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씨 예보는 NICE,WARM 이었는데
지금 그다지 나이스하진 않다.
하늘이 탁한 물빛으로 내려 앉았다.
내 감성은 햇살 없인 숨이 죽는 식물 같아
오늘같은 날은 죽음이다.
금년 3월 여기 덩그마니 던져졌을 때,
아무것도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으로
무인도인듯도,감옥인듯도 한 집구석에만 처박혀 있었을 때도
한 달 내내 비가 멈추지 않는, 내 에너지 모두 빨아들이는 이런 질척한 날뿐이었다.
안되겠다 싶어,밖에 나가도 그 고립감은 이미 내가 된 듯 더 악착같이 내게 들러붙는 것 같았다.
이노무 날씨가 사람 잡네.
만만한 꼬투리는 날씨뿐이었다.
3살된 작은 아이와 하루 종일 함께하다보니,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없었고,
이런 고달픔을 함께 나누고 의지할 친구나 이웃도 없었고,
남편마저도 하루 15시간이 넘는 근무시간으로
이미 지쳐 있어 가족들의 마음을 보듬어 줄 여유는 없었다.
아빠 얼굴이나 보여주면 다행이었지 아마...
이런 생활이 계속되자, 나도 내가 낯설어졌다.
조금씩 내가 사라지고 있었다.
내 나라,내 언어,내 혈육,자전거 타고 다니던 이마트가 그립고 그리웠다.
은퇴후 정착하고 싶은 주 순위1,2위를 다투는 곳이라고 하더만,
와서 보니 미국살이 마뜩찮아서 입 삐죽 내밀고 있는 사람
순간 입막음꺼리밖에 안되는 미끼로 판명되었다.
그 1위도 1위였지만,알러지가 가장 심한 도시로도 1위였다.
알러지를 유발하는 나무가 많단다.
이런 된장.
우리 큰아이가 알러지성 비염이 있어서
여기로 이사오면 건강해져 돌아가려나 하고,다른 것 다 그만두고라도
그거 하나 바라고 왔거만. 어찌 이리 어이가 없을꼬.
이 외에도 '다른건 말고 이거 하나'만 했던 것들이
줄줄이 어그러지니 정말 미국살이 정이 붙을래야 붙을 수가 없었다.
차.남편이 미국에 먼저 가서 차를 구입해야 했는데,
내가 바란건 애들 먼지 많으면 안되니까 가죽시트로 했으면 하는 거.딱 그거 하나였다.
그리고 물론,남편에게도 신신당부를 했었다.
그러나, 남편이 사 놓은 차는 까만색 벨벳류의 시트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먼지 한 올도 감추지 못하는, 한번 들러붙은 먼지는 쉽게 떨어지지도 않는 바로 그 천.
집. 환한 집이었으면 하는 거 딱 하나였는데
집 높이보다도 큰 나무들이 빙 둘러싸고 있어 동서남북의 햇빛 몽땅 커버해버리는,
굴속 같은 집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는 더운 여름이 긴 곳이라 여름엔 시원하기는 했지만,대신 우울해야 했다.
물론 2주만에 집과 차, 구하려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미국이 우리를 반기지 않는 듯한 여러 기운들을 외면하기는 쉽지 않았으니...
햇살아 얼렁 나와 내 안에 습기 다 말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