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로비오틱 밥상 - 자연을 통째로 먹는
이와사키 유카 지음 / 비타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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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중용(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고등학교 윤리시간에 배운 철학의 한 개념이다. 당시 그에 관한 수업을 들으며 매우 선명한 인상을 받은 기억이 난다. 그런 중용은 마크로비오틱 전체를 아우르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마크로비오틱의 4대원칙이라고 하는 신토불이나 일물전체, 자연생활, 음양조화는 이런 중용을 실천함으로 몸이 음과 양,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잡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상차림이었다. 현재 우리가 건강을 위해 외치는 친환경이나 유기농보다 먼저 선행되야할 식생활 개선프로젝트였다. 재료들을 통째로 먹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 단순한 논리안에 심오한 철학적 개념이 녹아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나의 식생활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책이었다. 

 
마크로비오틱에서는 특별히 먹으면 안 된다고 제한하는 음식은 없다. 다만 고기나 생선 같은 동물성 식품은 밸런스를 맞춰서 먹고, 채소 중에서도 감자, 가지, 토마토 등은 계절이나 함께 먹는 식품의 궁합을 보고 선택하라고 한다. 이런 점 때문에 마크로비오틱은 "까다롭다"라는 인상을 받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마크로비오틱의 세세한 이론을 너무 고집하면 음식을 현명하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까다롭게 가려먹게 된다.    -P.87


거창한 이름과 달리 요리법이 단순하고 간결했다. 요리순서를 설명하는 자세한 레시피나 사진이 부족했던 점이 아쉬웠지만 마크로비오틱에 대한 작가의 생각에는 깊이 공감했다. 그리고 밋밋한 재료들을 발상의 전환으로 경험해보지 못한 독특한 요리로 선보일 때는 감탄이 절로 났다. 반찬으로밖에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무말랭이를 차로 끓인다던지, 두부로 요거트를 만들고, 날로만 먹는 묵을 기름에 지지는 도토리묵구이, 채소를 그릴에 굽거나 찌는 간단한 요리들은 왠지 까다로울 거라는 마크로비오틱에 대한 편견을 날려버린다. 음식과정을 머리속으로 그리며 요리과정을 더듬어가다보니 어느새 내 몸도 가벼워지고 건강해진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의심스러운 조리과정에도 일주일에 꼭 한 번은 하게 되는 외식과 자극적인 야식으로 혹사당한 나의 몸이 조만간 신호를 보내오기 전에, 이 책을 통해 배운 마크로비오틱의 기본을 충실히 실천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흔한 재료와 단순한 조리법에도 선뜻 요리하기가 꺼려졌다. 설탕과 우유, 계란등 어떠한 음식에도 사용하지 않으면 한계에 부딪혀버릴 것 같은 기본 재료들을 넣지 않고 하려니 맛을 볼 엄두가 안 났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우리가 정제된 조미료와 동물성 식품에 얼마나 의존하며 사는지 알게 되는 대목이었다. 우리 땅에서 나는 제철음식만큼 좋은 게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한다. 오랜 시간 길들여져 굳어버린 잘못된 식습관 탓이다. 쉽지 않겠지만 나 역시 생활에서 작은 것부터 고쳐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마크로비오틱의 재료해석에 새삼 놀랐게 됐다. 생선을 좋아하는 일본인이 입이 두드러지게 나왔다거나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돼지처럼 콧김이 세지고, 닭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닭처럼 수선스러워진다고 한다. 게다가 쌀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이나 일본, 중국인들은 벼이삭처럼 고개를 숙이고, 밀을 주식으로 먹는 미국인들은 보리처럼 허리를 꼿꼿히 세운다. 음식이 그만큼 사람의 신체 정신에 영향을 끼치고 있으니 음식의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음식물의 모양을 사람의 몸에 비유해 나타나는 효과를 설명하는 부분도 새롭고 신기했다. 미역이 머리카락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신장과 비슷하게 생긴 팥이 신장기능에 좋으며, 야채껍질이 피부미용에 좋다는 건 설득력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식재료가 가진 음양의 기운을 파악하면 웰빙라이프를 실천할 수 있다니 얼마나 지당한 얘기인가. 
 

