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만화책 - 캐릭터로 읽는 20세기 한국만화사, 한국만화 100년 특별기획
황민호 지음 / 가람기획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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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만화책이라... '내 인생의' 라는 단서가 붙으니 사뭇 거창해지는데 만화책이라는 부분에서 마음이 살짝 가벼워진다. 그리고 어떤 책이 있었나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아무래도 성인이 된 지금보다는 학창시절에 읽은 만화책의 양이 훨씬 많았고, 내 인생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미친 만화책은 그 시절에 읽은 것들이었다. 내게는 감수성 예민한 여고시절 늘 끼고 살았던 순정만화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이 책에는 순정만화에 대한 부분은 전혀 없었다. 한국만화 100년 특별기획으로 제작된 책이라 90년대에는 한번쯤 언급할 줄 알았는데 없다보니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가만보니 저자는 [소년챔프], [영챔프], [주니어챔프]등의 소년잡지의 편집장을 지낸 분이셨다. 자신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 만화책을 기준으로 시대별 만화를 정리하다보니 순정만화는 당연히 제외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보니 1990년대까지 거슬러올라왔지만 TV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둘리나 독고탁, 까치의 캐릭터말고는 딱히 공감되는 부분이 별로 없기도 했다. 그러나 애정이 묻어난 캐릭터위주의 설명과 해석은 전혀 접하지 못한 만화였지만 언젠가 보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친숙하게 만들어주었던 것 같다. 우리네 이웃처럼 익숙하고, 잘났지만 밉지 않고, 엉뚱한 행동으로 웃음을 주는 책 속의 여러 캐릭터들은 시대에 맞게 변화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세상은 고바우가 그저 일상의 틀에만 안주할 수 있는 태평성대가 아니었다. 정치는 혼란했고 사회는 어지러웠다. 민중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잠든 의식을 깨워줄 시대의 증인으로서의 열활이 필요했고 더구나 정론지에서 만화라는 독특한 표현수단을 갖고 있다는 조건들이 고바우의 변신을 부채질했다.    -p.39
 

가장 재미있는 캐릭터로는 1940년대 찰리채플린같은 면모를 보인 김용환의 코주부와 신문에 연재 후 50주년동안 사랑받아온 김성환의 고바우, 문명사회의 병폐를 지적하고 성을 생활양식으로서 담론화시킨 박수동의 고인돌, 공룡캐릭터하면 빼놓을 수 없는 둘리와 90년대 누이의 초상을 그렸다는 김동화의 이화는 두고 두고 기억에 남는 캐릭터였다. 특히 박수동의 고인돌하면 떠오르는 아이스크림 스크**와 CF음악은 만화를 보지 못했어도 고인돌을 기억에 오래 각인시키고 친숙하게 만들어주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지만, 지면에서 튀어나와 살아움직이게 만든 영상의 힘보다 생생한 캐릭터가 갖는 매력에 있는 듯 했다. 책의 지면을 통해 할애된 4컷이나 16컷만화는 캐릭터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고 더 보고 싶다는 생각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을 담고 있는 스토리와 서민들의 정서를 대변한 캐릭터,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만화라는 매체를 통해 오랜 시간동안 사랑받은만큼 지금의 만화가들 역시 책임과 소명의식을 갖고 좀 더 좋은 만화를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책은 책이되 만화책이라면 부정적이고 불건전한 오락거리쯤으로 여겨왔던 사람들이 이 책을 본다면 만화에 대한 선입견이 조금은 옅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만화와 캐릭터는 허황되고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다. 진정 힘들고 우울했던 시대를 함께 살아갔던 평범한 샐러리맨(김수정의 고도리)이거나 아이들의 순수함을 공감한 명랑만화 캐릭터들(땡이, 요철이, 꺼벙이), 그리고 성인만화의 영역을 넓힌 한희작의 여자와 변금련등의 만화는 동시대의 현실성을 그대로 반영했기에 시간이 지나 다시 읽고 곱씹을수록 진한 맛을 더해가는 것이다. 

 
뒤돌아서면 씁쓸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지언정 만화를 읽는 동안만큼은 시름을 잊고 행복해질 수 있는 것. 그것이 만화가 주는 긍정적 효과라는 것을 일깨우는 책이었다. 그리고 TV나 인터넷의 보급으로 만화책을 보는 이들이 많이 줄었지만, 다시 100년이 흐른 뒤에도 지금의 시대상을 비판하고 풍자할 수 있는 만화와 한국인만의 정서를 담은 다양한 캐릭터들이 나와 이 책에서처럼 회자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보다 더 풍요로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만화를 찾아 읽는 이유는 현실에서 얻지 못한 삶의 위안을 만화를 통해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중압감을 덜거나 행복해지고 싶고 위로받고 싶기 때문이다.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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