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0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이항재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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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이란 말이 주는 독특한 느낌이 있다. 아련하고, 수줍고, 때 묻지 않고, 그러나 다시는 올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향수가 그것이다. 사랑 중에서도 '첫사랑'을 떠올리다면 무모하고 논리적이지 않으며 그래서 아쉽지만 기억만으로 평생 흐뭇할 사랑이다.

니체, 쇼펜하우어, 그리고 최근에 알랭 드 보통이 말했듯이, 사랑의 완성이 결혼이나 결합이 아니다. 결혼은 사랑을 끝내는 방법이고, 사랑의 완성이란 이별이라고 할 수 있다. 바르트가 이별을 출발점으로 사랑에 대한 단상을 시작했듯이 말이다. 따라서 첫사랑에 실패한다면 완성된 사랑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 첫사랑은 완성도 백퍼센트. 첫사랑은 비논리적이었으며 망설이고 자존심을 세워서 상대를 교란시키기도 하며 또 반대로 상대의 마음을 확신할 수 없어 상처받기도 하는 날들이 첫사랑을 하던 시간들 속에 들어있다.

그러나 이제는 첫사랑에 대한 애틋한 기억은 운무같은 형태로만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인지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을 읽으면서, 아쉽게도  내가 겪었던 감정이 살아나거나 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화자인 블라지미르의 우유부단한 태도에 화가 버럭난다. 사랑이란 감정이 사람을 불안하게 했다는 것을 나는 번번이 잊곤했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아버지의 연인을 사랑한 블라지미르의 감정들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무무>에서 보여준 보잘것 없지만 사랑으로 충만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게라심에게는 존경을 바치고 싶다. 사람마다 사랑하는 방식이 다르다. 내가 사랑하는  방식과 다르다고 해서 사랑의 깊이를 깍아내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말아야 한다.

 게라심이 무무란 개에게 보여준 사랑은 가슴을 저민다. 벙어리인 게라심이 인간보다는 무무라는 개와 교감을 한다. 이 교감 속에는 많은 것이 들어있다. 농노제도와 같은 당시의 사회구조라든지 군중의 나약함과 우매함 등등. 군중 속의 고독을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매력적인 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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