또한 식사를 하기 전 "잘 먹겠습니다"와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를 통해 생명체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부분에서는 일본인 특유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몇 달 전 읽은 구본형씨의 책에서 발견한 비슷한 구절도 떠올랐다. 살기 위해 살아있는 것을 죽여 먹는 것이 바로 밥벌이니, 밥벌이가 치열할 수 밖에 없고, 죽음을 먹고 삶이 이어지는 것이니 대충 살 수 없다고 말이다. 모든 음식과 재료에 감사한 마음이 절로 생긴다. 그렇게 소중한 생명을 이어온 음식을 함부로 희생시키지 말고, 재료 본연이 가진 생명력을 소생시킬 수 있는 요리법, 그것이 바로 마크로비오틱인 것이다. 땅의 기운을 빌어 이 땅 위에 우뚝 섰으니, 우리는 땅에게 감사해야하고, 땅에서 나는 모든 것들을 버리지 않고 먹을 줄 아는 지혜를 발휘한다면 건강을 지키는 방법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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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최규석 지음 / 길찾기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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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책은 만화라는 생각에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펼치게 된다. 하지만 한장 한장 넘기고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묵직한 돌덩이를 가슴에 얹은 것처럼 뻐근해지고 만다. 그의 만화가 세상에 처음 고개를 내민 이 단편집 역시 신인시절의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풋풋하고 조악한 감상따위는 없다. 남들은 꺼내기 어려워하는 사회의 그늘이나 약자의 모습들이 직설적이고 담담하게 그려있다. 그리고 분명 반대편에서 그들을 바라봤을 자신과 우리를 향해 모진 비난과 부끄러움을 들춰내고 만다.


6가지 단편에는 그동안 그가 그려왔던 만화의 자양분이 됐을 거라 짐작하는 다양한 군상의 인물과 주제가 드러난다. 첫번째 단편인 사랑의 단백질은 <습지생태보고서>의 캐릭터들이 그대로 나오며 -이 단편이 습지생태보고서의 초석이 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 콜라맨과 선택을 통해서는 <대한민국 원주민>의 추억이 떠오른다. 다른 책보다 이 책을 가장 먼저 읽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 책의 타이틀인 단편 <공룡 둘리>는 우리가 오랫동안 사랑해온 <아기공룡 둘리>의 순수한 이미지를 짓밟고 비틀며, 암울한 이 시대의 단면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슬픈 작품이었다. 민증없는 이주노동자가 된 성인 둘리와 동물원으로 팔려간 또치, 외계인으로 취급되어 해부되는 도우너, 이 모두를 계획한 철수와 양아치 건달로 변한 희동이의 모습은 책 속의 평처럼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알 수 없는 괴로운 심정이 되고 만다.  

 
그의 작품은 한 번 읽고는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어 두 번, 세 번 읽게 되는 것들이 많다. 곱씹고 다시 읽을수록 처음 놓쳤던 많은 부분들이 세세하게 보인다. 그가 하고자 하는 말, 전하고자 하는 진실에 조금은 가까워졌다는 기분이 들다가도 차마 등돌리고 싶어지는 현실에 옹송그리게 된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진실은 불편하고 우울하다. 높은 빌딩 사이, 구부정한 등으로 목장갑을 낀 채 소주병과 잔을 들고 있는 고단한 노동자인 둘리의 모습은 어두운 뒷골목 어딘가에서 현실을 한탄하고 있을 누군가 같다.


그의 만화를 보고 있노라면 지독히도 어둡고 읍습한 느와르 장르의 영화들이 떠오른다. 인간의 그늘진 내면을 꿰뚫고 있는 것 같다. 누구나 숨기고 싶어하는 본성, 혹은 야만성과 이기심이 만화적 상상력을 빌어 더없이 날카롭게 그려지고 있다. 단편의 중간 중간 짧은 컷으로 그려진 만화도 작가의 일관된 주제의식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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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 1994-2005 Travel Notes
이병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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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풍경과 풍경.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낯선 사진안에는 그의 열정이 고스란히 숨어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찍어온 사진과 글이라는 평이한 형식은 구태의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처음 책을 집어들며 가졌던 뻔할 것이라는 판단은 책장을 넘길수록 심장이 두근거리는 설레임으로 바뀌었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을 듯했다. 그렇기에 여행책은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오만도 부끄러워졌다. 그의 글에서는 여행에 관한 짧은 단상이나 개인적 감상이 흔해빠진 스타일리쉬함을 몸에 두른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는 여정으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에서 만난 청년 던, 멕시코에서 만난 물장수 아저씨, 파리토박이면서 막노동으로 경비를 모아 파리를 여행하는게 일이라던 청년, 너무 많이 끌어올린 책때문에 무너져버린 2층 가게의 할아버지, 옥수수 두 개가 담긴 봉지를 그에게 내밀던 페루의 옥수수 청년, 썩어들어가는 동물가죽 냄새를 맡으며 힘들게 일하는 모로코 페스의 사람들, 불가리아로 가는 새벽기차안에서 만난 북한사람들, 헤어진 남자친구가 와보고 싶다던 시칠리아를 혼자 여행하던 안젤라, 베트남 산호섬에서 만난 한국혼혈인 '김'... 여행지에서 만난 모두가 그에게 친절하고 상냥했던건 아니지만 그는 좋은 사람들을 떠올리며 다시 사람들 틈바구니로 들어간다. 
 

