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문장을 필사해 봅니다.
고 전유성 님이 마지막 읽으신 책이다. 코미디언 후배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겨 있었지. 내가 책을 썼는데 누군가가 생의 마지막에 내 책을 읽어줬다면 어떤 느낌일까. 상상하기도 어렵다.암튼 나는 이 소설을 읽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너무 재미있어서 그 자리에서 쑥쑥 읽으셨다는 분도 계신데 이상하게 나는 그랬다. 천주교 집안의 아이로 태어나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자란 화자의 성장소설이다. 톡톡튀는 발상도 재미있고 힘든 시기에 대한 쿨함도 유쾌하다. 다만 내가 이 책을 꽤 오래 잡고 있었던 이유는, 나의 게으름에 더해 내용이 툭툭 끊어져서 자꾸 책을 덮게 만드는 것에 있었다. 에피소드가 세 페이지 정도면 전환되는데 나는 이게 힘들다. 모든 컨텐츠가 쇼츠화 되는 이 시대에 적응해야지 싶다가도, 소설만은 그러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글을 읽는다는 건 다른 컨텐츠보다 시간이 엄청 드는 일이다. 그랬기에 그 분위기에 푹 잠기고 싶다. 암튼 나는 그렇다고!^^
번역된 본문을 읽기 전에 역자 김주원의 ‘옮긴이 해제 : 음악 교육자로서의 쇼팽의 진면목‘을 먼저 읽었다. 한국말로 쓰여진 부분이 번역보다 편하니깐!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쇼팽에 대한 잘못된 인상은, 유약하고 예민하고 감상적 낭만주의의 살롱음악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쇼팽은 바흐의 바로크 다성음악의 전통을 계승하고 드뷔시의 인상주의 음악을 예견한다. 연주에 대한 쇼팽의 견해를 종합하면 ‘귀를 기울이는 자세‘, 즉 손끝에서 풀려나오는 음악의 경이를 약간의 불확실성과 함께 기다리고 존중하는 것이다. (511 p. 요약)조성진이 드뷔시를 치고 헨델을 녹음하고 라벨을 연주한 여정이, 왠지 이에 맞닿아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당타이손이 연주한 2015년 쇼팽콩쿨 베스트 앨범의 뱃노래와 마주르카를 들으며, 이 글을 읽는 시간이 어찌나 값진지 달콤하기까지 하다. #제자들이본쇼팽#장자크에겔딩거#김주원#프레드리히쇼팽#무슨책읽어
러시아에 토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가 있다면, 프랑스엔 발자크가 있다. 그 시절 인간군상을 세밀하게 그려낸 ‘인간극‘의 초반 작품. 돈을 벌어야해서 열심히 쓸 수 밖에 없었던 발자크 입장은 다소 불쌍했지만, 덕분에 후대에 풍성한 문학 선물이 주어졌다는 아이러니. 하숙집에서 벌어지는 고리오 영감과 근처 한 열명쯤의 이야기는 아침드라마 수준인데 재미있어서 술술 읽힌다. 예나 지금이나 변치않는 진리는, 자식에게 돈으로 사랑을 표현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딸들의 애정행각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데 당시엔 그런게 유행이었고 받아들여졌나보다. 사랑도 결혼도 시대에 따라 하는 방법이 다르다는게 이상하다. 그런 가운데 이 시대의 우리는, 어떤 것이 (부모에게 자식에게 남편에게) 올바른 사랑의 방법인지 중심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