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룡뇽을 헤치는 괴물들을
작고 힘없게 해주세요.
D_day 2

김근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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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다른 이들의 리뷰를 애써 외면했던 영화였다. 혹여, 시시해질 우려 때문이었다.
누가 올드보이를 말하려 할때면, 딴청 피우며 귀를 막고 기대했더랬다. 그런 기대 때문에 더한 노파심으로 걱정이긴 했지만.

조용한 새벽녘을 틈타 전등을 끄고 볼륨은 밖으로 약간 새어나갈 듯, 그러면서 내 귀엔 약간 크게 들리도록 세팅을 했다.

오프닝에서 엔딩까지 나는 마네킹처럼 화면만을 응시하며 때로는 오대수로, 혹은 이우진이 되어 있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난 내가 아니었다. 난 극중 이우진에게 반복되는 질문을 주문처럼 외고 있었다.

아니, 왜, 왜...

나는 새벽녘, 홀로, 이 영화에 갈채를 그리고 감사와 경외를 보내고 말았다. 

누구보다 최민식이라는 배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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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씨님께서 2003-09-24일에 작성하신 "추운 가을이 왔습니다."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가을이 왔습니다.
추운 가을입니다.
전라도의 지붕, 진안고원이 겨우 실감납니다.

하늘은 티가 없습니다.
장마와 태풍이 물러간 뒤, 마을 개천마저 식수인 척 맑습니다.

안팎으로, 크고 작은, 환절기 이벤트가 이어집니다.

10월 첫날은 면민 체육대회가, 19일엔 가을겉이 잔치, 11월 첫날은 능길마을생태학교 개소식이 매달려 있습니다.

사이사이, 마을에서 잠시 쉬고 묵고 가려는 도시민들의 전화주문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미 몇일전에도, 도시의 몇가족과 더불어 어줍잖게 허수아비축제를 시늉냈습니다.

이처럼, 마을에서,

주로, 두서없이, 느닷없이, 뜬금없이 벌어지곤 하는 일련의 이벤트 또는 일 거리들을,

마을에 오기 전처럼, 도시에서 처럼, 사업체에서 처럼,

그래도, 최소한이라도, 체계화, 최적화된 시스템으로 개선해야 할지 고민됩니다.

그리 하는 게, 과연 개선일지, 발전일지, 누구에게 유용하고 이로울지,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됐다고 할때까지는,
나무를, 떌감을 구하는 게 풀씨네의 지상과업입니다.

일단, 학교안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재목들을 추스리고 다듬은 후,
주변의 산야를 훑겠다는 일정입니다.

천연염색을 매일, 빠짐없이, 주로 배우고 있는 겨자씨와 짚씨는 열외입니다.

올리브씨, 피씨 등은 홍화씨로부터, 짬짬이 기타를 배우고있습니다.

이제, 매주 일요일 저녁에는 양조장 주인 박선생2로부터 풍물장단도 배우려고 합니다.

마을에 오니, 배울 게 많습니다.
아니, 배우고 싶은 게 많아졌습니다.

공연히 읽지 않던 이야기 책도, 새롭게 대하고 읽게 됩니다.
태백산맥을 몇장 읽으니, 벌교에 가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습니다.

이제서야, 겨우, 비로소,
학생이 되려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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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화씨님께서 2003-09-20일에 작성하신 "2003. 9. 18. 목요일 - 으름을 배낭 가득히, 집에 도착 할 무렵 비 내리기 시작"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예정한대로 산행을 시작했다.

불씨는 일찍부터 주먹밥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며칠 만에 여유 있는 마음으로 산행을 하자고 마음을 먹으니 다들 기분이 홀가분한 듯 하다. 아침 10시. 나무씨와 피씨, 불씨는 일 때문에 남고 나머지 여섯 명이 주먹밥을 나누어 짊어지고 집을 나섰다. 마을 뒷산으로 접어들며 다들 말이 없다. 비가 오리라는 예보가 무색하게 날이 맑다. 도끼와 낫을 들고 맨 뒤에 따라오는 홀씨의 표정이 비장하다. 반드시 뭔가 한 건 하고야 말리라는 결연한 의지가 있는 듯하다. 소풍을 가듯, 산책을 하듯 느긋하고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산행이 시작 되었다.

예상보다는 산이 깊지 않다. 숲이 조성 된지 얼마 되지 않아 대부분 침엽수림이어서 별로 먹을 것이 없어 보인다. 작은 나무들 사이로 난 길을 통해 산을 오르다가 산소를 두개 지나쳤다. 오랜만의 산행이어서 얼마 오르지 않아서부터 등에 땀이 흐른다. 망원경 까지 준비한 짚씨가 산을 둘러본다. 열매를 달고 있는 것이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산을 더 올라 보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훤한 공터가 나오는 듯 하더니 도로가 나타났다. 산판 길이다. 길가에 군데군데 시멘트로 석벽을 쌓아 놓은 것이 도로를 포장할 예정인 듯 하다.

