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째날 콜럼비아 대학. 아이들은 그저 스파이더맨이 다니던 그 학교라고만 알고 여기 저기 캠퍼스를 누볐다. 뉴욕의 모든 곳은 영화에 한 번쯤 등장하는 것은 예사로,가는 곳마다 촬영지가 아니었던 곳은 없었다. 살아있는 세트정도 될까. 왠만한 영화나 드라마 도시 배경은 모두 뉴욕이었다. 작은 아이가 보는 샘서밋 스트릿의 배경조차도 뉴욕이니까. 캠퍼스는 방학중이어서 한산했다.  

 


여기서 지도상으론 정말 가까운 성요한 대성당을 우린 빙잉 둘러 찾아 갔다. 그냥 감으로 찾으려다가 몸이 굉장히 고생했던 아픈 기억이... 이 성당은1892년 지어지기 시작했는데 2050년 완공 예정이란다. 그나마 예산이 마련된다는 조건이 갖춰질 경우에. 9.11을 예고했다는 조각상을 찾아보고, 내부에 잠시 들어가 짧은 기도만 하고 나왔다.     

 



센츄럴파크 아랫쪽 콜럼비아 서클로 내려와서 홀푸드에 들어가 식사를 하고 센츄럴 파크내 벤치를 찾아, 하나는 잠시 눈을 붙이고, 다른 둘은 신나게 뛰어다니고 나머지 하나는 여기 저기 힐끔대며 몸을 쉬었다. 울창한 나무숲이 그곳이 도심 속이라는 생각을 말끔히 지웠다.

   


다음 일정인 MOMA . 현대 미술관인 모마.무료 입장이 가능한 금요일 오후4시에 맞춰 갔으니 사람들에 치이는 불평은 
말기로 했다. 오른쪽 사진은 폐관 시간이 가까워 이미 많은 이들이 빠져 나간 상태라 지친 3인은 저기 널부러져 쉴 수 있었다. 나혼자 좀 더 돌아보기는 했지만 시간은 역시나 부족했다. 

 

근처 둘째날 먹었던 노란 케밥차에 가서 꾸역 꾸역 저녁을 해결하고 그날을 마무리했다. 우리 보다 앞서 뉴욕을 다녀온 어느 가족은 '뉴욕은 그저 TV나 영화에서나 보던 것들을 직접 가서 아! 그게 이거였구나 확인하는 것밖에 안돼요'라고 가혹한 평을 내리더라. 그 말에 일부는 공감이하지만 속으론 '저런..저런.."했었다.  큰아이 반에서 뉴욕을 경험한 사람은 큰아이 혼자일 만큼,실제 미국인들은 뉴욕을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라 생각지 않는다. 우리의 경우야 미국에서의 생활이 한정되어있는,언젠가는 미국을 떠날 사람들이니까 사는 동안만이라도 여기 저기 다니고자 기를 쓰고 다니는 게지,정작 미국인들 중 뉴욕을 경험할 수 있는 이들은 극히 제한적인가 보다. 그런 곳에 다녀와서 내린 소감이 그러했으니 안타깝고 가여울밖에.  그런데 한국아이들이 모였던 여름방학 캠프에선 뉴욕에 다녀오지 않은 아이는 우리 아이뿐이었단다......우린 캠프 마치자마자 뉴욕 출발을 계획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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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날. 메트로 폴리탄 박물관 일정이 있는 날.  

지하철을 몇 번 갈아 타고 목표로한 역에서 잘 내렸다. 헌데 지상으로 올라오면 동서남북을 분간하기 어려우니 또 묻고 물을 수 밖에. 지도상으로는 굉장히 간단한 위치였는데 걸어 가려고 하니 거리가 꽤 되었다. 심리적으로는 몇 시간 걸은 것 같은데 40분 정도 걸었을까. 아이들을 달래가며 좁은 인도와 많은 인파속을 걸어 우리가 예상한 지점에, 있어야 할 그 곳에 있어준 박물관. 보물섬이 이보다 반가우랴.  박물관 탐험은 시작도 안했는데 가족들은 지친 기색.

