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왕가위 감독, 노라 존스 (Norah Jones)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이 글은 네오이마쥬에도 올랐습니다 - http://neoimages.co.kr/news/view/1726

 왕자웨이의 9번째 장편 영화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만들어진지 일년이 지나서 한국에 왔다. 대부분의 반응은 서양 물 먹은 왕자웨이가 ‘나쁜’나르시즘에 빠졌다고들 한다. 여전히 왕자웨이의 영화 속에선 나레이션과 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음악, 황홀한 스텝프린팅, 그녀들의 발 등이 영화를 수놓고 있다. 그의 영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반복되고, 타락천사가 중경삼림의 반복처럼 보이고, 2046이 화양연화의 반복처럼 보인 것처럼, 그러나 거기에서 더 나아가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왕자웨이의 모든 영화를 조합한 반복처럼 보이려한다.  


  다들 말하듯 이 반복처럼 보이는 영화가 전작들과 다른 건 좀 더 냉랭해진 시선 - 왕자웨이가 바랬듯 미국영화 감독이 왕자웨이 영화를 따라한 것 같은 느낌일 것이다. 허나 난 이 왕자웨이 자신을 따라한 시선, 그러니까 자신의 영화들과 - 기억들과 거리두고 자신의 영화와 기억을 바라보는 점 때문에 황홀한 기분이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미칠듯이 설레이는 중이다. 무엇이? 그의 다음 영화가.

  영화는 거의 의도적으로 전작들을 불러낸다. 제레미(주드 로)의 카페는 미드나잇익스프레스를 카페의 cctv 카메라는 ‘타락천사’의 하지무의 카메라를 영화 속 인물들은 전작의 인물들의 흔적을 길거리들은 화양연화의 길거리를 불러낸다. 심지어 yumejis theme는 약간의 변형을 하여 들려온다. 여기서 끝난게 아니다. 영화를 보는 내는 영화는 전작들을 불러오고 영화를 보는 우리들은 그 전작을 본 기억을 불러일으켜 ‘그 기억’과 영화를 보게된다. 허나 이것은 단순한 재반복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건 중화권에서 영미권으로 단순한 변화 속 재반복이 아니라 영화에서 yumejis theme ‘재해석’ 되었듯 영화도 전작들을 ‘재해석’한다.

  cctv카메라와 하지무 카메라의 차이는 주관과 객관의 차이다. 하지무의 카메라는 하지무의 손에 들려 하지무의 주관적 기억을 테잎에 시기고 그가 바라보는 것들을 담아내었지만 제레미의 손에 들려지지 않은 cctv카메라는 고정된 자리를 지키고 벌어지는 일들을 주관적 개입없이 그대로 담아낸다. 여기서 제레미가 주관적으로 할 수 있는 개입은 단지 기억할 만한 것들과 아닌 것들을 분류하고 기억할 만 한 것들을 간직하는 것 뿐이다. cctv카메라의 객관화는 영화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영화에서 엘리자베스(노라존스)의 사적인 공간에 들어가지 않는다. 엘리자베스와 그가 생활했을 집은 멀리서 바라보고 멤피스의 엘리자베스의 숙소 안으로 카메라가 들어가지 않고 외부에서 머무른다.

  또 영화는 내부는 외부를 외부는 내부를 ‘들여다보듯’ 찍혀있다. 내부에서 외부를 들여다 보는 것은 이상한 말일지 모르지만 정말 그렇게 찍혔다. 카페나 바가 아닌 길 위는 카페나 바와 별반 다를 듯 없어 보인다. 외부가 내부인 듯 한 인상이 강한데 지나간 기억(전작의 외부)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철저히 객관적인 위치를 고집한다. 영화가 불러들인 전작의 흔적들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다른 각도에서 보거나, 반성하거나, 그것을 재해석하여 다시 나열하는 것이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중경삼림이나 타락천사처럼 이야기를 분리하여 진행해도 될 듯 보인다. 그러니까 중경삼림이나 타락천사처럼 나눠질 이야기가 나눠지지 않아도 된 것은 엘리자베스의 존재 때문이다. 뉴욕을 떠난 엘리자베스의 여행은 과거의 왕자웨이로의 여행이다. 영화의 후반부 제레미를 다시 찾은 엘리자베스가 제레미의 카페에서 태근하는 종업원이 나가는 모습을 보며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엘리자베스가 문을 바라보는 숏 바로 다음에 과거의 머뭇거리는 모습의 숏이 보이고 다시 엘리자베스에게로 넘어온다. 그녀는 자신의 과거의 모습과 직접 목격한다. 엘리자베스가 직접 자신의 과거를 목격했듯  엘리자베스의 여행은 시간에 흐름에 견디지 못해 파멸하고 그 빠른 흐름을 따라잡기 위해 안간힘을 부리고 과거를 지우기 위해 노력하고 과거를 무시하고 다가오는 시간을 믿지 않는 왕자웨이 자신이 자신의 전작 속 인물들을 마주보는 여행이다. 엘리자베스 - 왕자웨이는 그들을, 그 기억들을, 그 시간들을 다시 불러들여 그것을 보고 나아갈 준비를 한다.

