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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조종법 - 정직한 사람들을 위한
로베르 뱅상 , 장 레옹 보부아 지음, 임희근 옮김 / 궁리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선택은 힘들다. 우리의 삶에 끝없이 다가오는 자잘한 선택들의 행렬을 보고 있으면, 이 수많은 선택들이 부디 옳게 행해져야 하기에 머리가 지끈 거린다. 또 그 머리 아픈 선택을 정치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옳은 결과를 맞이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그로인해 두통, 생리통에 효능이 있는 게보린의 섭취는 늘어만 간다. 그런 노력에도 선택이 실패하면, 그래도 ‘자의’라는 명분하에 위로하고 감내한다. 허나 실패한 선택에 위로를 건네는 ‘자의’가 ‘자의’가 아니라면? 아, 상상만으로도 내 손은 본능적으로 게보린에게 달려간다. ‘인간 조종법’은 우리의 선택들이 그리 자유로운 것이 아님을 밝힌다. 이 씁쓸함이여. 저자들은 ‘조종’이라는 선정적인 단어를 들이밀며 우리가 지니고 있던, 우리가 방어막으로 삼던 자유라는 것을 허무로 치환한다.
자유를 허무로 치환하는 마술은, 그 이름도 찬란한 ‘딱지 붙이기’, ‘만간에 발 들여 놓기’, ‘문전 박대 당하기’ 등의 기법으로 이루어진다. 이 기법들을 통해, 어떻게 자유를 상실하고, 어떻게 타인의 자유를 상실시키고, 어떻게 자유를 지킬지 예비하게 한다. 아니, 애초에 자유란 위험하고 희박했음을 인지시킨다. 저자들이 말하듯, 책 속 기법들이 성립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롭다는 ‘느낌’이다. 이쯤 되니 유지태의 목소리가 아련히 떠오른다. “더 넓은 감옥에서의 삶은 평안한가요?”
책 속 기법들은 여러 가지지만 원리는 결국 하나다. 한 개인이 세계를 인지하는 질서에, ‘자유로움’이란 탈을 쓰고 침범해, 그 질서를 조종자의 목적에 자연스레 연결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자유롭다는 ‘느낌’이다. 자유롭다고 생각해야만, 우리의 질서가, 조종자가 마련한 상황을 거부감 없이 수렴하여 질서 속에 존속시킬 수 있다. 재미있게도, 이 책에도 조종 기법이 사용되어 있다. 조종이란 달콤하고, 그만큼 윤리적으로 위악적인 것이다. 그렇기에 조종이란 단어는, 자연스레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기에 ‘인간 조종법’이라는 책을 대하는 태도가 애초에 부정적으로 굳을 수 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저자들은 책속에서 잊을만하면 ‘독자 여러분은 조종법을 위악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는 식의 ‘딱지 붙이기’를 시도한다. 여기서 사용된 딱지 붙이기는 철저히, 책 속에서 요구한 수위에 맞추어져 있다. 우리의 질서를 자극하지도 않고, 원론적인 이야기를 펼치며, 우리가 자연스레 책을 판별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수준에 맞추어진 것이다.
저자들은 조종보다 자유를, 아니 자유로운 느낌을 더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실험환경이 아닌, 실제 삶 속, 예측 불가한 변수들이 한 가득인 실제 삶 속에서, 우리는 더욱 난해한 조종에 놓여 있다. 그런 수많은 변수 속에서, 자유롭다는 느낌 하에 수많은 위험과 실수를 멍청히 떠안는 것이다. 조종으로 촘촘히 엮어진 삶을 어떻게 방지해야 할까? 저자들은 크게 두 가지를 제안한다. 하나는 ‘책 속 조종기법을 잘 숙지하라’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이다. 조종법을 숙지하고, 조종의 상황을 알아차리라는 것과, 타인들과 조우하여, 자신이 세운 질서를 끝없이 자극하고 재정립하여, 정말 자연스레 조종에서 해방하라는 것이다. 저자의 두 가지 제안은 결국 하나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반추’다. 자기 자신에 대한 반추, 선택에 대한 반추, 결과에 대한 반추, 그 수많은 반추는 우리를 불편하게 할지 모른다. 허나 질서 속 안락이 주는 쾌감을 부수고, 수많은 조종을 맞서기 위해 생기는 불편함이기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불편함을 반갑게 맞이하라는 저자들의 제안으로 인해, 난 이 책이 단순히 실용서로 치부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질서를 부수는 것을, ‘자연스레’ 긍정하게 만드는 ‘조종’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