세계 4대 박물관중 하나라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대충만 둘러 본다고 해도 일주일 이상 걸린다고 한다. 엄청난 규모와 300만점 이상의 작품과 유물들은 모두 기증된 것들이란다. 수 천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일을 하고 있는데 아마 작품들을 보호하고, 미로같은 박물관 내를 안내하는 분들인 것 같다. 장담하건데 처음 방문한 방문객 길 잃을 확률 100%다.  길을 물을 때마다 손바닥 보듯 거침없는 그들의 안내가 존경스러웠다. 또 그 넓디 넓은 공간 어디서도 검은 제복을 입은 그들의 시선은 피할 수 없었는데 어린 아이들이 있는 우리가족 구성은 그들에겐 요주의 대상이었을 게다. 삼엄하다고 할만큼 촘촘한 그들의 감시 보호 시선이 우리가족에 머물렀으니.... 얌전하게 감상을 하면서 이동하더라도 우리를 쫓는 그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괜히 죄지은 것 같은 불안한 심정. 아마 애들 가진 부모맘쯤이었을까.




 우린 한 두 시간 관람 후 옥상으로 올라 가서 잠시 쉬면서 준비해간 빵과 얼려간 물을 먹으며 점심을 때웠다. 옥상에선 센츄럴 파크의 푸른 숲과 뉴욕의 빼곡한 건물 숲을 훤히 내다 볼 수 있었는데 그 또한 큰 작품 같았다. 옥상 한켠에 빈벤치 하나를 간신히 차지하고 앉아 먹는 빵이 어찌나 맛있던지,땡볕따위는 가볍게 무시됐다. 내일 나올 때도 그 빵집에 가서 또 빵사가지고 나오자고 오랜만에 만장일치. 나중에 집에 와서 알아보니 그 빵집이 굉장히 맛있는 체인점이었고 뉴욕내에 많은 매장을 갖고 있었으며, 우리가 사는 텍사스엔 가장 가까운 매장이 휴스턴에 한 곳 있더라는 것.

 

역시 우리 아이들에겐 박물관이 역부족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만 더 보고 이동하기로 했다. 솔직히 나는, 조금만 더. 하나만 더. 이건 반드시 보고가야. 한다고 이곳 저곳 더 찾아다니기는 했지만 수시로 화장실에 가야겠다고 선포하는 아이들과 남편의 쳐진 어깨는 나의 의욕마저 점차 사그라들게 했다. 박물관에서 4시간 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뭘 보긴 보고 온건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허탈하고 그저 피곤했다.
 

여기서 센츄럴 파크를 가로질러 서쪽으로 이동해서 베트남 레스토랑에서 간만에 제대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식사 생각에 기운이 저절로 났을까, 숲을 걷는 것이 박물관내 건물을 걷는 것 보다 즐거웠을까. 생각보다 모두들 잘 걸어주었다. 동료 중에 센츄럴파크에 들어갔다가 길을 잃고 어마 어마하게 헤맸다는 말을 듣고 설마 했는데 정말 길 잃기 십상이었다. 파크 내에는 이정표가 거의 없었고,꼬불 꼬불 좁은 길들이 핏줄처럼 많이 갈라져 있어서 조금 걸으면 바로 갈림길이 나오니 무조건 서쪽으로만 가면 될거라고 밀어 붙쳤던 우릴 당황시켰다. 방법은 물어보는 것 뿐. 다행히 뉴욕엔 여행자들이 많기 때문인지 뉴욕 시민들은 굉장히 친절하게 길을 알려준다. 지도를 들고,그것도 구굴에서 프린트한 지도를 들고 머뭇거렸던 우린 여차하면 묻고 또 물으며 여행을 했더랬다. 

센츄럴파크를 가로지르는 거리가 대략 800M정도 되는데 헤맬것이 당연하다고 미리 겁을 먹어서였는지 예상보다 쉽게 건너왔다. 일정에 여유가 좀 있었다면 우리들도 파크내 나무의자나 놀이터에서 좀 놀다 갈 수 있었으련만. 놀고 싶다는 아이들을 끌고 그냥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파크의 서쪽은 섹스 앤 더 시티에 나오는 주인공이 사는 주택이 있다고 들었는데 과연 건물들이 눈에 익은 것 같았다. 난간이 있는 계단을 올라가서 현관 입구로 들어가는 구조의 집들이 많았다. 그 드라마의 팬들은 그 집을 꼭 찾아가 본다는 말을 들었다. 우린 먹는게 급해서 패스. 식사는 접시가 깨끗이 드러나게 바닥까지 삭삭 닦아 먹고 ,락펠러 센터 전망대로 이동했다.  