습관처럼 다닌다. 습관처럼 여행을 다니려고 한다. 여행을 다니는 습관만큼 내가 사람을 믿는 건 사람에게 열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으로부터 받을 게 있다는 확신에 기대는 바람에 나는 자주 사람에 의해 당하고 패한다.  ......(중략)
그렇다고 항상 당하는 쪽인 나같은 이에게 쓸쓸함만 남는 건 아니다. 고맙게도 쓸쓸하면 할수록 다시 사람을 떠올리며 사람의 풍경 안으로 걸어갈 힘이 생긴다.


때론 '던'처럼 그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 기대하는 현지사람들때문에 여행자라는 자각을 뼈저리게 느끼게도 하지 않았을까. 이방인이라는 철저한 외도에도 미친 듯 꿈틀거리는 열망을 잠재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그런 발동이 느껴진다. 코 앞에 집을 두고도 멀리 떠나온 기분에 젖어보기 위해 여관에서 밤을 보낼만큼 익숙한 것의 안락함도 가족이나 주변사람들도 그의 발을 붙잡지는 못한다. 사치스럽고 화려한 여행은 어디에도 없다. 사람의 온기를 확인하는 여정, 누군가를 더 그리워하게 만드는 여정, 그 안에서 그는 희노애락을 발견하고 삶이라는 거대한 발자취를 따라간다. 


누구든 떠나는 순간이 되면 본능에 가까울 정도로 뒤를 돌아보게 된다. 뒤를 돌아보면서 거꾸로 매달려 있던 자신과 가능하다면 한동안 품고 살았던 정신의 부산함을 그 자리에 걸어두고 떠나려 한다. 그래서 돌아본다는 것은 씁쓸한 일이 되고 수심 깊디깊은 강을 건너는 일처럼 시작하지 말아야 했을 일이 돼버린다.
 

여행에서 그 곳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친해진다는건 내게 너무도 겁나는 일이다. 정확한 의사전달도 어려울 뿐더러 그들의 문화나 생활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간극도 염려스럽기 때문이다. 작정하고 덤벼들어 바가지를 씌우려거나 이방인 취급으로 우습게 볼 때는 잔뜩 주눅이 들어버린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여행은 애태우게 만든다. 사람냄새가 진동하고 낯선 공기가 등을 떠밀고, 웃음짓는 사람들이 결국 나와 똑같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눈빛이라는 걸 깨닫게 해준다. 나에게 마음을 열어줄 낯선 이를 찾아나서고 다시 한 번만이라도 그 곳을 밟고 싶다는 기대를 키우는 것이며, 그 기억만으로도 눈이 매워지는 게 여행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지금 떠날 수 없다면 언제라도 떠날 수 없다는 말을 어느 책에선가 읽은 기억도 있다. 지금 필요한 건 뭐? 바로 열정이라고 그는 여행의 시작을 친절하게 안내해주고 있었다.


열정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넌 자와 건너지 않은 자로 비유되고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강물에 몸을 던져 물살을 타고 먼 길을 떠난 자와 아직 채 강물에 발을 담그지 않은 자, 그 둘로 비유된다. 열정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맡겨 흐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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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라벌 사람들
심윤경 지음 / 실천문학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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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고집해오던 책읽기방식은 전작(作)인데 최근에 빠진 국내작가가 심윤경이다. 책쟁이들 사이에서는 알아주는 그녀의 처녀작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마치 나의 유년을 관통한 듯 아릿아릿했다. 뒤이어 읽은 <달의 제단>과 <이현의 연애>도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처럼 묘한 쾌감과 아픔, 혼란을 동시에 몰고 왔다. 그녀의 사고와 생각은 독특하다. 기성작가에게서 찾을 수 없는 강렬함과 관념의 틀을 깨버린 반항심, 지독한 극단, 정곡을 찌르는 간결한 문체와 묘하게 마음을 울리는 감정이 뒤엉켜있다. 
 

