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 - 조직론으로 본 한국 자본주의의 본질적 위기와 그 해법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4
우석훈.박권일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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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석훈 박사의 한국경제대안 시리즈 중 2권에 해당하는 책이다. 1권인 '88만원세대'가 엄청난 유행을 탔지만 2권이 그 호응을 받아 들이지 못했다. 재미면에서나 가치면에서나 1권에 뒤지지 않는다.

이건희가 나지막히 씨부리고 박태준포스코 명예회장께서 싸대서 유행 탄 명제가 '샌드위치 위기'이다. 이 명제로 한미 fta가 반대하며 어느분이 몸에 불질렀음에도 순탄히 통과되게 만들었다. 이 거대한 명제를 어떻게 밟나 궁금해서 집었는데 미루다 이제야 읽었다.

이 책을 읽고 느낀건 우석훈 박사는 품위란걸 지니고 있다는 거다. 제목의 자극적임과 달리 책의 내용은 순전히 조직론쪽으로 한국의 조직을 훑어 보게된다. 그렇다고 샌드위치 위기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절정으로 품위있게 언급했다.

샌드위치라는 것이 위기란 전제를 두고 보면 위기지만 위기가 아니다로 보면 위기가 아니라는 명제다. 이런 명제를 칼 포퍼는 '반박이 불가능한 명제'라 칭한다. 한 종목에서 독점적 위치에 서있지 않는한 어느 기업도 샌드위치 상황을 피해갈 수 없다. 이런 사기적 뉘앙스가 짙은 명제를 지리학적 이데올로기로 부풀린 후 담론화 시킨 것에 불과하다고 우석훈 박사는 서론에 '살짝' 언급한다. 이런 명제따위에 책의 페이지를 소비할 수 없다는게 절실히 느껴진다

샌드위치 위기란 명제는 사기이지만 기업들이 뭔가 문제를 발견했음을  보여주긴 한다. 허나, 그것이 국가 전반에 통용되는 위기가 아닌 내부적인 문제라 저자는 이야기하고 책 전반이 그런 내용이다. 경제학 분야 중 하나인 조직론적 시각으로 한국의 조직 특히 사기명제를 국가의 담론으로 상충시킨 기업을 세밀하게 훑고 있다.

우석훈 박사는 여러 매체에서 한국에 만연한 쇼비즘을 경고하는 중인데 한국경제대안 시리즈는 결국 쇼비즘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저지하려는 몸부림이라는게 내 생각이다. 1권에서는 기득권 세력이 권력을 나누려 하지않고 20대를 착취하는 행태와 풍경에 대해 지적했고 2권에서는 기득권 세력의 모습을 들여다 보았다. 기득권 세력이 뒤덮고 있는 한국이란 사회 전반은 세계에서 보기 힘든 마초주의 국가와 극우적 행태, 비틀린 귀족주의, 인적자원을 말그대로 자원으로만 보는 시선등을 지적하고 그것이 불러 올것이 기업붕괴와 국가경제 위기로 둘러 말하지만 그 불러옴은 결국 쇼비즘을 은유한다.

샌드위치 위기란 명제가 결국 무엇을 뜻하는가? 가장 근접한 두 국가를 철저히 적으로 보고 경제의 주축인 소비자와 노동자를 - 중산층 이하의 이들의 분노를 결국 두나라에 쏟게 만든다. 내부적 문제점을 단순히 외부로 돌려 탄탄해진 이 분노의 덩어리가 만들어 낼 것은 무엇인가? 태왕사신기나 대조영, 연개소문등 한국인이란 유전자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이 역사를 왜곡하는 드라마들이 겨냥하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 나치의 프로파간다 영화의 반복. 쇼비즘적 기운의 충만. 전쟁의 도래.

사회 전반에 '88만원세대'가 유행했지만 내 주변에 이 책을 읽은 이를 찾는건 정말 힘들다. 자신들이 어떤 환경에 던져졌는지 혹은 무엇때문에 이런 환경에 온건지에 대한 고민을 주변에서 볼 수가 없고 철저히 절망적이고 꼰대들에게 어떻게 조아릴지 연구하는 맥빠진 모습을 볼 수 밖에 없다.