우리가 매일 아침 뉴스에서 보던 라디오 스튜디오는 생각보다 평범했고 스튜디오 바로 옆에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나르는 금조각상과 겨울엔 스케이트장으로 운영되는 작은 광장?은 더욱 소박했다. 우리가 방문했던 여름엔 그곳에서는 스케이트장대신 파라솔들이 빽빽했는데 노천 카페나 레스토랑인것 같았다. 거대한 트리가 세워진다는 골목도 역시 TV화면이나 영화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좁고 검소했다. 그날 이전에 내가 보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그저 왜곡이 심한 거울들에 비춰진 그림들이었다는 생각을 잠깐했다. 직접 체험하지 않은 이상 내가 보는 것들은 모두 어떤 형태의 필터로든 한번 걸러진 것들임을 의식하자. 

락펠러 빌딩의 전망대로 올라갔는데 뉴욕에서 가장 인상깊은 곳이 아마 내겐 이곳이 아니었나 싶다.

 

 

락펠러가 아름다운 이유가 엠파이어가 있기때문이라고도 하는데,내 생각엔 락펠러는 그 존재 자체로 훌륭한 곳이었다. 순전히 나 혼자만의 편견인데, 빌딩이 세워진 동기부터 질투나 시기심이 연상되는 엠파이어와는 근본부터 다른, 정의와 젊은 혈기가 넘치는 듯한 기사가 떠오르는 듬직한 빌딩이다. 1928년 존 록펠러가 콜럼비아 대학으로부터 토지를 임대받아 원래는 오레라 하우스를 지을 예정이었으나 1929년 대공황이 닥치자 1931년에서 1940년 사이에 부근에 14개의 빌딩을 지으면서 대공황당시에 225000명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며 지금의 도시속의 도시형태의 세계 최초의 복합형 건축물을 건설했다고 한다. 현재 70층의 G.E빌딩을 중심으로 21개의 빌딩이 밀집되어 있다. 작년 말 미국 대선 투표결과 발표행사와 진행이 락펠러 빌딩앞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생겼던 근거없는 뿌듯함은 뭐였는지..

엠파이어는 건물전체가 수리중이었다. 외부 내부 모두 만신창이였고 전망대까지 올라가기 위해 대기하는 줄을 서는 공간들도 모두 공사판이었다. 그에 비해 락펠러는 최근에 지어진 건물마냥 초현대식이었고 정돈되어 있었다. 락펠러와 엠파이어 두 건물이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다는 사실이 당최.도저히.정말.믿어지지 않았다. 락펠러의 전망대는 넓직하고 쉴 수 있는 의자도 넉넉하고 유리가 난간 역할을 하게 되어있어 눈에 거칠 것이 없었고 한층 한층 위로 올라가면 그 유리보호막도 없어 탁트인 시야을 즐길수 있는 환상적인 곳이었다. 난간이 없는 것은 아니니 추락위험은 없어 안심. 

왼쪽위 사진이 유리로 막혀 있는 전망대 첫층인데 아이들 뒤로 보이는 불켜진 뽀족한 빌딩이 엠파이어 빌딩이다. 왼쪽아래 사진이 전망대 두번째 혹은 세번째층인데  중앙에 바다처럼 보이는 부분이 센츄럴파크다. 남쪽으론 엠파이어를 북쪽으로는 센츄럴파크를 만날 수 있다. 센츄럴파크를 바라봤을 때 감탄의 환호가 나도 모르게 새어나오더라. 좀전에 우리가 저 곳을 가로질렀었는데...  

밤이 아주 깊도록 우린 그곳에 머물렀었다. 우리가 운이 좋아서였는지 모르지만 한적하게 뉴욕을 느낀 곳이 아닌가 싶다. 어느새 6개월 전 이야기가 되었지만,사진 한 컷 한 컷을 넘기며 나름 뉴욕여행을 정리하다 보니,당시의 수고로움이나 경이, 환희의 결들이 부드러운 생명을 얻어 날 다시 뉴욕으로 데려다 놓는 것 같아 이 또한 신비롭다. 당시 여행을 마치고 여행에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은 의지따윈 전혀 없었고,나중에라도 메모해야겠다는 다짐도 전혀 없었다. 그저 힘들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난 지금 난 그날을 즐거이 기록하며 그때를 새로이 살려 낸다. 그러면서 여전히 내안에 고스란히 머물러 있는 그 감정들을 신통방통해 하고 있다.  