그토록 좋아하는 작가임에도 평소 멀리하던 시대물에, 기피하는 분야인 연작을 써놓고보니 선뜻 손이 가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요즘 유행처럼 번지는 TV드라마 <선덕여왕>이나 예전에 읽은 <미실>덕분인지 오히려 질리게 보아온 조선시대보다 신선했고 파격적이었다. 삼국유사를 모티브로 쓴 글이라지만 이건 과장이 지나친데?라고 생각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신라의 시대적 관습이나 제도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무언가 변화를 눈 앞에 두고 꿈틀거리는 거대한 이무기의 모습처럼 열정적이고 거침없으며 역동적인 서라벌 사람들의 모습은, 성장을 멈춘 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작금의 세태를 꼬집고 있는 듯 했다.

 
왕족인 성골이면서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는 칠척오치 거구의 연제태후, 신라시대의 청소년 수양단체로 알려진 화랑도에서 벌어지는 공공연한 동성애, 신이 되고자 했지만 오히려 추하게 변해버린 무열왕, 교합제라하여 많은 사람들 앞에서 벌어지는 남녀의 정사, 간밤에 달게 마신 물이 해골에 고인 물이었다는 일화로 유명한 원효대사의 비보이를 연상시키는 떠들석한 법회장면등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본능과 욕망에 충실하기 때문에 순수해보이기까지 한다. 많은 굴레와 시선에 억압받는 현실이 상당히 대조적으로 비춰졌고, 예의와 도덕이라 일컬어 우리를 가두려는 사회그늘에 목이 옥죄어오는 듯 갑갑했다. 

 
다행인 건 그들의 긍정적인 열정과 에너지가 책을 읽는 내게도 그대로 전해졌다는 것이다. 우리가 역사속에 정형화시켜버린 고리타분함을 벗고 21세기로 뚜벅 뚜벅 걸어들어온 서라벌의 사람들은, 일찍이 우리가 가져본 적 없는 새로운 역사의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듯 했다. 어디까지가 상상이고 사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고 굳이 구분할 필요도 없겠지만, 작가가 그들의 모습을 결코 미화시키지 않았다는 근거와 흥미로운 발견은 서라벌 사람들을 재해석할 수 있는 많은 여지를 남기고 있다. 지금 우리가 신라시대에 열광하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매우 흥미진진한 책이었다. 그리고 심윤경만의 매혹적인 글쓰기가 시대물에서 더 맛깔스럽게 빛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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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 플랜 모중석 스릴러 클럽 19
스콧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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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툼한 책 한권의 이야기가 소설이라니...차라리 실제라고 믿어버리게 되었다. 돈때문에 일어나는 살인사건이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몰입해 읽는 동안 내가 주인공 행크였다면 어떠했을까 몇 번이나 생각해보았지만 살인만큼은 어리석은 행동같았다. 그렇지만 막상 눈 앞에 주인을 알 수 없는 돈뭉치 몇다발이 떨어져있다면 금새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목대로 단순해보이는 그의 계획은 뜻하지 않는 살인을 시작으로 어긋나기 시작한다. 여기에 그 돈을 지키기 위해 소중한 가족가 친구를 살해한 한 남자가 있다. 
 

눈이 잔뜩 쌓인 겨울 아침, 행크와 형 제이콥 그리고 제이콥의 친구 루는 부모님의 기일을 맞아 묘소로 가는 길에서 갑작스레 여우를 만나 급정거를 하게 된다. 여우를 쫓아간 제이콥의 개는 산 속으로 사라지고 그 개를 쫓아 셋은 눈밭을 헤매게 된다. 그러던 중 추락한 비행기를 발견하고 조종사는 이미 죽어 까마귀밥이 된 상태였다. 조종석 뒷자리에서 끌어낸 큰 꾸러미 안에서 셋은 4백 4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찾아냈고 주인을 잃은 돈을 신고해야겠다는 생각도 잠시, 형과 루의 돈욕심에 주저하던 행크 역시 눈이 녹아 비행기가 발견되고 돈의 실체가 밝혀지기까지 자신이 돈을 보관한 후에 출처가 확실해지면 셋이 나누자고 제안한다. 
 