우석훈 박사의 경제 대안 시리즈는 한국사회에 대한 시선을 갖고 젠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자존심-인간으로써 '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여겨진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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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 지구를 뒤덮다 -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 도시의 빈곤화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김정아 옮김 / 돌베개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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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논지 꽤 됐었는데 이제야 읽었다. 떠오르는 건 처절한 죄의식과 감당하기 힘든 무기력. 장 지글러의 책을 읽고 나름 충격을 받았고 최근 w에서 아이티의 진흙쿠키에 대한 내용을 접한 후 편히 산다는 것의 죄책감에 휩싸여 있던 차에 이 책이 아예 다운을 시켰다. 모든 사례에 대해, 그 사례 속에서 버티는 이들에 대한 죄송함.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 중심적 견해로 제3세계라 불리우는 나라들이 선진국을 선진국으로 유지시키기 위해 착취되는 모습을, 그 착취의 기반을 만드는 빈민들의 모습을 슬럼이란 곳을 중심으로 훑는다. 그 곳으로 더 파고들수록 그들의 삶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떠올려질수록 죄책감은 더욱 커졌다.

고작 몇 개의 선진국(그 중심의 미국!)이 펼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추진하는 계획에 제3세계의 국가 기반등을 차츰 차츰 해체하고 자신들의 명분을 세우기 위해 알량한 슬럼 정책을 펴지만 그로인해 제3국의 중산층은 완전 소멸하고 빈부격차는 함부로 언급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멀어져간다.

슬럼 속에 사는 이들의 단면적 모습만으로도 ‘산다’란 말을 하는 것에 회의를 느끼게 만드는데 놀랍게도 그들은 그 속에서 지옥같은 삶을 이어간다. 도시 외곽을 두루고 있는 슬럼은 상위 계층이 높게 쌓아올린 옹벽 넘어에서, 벼랑같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곳에 집을 세우고, 언제 홍수에 휩쓸릴지 모르는 곳에서, 도시계획으란 꿈도 꿀 수 없는 식수와 하수로 같은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는 똥과 오물과 해충이 넘쳐나는 곳에서, 배고픔을 잊기 위해 쓰레기를 뒤지고, 진흙을 버터와 소금을 섞어 쿠키로 빚고, 한정되지 않은 끝없는 노동, 당연한 매춘과 당연한 범죄와의 연계. 그 곳에 있는 이들에게 우리가 어찌 함부로 ‘산다’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있을까? 처참한건 그 슬럼 속에서도 착취가 끝없이 이어진다. 부동산을 기반으로한 착취가.

내가 더욱 죄책감이 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내가 생각 없이 살고 있는 이 땅 남한에서도, 특히 내가 태어난 88년도에 세계의 슬럼 정리 역사의 자랑스러운 한 폐이지를 남기고 있었다. 88년 올림픽을 위해 75만명의 빈민을 아무 대책없이 쓸어버린 사건에 대해, 그리고 아직도 재건축이란 미명하에 빈민들을 쓸어버리는 현실에, 부동산 값을 위해 재개발이라면 버선발로 뛰어다니는 이들이 널린 현실을 막연하고 무감각했던 것에 어찌 죄책감이 들지 않을 수 있을까?

정말 무서운건 제3세계의 슬럼 정착 역사가 지금의 한국과 많이 겹친다는 것이다. IMF와 세계은행을 기반으로 밀려들오는 세계화는 IMF는 벌써 겪었고 더 처참하게 다가을 한미FTA. 빈민과 옹벽을 쌓고 그들의 현실을 외면하는 모습은 하늘 높은 듯 올라가는 타워펠리스의 비현실적 모습. 슬럼의 부동산 폭등의 모습은 재개발 지역의 폭등하는 부동산 값을, 그것이 겨냥하는 거품의 모습. 많은 것들이 겹치는 터라 읽을 때마다 오싹해지곤 한다.

