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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김찬호 지음, 유주환 작곡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평점 :
작년 뉴스를 뜨겁게 달구었던 갑질논란과 땅콩회항사태부터 최근 연일 일어난 총기사고와 칼부림까지... 사회가 어째 이리되었나 무섭기도 하고 한탄스럽기도 하다.
이 모든 사태뒤에 숨어있는 `모멸감`이라는 감정, 어떤 것이고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이 책을 통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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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하고 격하될 때 살아갈 힘을 잃어버린다. 그렇게 생명을 억누르는 행위 가운데 하나가 바로 모멸이다. 많은 경우 모멸은 다른 모멸로 이어지면서 자괴감과 수치심을 확대 재생산하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분노는 자기나 타인에 대한 폭력으로도 표출된다. 한국 사회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모멸이 만연하고 있다. 그로 인한 모멸감은 때로 오기로 변모하여 강인한 생활 에너지가 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무기력과 자기혐오 그리고 질투와 복수심으로 이어져 삶과 사회에 균열을 일으킨다......
첫째, 구조적인 차원에서 접근이 요청된다.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압축적으로 경험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다. 생존 자체가 다시 버거워진 탓도 있다. 의와 식은 상당부분 해결되었지만 주는 오히려 훨씬 힘들어졌고 최저생계비를 버는 수준의 일자리조차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경제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제도를 수립하고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날로 심화되는 불평등 지수가 개선되도록 분배의 틀을 리모델링하고, 너무 높은 부동산 가격 때문에 생활이 허덕이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정치의 몫으로 수렴되고, 그것을 촉진하기 위한 사회운동의 과제가 제기된다.
둘째, 문화적인 차원의 접근을 생각해야 한다.
특정한 기준으로 인간의 귀천을 나누는 의미체계가 모멸감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로 학력에 대한 위계의식을 들 수 있다... 경제력, 거주지, 가정환경, 피부색, 외모, 나이 등 외형적인 차이를 절대화하면서 차별하고 멸시한다.... 대다수 직장인들이 과다한 업무만이 아니라 인간적인 수모도 감내해야 한다..... 모멸감을 줄이려면... 가치의 다원화가 핵심이다. 인간과 삶을 바라보는 시야를 여러 차원으로 틔워야 한다. 그럼으로써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평범함과 비범함을 나누는 기준 자체를 상대화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인간이라면 모두가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바탕과 존엄함에 눈을 떠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마다 지니고 있는 다양한 잠재력이 개발되고 꽃피울 수 있는 기회가 열려야 한다.
셋째, 개인의 내면적인 힘을 키워야 한다.
삶의 자리에 모멸이 만연하는 까닭은 스스로의 품위를 잃었기 때문이다.... 타인 위에 군림하지 않고 위엄을 누릴 수 있을까. 부드러우면서도 당당한 기품은 어디에서 우러나올까. 품격은 겉멋이 아니다. 예절은 단순한 고분고분함을 넘어선다. 자기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너그러운 성품에서 격조 있는 삶이 가능하다. 높은 것에 사로잡혀 삶을 창조하기에 자기를 돌볼 줄 안다.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자신을 자각하며 스스로 채워진 마음이 타인에게 스며들기에 품위 있는 관계가 형성된다. 그러한 위엄과 기품이 사회적 풍토로 자리 잡을 때, 모멸감의 악순환도 줄어든다. 그 길은 자존의 각성과 결단에서 열린다.
-<모멸감>, 김찬호. 맺음말 중에서 307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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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을 옮겨 적고 보니, 참... 이런 뜬구름 잡는 소리도 없다 싶다. 나는 실천하려고 해볼 의양은 있는데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는 변하기 어려울테고 어짜피 나를 모멸하는 사람들은 존재할 터이니, 적절한 선에서 나도 내 잇속을 챙기고 사는게 오히려 적절하지 않겠는가도 싶다.
하지만 이 책에 인용되고 있는 <채근담>의 한 경구를 마음에 꼭 담고 싶다.
˝자기의 장점으로 남의 단점을 드러내지 말고, 자기의 졸렬함으로 인해 남의 능함을 시기하지 말라.˝
하루하루 후회없이 순간순간 노력하면서, 타인의 시선보다는 자기자신에게 떳떳해질 수 있는 사람. 우선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