비밀은 오직 셋만 공유하자던 처음의 계획과 달리 행크는 자신의 부인 사라에게, 루는 여자친구인 낸시에게 사실을 고백한다. 사라는 행크에게 비행기가 발견되더라도 비행기에 접근한 사람이 없다는 표시로 50만달러를 추락한 비행기에 넣어두라고 말한다. 다음 날 새벽 행크가 비행기에 돈을 두는 데는 성공하지만 망을 보고 있던 형은 갑자기 나타난 피더슨때문에 당황한 나머지 그에게 폭행을 가해 실신시키고 이를 보던 행크는 그가 죽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죽지 않았던 피더슨을 행크는 목졸라 살해하고 그가 타고있던 스노모빌위에 그를 태우고 다리위에서 밀어 사고사로 위장한다. 이 후 행크의 살해사실을 루가 알게 되고 루는 그의 살인을 빌미로 자신의 몫을 요구하며 돈을 달라고 행크를 협박한다. 또 다른 계략으로 루를 옳아매려했던 행크는 계획이 실패하자 루와 낸시, 친형까지 살해하기에 이른다.


뒤이어 돈을 지키기 위한 그의 살인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으나 돈의 정체가 밝혀지며 종지부를 찍는다. 그러나 돈의 댓가는 혹독했고 그가 저지른 살인만큼 잔인했다. 돈의 유혹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안정된 직장과 사랑하는 부인, 곧 태어날 아이가 있는 행크는 평범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남부러울 것 없는 가족과 미래가 보장된 인생을 살고 있었지만, 돈 앞에 그 일상은 너무도 쉽게 무너졌고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초라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거듭된 살인을 정당하다 주장할만큼 죄책감마저 무뎌지게 했다. 그의 주장은 억지스럽고 살인은 용서할 수 없는 큰 죄였지만 그가 보여준 인간 본연의 탐욕은 매우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함정에 빠졌다. 우리는 한계를 넘어셨으며, 돌아갈 수 없다. 그 돈 덕분에 꿈꿀 기회를 얻었지만 그 때문에 현재의 삶을 경멸하게 되었다. 사료상의 일, 알루미늄으로 옆면을 댄 집, 주변마을. 우리는 그 모두를 이미 과거의 것으로 보고 있었다. 백만 장자가 되기 전의 과거, 형편없고, 우울하고, 시시한 과거. 그러므로 어찌 어찌하여 그 돈을 돌려주어야 한다 해도, 의미 있는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던 듯이 다 잊고 옛 생활로 돌아갈 수는 없게 되었다. 옛 생활을 멀리 떨어진 것으로 보았던 때로, 옛 생활을 평가하고 값어치 없게 여겼던 때로 되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회복될 수 없는 상처였다.    -P.169
 

처음 돈을 발견하고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던 사라의 말대로 경찰에게 붙잡히지 않았지만 그들의 욕심은 먼 곳에 뻔히 늪이 보임에도 눈 앞의 화려함에 취해 늪으로 발을 들여놓게 만들었다. 그러나 행크를 마냥 비난할 수 있을까. 평생에 한 번 만져보기 힘든 돈 앞에 우리 안에 내재한 욕망이 고개를 들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읽는 내내 아니라고 부정하는 목소리가 작아졌다. 자신을 비극의 피해자로 인식하는 부분은 행크 한사람뿐만 아니라 인간전체가 욕망의 노예-혹은 돈의 노예-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왠지 서글퍼지는건 그의 억지주장에 감명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지금의 현실에 있었다. 한 인간의 나약함과 추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참혹한 진실앞에, 단순하게만 생각했던 책의 내용이 다른 각도로 보여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한 일이 끔찍하긴 해.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사악한 건 아냐. 우리가 올바르지 않았던 것도 아냐. 우리는 살아야 했어. 자기가 한 일, 자기가 쏜 총알, 모두 정당방위였어." 

아내는 몸을 틀어서 손으로 눈가의 머리카락을 넘기며 나를 보면서 내 반응을 기다렸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아내 말이 옳다. 우리는 스스로를 그렇게 타일러야 한다. 우리가 한 일은 그럴 법하고 용서될 만한 일이라고. 우리 행동의 잔혹함은 우리 계획과 욕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쩔 수 없이 휘말린 상황에서 나왔다고. 그래서 우리 잘못은 전혀 없다고. 우리는 스스로를 이 비극의 가해자로 볼 것이 아니라 그저 비극 속에서 불행하게 희생되는 여러 조연 가운데 두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 그것이 핵심이었다. 우리가 저지른 일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것뿐이었다.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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