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자전거 타기를 좋아한다. 어쩜 자전거 자체보다 몸을 움직이는 바깥 활동을 좋아한다는 말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왕복 15k정도의 마트를 뒷자리에 두 세살난 아이를 싣고, 어떤 날엔 등에 업고 자전거를 타는 무모한 짓을 하기도 했다. 더운 땡볕에 가로수도 없는 길을 달릴라 치면 5분도 되지 않아 땀이 맺히지만 그래도 집에 박혀 있는 것보담 밖에서 흘리는 땀이 좋았다. 그 자전거가 미국에 와선 차고에서 방치되고 있었는데.
미국 도착후 타이어에 빠진 바람을 넣다가 바람 넣는 구조가 한국과 다른 것에 제대로 대처 못하고, 바람 넣은 입구에 파킹을 빠뜨려 그후로 쭈욱 차고에서 먼지만 쓰고 있었던 것. 차고에 쓰레기 버리러 가며 자전거를 볼 때마다,또 이웃집 아이가 엄마와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당시 킥보드로 아이를 데려다 주던 나는 자전거 생각이 너무나 간절했었지만,미국에서 자전거 탈일이 얼마나 있겠어 혹은 인건비도 비싼데 뭐하러 고쳐,곧 한국에 갈텐데 그때 가서 고쳐야지.하고 미루고 있었다. 그러면서 귀국도 점점 다가 오고 있었으니...
자동차도 팔기 위해 내 놓고 이것 저것 귀국 준비를 하면서 심난한 상황을 지나고 있었는데,갑자기 연장근무 발령이 난 것. 막 튀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100m선수에게 부정출발 총성이 울렸을 때의 허탈함이랄까. 남들은 축하한다고도 하는데 내 태도는 축하 받는 이의 것이 아니었으니. 어리둥절한 눈으로 입은 댓발이 나와서 이번 여름을 어찌 나지.고민하는 복합 당황 상태였다. 기껏해야 6개월 혹은8개월 연장이라지만 곧 출국할 생각에 신나 있었던 내겐 날벼락. 이제 추운 셋방 살이 끝내고 생애 내 첫집에서 안정되게 살 수 있겠구나 손꼽았었는데. 봄에 귀국해서 춥지 않겠다고,당분간 차 없이도 볼일 보러 다닐 수 있겠다고 다행이라 여겼건만 겨울에 귀국하게 생겼으니.
이런 연유.연장근무로 인해 자전거가 부활하게 되었다. 자동차 없이는 꼼짝 못하는 미국의 게으른 생활 리듬에 더이상 묻어 가지 않으리라, 덤으로 얻은 몇 개월, 자전거로 내 행동반경을 넓히리라 맘 먹었다. 작은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정오부터 난 바로 자전거를 타고 집근처 가장 가까운 마켓에 다녀왔다. 3,4마일 정도 될 것 같은데 인도 없는 비포장과 횡단 보도 없는 차도를 건너야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최대한 조심조심. 가는 길은 오르막도 잠시 있는 코스를 선택했는데 돌아올 때 선택한 코스는 아주 무난했다. 편도 삼 사십 분이면 충분한 거리였다. 양배추, 매운고추, 맘에 꼭 드는 메모 수첩이 담긴 비닐봉지를 자전거 앞바구니에 싣고,오랜만에 등짝에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느긋하게 페달을 밟으니 내가 알고 있던 공간과 내가 살았던 시간이 아닌듯 새롭다. 이리 좋은 것을 그동안 추운 집에서 외투 끼어 입고 덜덜 떨고 있었다니 난 바보였구나.
40도가 넘는 한 여름엔 죽어나겠지만 25도 내외의 지금은 딱 즐거운 기온이다. 자전거로 다니니 자동차로 다녔을 때는 못 봤던 많은 사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좋구나.
자전거로 새로운 시간과 공간의 문을 열었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이 생각난다. 흙에 관한 그의 감상이 오래 머릿속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