마다한 이상적인 독일 남편과 뭐든 잘하는 전형적인 엄친아 아들, 세 가족사이에서 자신만이 유일한 정상인이라고 우기는 열정적인 딸, 세 가족과 함께 독일의 뮌헨에서 행복을 짓고 있는 건축가이다. 평범한 소시민적 가정이라고 그녀는 생각할지 모르지만, 1980년대 결코 흔하지만은 않았던 외국인과의 국제결혼에 독일에서 거주하며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던 개방적인 가치관의 소유자인 그녀였기에 가족들 또한 심상치 않게 느껴졌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어찌 객관적이 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녀는 서두에서 못박는다. 내 일상의 소식을 전해주는 일기와 같은 글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정돈된 글을 쓴다고 말이다. 뻔한 자기자랑일 것이라는 오해를 버리자 인생 최대의 화두인 '자유'와 '환경'을 부르짖는 그녀의 목소리에 솔직히 토를 달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진다.
 

특히 그녀와 가족들이 환경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 중에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정작 실천으로 옮기지 못한 일들이 허다하다. 교통수단을 자전거로 사용하는 것과 과일씻는 물을 버리지 않고 화분에 주는 일, 물을 아끼기 위해 샤워기에 절수장치를 하는 것등 가족이 행하는 작고 사소한 실천은 내가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만든다. 단지 환경과 절약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미래를 걱정하는 안목과 지구 반대편에서 온난화로 막대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을 배려한 이타심이 작용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녀의 실천은 본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환경보호도 마찬가지이다. ....(중략) 조용히 실천하는 나의 일상 역시 값진 일이라고 믿는다. 환경보호 단체의 행동 대원들이 목숨을 걸고 설득하려는 대상이 바로 '나'이며, '나'의 작은 행동 하나를 바꾸는 것이 바로 세상을 바꾸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간단한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p.70
 


또한 그녀의 자유방임적 교육철학과 독일식 창조적 교육방식은 조기유학과 사교육으로 획일적이고 정형화된 코스를 밟으려는 우리나라 엄마들의 그릇된 교육열을 마음껏 비웃어주는 듯 했다. 분명 독일이라는 특수한 교육환경때문이라고 반박하고 싶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 듯 올바른 교육관과 가치관을 가진 부모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식들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밑바탕 되었기때문이라는 사실을 엄마인 저자는 직접 체험으로 피력하고 있다. 
 

사랑을 해본 사람은 열정의 불가사의한 힘을 알 것이다. 열정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 열정이 저절로 솟도록 용기를 꺾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이 아이들의 진정한 힘을 기르는 교육이 아닐까?    -p.133 


무엇보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장은 '공존을 위한 예의'라는 장이다. 독일에 살고 있는 저자이다 보니 '나치'에 대한 언급을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치로 인해 학대당하고 고통받은 유태인들에 대한 보상과 나치세력 척결등 독일내에서 역사를 바로 잡아가려는 노력에 저자는 박수와 날카로운 시선을 동시에 던진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일본의 역사왜곡과 역사청산의지에 반기를 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역사청산에 부정적 입장을 표명하고 일본의 식민정치를 국제법과 한국인들이 동의했다는 왜곡된 내용으로 알고 있는 일본 기자를 향해 야무지게 반박하고 이해시킬 수 있는 그녀의 지성인다운 노력은 존경스러웠다. 거센 물살을 잔잔하게 만들어줄 조약돌이 많아져야 한다는 저자의 비유에 무관심으로 모른체하려고만 했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저자 자신이 외국인으로서 독일에서 겪는 차별을 통해 독일사회 전체를 냉철하게 바라보는 시각도 새로웠다. 개인의 사소한 일상을 전체로 확대시켜 요목조목 구체적으로 파고드는 부분들은 사회구성원으로서 개인의 힘이 얼마나 큰지 새삼 깨닫게 만들어주는 좋은 책이었다.  