사회주의자로서 자본주의란 흡혈귀가, 선진국이란 흡혈귀가 자신의 풍요로움을 위해, 다른것도 아닌 풍요로움을 위해! 다른 국가를 인질로 잡.을.수.밖.에. 없는 현실에 또 그것을 하고있고 하려는 나라에 살고있음으로 인해 생기는 무기력감과 죄책감은 많은 것을 생각 하게 한다. 어쩌면 내가 느끼는 무기력감도 배부름의 표상일지도 모른다. 내가 죄책감을 느끼는 이 순간에도 슬럼 속 아이들은 진흙쿠키를 먹고, 쓰레기를 뒤지고, 몸을 팔고, 살기위한 노동을 하고, 미친 세상에 마녀라 오인 받아 살해당하고, 그 아이들의 다음 세대는 걸어보지도 젓을 물어보지도 못하고 검정 비닐봉지 안에서 생을 마감한다.

최근에 든 생각이지만 정말 떳떳하다는 말, 함부로 입에 담을 자신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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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 2
임권택.정성일 대담, 이지은 자료정리 / 현실문화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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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1권은 ‘첫 번째 찍은 날이 2003년 6월 25일’, 2권은 ‘첫 번째 찍은 날이 2003년 8월 14일’이다. 난 2권을 2007년 말에서야 발견하고 구입했으며, 절판 된 1권은 오매불망 끝에 2008년 초에 동네 작은 서점에서 찾아내고야 말았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2008년 4월이 돼서야 읽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을 끝낸 뒤 모습을 들어냈지만 내가 이 책을 만난 건 취화선이 끝난 후, 하류인생과 천년학이 지나고 나서다. 이 대담집에 하류인생과 천년학의 결여는 못내 아쉽고 궁금하지만, 분명한건 정말 굉장하다.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는 이 책은 임권택이란 작가의 삶의 자취를 쫓으며, 임권택이란 작가가 끝없이 기억에서 지웠던 영화들을 끝없이 되살리며, 항상 다음으로 가는 임권택을 쫓고 쫓아 취화선의 임권택에게로 배우로 가는 과정이다. ‘임권택의 영화는 원을 이룬다’는 말이 있듯 이 책은 취화선 ‘이후’를 중심으로 그의 필모그래피를, 그의 역사를 거쳐 다시 취화선으로 돌아오는 원이다. 그 기억하기도 싫은 한국 근대사를 견디고 온 임권택이란 한 개인의 기억 혹은 역사, 그 기억하기도 싫은 시절의 기억하기도 싫은 ‘단지’ 직업감독이란 생각으로만 만들어 온 영화의 임권택이란 감독의 기억 혹은 역사, 그것들을 거치고 온 지금의 임권택이란 작가를 이루는 원.

  이 책은 임권택의 영화의, 그러니까 임권택이라고 칭할 수밖에 없는 영화들의 수수깨끼를 최선의 태도로 묻고 최선의 태도로 가르친다. 그 것에 멈추지 않고 임권택 감독의 영화의 근원, 인본주의에 대한 물음과 끝까지 인본주의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와 그래야만 한다는 가르침. 한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대하는지와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대해야 인간인지, 그리고 영화를 어떻게 대해야되는지에 대한 가르침이 책 속에 휘감겨 있다. 여기서 가르침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다. 최선을 대하고 그 속에 담긴 존경으로 하는 질문과 그 질문에 최선을 다하는 대답으로 이루어진 책에서 질문자가 받은 가르침은 읽는 이에게 다가온다.

  처음 취화선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승업이 도자기 터의 불을 보고 있는 다음 장승업의 시점 숏으로 도자기 터의 불이 담긴다. 그 때, 내가 그 불을 보며 들었던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마스터 숏으로 전환된 뒤 담담히 들어가 불과 하나되는 장승업을 보고 다가오는 놀라움. 어린애가 현세에서 뛰어넘을 것이 없음을 깨달은 예술가와의 통함은 정말 놀라웠다. 그 어떤 것이 어린 내가 장승업과 통하게 한 것일까?