산판길을 따라 여유 있는 산행이 시작 되었다. 길가에는 군데군데 샘이 나오는 곳이 있다. 목을 축이고 길을 따라 내려갔다. 지팡이를 짚고 저만치 앞서가는 겨자씨의 뒷모습이 영락 없는 땅꾼이다. 휘돌아 내려가는 길을 따라 가다가 한 무리의 은사시나무 군락을 만났다. 파란 하늘과 조화를 이룬 은사시나무의 흰 몸통이 잘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모퉁이를 돌아서자 멀리서 트롯트 가락이 들렸다. 공사 하는 사람이 차에서 크게 틀어놓고 듣는 모양이다. 한참을 가다보니 사과씨와 올리브씨가 뭔가를 쳐다보고 있다. 산 중턱을 휘도는 길 밑으로 자란 나무에 으름덩굴이 올라가 있었다. 나무 아래쪽에는 열매가 없고 위쪽에는 당알당알 많이도 달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나무 밑을 서성거렸지만 나무가 너무 높아 무리였다. 그러는 동안 앞서 가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 합류했다. 나무에 올라가려고 시도하는 짚씨를 만류했다. 너무 위험해 보였다.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거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이왕 길에서 내려온 김에 계곡을 따라 내려가기로 했다. 얼마 가지 않아 어린 으름덩굴이 바닥에 가득 깔려 있는 곳이 나타났다. 조금 더 내려가다가 앞서 가던 사람들이 갑자기 분주해 졌다. 으름 덩굴을 발견한 것이다. 으름덩굴은 한 둘이 아니었다.

주변에는 으름덩굴이 빽빽했다. 나무마다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가방을 내려놓은 일행은 신이 났다. 나무에 오르고 매달리며 열매를 따기 시작했다. 덩굴이 나무들을 죽게 하는 것일까 아니면 죽은 나무만 타고 올라가는 것일까. 으름덩굴이 휘감고 올라간 나무는 대부분 죽어 있어 쉽게 휘거나 부러졌다. 바나나덩이처럼 여러개가 한꺼번에 달린 것도 많았다. 이미 열매가 벌어져 씨가 떨어진 것도 있고 다 벌어져서 하얀 속살을 드러냉 것도 많다. 손을 쉬는 틈에 속살을 한입 무었다. 달착지근한 것이 바나나를 먹는 듯 하다. 그러나 씨를 씹는 순간 환상이 깨졌다. 입안을 온통 휘젓는 아린 맛이 강하다. 나무를 통째로 휘어 놓고 으름을 따며 모두가 신이 났다. 분위가 시끌벅적 하다. 한참을 따다가 시장기가 느껴졌다. 벌써 12시다.

가방을 풀어 준비해 온 주먹밥을 꺼냈다. 불씨가 챙겨 준 배 몇 알이 든 봉지도 꺼냈다. 주머니칼을 꺼내 배를 깎으면서 나눠 먹는 주먹밥이 일품이다. 묵은 배라서 조금 퍽퍽하긴 해도 물기가 있어 마른 밥과 함께 먹기에는 그만이다. 배가 맛이 없다고는 하면서도 사과씨는 배를 잘도 먹는다. 벌써 통째로 두 개째다. 배밭집 아들로 커서인지 배 먹는 솜씨가 남다르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더니 역쉬~ 다르다.

점심끼니를 챙기고 나니 다들 으름을 더 이상 따고 싶지 않은 표정이다. 조금 쉬다가 할까? 그래도 으름에 욕심을 내는 홀씨가 작업(?)을 시작하자고 하니 다들 주섬주섬 연장을 챙긴다. 으름덩굴은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가방이 한 둘 채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으름 하나에도 집착을 보이더니 이제는 대충대충 따자고 한다. 나무를 올려다 보다가 눈에 티가 들어갔다. 그걸 어찌 해 보겠다고 하던 와중에 나뭇잎이 오른쪽 눈알을 스치고 지나갔다. 금방 눈이 시큰시큰하며 아프다. 눈물이 흐르고 눈을 굴리기가 힘들다. 이런~ 눈을 심학 다쳤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사과씨에게 눈을 보게 했더니 검은 반점이 생겼다고 한다. 조금 참아 보기로 했다.

