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로비오틱 밥상 - 자연을 통째로 먹는
이와사키 유카 지음 / 비타북스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중용(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고등학교 윤리시간에 배운 철학의 한 개념이다. 당시 그에 관한 수업을 들으며 매우 선명한 인상을 받은 기억이 난다. 그런 중용은 마크로비오틱 전체를 아우르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마크로비오틱의 4대원칙이라고 하는 신토불이나 일물전체, 자연생활, 음양조화는 이런 중용을 실천함으로 몸이 음과 양,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잡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상차림이었다. 현재 우리가 건강을 위해 외치는 친환경이나 유기농보다 먼저 선행되야할 식생활 개선프로젝트였다. 재료들을 통째로 먹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 단순한 논리안에 심오한 철학적 개념이 녹아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나의 식생활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책이었다. 

 
마크로비오틱에서는 특별히 먹으면 안 된다고 제한하는 음식은 없다. 다만 고기나 생선 같은 동물성 식품은 밸런스를 맞춰서 먹고, 채소 중에서도 감자, 가지, 토마토 등은 계절이나 함께 먹는 식품의 궁합을 보고 선택하라고 한다. 이런 점 때문에 마크로비오틱은 "까다롭다"라는 인상을 받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마크로비오틱의 세세한 이론을 너무 고집하면 음식을 현명하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까다롭게 가려먹게 된다.    -P.87


거창한 이름과 달리 요리법이 단순하고 간결했다. 요리순서를 설명하는 자세한 레시피나 사진이 부족했던 점이 아쉬웠지만 마크로비오틱에 대한 작가의 생각에는 깊이 공감했다. 그리고 밋밋한 재료들을 발상의 전환으로 경험해보지 못한 독특한 요리로 선보일 때는 감탄이 절로 났다. 반찬으로밖에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무말랭이를 차로 끓인다던지, 두부로 요거트를 만들고, 날로만 먹는 묵을 기름에 지지는 도토리묵구이, 채소를 그릴에 굽거나 찌는 간단한 요리들은 왠지 까다로울 거라는 마크로비오틱에 대한 편견을 날려버린다. 음식과정을 머리속으로 그리며 요리과정을 더듬어가다보니 어느새 내 몸도 가벼워지고 건강해진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의심스러운 조리과정에도 일주일에 꼭 한 번은 하게 되는 외식과 자극적인 야식으로 혹사당한 나의 몸이 조만간 신호를 보내오기 전에, 이 책을 통해 배운 마크로비오틱의 기본을 충실히 실천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흔한 재료와 단순한 조리법에도 선뜻 요리하기가 꺼려졌다. 설탕과 우유, 계란등 어떠한 음식에도 사용하지 않으면 한계에 부딪혀버릴 것 같은 기본 재료들을 넣지 않고 하려니 맛을 볼 엄두가 안 났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우리가 정제된 조미료와 동물성 식품에 얼마나 의존하며 사는지 알게 되는 대목이었다. 우리 땅에서 나는 제철음식만큼 좋은 게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한다. 오랜 시간 길들여져 굳어버린 잘못된 식습관 탓이다. 쉽지 않겠지만 나 역시 생활에서 작은 것부터 고쳐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마크로비오틱의 재료해석에 새삼 놀랐게 됐다. 생선을 좋아하는 일본인이 입이 두드러지게 나왔다거나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돼지처럼 콧김이 세지고, 닭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닭처럼 수선스러워진다고 한다. 게다가 쌀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이나 일본, 중국인들은 벼이삭처럼 고개를 숙이고, 밀을 주식으로 먹는 미국인들은 보리처럼 허리를 꼿꼿히 세운다. 음식이 그만큼 사람의 신체 정신에 영향을 끼치고 있으니 음식의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음식물의 모양을 사람의 몸에 비유해 나타나는 효과를 설명하는 부분도 새롭고 신기했다. 미역이 머리카락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신장과 비슷하게 생긴 팥이 신장기능에 좋으며, 야채껍질이 피부미용에 좋다는 건 설득력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식재료가 가진 음양의 기운을 파악하면 웰빙라이프를 실천할 수 있다니 얼마나 지당한 얘기인가. 
 

또한 식사를 하기 전 "잘 먹겠습니다"와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를 통해 생명체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부분에서는 일본인 특유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몇 달 전 읽은 구본형씨의 책에서 발견한 비슷한 구절도 떠올랐다. 살기 위해 살아있는 것을 죽여 먹는 것이 바로 밥벌이니, 밥벌이가 치열할 수 밖에 없고, 죽음을 먹고 삶이 이어지는 것이니 대충 살 수 없다고 말이다. 모든 음식과 재료에 감사한 마음이 절로 생긴다. 그렇게 소중한 생명을 이어온 음식을 함부로 희생시키지 말고, 재료 본연이 가진 생명력을 소생시킬 수 있는 요리법, 그것이 바로 마크로비오틱인 것이다. 땅의 기운을 빌어 이 땅 위에 우뚝 섰으니, 우리는 땅에게 감사해야하고, 땅에서 나는 모든 것들을 버리지 않고 먹을 줄 아는 지혜를 발휘한다면 건강을 지키는 방법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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