  영화에서 엘리자베스가 그토록 차를 갖고 싶어하는 것은 시간과 같이 흘러가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전철과 버스는 자신의 힘이 아닌 강제적으로 떠밀린, 흐름을 인정하지 않아야만하는, 도착지가 불분명한 시간이다. 허나 엘리자베스가 직접 몰 차는 그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인 수용의 태도이거나 그 흐름 속에서 자신을 길을 만들려는 의지다. 또 제레미가 기억 속 그녀와 조우하는 씬이 있다. 기억의 표상인 그녀와 마주친 제레미는 모아놓은 키를 돌려주고 버리게 된다. 과거와 마주한 후 제레미와 엘리자베스와 왕자웨이는 변한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가 전작들과 변한 것 중 하나가 ‘고요함의 순.간.’이 생긴 것 같다. 철저히 비교하지는 않았지만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전작이였으면 음악을 쓸 순간 조용히 응시하거나 세상의 소리를 그대로 듣는다. 그 시간의 흐름을 외면하기위해 음악을 높이 올리고 애도하기위해 울리던 음악들은 정적 속에서 그것을 응시하려는 시선에, 흐르는 시간 속 계속되는 삶의 소음에게 자리를 내준다. 성급한 언급일지 모르나 엘리자베스와 레슬리가 라스베가스로 향하던 중 둘이 식당에서 식사하기 전 인서트와 음악이 나오다 음악이 갑자기 중단되는 지점이 있다. 전의 왕자웨이였으면 이어졌을 음악이 갑자기 멈추는 것은 왕자웨이의 변화의 과정이지 않나 생각해본다.

  변화된 태도로 - 자신의 길을 정할 수 있는 태도로 엘리자베스가 도착한 곳은 제레미와 그가 있는 카페다. 그 카페는 제레미의 그가 말했듯 변하지 않고 그대로이다. 새 단장을 하고 싶었지만 카페와 맞는 것이 없다는 말에 제레미의 그녀는 생각이 많거나 감상에 빠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카페란 ‘공간’은 과거의 기억으로 남는다. 그대로인 곳에 다시 돌아온 변한 엘리자베스와 그대로인 곳을 지키고 있는 변한 제레미는 지나간 시간을 당당히 마주할 수 있고 침착히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변화하지 않는’ 공간에서 그들은 ‘이제’ 버텨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좋은 변화인지 나쁜 변화인지 모르나 변화할 왕자웨이가 도착한 곳이 출발지점이라면 그 곳에서 변화한 왕자웨이가 만들어낼 영화가 무엇일지 정말 궁금하다. 다른 사람의 위치에 서 영화를 만들어 자신을 본 왕자웨이가 ‘다른 사람에게서 자신을 보고 배워가며 다시 생각하고 결국엔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되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는 더욱 좋게 변화할 것이란 믿음이 생긴다.

  왕자웨이의 도약의 징후를 떠나서 엘리자베스와 제레미가 다시 조우한 후 나누는 키스숏 사이에 잠시 나오는 파이가 일으키는 감정의 울림, 내 영혼을 끄집어 내어 제레미에게로 내던져 그들이 느끼는 촉감과 휘몰아치는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엘리자베스의 빅클로즈업에 이상한 설레임을 느끼게하는 그 씬만으로도 왕자웨이를 업고 다니고 싶은 심정이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왕자웨이의 필모그래프 중 잠시 쉬어가는 페이지일 뿐이라고 애써 위안하고 싶은 영화’라기 보단 후샤오시엔의 ‘남국재견’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된다. 왕자웨이의 전작을 타인의 위치에서 꼼꼼히 확인하고 그 흐르는 시간에 대해 좀 더 능동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 왕자웨이에게 남은 것은 엘리자베스와 제레미의 키스처럼 황홀한 경지로의 도약 밖에 없으리라 생각된다.

  솔직히 지금 난 내기를 제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이 영화가 왕자웨이의 또 다른 변화의 시작을 알리며 이 영화 이후의 왕자웨이가 굉장한 곳으로 점핑할 것인가? 하지 못 할 것인가?를 두고 내기를 하고 싶다.

  물론 난 ‘그가 굉장한 점핑을 한다’에 신형 재규어라도 걸 자신이 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일 2009-07-18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다가 너무 졸려서 꺼버렸다능.ㅋ

mechlab 2009-12-28 16:06   좋아요 0 | URL
어쩌라능.ㅋ

리버 2010-01-26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통해서 왕가위에 대한 필자의 무한기대는 느낄 수 있지만 도대체 뭐가 점핑의 징후인지는 와닫지 않네요.. 그럼에도 그의 다음영화가 궁금하긴 합니다. 무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