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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패러독스 - 시간이란 무엇인가
필립 짐바르도.존 보이드 지음, 오정아 옮김 / 미디어윌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자기 계발서에 머리 박고 살면 지옥 간다. 처음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자기 개발서는 멀리하니, 더욱 이해되지 않았다. 다행히도 최근 그 이유를 깨달았다. 자기 계발서에 머리박고 있으면 지옥가는 이유는 바로 ‘적응’ 때문이다. 자기 계발서는 현실이 엿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파고들어, 바로 코앞에 희망을 들이밀며 적극적으로 적응할 것을 독려한다. 한마디로 희망고문. 여기서의 적응이란? 바로 지옥에 관한 적응이다. 세상, 그러니까 시스템이 후져 빌빌 기는 독자에게, 그 세상에 적응할 것을 독려하는 것이다. ‘내가 희망을 줄게, 그러니 그냥 처박혀서 내일을 꿈꾸렴.’ 그렇기에 수 많은 자기 계발서의 주요 모토,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나’다. ‘나’가 문제고 ‘나’를 바꿔야 한다. ‘아... 내가 문제구나’하며 적응 - 안주하는 것은 프로이트가 말한 잠에 대한 욕구, 죽음 충동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니 지옥일 수밖에.

  타임 패러독스 역시 자기 계발서와 맥락을 같이 한다. 그러니까 원제의 ‘Change Your Life’를 보듯 삶의 전환이지, ‘시간은 무엇인가?’란 질문은 하지 않고 있다고 보면 된다. 책 속 시간관들 중 미래지향적 시간관을 긍정하며, 미래지향적 시간관이 왜 긍정적이고 필요한지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데서 볼 수 잇듯, 철저히 ‘Change Your Life’를 위해, 자기 계발서들이 반복하는 행로를 향한다. 어떻게 살아야, 시간을 실용적으로 활용하고, 안정된 삶을 살고, 행복할 수 있고, 잘 사랑할 수 있고, (가장 중요히 언급하는) 경제력을 키울 수 있는지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가히 자기 계발서 총집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앞서 말했듯 이 책은 미래 지향적 시간관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러면서 ‘미래’에 반대되는 시간관으로 ‘현재 지향적 시간관’을 들고 있는데, 이 시간관의 주요 문제는 미래에 대한 망각이라고 한다. 그 예로 ‘현재 지향적 시간관’에 속한 사람 대부분이 술, 마약, 섹스, 로큰롤에 ‘중독’되어 있다고 한다. 여기서 저자들이 무슨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 볼 수 있다. 섹스까지는 너그럽게 마음먹으면 용인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계는 있는 법이다. 로큰롤에 대한 입장에서 저자들의 태도의 문제는 적나라하게 들어난다고 생각한다. 음악에 대한 중독도 아닌, 로큰롤(난 로큰롤 팬이 아니다)이라는 특정 장르의 부정에서 볼 수 있듯, 이 책은 철저히 기득권적 생활관에 의해 작성된 것이다. 그럼으로 저자들이 긍정하는 삶이란, 백인 중산층의 삶이다. 그런 환경에 가족의 결단력이 높은 집안일수록 미래 지향적이며, 대부분의 하류층과 사회부적응자들은 현재 지향적이라는 것이다.

  저자들은 미래 지향적 시간관과 현재 지향적 시간관을 이분하고, 미래 지향적 삶을 긍정하며 우위에 놓는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책 속 시간관들의 우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판단근거는 ‘경제력’이다. 미래 지향적 시간관과 현재 지향적 시간관 중, 미래 지향적 시간관을 긍정할 수 있는 이유는, 미래 지향적 시간관을 지닌 이들 대부분이 상류층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저자들의 긍정할 만한 삶과 부정할만한 삶을 구분할 수 있는 눈은 경제력인 것이다. 그러한 시선이 가장 적나라하게 들어나는 부분이 있다.

300p - "'시간이 돈임을 기억하라' - 벤자민 프렝클린...(중략)... (이 말에) 3가지 지혜 덩이리가 있다. 1)시간은 소중하다. 2)시간은 근면한 노동을 통해 돈으로 바뀐다. 3)시간이 흐르면 투자한 것의 가치가 복리로 증가한다."

