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너를 보면 설레."남편이 떨어지는 꽃잎들을 눈으로 좇으며 말했다.그녀는 못 들은 척 딴청을 부렸다. 굴을 담은 용기를 열었다 닫았다 하거나 봉지에서 참외를 꺼내 냄새를 맡으며 그의말을 외면했다. 그와 나누지 못할 이야기도, 그와 함께 겪지못할 일도 없었지만, 남편이 원하는 그것만은 할 수 없었기때문이다. 그렇게 된 것이 사랑에 관한 문제는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낯설고 금기인 몸은 육친의 것이듯 어느 무렵쯤,그녀에게 그의 몸은 그렇게 여겨졌다. 그것은 그녀에게도 슬픈 일이지만 다시는 자신의 몸을 안지 못하고 떠나게 될 남편을 생각하면 또 다른 슬픔이 느껴졌다.그에게 다른 사람이라도 있으면 어떨까.그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도 상관없을 것 같았는데 그럴수 있는 사람이 아닐 것 같아서 그것이 그녀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 P95
이 글의 끝 마침표를 보는 것은 그녀의 고통에 공감해주는 최소한의 예의였다. 모친상에 그가 나와 보여준 행보와 정치권의 조문에 얼마나 또 아팠을까 걱정된다. 그러든 말든 무시하시라! 그를 징역살린 걸로 당신이 할 일은 다했다. 잘했다. 수고했다. 고맙다.
시인 백석이 북한에서 지낸 1957-63년의 기록이다. 아니, 소설. 글에 대한 자유를 빼앗긴 백석의 고뇌가 절절하게 그려진다. 읽으면서 힘들었다. 읽고 나서 오래남는 편은 아니지만, 읽을 때는 감정적으로 많이 몰입하나보다. 억압적인 그 시절 북한에 다녀온 것 마냥 잘 읽어지지도 않고 몸이 힘들었다. 최근 읽은 책들이 다 그랬다. 그만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