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 오브 라이프 - The Tree Of Lif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어렸을 때, 과학관을 갔을 때 어떤 웅장함을 느꼈다. 사방은 하얀 벽이고 둥근 돔 천장을 올려다 보는 자세로 앉았다. 불은 꺼지고 둥근 돔 때문에 소리는 울렸다. 스피커에서는 에코 가득한 고요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곧 별자리들이 둥근 천장에 등장했고 슬라이드 필름이 바뀔 때마다 내가 돌고 있는 환각을 체험했는데 불이 켜지니 초라한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웅장함은 물리적 장치들과 분위기에 압도돼서 겪었던 것이지 진짜 웅장함이 아니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장엄함과 숭고함을 느꼈다. 그런데 이 장엄과 숭고함이 기분 좋은 느낌이 아니라 불쾌했다. 장엄하고 숭고한 영화를 보고 왜 불쾌했나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리고는 어릴 시절 기억 속에서 만들어진 장엄함을 찾아냈다. 

영화는 분명히 범작은 아니다. 시종일관 압도하는 아우라가 있는데 이 실체가, 나는 마뜩잖다. 그 이유는 많은 기술적 조작 탓이다. 

첫째, 이 영화의 웅장함을 만드는데 카메라 움직임의 힘이 크다. 사소한 장면도 카메라는 일반적 방법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가령, 손을 잡는 일상적 장면도 빠르게 카메라가 줌인으로 달려들어와서 클로즈업을 잠깐 해주고 바로 위로 트랙 아웃해버린다. 화면에서 눈이 포착하는 건 손을 잡는 행위나 손의 실체보다는 카메라가 훑고 지나가는 잔상이다. 거의 모든 피사체들을 줌인과 아웃을 빠르게 사용해서 왜곡으로 인한 착시를 만든다. 카메라의 렌즈는, 어떤 한 절대자의 시선처럼 느껴진다. 이 절대자같은 시선으로 카메라는 사람, 풍경을 바람처럼 스치며 아래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자유자재로 본다. 근데 이게 이상한 게 보통은, 내 시선이 카메라 렌즈와 일치해서 프레임을 지배하는 체험이 일어나야 하는데 이 영화는 카메라의 렌즈로 프레임이 관찰당하는 느낌이 묘하게 든다. 

둘째, 음악의 과다 사용이다. 이 영화에 사용된 음악은, 아주 아주 좋다. 눈을 감고 음악만 들어도 경건하고 무언가 마음이 일렁일 정도로 흡입력이 있다. 조용하고 묵상적이며 그래서 종교음악 같기도 하다. 엄청난 파워를 가진 이미지들 뒤로 흘러나오는 음악의 힘은 폭발적이고 내내 집중하게 하는 힘을 지녔다. 영화에서 음악은 양날의 검이다. 음악으로 감정을 움직이는 영화는 비겁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셋째, 메시지가 너무 설득적이다.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가정에 한 아이의 죽음이 닥친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고통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아이 어머니는 "당신은 어디계시나요? 대답해주세요"하면서 20여분 동안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볼 수 있는 황홀한 이미지들이 군무를 춘다. 빅뱅부터 공룡 시대를 거쳐 바다와 지상의 만물들이 생명을 얻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대체 저런 이미지에 대한 상상력의 원천은 어디일까, 궁금할 정도다. 죽음과 탄생을 동일시하고 원죄 혹은 속세의 삶에 대한 구원을 지향하는 쪽으로 영화는 결론을 내버린다. 마지막 장면은 환상적이며 이런 메시지를 응축하고 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합이 이루어지는 공간은 불멸로 이르는 낙원처럼 빛으로 넘쳐나고 땅도 하얗다. 사람들은 웃으며 바람결에 따라 발걸음을 옮겨 마치 기쁨의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모든 장치들이 내겐 너무 설득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아주 엄청난 영화지만 감동보다는 조작된 감동을 강요하는 것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게다가 난 내세에 대한 열망이나 환상이 없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 사과 나무를 심겠다는 말처럼 자신의 일을 하는 게 죽음을 대하는 자세라고 믿는 편이다. 우주의 전체적 흐름이나 알수 없는 초자연적 힘은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많은 부분이 절대적 힘이 아니라 개척 가능하며, 인생에서 마주치게 되는 시련이나 크고 작은 선택들도 자신한테서 비롯된다고 여기는 편이다.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힘은 있지만 화해나 용서같은 정서적 문제는 모두 각자의 그릇이 있고 그 그릇에 뭘 담을지는 자신이 결정한다고 믿는다. 이런 내게, 이 영화는 지나치게 숭고해서 반감이 들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