 이제 3일의 일정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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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후 세 곳의 장난감 가게에 들렀다.  

뮤지컬 극장 옆 타임스퀘어에 있는 TOY R US. 이곳은 우리 집 근처에도 여러군데 있기때문에 그다지 흥미로울 것도 없었지만 규모는 우리 동네에 비할 게 아니었다. 동네에 있다고는 하지만,크기는 한국 대형 할인마트 단층정도의 넓이는 되니 분명 작은 건 아님에도,뉴욕 타임스퀘어의 복판에 있는 이곳은 3층 건물로 매장내에 관람차가 있어 매장 전체를 둘러 볼 수도 있고,천정에 자동차를 떠 받치고 있는 슈퍼맨,거미줄로 이동 중인 스파이더맨,레고로 만든 엠파이어 빌딩을기어올라가는 킹콩과 쥬라기 공원의 거대한 공룡,바비샵 등 우리 동네와는 규모도 규모려니와 일단 질적으로 다른 곳이었다.

 







 

 

 

나도 미국에 처음 와서 동네에 있는 TOY R US에 가보고 매장 전체가 장난감과 어린이 용품으로 꽉 차있는 걸 보고 참 이런 세상도 다 있구나.했었다.  장난감 매장 뿐 아니라 미국엔 상점들이 세분화 전문화 대형화 되어 있어서 애완견 상품을 위한 매장,취미 생활을 위한 매장-여긴 뭐든 자신이 만들어 쓸 수 있는 재료들로 가득한데 칠 되어 있지 않은 나무들,단추,실,천,액자,종이,구슬...등등 뭐든 다 있고 그 종류가 상상 이상으로 다양하다. 그 다양함이 더욱 놀라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 이월 상품만 파는 곳,사무용품만 파는 곳,주방,화장실용품 파는 곳,모자만 파는 곳.  그 밖에 미국에서 2년이나 살았으면서도 간판만 보고 지나가는,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뭘 파는 지 잘 모르겠는 상점들...

TOU R US에서 지하철을 타고 센츄럴파크 바로 아래쪽으로 이동했다. 거긴 FAO schwarz라는 조금 더 고급스럽고 전문화된 장난감 매장이 있다. 헤리포터 코너가 따로 있었는데 영화에서 보던 소품들이 거의 다 상품화 되어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구경 못했던 것들이었다. 또 어른의 허박지 높이까지 올라오는 크기의 작은 인형의 집과 그 집에 크기에 맞는 작은 집기들. 사람이 사는 공간에 필요한 모든 집기들이 축소되어 들어 있다. 확대 시킨다면 바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정교하고 야무져 보였다. 넓직하고 잘 정돈되어 있는 매장이 인상에 남는다. 1층 입구에서 신기하게 생긴 다양한 젤리를 한 봉지 사들고 다음 코스인 디즈니 스토어까지 걸어 갈 때 하나씩 하나씩 꺼내 이건 무슨 맛일까 궁금해하며 한 입씩 깨물었던 생각이 난다. 나중에 다시 한 번 더 가서 몇 봉지 사오자고 했는데 다시 가지는 못했다. 뉴욕엔 정말 갈 곳이 많았다. 

 

디즈니 스토어는 우리집 근처 아울렛에도 있기때문에 낯설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나 역시 규모는 비교가 안되게 크고,내용도 다양했다. 플로리다 올랜도 디즈니 월드내에서 볼 수 있었던 많은 캐리터 상품들을 뉴욕에서 다시 만나니 반가웠다. 뭘 봐도 갖고 싶은 것들 뿐이었지만 워낙 고가의 물건들이니 눈으로만 즐길밖에.  

하루 종일 제대로 끼니를 챙기지 못하고 걷고 헤매고 또 걷는 게 우리 여행의 대부분이었다. 작은 아이가 그나마 유모차에 얹혀있으면 속도를 낼 수 있지만, 큰아이가 잘 걸어주지 않아 들쳐 업고 다니려니 서너배는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어른인 우리도 지치는데 아이는 더 힘들었겠지만.  