나는 모든 사회에는 주류가 있고 지성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주류는 '주된 흐름'이란 말 그대로 전통을 이어가며 어제와 다름없이, 이웃과 다름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보편적인 다수이다. 그리고 지성인은 주류의 방향을 잡아주는 소수이다. 지성인은 개인의 양식에 따라 판단하고 이를 용기 있게 표현해 주류에게 방향을 제시한다. 정치권은 주류의 시녀일 따름이고, 주류의 물길을 조정하는 것은 지성인이다.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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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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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이 후 얼마나 고대하던 그의 장편소설이던가. 사놓은지 2주가 지나도록 아까워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끼던 책을 부모님께 가는 기차안에서 설레하며 첫장을 넘긴 후, 잠깐씩 몸을 뒤척일 때를 빼놓곤 5시간을 내리 읽으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역시 하루키라는 감탄을 속으로 연발하며 뒤이은 전개를 혼자 상상해보는 것으로 짧은 추석을 보냈다. 무게때문에 1권만 가져왔다는 것이 그렇게 안타까울 수 없었다. 그의 책을 펼치기 전에는 어떤 것도 감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마지막장을 덮을 때까지도 그가 곳곳에 장치해놓은 수많은 의미를 해석하느라 머리속을 비워야 했다.


1권을 읽는 내내 충격적인 진실과 전개에 2권에서 도대체 어떻게 마무리를 지을지, 중심을 어떻게 일으켜세울지 궁금했는데 그가 의도한 것은 사랑이었구나 하고 뒤늦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됐다. 그도 그럴것이 1권을 읽으며 너무 많은 색깔을 입혀 다의적 해석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명 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교묘하게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든다. 책의 첫머리에도 등장하며, 선구의 리더가 아오마메에게 말했던 재즈곡 [it's a only paper moon]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꾸며낸 것 네가 나를 믿어준다며 모두 다 진짜가 될 거야"라는 가사는 주인공들이 현실에서 어긋나 들어가버린 1Q84년의 세계로 독자가 빠져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주술적인 힘까지 발휘한다. 이 책의 전체평을 작가자신이 후카에리의 <공기번데기>를 평하던 덴고의 입을 통해 간접적으로 들려주고 있어 더 흥미롭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적어도 사람을 강하게 끌어들이는 데가 있어요.
전체적인 줄거리는 판타지적인데 세부 묘사는 유난히 리얼합니다. 그 균형이 아주 좋아요. 독창성이나 필연성이라는 표현이 적절할지 어떨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작품은 그런 평가를 할 수준도 못 된다고 한다면 뭐, 그것도 맞는 얘기일 거에요. 하지만 여기저기 걸리면서도 어떻든 다 읽고 나면 그 뒤에 찡한 여운이 남아요. 그게 어쩐지 불편하고,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느낌이라고 해도 말이죠.    -p.38


그래, 1984년도, 1Q84년도 근본적으로는 같은 구성요소를 갖고 있어. 자네가 그 세계르 믿지 않는다면, 또한 그곳에 사랑이 없다면 모든 건 가짜에 지나지 않아. 어느 세계에 있건, 어떠한 세계에 있건, 가설과 사실을 가르는 선은 대개의 경우 눈에는 보이지 않아. 그 선은 마음의 눈으로 보는 수밖에 없어."  -p.323


