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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째 매미 ㅣ 사건 3부작
가쿠타 미쓰요 지음, 장점숙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7년이라는 긴 시간을 땅 속에서 보낸 매미가 지상에 나와 사는 시간은 단 7일. 그래서 매미는 그토록 서럽게, 짧은 시간동안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귀가 따갑도록 울어댔나 보다. 그런데 8일째가 되어도 죽지 못해 혼자 살아있다면 얼마나 슬플까...소설 말미에서 에리나가 속마음을 비유하는 부분이다. 유괴범(기와코)이 기른 딸(가오루 혹은 에리나)이 유괴범과 헤어진 뒤 18년이 지나서도 그 기억에 사로잡혀 현실을 마주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유괴범인 기와코는 가오루를 키울 수 있었던 시간동안 불안했지만 눈물나도록 행복했다 말한다.
기와코는 직장상사이자 유부남인 다케히로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의 아이를 가졌지만 낳지 못하고 다케히로의 아내인 에쓰코에게 온갖 협박과 모욕의 말을 들어야 한다. 부부에 대한 원망이나 복수심때문은 아니었던 던 것 같다. 단지 그 둘의 아이를 가까이서 한 번 보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꼬물거리는 아이를 보는 순간,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이를 안고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온다. 친한 친구인 야스에의 집에서 며칠을 머물다 도망치고, 거리를 헤매던 중 철거가 코앞인 낯선 할머니의 집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하루 불안과 초조속에 자신의 처지를 위장한 채 숨어들 수 있는 엔젤홈이란 곳에서 2년의 시간을 보내고 정체가 탄로날 위기에 처하자 그 곳을 나와 쇼도시마란 섬으로 마지막 도피를 감행한다. 섬에서 정착한 것도 잠시, 신문에 난 한 장의 사진으로 경찰에게 붙잡히게 되며 가오루와 헤어지게 된다.
기와코와 헤어진 가오루는 원래 이름은 에리나로 18년을 보냈다. 하지만 냉랭한 가족들과 적응할 수 없는 현실에 괴로워하고 자신을 유괴했던 기와코를 증오하며 그녀와 보냈던 시간들은 트라우마가 되어 끈질기게 따라다닌다. 게다가 기와코처럼 자신 역시 유부남을 좋아하게 되며 그의 아이까지 갖게 된다. 자신은 남자의 도움없이 아이를 낳아 키우기로 결심하며 오래전 엔젤홈에서 함께 살았던 지구사의 도움으로 과거의 장소들을 되짚으며 그토록 도망치고 싶어했던 기와코와의 시간을 좀 더 누그러진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기와코와 같은 처지가 되고보니 그녀의 마음을, 그녀의 모성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녀와 헤어진 도노쇼항에 발을 디딘다. 그녀가 내뱉은 마지막 말을 생생히 떠올리며...
노련한 여성작가답게 디테일한 상황과 심리묘사가 공감을 이끌어냈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한 여성이 뜻하지 않은 실수로 유괴범이 되는 과정이 억지스럽지 않았고, 가오루와의 행복이 흔들리는 한 가닥의 밧줄에 의지해야할만큼 절박했다는게 모성애를 지닌 같은 여성으로서 동정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한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흉악범이라고 몰아붙일 수 없을만큼 기와코의 내면이 마치 내것인양 마음을 휘젓기도 했다. 자신을 매미의 허물처럼 빈껍데기나 유령이라고 표현할 때는 참 가엾게 여겨졌다. 하지만 뒤이은 장에서 나오는 에리나의 미래모습에서 그 기억들은 트라우마가 되어 오랫동안 따라다니게 되고 원래의 가족이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와 과거때문에 괴로워하는 그녀를 보자 그제야 죄는 죄일 뿐이라고 냉정히 생각하기도 했다.
기와코처럼 아빠없이 키워야할 아이를 임신하게 된 에리나는 기와코도 엄마이고 싶어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혼자 살아남은 8일째매미가 결코 슬프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지구사의 말에 위안을 얻는다. 그리고 에리나는 기와코를 용서해던 것 같다. 나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더군다나 아이는 가져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기와코의 심정이, 가오루를 향한 애정이 진심이었을거라고 굳게 믿게 되었으며 그렇게 생각하자 그녀가 가오루와 함께 조금만 더 일상의 평범한 행복을 맛보았으면하고 바라게 되었다. 그러나 에리나가 가족들에게 느꼈을 소외감과 타인들의 섣부른 관심에 현실에 적응하지 못해 겉돌 수 밖에 없었던 괴로움을 알게 된 후에는 기와코의 행동이 어리석었다는 걸 몇번씩 되새겨야 했다. 언뜻 피해자와 가해자의 시선인 듯했지만 소설을 읽으며 그녀들의 속사정을 알게될수록 그 의식은 옅어졌다. 둘의 시선이 겹치는 부분에서 나 역시 죄의 본질을 떠나 관대한 모성본능의 힘을 조금은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