 

이 날은 디즈니 샵에서 3개 정도의 street을 내려와서 MOMA근처의 유명한 노란 케밥차에서 저녁을 배부르게,배터지게 먹었더랬다. 아주 유명한 노점이라고 명성이 자자한 곳이라서 줄 서서 30분 이상 기다린 후 받아든 케밥은,죙일 굶주린 탓도 있었지만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길바닥 화단 벤치에 앉아서 매콤한 빨간 소스를 얹어 먹는 치킨과 노란밥,약간의 샐러드.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우리들 입맛에 딱이었고,그 맛을 못잊어서 며칠 후 MOMA에 왔을 때 다시 찾게 되었다. 달리 먹을 만한 곳도 없었지만 뉴욕에서 두 번 들른 장소가 이곳이 될 줄이야. 뉴욕에 가면 먹을 것이 많을 것 같은데 막상 우리들이 먹을 만한 곳 찾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다. 맥도날드등 패스트 푸드점은 열외시고. 그래서  한 끼는 소문난 곳에서 먹어 보고자 맛있다는 곳을 일정 속에 끼워 넣어서 다녔더랬다. 첫 날은 피자,둘째 날은 케밥.....셋째날..

나야 미리부터 이번 여행이 엄청나게 힘들 것이라고 각오를 하고 출발한 터라,조사한 대로 이곳 저곳 다니는 것이 신나고,즐거웠지만, 남편과 아이들은 예상외로 굉장히 지치고 재미 없어 하는 것 같았다. 패키지로 편하게 올 것을 괜시리,뉴욕은 발로 다니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곳이라는 어줍잖은 고집으로 식구들을 고생 시키나 싶어 미안했고 한편으론 나의 노력과 준비가 별것 아닌 게 되어가니 기운 빠지고 화도 나도 서운하기도 했다. 비행기,공항 버스,지하철7일권,버스,박물관 무료 관람,뉴저지 한인 민박,발로 다니는 일정 등 우리가 선택한 뉴욕는 다른 동료 가족들이 시도하지 않은,젊은 배낭 여행객들이나 선택하는,어린 아이 둘을 데리고 있는 우리 가족에겐 어쩌면 무모한 접근이었다. 배 이상의 경비 절감의 효과는 있었지만 대신 뉴욕 '탐험'이 될 수도 있었다. 소경 코끼리 만지는 심정으로 시작한 뉴욕에 대한 자료 수집은 거의 두 달에 이르렀는데, 이 기간동안 골목 골목 뉴욕을 알아가는 즐겁고 뿌듯한 경험이 어쩌면 진정한 여행의 기쁨이 아니었나 싶다. 정보 수집과 조사만으로도 난 뉴욕에 수십 번은 드나든 것 같은 충족감을 느꼈으니까.  

패키지 여행은 먹여주고 재워주고,데려다 주니 몸은 편할 수 있었겠지만, 여행이 어디 편하고자 떠나는 것이던가. 우린 패키지로는 비교 할 수 없는 진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진짜 뉴욕을 봤다고 믿는다. 뉴욕이 보여 주고자 하는 곳 뿐 아니라 우리가 보고자 하는 곳을 불쑥 들여다 볼 수 있었다.  5박6일이 아니라 10일만 됐어도 좀 쉬엄 쉬엄 다닐 수 있었을텐데 라는 기간에대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고. 그래도 5살 10살 아이에겐 무리였다는 건 우겨봤자 엄연한 사실임은 인정한다. 

며칠 전에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은 후 내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 나도 오염된 곳에서 숨쉬듯 갑갑했다. 인간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마각을 드러내는 욕구와 욕구를 보면서 분노와 환멸을 느꼈으나 며칠 지나니 자연스레 묽어 진다.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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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의 둘째날.  

