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자신이 아무 고통없이,별 수고 없이,그도 아니라면 그럭저럭 해내는 일.  

누군가는 같은 문제 앞에서 쩔쩔 맬 수도 있다는 걸 염두하지 않는다.  

이해하지 못한다. 

어쩜 당연하다.  

비웃음꺼리가 되고 농담조의 비아냥 대상이 되고.  

자꾸 뛰어 내리라고,할 수 있다고 어깨를 밀어대니 환장할 노릇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내가 생각해도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난 왜 겁내는 건가.  

기대에대한 부담인 건지,평가라 여기기 때문인 건지.   

게다 나로 인해 타인이 곤란해지니 가슴엔 돌덩이를 안고 있는 듯. 

단지 경험 부족으로 발발 떨게 된다는 것도 알지만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몇 번 겪어봤지만,그래서 할 수는 있을 것 같지만.  

그저 숨고 싶다.  

단절되고 싶다.  

그냥 일상에 머무르고 싶은 바보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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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Green 2009-02-14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치게 추상적인 넋두리지만 풀어 놓은 후,하루. 미약한 객관화 도달.낑낑대던 문제가 쪼그라들었다.코끼리에서 강아지 정도로. 까짓거!! 힘든 문제에 다다랐을 때,일단 조목조목 적어 본다던 한비아님의 글이 떠올랐다. 일단 적어 보고 신세를 볶든지 말든지...
 

 

작년에 처음 미국에서 겨울을 지냈다. 11월까지도 거의 여름 날씨처럼 더웠더랬다. 학교 끝나고 아이들 데릴러 걸어 가면 짧은 거리지만 겨드랑이에 땀이 밴다. 12월이 되면 차차 쌀쌀해지기 시작하는데, 아침 기온과 낮기온의 차이가 20도 가량 되니 차량에선 아침엔 히터를 켜고 낮에는 에어컨을 켜야되는 헷갈리는 날씨가 온다. 1월까지 낮 최고 기온이 5도 내외의 추운 날씨가 계속된다. 금년엔 작년에 비해 추운날이 훨씬 많았다. 전기장판이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전자파가 찜찜하여 그냥 춥지만 옷을 껴입고 견딘다. 대신, 펼쳐놓은 대학노트만한 찜질팩이 있는데,렌지에 2분 정도 돌려 자기 전에 엉덩이 밑에 깔고 누우면 온몸이 노근하게 풀리고 찜질방에 들어간 것 마냥 서서히 몸 전체로 으슬으슬한 전율이 지나간다. 이불을 턱끝까지 끌어 올리고 누워있을 때마다 이게 바로 겨울의 맛이라는 생각이 자석처럼 따라온다. 감사를 강요받는다. 

작년 이맘때쯤에 남편에서 물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 겨울은 끝난거야? 그런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 온 듯 하다.. 이곳의 겨울은 12월과 1월 딱 두달인가보네.했었다.  

지금 스밀라의 눈에대한 감각을 읽고 있다. 

나는 구조적으로 세상에서 배울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일을 연습해 왔다. 단념하는 법을p250  

최근 내게 필요한 답이 아닌가. 포기와는 다른 의미. 단념. 

만약을 위해 나중에 읽을 책으로 이제까지 스밀라를 미워뒀던 게 다행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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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자전거 타기를 좋아한다. 어쩜 자전거 자체보다 몸을 움직이는 바깥 활동을 좋아한다는 말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왕복 15k정도의 마트를 뒷자리에 두 세살난 아이를 싣고, 어떤 날엔 등에 업고 자전거를 타는 무모한 짓을 하기도 했다. 더운 땡볕에 가로수도 없는 길을 달릴라 치면 5분도 되지 않아 땀이 맺히지만 그래도 집에 박혀 있는 것보담 밖에서 흘리는 땀이 좋았다.  그 자전거가 미국에 와선 차고에서 방치되고 있었는데. 

