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사마미식 수납법 - 매일매일 조금씩 내게 필요한 것만 남기는 인간적인 집정리
까사마미 지음 / 동아일보사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엄마는 깔끔한 사람이었다. 엄마의 걸레는 언제나 수건과 동일 수준의 청결도를 유지했고, 방바닥은 늘 보송했다. 하도 여러번 삶아 희끗한 색으로 변질된 엄마의 수건에서는 늘 햇살의 냄새가 났다. 초록색 3M 수세미는 엄마의 최고 애용품이었고 덕분에 투명한 유리컵은 얼마되지않아 자잘한 기스덕에 희뿌옇게 되었지만 깨끗함만은 보장할 수 있었다. '쓰뎅' 냄비부터 크리스털 컵까지 엄마의 초록색 수세미는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또한 엄마는 정리 정돈엔 젬병인 사람이었다. 좁은 집에 많은 아이들, 그만큼 많은 살림이었지만 수납공간이 제대로 마련되어있지 않은 집에서 엄마는 늘 짐을 들었다 놨다 먼지만을 닦았다. 깨끗했지만 어질러진 집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엄마의 집을 떠난 게 20년 전이다. 하숙을 하다 자취를 하고, 다시 신접살림을 꾸리고, 친구와 둘이 쓰던 하숙방에서 원룸으로, 다시 복도식 구형아파트에서 먼 외국 낯선 구조의 집에서 다시 새아파트로. 그 사이 둘이었던 가족은 셋에서 넷이 되고 짐은 점점 늘어났다. 오천권이 넘어가면서 헤아리기를 포기한 책들과, 어느새 세대로 늘어나 버린 재봉틀과 엄청나게 사들인 그릇들의 틈바구니에서 더는 엄마식 살림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정리 정돈은 보고 배우는 것이 가장 크다. 요즘같이 시어른을 모시고 살지 않는 것이 보편화 된 환경에서 엄마의 살림법은 딸에게로 전수되었다. 새로 살림을 시작하는 딸은 마음에 들건 들지 않건 엄마의 방법 외의 방법을 모르므로 엄마의 방법대로 집안을 정돈한다. 나의 경우에 그건 최악의 방법이었다. 살림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학원이라도 있으면 당장 등록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모르는 것이 있을 때, 사람들은 포털 사이트 검색을 한다. 알고 싶은 것이 있을 때, 나는 알라딘을 찾는다. 알라딘 검색창에 살림법, 수납법 등등의 검색어를 입력했고 열권이 넘는 책을 주문했다. 음, 나는 스케일이 크다.(스파르타의 페르시안 왕 '나는 관대하다' 어조로 읽어야 한다.)


감히 말하건대, 종이 쓰레기통에 집어넣어야 할 책이 태반이었다. 집안을 정리하고자 쓰레기를 생산하는 형국이니까. 살림 관련 책들을 집필하고 출간하는 집필자들과 출판사들에게 이르노니, 볼만하고 쓸만한 수납도구를 만드는 능력이 그리 흔한 능력이 아니라네. 책에서 나오는 수준의 수납도구를 만들 수 있는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면 수납관련 책을 사지도 않을걸세. 이미 필요 없을테니.


그 와중에 걸려든 책이 이 책이다. 


까사마미는 네이버의 유명 수납, 살림, 인테리어 블로거....라고 한다. 난 블로그를 잘 방문하지 않으므로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는 모르겠고, 이 책은 도움이 된다. 단, 살림 레벨 중급 이상자들에게만.


초기의 나처럼 완전 쌩초짜로 맨땅에 헤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난해하다. 집이 좁은 사람들에게도 맞지 않다. 수납의 기본중에 기본은 공간의 확보다. 공간이 확보되지 않는 사람에게 이 책은 쓸모가 없다. 그래서 별 반개 뺐다. 


자, 이제 나 살림 좀 잘 하고 싶어서 살림하려고 애 좀 써 봤어, 우리집 그럭저럭 빈공간은 있어.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펼쳐보자. 구석구석 요긴하고 쓸만한 아이템들이 꽤 있다. 좁은 공간에 많은 물건을 사용하기 편하게 수납하는 법이 많다.


역시나, 옷 접는 방법은 대체 옷을 이렇게 공들여 접어서 뭘 어쩌겠다고, 싶긴 하지만. 그래서 별 반개 또 뺐다. 


157개의 아이디어로 나누어서 정리된 책의 구성도 찾아 보기 좋아서 도움이 된다. 


이제, 엄마의 30년이 다 되어가는 낡은 주택과 나의 아파트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엄마는 여전히 깨끗하지만 어질러진 집을 가지고 있고, 나는 깨끗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정돈 된 집을 가지고 있다. 


까사마미,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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