욕심껏 으름을 가방에 챙기고 산을 내려 왔다. 한 두 방울 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중간에 도로 공사 하는 한무리의 아저씨들을 만났다. 점심을 마치고 막 일을 시작하려는 참이다. 포크레인을 동원하고 꽤 여럿이 작업을 하는 것이 일이 크게 벌어진 모양이다. 폐금광을 지나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을 지나다가 담장밖에 자리 잡은 오미자 덩굴을 만났다. 빨갛게 익은 열매가 예쁘다. 열매 몇 개를 딴 올리브씨에게 한번 깨물어 보라고 했다. 신맛에 일그러지는 표정이 예쁘다. 학교에 거의 도착할 무렵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하신다. 생명의 비. 하지만 올가을은 너무 하신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우산을 들고 집으로 갔다.

으름열매를 한곳에 모았다. 양이 꽤 많다. 이걸 팔아서 술로 바꿔 오자는 홀씨의 농에 모두들 웃는다. 효소를 만들지, 술을 만들지를 논의 하다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일단 바닥에 깔아 놓았다. 무엇이 되었건 두둑하게 쌓아두니 흡족하다. 산행은 겨우 오전 몇 시간으로 끝났지만 몸이 곤한지 겨자씨와 짚씨가 방에 눕는다. 함께 드러눕고 싶지만 오늘 저녁에는 닭도리탕을 해 주겠다던 약속을 지키려면 장을 보러 가야 했다. 사과씨와 동행해서 안성엘 나갔다. 비는 계속 나리신다. 무심한 비. 그래도 이곳에는 심하게 내리지는 않지만 서울, 경기, 강원 지역은 호우 경보란다. 부모님 댁과 춘천에 있는 가족이 걱정된다. 지호는 몸이 조금 좋아졌는지... 불현듯 아이들이 보고 싶어진다.

안성은 작은 동네다. 시장도 그리 크지 않고 할인점이 있기는 해도 물건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냉동닭이 싫어서 다른 곳으로 가기로 했다. 생닭을 판다고 씌어있는 집엘 들어갔다. 가게 문은 열려 있지만 쥔장은 없었다. 문에 붙여 놓은 전화번호로 통화를 하고 한참을 기다려도 쥔장이 나타나질 않는다. 이런 것이 시골의 여유로움인가? 다른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시장골목에는 산 닭을 직접 잡아서 파는 곳이 있었다. 육계는 한 마리에 5천원, 토종닭은 7천원 이란다. 육계는 너무 작아서 두 마리를 해도 식구들이 먹기에는 부족 할 듯 하다. 토종닭을 6천 원 씩에 두 마리 잡기로 흥정을 했다. 순순히 허락하고 아주머니는 능숙한 솜씨로 닭을 잡았다. 닭 두 마리에 무 한 뿌리, 파 한 단을 사니 만 4천원이 들었다. 만5천 원을 들고 장을 보러 나왔으니 더 이상 살 것도 없다.

차를 둔 곳으로 왔다.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문제가 하나 생겼다. 닭도리탕을 먹으면 당연히 쐬주 생각이 날텐데,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다. 큰맘 먹고 감춰둔 돈을 꺼냈다. 대포알 두개를 챙기니 5천원이다. 차에 감추었다가 정 못 참으면 내 놓으리라 생각하고 트렁크에 넣었다.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전화벨이 울렸다. 집에서 온 전화다. 춘천에는 비가 많이 오는데 이곳은 괜찮은지 안부를 묻는 아내의 목소리가 정겹다. 지호는 잘 있냐고 아이의 안부부터 물었다. 탈진한 아이에게 링거를 주사하고 조금 좋아졌단다. 다행이다. 몇 가지 안부를 묻고 전화를 끊었다. 원래 잔정을 많이 내 비치지 않는 아내지만, 어려운 속마음을 내 비치지 않는 것이 늘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다. 약속대로 저녁에는 닭도리탕을 내었다. 맛있게 먹어주는 식구들이 고맙다. 이것저것 넣어서 양을 많이 했는데도 두 솥이 다 없어졌다.

식사 후에 사무실에 앉아있는데 불씨가 바람을 잡았다. 열 받는 일이 많은 날이라 술 마시고 확 죽어 버리고 싶다고.... 어차피 생겨날 일이었다. 일을 정리하고 집으로 올라갔다. 남은 음식을 덥히고 술잔을 냈다. 나무씨는 혼자 책을 읽으며 머루주를 즐기고 있었다. 조금 있다가 한명, 두명 자리를 채웠다. 토론이 진지하게 번져갔다. 서로를 염려하고 앞으로 꾸려 갈 일에 대한 얘기를 하다보니 자리가 점점 길어졌다. 대포알 두개가 다 터져야 자리가 정리될 듯 하다. 나는 자정 무렵 부상당한 병사처럼 쓰러지듯 자리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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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춘천에서 직장에서 지방으로 출장을 갔다가 본가에 들러 하루 곤하게 자고 났더니 이른 새벽이었다. 이런 예기치 않은 아침맞이는 늘 상쾌한 기분을 만들어 준다.

정동향의 아침 창,
저 그림을 내 것으로 간직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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