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 퇴근길 남편의 손에 뭔가가 들려 있었다.
선물처럼 보이는데...이게 어인 일인가!
집근처에 과일가게나 붕어빵,순대,어묵,호떡 수레,제과점 등이 지천으로 널려 있어도
남편의 손엔 검은 비닐봉지 하나 딸려 온 적이 없었다.
항상 두손을 휘~휘~ 저으며 팔랑대며 들어 오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브에 뭔가 들고 들어 온 것이다.
이브와 선물. 아주 낭만적인 구도였다.
들고 있는 물건에 박혀 있는 내 눈길을 보더니
"어!,이거 책상 위에 있었어,다른 사람들 책상 위에도 있던데~"
십 년 넘게 살았건만, 난 아직도 남편에게 허무맹랑한 기대를 해, 제 풀에 기겁하곤 한다.
왜 아직 미련을 못버렸을까,체념하고 살지,하고 생각해보니,
만약,내가 그에게 그나마 그 기대마저 놓아버린다면,
난 그와 살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사람과,희망 없는 내일은 같은 이름일 수도 있나보다. 내겐.
문제의 그 선물,나중에 알고 보니,동료 직원이 올려 놓은 선물이었다.
며칠 전,그 집 아이 생일 파티에서 만난 ㅈ엄마,
그날 목소리가 많이 잠겼었는데 지금은 괜찮은가 모르겠다.
애 생일 파티 해준다고,장소를 빌려서 십 여명을 초대했는데,
케잌,쿠키,피자,딸기,파인애플,사과,귤 등 갖가지 과일,음료수와 물,
새벽 수고로움을 말고 있을 김밥까지 여러가지로 신경 많이 쓴 것 같았다
거기다,초대한 친구들에게 보낼 선물까지 준비했으니.
여기선 초대한 아이들은 물론 생일 맞은 아이의 선물을 들고 오지만,
초대 받은 아이들에게도 답례 선물을 들려 보낸다.
이것 저것 정신 없었을 텐데,동료들의 크리스마스까지 챙기는 넉넉함까지.
하여튼 ㅈ엄마를 보면,뭐든 척척 해내는 듯 하여 여간 듬작한 게 아니다.
'인생 뭐 있어! 그냥 하면 되지!' 라는 말을 연상시키는 그녀.
그녀 앞에선 아무리 복잡하고 번거로운 문제도 단순.명료해진다.
그녀의 추진력이 부럽다.
그나저나 난 애들 생일 파티 해 줄 생각 없는데...쩝
지금 애들 둘 모두 집에 있다.
둘 다 방학을 했는데,큰 아이 학교는 겨울방학이라 해봤자
12월20일부터 1월 3일까지 한 보름 정도밖에 안된다.
여긴 방학 말고도,학기 중간 중간에 삼사 일 혹은 하루씩 쉬는 날이 끼어 있다.
이름은 student holiday,teacher holiday,bad weather makeup day 다양하고
early release days도 있는데 이 날은 오전만 공부하고 마친다.
봄 방학도 일 주일 있고, thanksgiving 에도 일 주일 쉰다.
긴 겨울 방학에 비해 여름 방학은 5월 마지막 주부터,8월 셋째 주까지 엄마들에겐 가혹하리만치 길다.
그래서 긴 방학 동안에 대부분 여름 캠프에 참여 한다.
캠프의 길이는 일반적으로 일 주일 남짓이며,약 100불 가량의 참가비가 필요하다.
캠프의 종류는 대부분 축구,농구,수영 등 운동이나,댄스 종류다.
인기있는 캠프는 봄에 이미 마감이 되고,참가비도 두 배 정도 비싸다고 한다.
이런 형태의 캠프로 삼 개월 스케쥴을 다 채웠다고 뿌듯하다고 하는 ㅎ엄마 앞에서
난 몹시 초라했다.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ESL 수업 약 2주와, 수영 캠프 2주가 전부였으니...
마땅히 참가하고픈 캠프가 없기도 했으려니와 실은 게으른 탓이다.
우리집에서 세 집 건너가면 커뮤니티에서 운영하는 무료 수영장이 있는데,
40도를 예사로 넘는 여름,심심한 방학 동안 우린 수영장에서 살았다.
날이 덥다보니 수온이 높아서,물 속에서 놀다 보면 되려 더 덥기도 했지만
딱히 할 일이 없는 우리 셋은 열심히 출근도장을 찍었다.
덕분에 우리 아이들을 비롯해 나까지 모두 초코렛을 입힌것 마냥 고옵게 탔다.
큰아이는 수영을 곧잘 하게 되어서 내년 여름엔 인어공주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작은 아이도 물에대한 두려움에서 거의 벗어났다.
but 매주 월요일,수영장 쉬는 날은 모두 우울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