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요즘말로 만년필 덕후의 기록이다. 신정민의 책 소개와 한때 필기구를 좋아했던 과거가 있었기에 -이젠 필기구를 통 쓸 일이 없어 할 수 없이 멀어졌다- 보자마자 읽고 싶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내용이 재밌다.만년필로 역사추론과 인물분석이 가능하다는^^잠시 내 만년필도 꺼내 잉크를 풀어 가동해 보았다. 며칠이라도 써보자!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번역했던 김진영이 자신의 <병상 일기>를 남기고 떠났다. 보기도 너무 아플까봐 펼치지 못했는데, 책장을 겨우 넘겼다. 결론적으로 정신은 육체를 이기지 못하였다. 육체를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한다. 마지막은 누구에게나 너무 모질다.
트럭에서 야채를 산다. 왜 이렇게 비싸요. 며칠 전엔 1000 원밖에 안 했는데…… 여자가 꽈리고추 봉지를 들고 불평하니까 야채 장수는 껄껄 웃으며 대답한다. 예쁘게 생겼잖아요. 사람이나 물건이나 예쁘면 비싼 거예요. 아침마다 아파트 앞에 트럭을 세우는 이 남자는 방금 떼어 온 야채들처럼 늘 싱싱하다. 그의 목소리가 크지만 시끄럽지 않다.오히려 듣는 사람의 배 속으로 들어가서 근심을 쫓아내고마음을 비워준다. 그건 분명 그의 목청을 통해서 밖으로나오는 생의 명랑성 때문이다. 정신이 깊고 고요한 것만은아니다(그것이 나의 오랜 착각이었다). 정신은 우렁찬 것이기도 하다. 우렁찬 정신은 야채 장수처럼 목청으로 제 존재를 보여준다. 그 목청의 정신을 배울 때다. (25)
신변잡기 에세이지만 묘한 매력이 있다.
소설은 일상의 현실들에서 이야기의 실마리를 가져오고,그렇지만 현실의 그것과는 다른 가상의 세계를 만든다. 독자는허구인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마치 어딘가 실제로 존재하는 누군가의 삶이기라도 한 것처럼 소설 속의 사건과 그것을 겪는 인간과, 또 다른 인간들과의 관계 사이에서 매우 진지하고 섬세하게 공감의 근거들을 찾으며, 허구와 현실 사이를 오간다. 일상에서는 그저 앗 하고 지나갈 뿐이었던 어떤 찰나, 불쾌하거나 다정하거나 노엽거나 놀라운 삶의 순간들을 반추하며 독자는 소설의페이지 어딘가에서 멈춰 서기도 하고, 그 페이지로부터 이어지는 다른 상상의 길을 찾기도 한다. 소설은 대개 거짓말을 기본으로 하지만 우리는 작가가 만들어 낸 이야기를 읽으며 거짓말처럼 깊고도 아득한 우리들 삶의 여러 진실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멈춤과 헤맴, 또는 몰입과이탈의 시간에 함께하기 좋은것으로 한 잔의 맥주만 한 것이 있을까. - 212 p.
스노우볼, 이쁘죠?알라딘에서 받고, 알라딘에서 자랑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