그러니까 저자들이 가장 긍정하는 삶이란, 미래 지향적 시간관을 가지고, 지금 당장 주는 쾌락에 목매달지 말고, 시간을 훌륭히 활용해 철저히 실용적 인간이 되어, 돈으로 전환되는 노동을 감사해 하며 백인 중산층 생활을 하는 것이다. 저자들이 시간을 그리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하나다. 바로 돈이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요구하는 삶은 무엇을 풍요롭게 하는가? 독자를? 책 속에 긍정하는 삶을 실천하는 이를? 아니죠. 시스템을 풍요롭게 하는 거죠. 그 시스템이란? ‘자본주의’지 뭐. 저자들이 요구하는 삶은, ‘자본주의’를 열렬히 긍정하고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저자들이 요구하는 삶이란 철저히 자본주의형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들은 사활을 걸고, 노동과 소비 - 경제활동의 활성화를 깨뜨리는 마약, 술, 섹스 그리고 로큰롤에 대한 ‘중독’을 예방하고, 시간을 훌륭히 활용해 실용적 혹은 경제적 인간을 만들고, 미래 지향적 삶의 필수 요소 중 하나인 가족 결속력의 중요성을 통해 안정적 경제 활동의 기반을 다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책의 구성이 시간 심리학의 이론을 굉장히 희박하게 다루며, 그 희박한 이론을 가지고 사랑, 행복, 비즈니스, 정치, 경제에 대입하여 풍요로운 삶을 그리기 위해, 그것을 주입시키기 위해 대부분을 할애하는 것이다.

  ‘저자가 긍정하는 삶’에 대한 주입이 가장 잘 들어난 것이 ‘나는 누구인가’ 테스트다. 이 테스트는 총 3번 등장한다. 테스트의 주요 목적은 내가 누구인지 적는 것이지만 3번의 테스트가 조금씩 다르다. 중요한 것은 왜 한번에 몰아서 질문하지 않고, 3번에 나누냐는 것이다. 테스트가 나누어진 것은, 독자 스스로 ‘책이 긍정하는 삶을’ 긍정했다고 여기게 하기 위함이다. 테스트의 과정을 보자. 테스트 사이사이 미래 지향적 시간관에 대한 긍정의 이유와 실례를 들어 미래 지향적 시간관의 중요성을 이해시킨다. 그러니까 1번 테스트와 2번 테스트 사이 미래 지향적 시간관의 긍정을 설명하고, 2번 테스트를 하게 하는데 그로인해 미래 지향적 시간관에 (자연스레) 좀더 치우친 생각을 가지고 작성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3번 테스트로 향하면 그 치우침은 더 늘 것이다. 테스트의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이고, 그것을 ‘내’가 적기에 주관적 작성이라고 여기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 미래 지향적 시간관을 긍정했다고 여기게 한 후, 책은 철저히 자기 계발서들이 지니고 있는 컨벤션에 부합한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커피한잔을 마시며 지그시 눈을 감으니 희망이 코앞에 다가왔다고 느껴질지 모른다. 그렇게 희망을 부여잡고, 시스템에 적응하며 노력하겠지. 그러나 이상하게 이 구렁텅이에서 쉽게 빠져 나오질 못한다. 그럴 때마다 다시 책을 피며 이렇게 외친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자나!” 이게 바로 희망고문의 표본이다. 이렇게 모든 문제를 나로 돌리고, 그로인해 표출될 외침을 차단하고, 적응을 긍정하는 것은 스스로 지옥을 만드는 길이다.

  난 충분히 대한민국이 지옥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자기 계발서의 인기, 대중음악들이 곧장 hook으로 달려가는 모습(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 개그 코너가 인기를 끌면 맥락을 자르고 웃음이 발생되는 요소만을 남기는 모습 등은 결국 철저히 하나를 외친다. 바로 ‘적응’. 애초에 창조를 거부한 것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 똑같은 구성이지만 하이라이트만으로 조합해 재미를 느끼는 건 적응인 것이다. 나아감이 없이 주저앉는 것, 그 안주하고 안일하려는 몸부림, 결국 자꾸만 잠에 빠져들려는 것, 바로 죽음 충동이다. 그렇기에 수많은 적응에 대한 외침들에 굳이 이 책을 더 보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보태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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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rtmtjs 2008-12-23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도 자기 계발서 책들을 보면서 허전함을 느꼈던것에 대한 답을 찾은것 같네요... 여간 해선 답글은 안 쓰는 데;; 님의 말을 보고 많이 놀라고 감동 했습니다. 요즘 많이 힘들어서 책을 많이 보았는데, 책 보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은 아니다'라는 의견을 보니 기분이 많이 좋아 졌습니다. 많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분 같아요. 많은 도움이 됬습니다. 다음에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