  임권택의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알 수 없는, 간단명료하게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감상자로써 영화에게 느끼는 끌림, 혹은 ‘좋다’란 영화에 대한 감정. 그것이 정말 궁금했다. 그리고 그 궁금함은 책에서 조금이나마 정말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장승업과 통한 나, 그리고 알 수 없는 끌림의 근원이 어디서 다가오는지 왜 그런지 거장은 말한다. 한국. 한국인이란 정체성의 고민을 그다지 해보지도 않았고, 한국인이란 것에 대한 고민이 실.용.적.이.지.못.한 지금 5년을 늦게 도착한 책이 울리는 깊은 무언가. 그리고 단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커다란 무언가. 5년을 늦게 도착한 깊은 이 땅에서 영화를 하고 이 땅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각성. 그 ‘한국’

  난 책에서 말하는 결국 한국영화는 임권택이란 말을 깊게 혹은 통렬히 깨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을 알았다고 해봤자 그것은 거짓이다. 단지 그 ‘도리 없는’ 숏 혹은 씬들이 왜 도리가 없어야 되는지에 대한 글을 읽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읽음으로 분명 알았다. 혹은 잃은 것을 다시 느꼈다.  이 땅에 살면서의 태도를, (임권택이란 것의 모든 것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배우고자 할 수 없지만) 그의 삶의 태도를 인간에 대한 태도와 인간에 대한 마지막 ‘희망’등으로 어찌해야 한국에 사는 인간인지를 다시 느꼈다. 그리고 영화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되는지, 영화를 어찌 대하는지를 느꼈고 난 요즘 생기려 하는 조금의 자만감을 완전히 엎었다. 혹은 엎을 수밖에 없었다.

  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 천년학을 틀었다. 몇 명 없던 극장 안에서 만난 믿을 수 없이 아름다웠던 벚꽃의 날림을, 그 아름다움을 다시 바라보았다. 분명 그 깊은 것을 알지는 못한다. 허나, 그 지독한 역사 속에서의 걸음과 그 속에서 항상 자신을 부수고 다시 나아간 걸음에서 도착한 이 아름다움이 지니는 역사를 그나마 바라 볼 수 있었다. 난 책을 읽는 내내 최근에 본 감독님의 노쇠한 모습이 상기되며 생겨난 염려와 한명의 관객으로써의 강렬하게 느낀 다음 ‘걸음’에 대한 바램으로 인해 내 머리 속에 맴돌던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생각이 정말 이 책에 적혀져서 나와 통한, 책 속의 에필로그 전 마지막 문장을 끄집어내 이 글의 마지막에 적는다.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 2권, 정성일 발언: 제가 꼭 드리고 싶은 얘기는 그래서, 꼭 건강하셔야 됩니다.>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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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의 쾌변독설
신해철.지승호 지음 / 부엔리브로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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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생각하기에 남한은 편견을 이빠이 채우고 가동되는 점이 많은 땅이다. 정치적 이념을 떠나, 그러니까 좌든 우든 편견에 사로 잡혀 세상을 보는 이가 상당수고 그 상당수들은 모여서 대중을 이룬다. 나 역시 편견에 휩싸여 있고 벗어나려 발악하지만 편견 속에 매몰되어 멍 때릴때가 셀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편견을 박살내는 건데, 그 편견의 부서짐 속에 있을 당시에는 몸 둘 바를 모르겠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지만 결국 지나고 보면 굉장히 고마운 순간이었달까? 분명히 지금도 상당부분 편견에 틀어박혀 있지만, 내가 그런 부서짐을 지나오지 않고 편견의 옹성에 군림하고 있었다면 정말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을게 분명하다.