미국 도착후 타이어에 빠진 바람을 넣다가 바람 넣는 구조가 한국과 다른 것에 제대로 대처 못하고, 바람 넣은 입구에 파킹을 빠뜨려 그후로 쭈욱 차고에서 먼지만 쓰고 있었던 것. 차고에 쓰레기 버리러 가며 자전거를 볼 때마다,또 이웃집 아이가 엄마와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당시 킥보드로 아이를 데려다 주던 나는 자전거 생각이 너무나 간절했었지만,미국에서 자전거 탈일이 얼마나 있겠어 혹은 인건비도 비싼데 뭐하러 고쳐,곧 한국에 갈텐데 그때 가서 고쳐야지.하고 미루고 있었다. 그러면서 귀국도 점점 다가 오고 있었으니... 

자동차도 팔기 위해 내 놓고 이것 저것 귀국 준비를 하면서 심난한 상황을 지나고 있었는데,갑자기 연장근무 발령이 난 것. 막 튀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100m선수에게 부정출발 총성이 울렸을 때의 허탈함이랄까. 남들은 축하한다고도 하는데 내 태도는 축하 받는 이의 것이 아니었으니. 어리둥절한 눈으로 입은 댓발이 나와서 이번 여름을 어찌 나지.고민하는 복합 당황 상태였다. 기껏해야 6개월 혹은8개월 연장이라지만 곧 출국할 생각에 신나 있었던 내겐 날벼락. 이제 추운 셋방 살이 끝내고 생애 내 첫집에서 안정되게 살 수 있겠구나 손꼽았었는데. 봄에 귀국해서 춥지 않겠다고,당분간 차 없이도 볼일 보러 다닐 수 있겠다고 다행이라 여겼건만 겨울에 귀국하게 생겼으니. 

이런 연유.연장근무로 인해 자전거가 부활하게 되었다. 자동차 없이는 꼼짝 못하는 미국의 게으른 생활 리듬에 더이상 묻어 가지 않으리라, 덤으로 얻은 몇 개월, 자전거로 내 행동반경을 넓히리라 맘 먹었다. 작은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정오부터 난 바로 자전거를 타고 집근처 가장 가까운 마켓에 다녀왔다. 3,4마일 정도 될 것 같은데 인도 없는 비포장과 횡단 보도 없는 차도를 건너야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최대한 조심조심. 가는 길은 오르막도 잠시 있는 코스를 선택했는데 돌아올 때 선택한 코스는 아주 무난했다. 편도 삼 사십 분이면 충분한 거리였다. 양배추, 매운고추, 맘에 꼭 드는 메모 수첩이 담긴 비닐봉지를 자전거 앞바구니에 싣고,오랜만에 등짝에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느긋하게 페달을 밟으니 내가 알고 있던 공간과 내가 살았던 시간이 아닌듯 새롭다. 이리 좋은 것을 그동안 추운 집에서 외투 끼어 입고 덜덜 떨고 있었다니 난 바보였구나.

40도가 넘는 한 여름엔 죽어나겠지만 25도 내외의 지금은 딱 즐거운 기온이다. 자전거로 다니니 자동차로 다녔을 때는 못 봤던 많은 사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좋구나. 

자전거로 새로운 시간과 공간의 문을 열었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이 생각난다. 흙에 관한 그의 감상이 오래 머릿속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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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날. 비행기 시간이 오후 8시였기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둘러 볼 여유가 있었다. 짐가방을 챙겨들고 숙소를 나와 포스 어서너티 터미널 지하에 있는 그레이 하운드 짐보관센터에 일단 짐을 맡기고, 메디슨 스퀘어 파크로 이동. 파크는 찾았는데, 그 앞에 있다던 Flat Iron Building은 어디 있는걸까. 한참 찾았는데,알고 보니 우리가 금방 지나온 빌딩이었더라는..그만큼 평범했고 작았다. 좀 거리를 두고 보니 빌딩의 모습이 드러났지만 바로 그 앞을 지나 올 때는 전혀 눈치못챘다.  

이 빌딩은 작은 아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인 샘서밋 스트릿에 매일 나오는 장소다. 작은 스낵카 아저씨가 바로 저 빌딩을 배경으로 서서 뭔가 주문을 받는다.

