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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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눈동자에 등푸른 생선 고등어, 뇌를 활성화시켜주는 DHA가 많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생선, 서민의 생선이라 우리 식탁에 자주 오르는 고등어를 금한다니? 제목부터 발칙하다 생각했다. 아니면 어떤 깊은 속사정이 있는 것일까?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친다는 부제에 나는 여러 가족의 이야기를 모은 책인건가 짐작하기도 했다. 요즘 한창 대두되고 있는 대안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라면 관심있는 주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의 저자는 50대 우리 엄마와 같은 또래의 여자분이었다. 남들보다 빨리 행복의 노하우를 가족안에서 깨우친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이 나이에 자전적 이야기라면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믿어의심치 않기 때문에 모든 귀결을 자랑으로 일관되게 점철한 것이 아닐까 거북한 것도 사실이었는데, 읽다보니 열린 자세와 긍정적 사고의 또렷함은 그런 거부감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우선 엄마인 그녀는 현재 독일에서 거주하고 있다. 꼬장꼬장하고 패기없지만 누구보다 가족과의 시간을 위해 승진까지 마다한 이상적인 독일 남편과 뭐든 잘하는 전형적인 엄친아 아들, 세 가족사이에서 자신만이 유일한 정상인이라고 우기는 열정적인 딸, 세 가족과 함께 독일의 뮌헨에서 행복을 짓고 있는 건축가이다. 평범한 소시민적 가정이라고 그녀는 생각할지 모르지만, 1980년대 결코 흔하지만은 않았던 외국인과의 국제결혼에 독일에서 거주하며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던 개방적인 가치관의 소유자인 그녀였기에 가족들 또한 심상치 않게 느껴졌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어찌 객관적이 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녀는 서두에서 못박는다. 내 일상의 소식을 전해주는 일기와 같은 글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정돈된 글을 쓴다고 말이다. 뻔한 자기자랑일 것이라는 오해를 버리자 인생 최대의 화두인 '자유'와 '환경'을 부르짖는 그녀의 목소리에 솔직히 토를 달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진다.
 

특히 그녀와 가족들이 환경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 중에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정작 실천으로 옮기지 못한 일들이 허다하다. 교통수단을 자전거로 사용하는 것과 과일씻는 물을 버리지 않고 화분에 주는 일, 물을 아끼기 위해 샤워기에 절수장치를 하는 것등 가족이 행하는 작고 사소한 실천은 내가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만든다. 단지 환경과 절약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미래를 걱정하는 안목과 지구 반대편에서 온난화로 막대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을 배려한 이타심이 작용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녀의 실천은 본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환경보호도 마찬가지이다. ....(중략) 조용히 실천하는 나의 일상 역시 값진 일이라고 믿는다. 환경보호 단체의 행동 대원들이 목숨을 걸고 설득하려는 대상이 바로 '나'이며, '나'의 작은 행동 하나를 바꾸는 것이 바로 세상을 바꾸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간단한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p.70
 


또한 그녀의 자유방임적 교육철학과 독일식 창조적 교육방식은 조기유학과 사교육으로 획일적이고 정형화된 코스를 밟으려는 우리나라 엄마들의 그릇된 교육열을 마음껏 비웃어주는 듯 했다. 분명 독일이라는 특수한 교육환경때문이라고 반박하고 싶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 듯 올바른 교육관과 가치관을 가진 부모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식들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밑바탕 되었기때문이라는 사실을 엄마인 저자는 직접 체험으로 피력하고 있다. 
 

사랑을 해본 사람은 열정의 불가사의한 힘을 알 것이다. 열정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 열정이 저절로 솟도록 용기를 꺾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이 아이들의 진정한 힘을 기르는 교육이 아닐까?    -p.133 


무엇보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장은 '공존을 위한 예의'라는 장이다. 독일에 살고 있는 저자이다 보니 '나치'에 대한 언급을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치로 인해 학대당하고 고통받은 유태인들에 대한 보상과 나치세력 척결등 독일내에서 역사를 바로 잡아가려는 노력에 저자는 박수와 날카로운 시선을 동시에 던진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일본의 역사왜곡과 역사청산의지에 반기를 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역사청산에 부정적 입장을 표명하고 일본의 식민정치를 국제법과 한국인들이 동의했다는 왜곡된 내용으로 알고 있는 일본 기자를 향해 야무지게 반박하고 이해시킬 수 있는 그녀의 지성인다운 노력은 존경스러웠다. 거센 물살을 잔잔하게 만들어줄 조약돌이 많아져야 한다는 저자의 비유에 무관심으로 모른체하려고만 했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저자 자신이 외국인으로서 독일에서 겪는 차별을 통해 독일사회 전체를 냉철하게 바라보는 시각도 새로웠다. 개인의 사소한 일상을 전체로 확대시켜 요목조목 구체적으로 파고드는 부분들은 사회구성원으로서 개인의 힘이 얼마나 큰지 새삼 깨닫게 만들어주는 좋은 책이었다.  


나는 모든 사회에는 주류가 있고 지성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주류는 '주된 흐름'이란 말 그대로 전통을 이어가며 어제와 다름없이, 이웃과 다름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보편적인 다수이다. 그리고 지성인은 주류의 방향을 잡아주는 소수이다. 지성인은 개인의 양식에 따라 판단하고 이를 용기 있게 표현해 주류에게 방향을 제시한다. 정치권은 주류의 시녀일 따름이고, 주류의 물길을 조정하는 것은 지성인이다.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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