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 - The Yellow Sea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보고 놀랐다. 예정 크랭크 업을 넘기고 재촬영을 거듭하며 안 좋은 소문을 사방에 뿜어된 영화의 결과물이 추격자의 후진 점만을 확장해 놓은 영화라니. 이야기 자체도 추격자와 별반 다를게 없어서, 추격자를 보았다면 황해는 굳이 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건강에도 좋을 것이다.




  만듬새에 한정해서 평가하자면, 추격자는 적당한 매무새의 스릴러라 생각한다. 적당한 이유는 마지막 결투 시퀸스가 상당부분 깎아 먹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홍진은 카메라를 미친 듯 흔들며 격투하는 인물들을 찍는데, 한 장면 한 장면 자세히 보다보면, 막 찍어서 막 가져다 붙였음 알 수 있다. 그걸 감추기 위해, 카메라를 흔들어 된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180도 가상선을 대책없이 넘나 들어서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어진다. 이런 촬영에 둘 다 똑같은 짐승들이라는 표현이라 치장 할 수 있겠지만, 막 넘나들다가도 곧잘 누가 어떤 포지션에 있는지 정확히 집어 주기에 그 치장에 동의 할 수 없다.




  암튼, 내가 하고픈 말은, 추격자에서 그렇게 후지게 찍은 부분은 마지막 결투씬 뿐이라는 기억인데 반해, 황해에서 그렇게 후진 부분이 굉장히 많다. 인물들이 들러 붙어서 정신없이 다투면 어김없이 출몰하는데, 가장 많이 출몰하는 부분이, 면가와 구남의 부산혈투 부분이다. 일단, 면가의 부하들과 구남이 도끼를 들고 배 안에서 결투하는 씬 보면, 면가의 부하들을 있는데로 몰아 넣어 구남의 위기를 과잉으로 부각 시킨다. 구남은 오대수가 아니어서 이들을 다 때려 죽이지는 못하고 도망쳐야 하는데, 유일한 출구가 잘 열리지 않는 상황이다. 나홍진은 이런 상황을 구남이 구석으로 몰린 (관객들이 애닳아서 이것저것 따지지 않는) 상태에서 미친듯이 카메라를 흔들어 뭘 찍는지 모르게 하곤 벌컥 문이 열리게 한다. 그 뒤 여차저차 으라차차 해서, 구남은 항구에서 빠져 나와 차를 훔쳐 탄다. 면가는 가지고 온 차를 타고 구남을 추격한다. 역대 카체이스 중 가장 후진데, 우선 카메라가 인물들에게 바싹 붙어 있어 전체상이 그려지지 않는다. 전체 상이 그려지지 않으니, 도로를 역주행하건, 맞은 편에서 차가 오건 긴장감이 생길 일이 만무하다. 그 상태에서 차의 일부분이라 유추되는 무언가를 찍어서 집어 넣는다. 이런 식으로 전체 상을 안그리고, 뭘 찍은지 잘 모르겠는 것을 막 집어 넣고, 쇼트를 미친 듯이 넘기니, 카체이스 후반부 도대체 왜 도로가 개판이 되고, 차가 폭발하는지 알 수가 없다. 뭘 본지 모르니 멍할 수 밖에 없다. 아! 이것은 남한 사회의 혼란을 묘사한 것인가?




  위에서 만듬새가 적당한 영화라고 했는데, 그렇다고 영화에 대한 평가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추격자를 굉장히 위악적인 영화라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관객이 솟아 오르는 분노를 참고 이야기를 따져 보면, 우리가 분노해서 김윤석을 응원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정우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나쁜 짓을 한다. 그 자식 나쁜놈 맞다. 그런데 김윤석도 사람 치고 다니고, 여아를 위험한 곳 위주로 데리고 다니다 결국 위험에 빠뜨린다. 그나저나 김윤석은 포주이다. 그러니까 하정우나 김윤석이나 개자식이긴 마찬가지인데, 슈퍼에서 서영희가 죽은 이후로 관객은 강력히 김윤석을 응원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김윤석은 마누라라도 잃은 놈 마냥 질질 짜고, 노래는 귀가 아플 정도로 울어된다. 이 상황에서 살며시 바꿔치기를 하는 것이다. 때문에 난 추격자가 쓰레기라고 생각하는데, 황해 역시 그런 점은 꼭 빼다 박았다. 널부러진 수많은 시체들과 엄청난 양의 핏물들. 이렇게 과잉된 이미지들은 서사가 단단하지 못해 구멍이 숭숭난 곳을 못보게 눈을 가린다. 예를들어, 구남은 마누라가 딴놈과 섹스할 생각에 미쳐 사람 죽일 결심한다. 또 있다. 돈에 환장한 면가가 셈에 무뎌지고 자기 파괴적 선택을 한다. 또 있다. 버스 회사 사장은 돈 때문에 권력을 쥔 치졸한 놈인데, 돈으로 해결하면 될 문제를 힘도 없으면서 괜히 괴물 같은 이와 결투할 상황을 만든다. 이렇게 도무지 이해를 알 수 없는 행위들 이후에 썰리고, 조각난 시체들이 너저분하게 스크린을 채우며 눈을 가린다. 이 점은 남한 사회의 포악성을 묘사한 것인가?