곧 메디슨 스퀘어 파크 내에 유명한 shake shack 버거를 먹었는데, 이날 우리의 목표가 Flat Iron 빌딩이 아니라 버거였는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먹어본 버거와는 차원이 달랐다. 지금도 그 맛이 기억난다. 내 생각엔 버거가 아닌 것 같다. 버거라고 부르기엔 정말 미안한 훌륭한 요리였다. 그래서 사람들이,여행객들이 몇 시간씩을 마다하지 않고 줄을 서서 그 맛을 보려고 하는 것일 게다. 다시 뉴욕에 가게 된다면 꼭 다시 가고 싶은 곳. 왜 이리 먹을 것에 집착을 하는지 여행 일정이 모두 먹거리와 연결된 것을 보면 참..웃음이 난다. 먹어야 걷지.


남편이 버거를 주문하기 위해 줄 서 있는 동안 아이들과 나는 파크내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았다. 어디서나 누구와고도 금방 어울려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참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노는 동안 갑자기 굵은 소나기 쏟아졌는데 도심속의 비답지 않게 너무나 시원했다. 잠시 미끄럼틀 아래에 숨어 비를 피했다. 어른들 한 둘이 둘러 싸도 맞닿기 어려울 것 같은 굵은 기둥의 키 큰 나무들 속에서 비를 맞으니 그곳이 정글인지 도심인지 새삼스러웠다. 비로 한층 깨끗해진 도심을 우린 다시 걸었다. 맛있는 버거도 먹었겠다.. 

 

 



개선문 모형이 있는 워싱턴 스퀘어 파크를 거쳐 소호. 소문난 쿠바 옥수수를 먹고 치즈케익도 찾아 가서 먹고 차이나 타운. 먹을 것도 많고 볼 것도 많다고 들었다. 

차이나 타운으로 들어가면서 그곳은 내가 지금까지 지나온 뉴욕이 아니었다. 미국이 아니었다. 엠파이어 바로 옆에 코리아 타운도 갔었지만 차이나 타운처럼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지역으로 형성되어 있지는 않았다. 한마디로 큰 규모의 재래시장이었는데,여기서도 유명하다는 곳에 가서 식사를 하기 위해 더듬 더듬 찾아 갔다. 기다리는 손님도 많았고 그래서인지 짐짝 취급을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음식을 주문하는데 소통에 작은 문제가 발생했다.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고 성질을 내더라는. 정말이지 기억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답답하더라도 상대에게 이런 식으로 대하다니. 더구나 손님에게. 너무나 당황스러워 눈물이 찔끔났다. 난 식사를 못했다. 나머지 식구들만 남겨둔 채 난 밖으로 나왔다. 내 기분처럼 더러운 비가 스팀처럼 부슬부슬 내렸다. 메디슨 스퀘어 파크에서 만났던 비와는 분명 다른 비였다.   

우리의 여행은 끝이 났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이었지만,난 작년 여름 뉴욕이 그립다. 아이들도 남편도 뉴욕이 그립다고 말한다. 우린 지금 TV나 영화를 통해 뉴욕을 만난다. 곳곳에 뉴욕은 참으로 많았다. 만약 우리가 뉴욕에 가지 않았었다면 화면에 비춰지는 도시가 뉴욕임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뉴욕이 보일 때마다,우리가 지나온 그곳들을 만날 때마다 아이들과 나는 자연스레 작년 여름이 떠오른다. 즐거웠었다고. 그리고 특별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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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날이고,토요일이었다. 날은 매일이 좋았다. 밤새 비가 내린 날도 있었으나,아침만 되면 맑고 깨끗하게 개어 공기는 한층 가볍고 산뜻했다. 내내 더워 밖을 걸어 다닐 때는 축축 처지다가도 실내에만 들어가면 펄펄 뛰며 살아났으니 여름에 여행을 계획한 이상 불평없이 아이들의 짜증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도서관 내 열람실 모습