7년만에 발표된 그의 신작 제목이 뒤늦게 1Q84라는 걸 알고(처음엔 iQ84라고 짐작해버렸다) 조지 오웰의 1984를 연관짓지 않을 수 없었다. 조지 오웰의 1984를 오마주로 그 세계를 일부 옮겨오면서 자신의 주특기인 기묘한 판타지를 엮는 그의 솜씨는 탁월했다. 공기번데기에 매료된 책 속의 덴고와 아오마메처럼 나 역시 그가 만들어낸 1Q84년의 시간속에 하염없이 끌려가는 걸 바라봐야 했다. 또한 오래전부터 '상실'이라는 주제로 설득력을 다져온 작가이고 보니 글을 읽는 내내 느끼는 공허함 대신 삶에 대한 강한 성찰과 그것을 사랑으로 메우려는 헌신적인 노력은 비장하게 다가온다. 2권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둘의 존재감이 어릴적 안고 있는 트라우마로 외로워했던 자신들을 지탱해준 힘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운명적 사랑임을 역설하는 부분은 참으로 절묘하다. 누구에게나 이런 첫사랑의 생생한 기억이 가슴속 밑바닥에 침잠해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의 핵심에 있는 것은 무無가 아니다. 황폐하고 메마른 사막도 아니다. 나라는 존재의 중심에 있는 것은 사랑이다. 나는 변함없이 덴고라는 열 살 소년을 그리워한다. 그의 강함과 총명함과 다정함을 그리워한다. 그는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육체는 멸하지 않고, 서로 나누지 않는 약속은 깨지는 일이 없다.   -p.133 


아오마메에게 손을 잡혔던 수십 초 동안 덴고는 무척 많은 것을 목격했고, 마치 카메라처럼 정확하게 그 영상을 망막에 새겨두었다. 그것은 그가 고통에 찬 십대를 살아가는 데 밑받침이 되어준 정경의 하나였다. 그 정경은 항상 소녀의 강한 손가락 감촉과 함께였다. 그녀의 오른손은 고통에 허덕이며 어른이 되어가는 덴고에게 항상 변함없이 용기를 불어넣었다. 괜찮아, 너한테는 내가 있어. 그 손은 그렇게 말했다.
너는 고독하지 않아.   -p.457


그리고 주제를 '사랑'이라는 한가지로 귀결시켜버리기엔 긴 스토리안에 작가가 찔러본 뜨거운 감자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확대해석이라도 나는 이 문제를 현시점의 사회적 이슈들과 연관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남자들의 폭력앞에 무력하게 죽어간 딸과 친구를 잃은 상처로 살인자가 되는 아오마메와 노부인의 완벽한 광기는 과연 정당한 것인가 고민하게 만들었고, 자연농법 단체에서 종교법인으로 거듭난 '선구'의 리더가 행한 다의적 교접이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딸을 비롯해 미소녀들과 관계를 맺은 부분은 그릇된 종교관으로 여러 여자를 취한 어느 사이비 종교의 교주를 떠올리게 만들었다.요즘 아동성폭력으로 뒤숭숭한 사회분위기탓인지 후카에리와 쓰바사의 일이 결코 책 속의 가상현실이라고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일이 되었고, 작가가 들이댄 종교적, 도덕적 이중잣대가 혼란스럽게 여겨졌다. 어찌되었든 작가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그보다 더 원대한 두 남녀의 사랑이라도 과정에 담긴 주인공들의 상처와 상실을 얘기하고 싶었던 걸까. 머리속이 좀 복잡해진다.


그 이후로 아오마메는 노부인과 비밀을 서로 나누고 사명을, 그리고 광기와도 비슷한 어떤 것을 함께하게 되었다. 아니, 그것은 완전한 광기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경계가 어디인지 아오마메는 판별할 수 없었다.    -p.468
   