칙칙 칙칙 압력밥솥에서 밥익는 냄새. 햇반을 데워 먹는 다른 여행객들에게 미안한 소음과 냄새였으리라. 여행시 여권보다 먼저 챙긴 압력 밥솥. 식구들이 잘 안먹는 편이라 밥을 조금 했다가 밥이 모자라는 참사가 일어 났다. 그래서 다음날 부터는 넉넉히 밥을 했었다는... 그날도 물을 꽁꽁 얼려 베낭에 짊어 지고 유모차를 밀며 숙소 언덕을 내려 갔다. 아침부터 서두른다고 서둘렀지만 출발한 시간은 11시경이었다. 오늘은 2시에 인어공주 뮤지컬을 본다는 설렘에 큰 아이가 무척 기다리던 날. 오전 시간엔  남쪽으로 내려가서 자유의 여신상 페리를 타고 올 계획이었는데, 페리 시간과 뮤지컬 시간이 살짝 겹칠것 같아 뮤지컬을 놓치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페리를 포기하고,기껏 내려갔다가 그냥 되돌아 오게 되었다.   

타임스퀘어로 와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뮤지컬 극장까지 사람들을 헤치고 걸었다. 맨하탄의 모든 거리들이 그렇듯이 타임스퀘어 근처도 많은 건물들이 보수 공사중이다. 철제 난간과 장막을 치고 이루어지는 보수공사들은 인도를 점령하기 때문에 위험한데다 좁아지기까지 하니, 엄청난 인파 속에 유모차를 끌고 아이 하나를 건사하며 걷는다는 것 자체가 긴장이다. 목적지에 도착할 즈음엔 맥이 빠진다. 지금까지 타임스퀘어에서처럼 많은 인파를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거리 곳곳에는 건물에서 내놓은 쓰레기 더미들 천지이고, 쓰레기에서 흘러나온 구정물들로 악취도 심하다. 여름이어서 더욱 냄새가 심했다. 뉴욕 방문 전부터 뉴욕은 지저분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난 건물이 오래되어서 그렇겠지 짐작했다. 허나 도시전체가 공사중인데가 쓰레기가 원인이었다니, 세계적인 도시의 중심이 이런 원인으로 더러울 줄이야.

  

공연 20분 전이었는데 입장 대기 줄은 길었다. 극장은 생각보다 좁았고 높이는 높았다. 객석이 3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경사가 굉장히 급해서 앞으로 쏱아질 것 같은 시야가 첨엔 아찔했다. 3층인 우리 자리는 서 있는 어른이 키 작은 아이를 내려다 보는 각도였다.  무대와의 거리도 멀어 배우의 표정도 잘 볼 수 없어 아쉬웠는데, 큰아이의 망원경이 큰몫을 해줬다. 제작년 크리스마스에 산타가 가져다준 망원경이 이렇게 행복한 역할을 해 줄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뮤지컬 시작 전 아리엘의 테마가 흘러 나올 때는 관객들이 함께 그녀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환호했다. 어른 아이 너나 없이 아리엘을 가슴에 품었던 팬들이었다. 물론 우리 큰아이도 DVD를 지칠만큼 많이 봤지만, 이 공연후 아리엘의 테마를 완벽하게 소화하더니 학교에서 여러번 불러 amazing singer의 자리를 확고히 했다.  어느날 친구들 앞에서 노래 부를 거라면서 커다란 포크도 만들어 가더니 연기까지 하면서 불렀나 보다.  

  

 

   

바다속 인물들이 어떻게 연출 될 것인지 궁금했는데, 나름 잘 표현 했다. 왕자가 물 속에서 아리엘에 이끌려 수면으로 올라가는 장면과, 아리엘이 목소리를 내어주고 고통스러운 몸짓으로 수면으로 올라 가며 꼬리가 다리로 바뀌는 장면은 에니메이션을 보는듯 했고, 눈깜짝할 순간에 지나가 버렸다. 공연이 끝난 후 꿈 속을 길게 거닌 듯 머리속은 멍하고 땅에서 1cm는 떠 있는 무딘 느낌. 극장을 나와 인파에 휩쓸려 현실로 빠져 나오기까지, 감성은 내내 물속에서 게으름을 부렸다.


뮤지컬 후 세 곳의 장난감가게에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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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6개월전 일이다. 우리 가족이 뉴욕에 있었던 시간.  