  ‘신해철의 쾌변독설’도 편견을 부수는 망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읽는 내내 머리 속에 나를 비추는 거울이 상기 되었는데 그것들이 소리를 내며 박살날때의 느낌이 통쾌하다. 이 책은 내 몇가지 편견을 박살 냈는데, 그 중 하나는 ‘신해철은 사기꾼’이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나는 편견에 많이 해방되었다’였다. 신해철은 사기꾼이 아니고 나는 역시 편견이 ‘이빠이데스’다.

  나는 여지 것 신해철과 싸이와 같은 급이라 생각했었다. 분위기 띄워 돈벌고 이름빨 좀 날린뒤 대출해서 차 사달라는 광고를 찍을, 그러면서 논리없이 논리있는 척 말을 씨부리길 잘하는 싸이와 신해철이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평소에 세상을 대하는 태도나 음악가로써 당연한 프라이드, 음악가로써의 정당한 행위와 요구, 이런 가수 하나 있어야 뽀다구 좀 나지 않나 했는데 있었다... 말 잘해서 띠껍고, 돈 많아 보여서 띠껍게 보는 이들에 결국 나도 낑겨 ‘아? 저 사기꾼!’이러고 있었던 꼴인데... 쪽팔리다고 밖에. 

  역시 감동은 신해철이 음악에 대해 언급할 때이다. 무슨 분야든 전문가가 언급하는게 재일 재밌있는데, 특히 진공관, LP, CD, MP3로 넘어가면서 바뀌는 음악에 대한 태도나, 그런 매체들이 음악을 듣는 태도에 끼치는 변화들을 얘기할 때가 완전압권이요, 감동의 물결이다.

  자본주의에서 음악인으로써 음악을 하기위해 음악산업 구조에 대한 진지한 관찰과 그에 상응하는 고민과 행동 등을 보면서, 그가 체제 안에서 직업에 위해 투쟁하는 모습들은 더 이상 함부로 음악가 신해철을 사기꾼이라 할 수 없게 만든다. 음악산업 안에서 돈이란 목적보단 음악을 하기 위해서란 목적이 있음을 알게 될 때 함부로 음악가 신해철을 언급하기 힘들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 ‘후진국에서 음악을 하려면 한 손에 계산기 한 손에 마이크가 있어야 된다고 여겼는데 그 말을 한지 20년이 지났는데, 20년이 지났으니 계산기는 내려놓아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감동, 고등학교 때부터 다짐한 자신의 신념을 토시하나 안바꾸고 지키는 신해철의 모습을 볼 때, 음악가란 직업에 대한 오만하다고 할 수도 있을 그의 프라이드를 동의하게 만든다.

  사회에 대해 거대해서 눈 돌아가는 담론을 언급하는 것이 아닌 당연한 상식을 언급하며, 왜 그래?란 질문하는 그의 모습은 스트레이트성 쨉이란게 이런거다란 걸 알 수 있었다. 대단한 담론이 아니라 상식이다. 그 상식에 놀라는 건, 그 상식에 신해철을 특별하게 대하는 건 우리가 편견에 겁나게 휩싸여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주먹으로 갈기다 두꺼운 옷으로 몸을 가리면 망치로 후려치는 그의 상식들은 화려하다. 그의 모든 의견에는 동의할 순 없지만, 자신과 맞닿아 있는 대중에 대한 그의 언급은 고민할 거리를 던져 주지 않나 생각이 든다. 흝어져 있다가 뭉쳐서 권력을 요구하는, 그래서 그들이 짖눌으려는 대상이 ‘사람’이라는 상식을 자꾸 잊는 행위에 신해철의 망치는 통렬하다. 다른이가 뭐라하건 내 생각엔 신해철은 ‘껍데기는 가라’란 말을 할 자격이 있다.