  위에 언급한 후진 점들 철떡 철떡 붙여 그려내고 싶었던 것은, 남한 사회가 더럽다는 것이다. 구남은 교수를 죽이려 빌딩으로 진입할 때, 교수를 죽이러 온 다른 암살자들을 목격한다. 결국 교수는 자신의 운전수한테 살해당하고 구남은 그것을 목격한다. 또는 면가와 버스회사 사장을 죽이러 간 구남은 알아서 죽어 있는 둘을 발견한다. 구남이 마주한 이런 결과들은 남한 사회 어디든 살육으로 덮여 있을 것이라는 일반으로 확대된다. 이런 점을 한 쇼트로 표현한 것을 추격자에서 볼 수 있다. 김윤석이 서영희의 딸을 병원에 입원시키고 광폭하게 모는 차를, 근처에 정차 중이던 엑스트라3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차안에서 목격되는 장면이다. 이는 저런 괴물의 광폭함이 어디에서든, 누구에게서든 목격될 수 있다는 일반으로 확장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추격자를 보았다면 황해를 볼 필요 없다. 황해에서 그 어떤 쇼트도 저 쇼트만큼의 가치를 품고 있지 않다.




  추격자에 비해 후지지만, 우연을 통해 아수라를 일반으로 확장을 통해, 남한 사회가 더럽다는 것을 표현하려는 점은 황해에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이 나홍진이 황해를 찍으며 목표로 삼은 것이라 결론을 내리기 전에 우리가 판단해야 할 것이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이 논리를 상실하고 굳이 자기 파괴적 선택을 한다는 점을 다시 상기하자. 중요한 것은 ‘굳이’에 있다. 왜 그들은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 뻔한 선택을 하는 것일까? 이 선택에서 극중 인물의 논리는 사라지고 다른 것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데, 훼손되고 파멸하는 신체를 보고 싶다는 욕구다. 남한 사회의 포악성을 드러내기 위해 시체들을 쌓아 올려야만 하는 것일까? 바로 위 문단에서 언급한 추격자의 쇼트 같은 함축으로도 충분히, 남한 사회가 아귀장임은 드러난다. 영화 후반부에 갈수록 시체는 늘어난다. 시체가 늘수록 관객은 피곤해진다. 이는 남한 사회를 체험한다는 게 육체적 피곤을 동반한다는 게 아니라, 별반 다르지 않은 정보를 끝도 없이 성실히 전시하니 지루한 것이다. 암튼, 시체들이 널부러진 장면이 영화의 반을 채웠는데, 우리가 나홍진의 선택이 남한 사회가 개판임을 드러내고 싶었다는 것을 믿을 것인가?




  불쾌해진 눈과 귀와 머리를 위해 히치콕을 떠올리자. 히치콕은 방대하니 이창만 떠올리자. 이창에서 살해 사건이 결론으로 도출된 것은, 건너 집을 훔쳐보던 주인공이 한정된 장면을 통해 그 결과를 도출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그 결과가 행동이 제약된 주인공이 휠체어 위에서 습득할 수 있는 것만으로 결과를 도출했다는 것이다. 구남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이 주어들은 것들을 통해, 다른 남자와 섹스하는 아내를 ‘본다’. 난 구남의 꿈이 허접하다고 생각한다. 당신도 그래야 한다. 황해를 보며, 남한 사회가 개판임을 보면 안 된다. 이름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일본의 한 평론가가 영화가 안 좋아지기 시작하면 세상이 안 좋아진다고 했다. 이건 히치콕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때문에 황해를 본 사람들이, 구남이 말하던 개병이 중2허세병임을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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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1-28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공감가는 부분이 많은 리뷰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나홍진 감독... 이래저래 악명이 참 높았는데, 이 영화로 악명에도 정점을 찍었더군요.

딴지는 아니지만, 4번째 문단 6번째줄... 서정희가 아니라 서영희입니다^^;

글샘 2011-01-28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나리오가 좀더 세련됐더라면 그래도 제법 괜찮았을 영화였다고 생각하는데요...
많이 안타까운 작품이었습니다.

mechlab 2011-01-28 09:30   좋아요 0 | URL
상영본을 괜찮은 편집자 손에만 넘겨도 좋은 결과물이 있을텐데 고집을 부리니...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