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 플랜 모중석 스릴러 클럽 19
스콧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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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툼한 책 한권의 이야기가 소설이라니...차라리 실제라고 믿어버리게 되었다. 돈때문에 일어나는 살인사건이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몰입해 읽는 동안 내가 주인공 행크였다면 어떠했을까 몇 번이나 생각해보았지만 살인만큼은 어리석은 행동같았다. 그렇지만 막상 눈 앞에 주인을 알 수 없는 돈뭉치 몇다발이 떨어져있다면 금새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목대로 단순해보이는 그의 계획은 뜻하지 않는 살인을 시작으로 어긋나기 시작한다. 여기에 그 돈을 지키기 위해 소중한 가족가 친구를 살해한 한 남자가 있다. 
 

눈이 잔뜩 쌓인 겨울 아침, 행크와 형 제이콥 그리고 제이콥의 친구 루는 부모님의 기일을 맞아 묘소로 가는 길에서 갑작스레 여우를 만나 급정거를 하게 된다. 여우를 쫓아간 제이콥의 개는 산 속으로 사라지고 그 개를 쫓아 셋은 눈밭을 헤매게 된다. 그러던 중 추락한 비행기를 발견하고 조종사는 이미 죽어 까마귀밥이 된 상태였다. 조종석 뒷자리에서 끌어낸 큰 꾸러미 안에서 셋은 4백 4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찾아냈고 주인을 잃은 돈을 신고해야겠다는 생각도 잠시, 형과 루의 돈욕심에 주저하던 행크 역시 눈이 녹아 비행기가 발견되고 돈의 실체가 밝혀지기까지 자신이 돈을 보관한 후에 출처가 확실해지면 셋이 나누자고 제안한다. 
 

비밀은 오직 셋만 공유하자던 처음의 계획과 달리 행크는 자신의 부인 사라에게, 루는 여자친구인 낸시에게 사실을 고백한다. 사라는 행크에게 비행기가 발견되더라도 비행기에 접근한 사람이 없다는 표시로 50만달러를 추락한 비행기에 넣어두라고 말한다. 다음 날 새벽 행크가 비행기에 돈을 두는 데는 성공하지만 망을 보고 있던 형은 갑자기 나타난 피더슨때문에 당황한 나머지 그에게 폭행을 가해 실신시키고 이를 보던 행크는 그가 죽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죽지 않았던 피더슨을 행크는 목졸라 살해하고 그가 타고있던 스노모빌위에 그를 태우고 다리위에서 밀어 사고사로 위장한다. 이 후 행크의 살해사실을 루가 알게 되고 루는 그의 살인을 빌미로 자신의 몫을 요구하며 돈을 달라고 행크를 협박한다. 또 다른 계략으로 루를 옳아매려했던 행크는 계획이 실패하자 루와 낸시, 친형까지 살해하기에 이른다.


뒤이어 돈을 지키기 위한 그의 살인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으나 돈의 정체가 밝혀지며 종지부를 찍는다. 그러나 돈의 댓가는 혹독했고 그가 저지른 살인만큼 잔인했다. 돈의 유혹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안정된 직장과 사랑하는 부인, 곧 태어날 아이가 있는 행크는 평범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남부러울 것 없는 가족과 미래가 보장된 인생을 살고 있었지만, 돈 앞에 그 일상은 너무도 쉽게 무너졌고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초라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거듭된 살인을 정당하다 주장할만큼 죄책감마저 무뎌지게 했다. 그의 주장은 억지스럽고 살인은 용서할 수 없는 큰 죄였지만 그가 보여준 인간 본연의 탐욕은 매우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함정에 빠졌다. 우리는 한계를 넘어셨으며, 돌아갈 수 없다. 그 돈 덕분에 꿈꿀 기회를 얻었지만 그 때문에 현재의 삶을 경멸하게 되었다. 사료상의 일, 알루미늄으로 옆면을 댄 집, 주변마을. 우리는 그 모두를 이미 과거의 것으로 보고 있었다. 백만 장자가 되기 전의 과거, 형편없고, 우울하고, 시시한 과거. 그러므로 어찌 어찌하여 그 돈을 돌려주어야 한다 해도, 의미 있는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던 듯이 다 잊고 옛 생활로 돌아갈 수는 없게 되었다. 옛 생활을 멀리 떨어진 것으로 보았던 때로, 옛 생활을 평가하고 값어치 없게 여겼던 때로 되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회복될 수 없는 상처였다.    -P.169
 

처음 돈을 발견하고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던 사라의 말대로 경찰에게 붙잡히지 않았지만 그들의 욕심은 먼 곳에 뻔히 늪이 보임에도 눈 앞의 화려함에 취해 늪으로 발을 들여놓게 만들었다. 그러나 행크를 마냥 비난할 수 있을까. 평생에 한 번 만져보기 힘든 돈 앞에 우리 안에 내재한 욕망이 고개를 들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읽는 내내 아니라고 부정하는 목소리가 작아졌다. 자신을 비극의 피해자로 인식하는 부분은 행크 한사람뿐만 아니라 인간전체가 욕망의 노예-혹은 돈의 노예-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왠지 서글퍼지는건 그의 억지주장에 감명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지금의 현실에 있었다. 한 인간의 나약함과 추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참혹한 진실앞에, 단순하게만 생각했던 책의 내용이 다른 각도로 보여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한 일이 끔찍하긴 해.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사악한 건 아냐. 우리가 올바르지 않았던 것도 아냐. 우리는 살아야 했어. 자기가 한 일, 자기가 쏜 총알, 모두 정당방위였어." 

아내는 몸을 틀어서 손으로 눈가의 머리카락을 넘기며 나를 보면서 내 반응을 기다렸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아내 말이 옳다. 우리는 스스로를 그렇게 타일러야 한다. 우리가 한 일은 그럴 법하고 용서될 만한 일이라고. 우리 행동의 잔혹함은 우리 계획과 욕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쩔 수 없이 휘말린 상황에서 나왔다고. 그래서 우리 잘못은 전혀 없다고. 우리는 스스로를 이 비극의 가해자로 볼 것이 아니라 그저 비극 속에서 불행하게 희생되는 여러 조연 가운데 두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 그것이 핵심이었다. 우리가 저지른 일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것뿐이었다.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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