책장을 덮은 후에도 의문이 긴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다. 뭔가 결정적인 것을 남겨두고 끝나버린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나마 분명한 것은 달의 존재감처럼 절대적이고 따스한 온기를 품은 책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공유했던 1Q84년의 시간에 두 개의 달이 존재했다는 묘사는 달이라는 천체자체가 사라져버린 이외수의 <장외인간>이란 책이 떠오르게 했다. 새삼 달의 상징성에 주목한 두 작가의 마음이 이렇게 통한 걸까 싶었다. 길지만 짧게 느껴진 1Q84를 읽는 동안 하늘을 올려다보며 일그러졌지만 또렷한 모양의 작은 달이 어딘가에서 지상을 비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상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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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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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장에 적힌 '작가의 말'을 보며 아!하고 무릎을 쳤다. 6월민주항쟁은 작가의 나이 겨우 10살에 일어난 민주화시위였다. 어떻게 그 당시를 생생히 의식화하며 떠올릴 수 있느냐하는 것이 나의 의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로부터 제안받은 일이었다는 것이다. 거절하려 했지만 그럼에도 작업을 하기로 했던건 전국의 중고등학교에 배포되기 때문이었단다. 다분히 계몽의 성격이 짙었지만 그는 그 작업을 통해 교과서에서는 만날 수 없는, 민주항쟁을 통해 피흘리며 죽어간 평범한 시민들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나 역시 6월민주화항쟁에 대해 더 알아보게 되었다. 1987년 전두환 정권의 독재정치타도와 장기집권강화에 반기를 든 전국민적민주항쟁이었다. 그 과정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이 잡혀가고 고문으로 죽어갔다. 이 책에도 영호라는 대학생이 등장한다. 그도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느새 선후배들의 활동에 가세하게 되고 누구보다 강경해지며 결국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등장한다. 빨갱이로 몰려 무고하게 죽어간 자신의 어머니때문에 아들이 그런 데모를 했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남동생과 여동생을 감옥에 보냈다는 한 여인과의 동행을 통해 아들의 생각이 올바랐음을 알게 된다. 자신 역시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감옥의 높은 담장을 넘기도 하며 아들의 생각을 지지해주는 한사람이 된다.


1987년 내 나이 겨우 7살에 일어난 일이 작가처럼 강원도 산골에 살고 있던 나와 가족들, 주변사람들에게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일이었으니 내게도 먼나라 일처럼 느껴졌다. 지금까지 교과서나 근현대 소설에서 한번씩 보았을 뿐이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민주항쟁으로 죽어간 수많은 젊은이와 일반시민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민주주의를 지켜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밟으면 일어서고 더 질겨지는 산길의 질경이처럼 그들의 피,땀으로 우리가 지금의 민주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니 우리는 얼마나 축복받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숙연해지게 만드는 책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보며 최근에 읽은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 책에도 특별한 어머니가 등장한다. 공장노동자로 근근히 하루를 살아가는 어머니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사회주의 혁명에 몰두하면서 자신 역시 그 투쟁에 몸담게 된다는 줄거리이다. 이 책과 상당히 흡사한 전개다. 다만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서로 다른 이념이지만 무조건적으로 아들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배움을 통해 결코 아들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어머니들은 변화를 겪는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야기였다. 세상을 바꾸려는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는다는 극 중 대사를 통해 정당한 분노란 이런 것이구나 알게 되고 보니 요즘 우리가 얼마나 분노를 삭히며 체념하고 있는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할 수 없는 시대, 그리고 옳은 쪽에 서지 않는 태도,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자세, 그 분들이 이어준 민주시대를 우리는 제대로 살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했다. 
 

"영호학생"

"그렇게 슬퍼하는 것도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슬퍼하는 게 아니라 두려워하는 겁니다"

"뭐가 두렵단 건가?"

"끝이 없을 것 같아서요"

"처음 그 사람들 만났을 때는 그 열정에 반해서, 그런 사람들이라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조직이 깨지고 사람들이 잡혀가고 죽어갈 때도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젠 모르겠습니다. 정말 이길 수 있는 건지...... 끝이 있긴 있는 건지."  

"물은 100도씨가 되면 끓는다네. 그래서 온도계를 넣어보면 불을 얼마나 더 때야 할지 언제쯤 끓을지 알 수가 있지. 하지만 사람의 온도는 잴 수가 없어. 지금 몇 도인지 얼마나 더 불을 때야 하는지. 그래서 불을 때다가 지레 겁을 먹기도 하고 원래 안 끓는 거야하며 포기를 하지. 하지만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네"  "그렇다 해도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남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어떻게 수십년을 버텨내셨습니까?"

"나라고 왜 흔들리지 않았겠나. 다만 그럴 때마다 지금은 99도다...... 그렇게 믿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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