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 2
임권택.정성일 대담, 이지은 자료정리 / 현실문화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1권은 ‘첫 번째 찍은 날이 2003년 6월 25일’, 2권은 ‘첫 번째 찍은 날이 2003년 8월 14일’이다. 난 2권을 2007년 말에서야 발견하고 구입했으며, 절판 된 1권은 오매불망 끝에 2008년 초에 동네 작은 서점에서 찾아내고야 말았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2008년 4월이 돼서야 읽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을 끝낸 뒤 모습을 들어냈지만 내가 이 책을 만난 건 취화선이 끝난 후, 하류인생과 천년학이 지나고 나서다. 이 대담집에 하류인생과 천년학의 결여는 못내 아쉽고 궁금하지만, 분명한건 정말 굉장하다.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는 이 책은 임권택이란 작가의 삶의 자취를 쫓으며, 임권택이란 작가가 끝없이 기억에서 지웠던 영화들을 끝없이 되살리며, 항상 다음으로 가는 임권택을 쫓고 쫓아 취화선의 임권택에게로 배우로 가는 과정이다. ‘임권택의 영화는 원을 이룬다’는 말이 있듯 이 책은 취화선 ‘이후’를 중심으로 그의 필모그래피를, 그의 역사를 거쳐 다시 취화선으로 돌아오는 원이다. 그 기억하기도 싫은 한국 근대사를 견디고 온 임권택이란 한 개인의 기억 혹은 역사, 그 기억하기도 싫은 시절의 기억하기도 싫은 ‘단지’ 직업감독이란 생각으로만 만들어 온 영화의 임권택이란 감독의 기억 혹은 역사, 그것들을 거치고 온 지금의 임권택이란 작가를 이루는 원.

  이 책은 임권택의 영화의, 그러니까 임권택이라고 칭할 수밖에 없는 영화들의 수수깨끼를 최선의 태도로 묻고 최선의 태도로 가르친다. 그 것에 멈추지 않고 임권택 감독의 영화의 근원, 인본주의에 대한 물음과 끝까지 인본주의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와 그래야만 한다는 가르침. 한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대하는지와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대해야 인간인지, 그리고 영화를 어떻게 대해야되는지에 대한 가르침이 책 속에 휘감겨 있다. 여기서 가르침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다. 최선을 대하고 그 속에 담긴 존경으로 하는 질문과 그 질문에 최선을 다하는 대답으로 이루어진 책에서 질문자가 받은 가르침은 읽는 이에게 다가온다.

  처음 취화선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승업이 도자기 터의 불을 보고 있는 다음 장승업의 시점 숏으로 도자기 터의 불이 담긴다. 그 때, 내가 그 불을 보며 들었던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마스터 숏으로 전환된 뒤 담담히 들어가 불과 하나되는 장승업을 보고 다가오는 놀라움. 어린애가 현세에서 뛰어넘을 것이 없음을 깨달은 예술가와의 통함은 정말 놀라웠다. 그 어떤 것이 어린 내가 장승업과 통하게 한 것일까?

  임권택의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알 수 없는, 간단명료하게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감상자로써 영화에게 느끼는 끌림, 혹은 ‘좋다’란 영화에 대한 감정. 그것이 정말 궁금했다. 그리고 그 궁금함은 책에서 조금이나마 정말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장승업과 통한 나, 그리고 알 수 없는 끌림의 근원이 어디서 다가오는지 왜 그런지 거장은 말한다. 한국. 한국인이란 정체성의 고민을 그다지 해보지도 않았고, 한국인이란 것에 대한 고민이 실.용.적.이.지.못.한 지금 5년을 늦게 도착한 책이 울리는 깊은 무언가. 그리고 단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커다란 무언가. 5년을 늦게 도착한 깊은 이 땅에서 영화를 하고 이 땅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각성. 그 ‘한국’

  난 책에서 말하는 결국 한국영화는 임권택이란 말을 깊게 혹은 통렬히 깨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을 알았다고 해봤자 그것은 거짓이다. 단지 그 ‘도리 없는’ 숏 혹은 씬들이 왜 도리가 없어야 되는지에 대한 글을 읽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읽음으로 분명 알았다. 혹은 잃은 것을 다시 느꼈다.  이 땅에 살면서의 태도를, (임권택이란 것의 모든 것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배우고자 할 수 없지만) 그의 삶의 태도를 인간에 대한 태도와 인간에 대한 마지막 ‘희망’등으로 어찌해야 한국에 사는 인간인지를 다시 느꼈다. 그리고 영화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되는지, 영화를 어찌 대하는지를 느꼈고 난 요즘 생기려 하는 조금의 자만감을 완전히 엎었다. 혹은 엎을 수밖에 없었다.

  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 천년학을 틀었다. 몇 명 없던 극장 안에서 만난 믿을 수 없이 아름다웠던 벚꽃의 날림을, 그 아름다움을 다시 바라보았다. 분명 그 깊은 것을 알지는 못한다. 허나, 그 지독한 역사 속에서의 걸음과 그 속에서 항상 자신을 부수고 다시 나아간 걸음에서 도착한 이 아름다움이 지니는 역사를 그나마 바라 볼 수 있었다. 난 책을 읽는 내내 최근에 본 감독님의 노쇠한 모습이 상기되며 생겨난 염려와 한명의 관객으로써의 강렬하게 느낀 다음 ‘걸음’에 대한 바램으로 인해 내 머리 속에 맴돌던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생각이 정말 이 책에 적혀져서 나와 통한, 책 속의 에필로그 전 마지막 문장을 끄집어내 이 글의 마지막에 적는다.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 2권, 정성일 발언: 제가 꼭 드리고 싶은 얘기는 그래서, 꼭 건강하셔야 됩니다.>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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