  그의 음악은 라젠카만 들었다. 그를 몰랐다. 그리고 그를 사기꾼이라 여겼다. 허나 신해철은 사기꾼이 아니었고 만만치 않고 그래서도 안되며 뽀대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 같다. 그를 모름으로 생긴 편견들은 박살 났고 그의 전진을 흥미롭게 지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남은 건 그의 음악을 신나게 들어보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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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vin Degraw - Gavin Degraw
게빈 디그로 (Gavin DeGraw) 노래 / 소니뮤직(SonyMusic)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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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반을 집어 들면 앨범 자켓에 새겨진 그의 듬직한 얼굴이 눈을 끈다. 뉴욕에서 태어난 뉴욕커이긴 하지만 뉴욕스러운 이미지보단 보스턴 구장에서 살 듯한 투박한 야구광스러운 면모가 풍긴다. 그런 그의 우직한 외모와 자신의 이름이기도 한 gavin degraw란 앨범명이 당당하게 뒤섞이니 듣기도 전에 그의 음악에 대한 왠지 모를 믿음이 생긴다.

  그의 음반을 듣고 든 첫 인상은 대단하진 않지만 앨범 자켓에서 그가 입고 있는 푸른 셔츠와 같은 시원한 느낌이 강하다는 것이다. 12곡의 곡들에서 이 곡이다!할만한 인상을 받진 못하지만 큰 차이 없이 고른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고, 음악사를 뒤흔들 듯 소름끼치거나 tom waits나 한대수처럼 듣는 이를 압도하는 기운은 느낄 수 없지만, 심플하고 시원한 느낌만은 출중하다고 본다. 그 시원함은 마치 원 테두리만 뿜어져 나오는 분수의 가운데에서 물에 싸여져 느끼는 안락한 시원함이랄까.

  앞서 말한 듯 12곡 모두 고른 완성도를 지니고 음악의 색깔 자체도 서로 많이 맞물려 있어서 앨범이 한바퀴 돌고 나면 12곡을 들었다기보단 한곡을 들은 인상을 받는다. 12곡의 곡들이 고른 완성도를 보이고 귀에 익숙하다고 하여 평균적이고 흔하다는 느낌이 아닌 귀에 잘 박히는 cf배경음 같은 느낌이 있다.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힘이 강하고, 귀에 쉽게 다가오면서도, 흘러가는 가요와는 다른 애틋함을 갖게 만드는, 인기를 끈 cf배경음 같은 느낌이 12곡 전반에서 느껴진다. 그런 특징으로 인해 드라이브를 하며 기분을 낼 때나 설거지를 할 때 극강의 파괴력을 지니리라 생각된다. 특히 설거지를 하며 들을 경우 촉감에서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물, 더러운 식기들이 닦이며 생기는 시각의 청명함, 흘러나오는 음악의 상쾌함에 자극되는 청각들이 뒤섞이며 지루하지만 꼭해야만 하는 일의 괴로운 시간을 대폭 축소 소멸시키는 신비한 효과를 발휘한다. 설거지에 환상적으로 들어맞는다고 무시하긴 쉬울지 몰라도 설거지에 맞는 음악들을 찾기란 상당히 힘든 일일 것이다. 너무 극강의 완성도라면 감상하는데 나를 내던져야만 하고, 다소 밍밍한 완성도라면 가뜩이나 지루한 나의 설거지를 더욱 늘리고 말 것이니 그리 쉽게 판단해선 아니 될 일이다.

  심플한 완성도를 띤 12곡 중 취향의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gavin degraw의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곡들이 있다. 2번 트랙의 초반 기타 선율, 4번 트랙의 있는대로 솟구친 절정 이후 원숙하게 조절하는 감정, 5번 트랙의 물 흐르는 듯 거부감 없는 변주, 아마도 가장 야심찬 것 같은 12번 트랙의 기타 선율 묵직함 등에서 보이는 징후들은 그의 다음을 기대하게 되고 앨범명에도 떡하니 적힌 gavin degraw란 이름을 각인 시키게 만든다.

  오늘따라 설거지가 꽤 쌓여있지만, 난 서두르지 않고 오디오의 전원을 켠 후 cd를 넣고 볼륨을 빵빵하게 올린다. 이제 지루함이 경쾌함과 흥으로 뒤바뀌는 경험을 하기위해 싱크대로 다가간다. 그리고 역시,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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