첫 일정은 타임스퀘어에서 에비뉴 세 개 정도 걸어서 뉴욕 공립 도서관. 생각보다 아담한 도서관의 외관은 콜롬비아대학을 닮은 것 같기도 했다. 도서관 바로 옆엔 도심 속의 작은 숲 브라이언 파크와 락펠러 센터와 그랜드 샌츄럴역,크라이슬러 빌딩,성패트릭 성당등 명소가 밀집되어 있는 곳이다. 도서관 안에도 들어가서 열람실도 휘 둘러보고 바로 옆 그랜드 센츄럴역에 가서 천정의 별자리도 올려다 보고,역 지하에 유명하다던 치즈케익을 먹고 엠파이어 스테이트로 이동하려고 했다. 짧은 거리였지만 아이들이 있고 더운 날씨때문에 지하철을 타려고 했는데 지하철 운행이 잠시 중단됐다는 게 아닌가...지하철을 타려고 유모차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린 것이 헛고생이 되었으니.  


그랜드 센츄럴역                                                 엠파이어 
빌딩 


하여튼 걸어 엠파이어에 도착. 엠파이어는 1미터 간격으로 보수 공사를 위해 세워둔 기둥들로 그득했다. 2년 남짓의 기간동안 속전속결로 지어진 이 빌딩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주변의 우려는 샀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임대되지 않고 대부분이 비어 있어서 empty building이라는 닉네임을 갖고 있단다. 전망대까지 2시간 가량을 줄을 서서 대기하는 동안 불안했던 것도 사실.좁고 어두운 곳에서 두 아이들을 데리고 한발짝씩 찔끔찔끔 이동하는 일은 땡볕에서 걷는 것 이상으로 힘들었으니...전망대까지 올라가선 기운이 쪽 빠지더라는. 고생끝에 오른 전망대는 굉장히 좁고,사람은 너무나 많고,앉아 쉴 곳도 없었다. 엠파이어에선 사진도 거의 못찍었다. 철제 난간이 시야를 모두 가리고 있어서 전망도 그리 깨끗하지 않았다. 멀리 남쪽의 자유의 여신상이 보였고 멘하탄의 끝트머리인 월스트릿의 빼꼭한 건물들이 한 눈에 들어 왔다. 바로 위로 차이나 타운은 그와 상반되게 높은 건물은 거의 없어 움푹 패인 웅덩이처럼 보였다. 현란하지만 작다면 작다고 할 수 있는 뉴욕에 상대적으로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차이나 타운은 너무나 이질적인 공간이었다. 다음날인 일요일에 차이나 타운에 갔었는데 그곳은 미국 뉴욕이 아니라 바로 중국 그 자체였다. 우리나라의 재래시장과 똑 같았고 번잡하고 길바닥은 생선비린내와 오물들로 질척거렸다. 



엠파이어에서 땅으로 내려와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스테이튼 아일랜드섬으로 가는 페리를 탔다. 자유의 여신상을 지나가면서 슬쩍 보고 다시 되돌아 오는 코스라서 그다지 감흥은 없었던듯 하다. 여행의 막바지로 갈 수록 그냥 관성에 의지해 일정을 소화한 듯 하다. 자유의 여신을 스치듯 어깨 너머로 잠시 뵙고, 피어17으로 가서 브르클린을 벤치에 앉아 좀 더 감상한 후 몇 가지 기념품들을 사니 날이 어두워졌다. 그날의 일정은 그렇게 마감했다. 지하철로 가는 길엔 짝퉁 명품들을 길에서 보따리를 풀어 팔고 있었는데 이 또한 재미난 구경거리였다. 난 구찌,코치,루이비통 정도 밖에 모르지만 흥정하는 대로 가격을 후려치기도 하는가 보더라.  

 

뉴저지에서 맨하탄을 바라보면 저 섬이 가라앉지는 않을까.하는 괜한 걱정이 된다. 저리 아찔한 빌딩들이 이쑤시개처럼 박혀 있는 그 좁은 땅은 어찌 지탱되는 걸까. 땅이 온전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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