생각하면 그 날들이 정말 존재하기는 했었던 시간인지, 기억만으론 그때의 경험을 확신하지 못할 만큼 나의 세계와는 간극이 큰 도시였다.  지금도 매일 아침 생방송 NBC NEWS TODAY 에서 맨하탄의 락카펠러 센터 앞 스튜디오를 보면서 아! 내가 저 앞에 갔었지. 저기서 사진을 찍었지.라는 짧은 생각이 들곤 한다. 직접 체험했으면서도 뉴욕은 단지 TV 안의 세상일 뿐 실재하지 않은 곳같은 먼 느낌은 여전하다. 그때의 기억이 완전 휘발되기 전에 어떻게든 붙들어놔야 하는데..하는데 ..하다가 드디어 천천히라도,느리게라도 정리해 보고 싶어졌다. 무엇보다도 어떻게 그 더운 땡볕에 10살 5살 두 아이를 끌고 오로지 걷기와 지하철만으로 뉴욕을 누빌 생각을 했을까. 뭘 모르니까 겁대가리없이 덤볐지,알고 난 지금 다시 가라면 절대 못할것 같다.


 타임 스퀘어 앞-스파이더맨이 슁슁 날라다니던. 삼성의 로고가 새겨진 광고판이 있는 곳.

지금 거주하고 있는 TEXAS에서 다섯 시간 정도 비행기를 탔다. 아침 여섯 시 비행기였으니까 새벽 3시부터 분주했었다. 긴장한 나머지 출발 전 잠을 못잔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배행기 안에서 피곤할 당일 일정을 잘 소화하기 위해 마신 커피 한 잔. 그 커피가 뉴욕에서 첫 날밤을 꼴딱 새게 만들지 정말 몰랐다. 한국에 있었을 때는 커피와 내 수면과 전혀 상관관계가 없었건만, 미국 와서 한 반 년 커피를 끊었다가 마시게 된 후, 커피가 내 수면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커피를 마시며 자유를 느끼는 게 큰 낙이었는데,그 즐거움을 잃었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첫 날 따라올 여행의 피곤이 카페인을  너끈히 이길 줄 알고 마신 새벽 커피 한잔은 똘망한 정신으로 하루밤을 꼬박 새게 만들었다. 괴로웠다. 

첫 날 뉴욕의 남부.월스트릿과 브룩클린 브릿지 건너 피자집까지의 일정. 지도로는 뉴욕의 골목 골목을 다 누벼 봤다지만, 첫날의 뉴욕은 지도보다 훨씬 넓고,좁고,복잡했다.   

뉴왁 공항에 도착해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뉴욕의 중심부인 포스 어써너티 버스 터미널 도착해서,링컨 터널 건너 숙소인 뉴저지 한인 민박집에 짐을 풀고 다시 버스를 타고 버스 터미널까지 나와서 근처 타임스퀘어를 대충 두리번 거려주고 거기서 지하철을 타고 월드 트레이드 센터-그라운드 제로까지 이동했다. 유모차를 밀고 우리 네 식구는 그때부터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땡볕에. 월스트리트 입구에 있는 작은 트리니티 교회안에 들어가 보고,월스트릿  증권 거래소,유명한 황소까지.  







 

 

 

1.트리니티 교회.등지고 있는 철울타리 뒤로 유명인사들의 무덤이 빽빽하다. 교회 안은 번잡한 뉴욕이 아닌양 아주 고즈넉했다./2.월스트릿의 상징인 이 황소는 증권 거리소 근처 있는 줄 았는데 좀 생뚱맞은 곳에 있어 물어 물어 찾아갔다. 원래 저 자리가 소 시장이었단다. 지금은 경제의 중심이 된 뉴욕 증권거래소의 토대가 된 곳이라고 들었다. 저 황소 위에 올라타고 생쇼를 했다.









 

 

  3. 월스트릿은 많은 고층 건물이 발뒤꿈치를 반쯤 들고 긴장상태로 서 있다. 옛날 팔각 성냥통의 성냥들처럼 빈틈이 없다. 그 사이 사이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골목들이 대견할 뿐이다./4.브루클린 브릿지다. 다리 길이만 500M가량 되는 가장 오래된 현수교라는데 아래층은 차들이 다니고 윗층은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이층 구조다. 사람들이 다는 곳은 나무 바닥이었는데 아래층 차도도 나무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세히 봐 둘걸...너무 배가 고파서.  내 발 밑으로 차들이 다는 모습이 나무와 나무 틈으로 보였다. 연인과 여유있게 거닐면 환상적일것 같다. 맨하탄을 한 걸음 떨어져서 볼 수 있고,멀리 손톱만한 자유의 여신상도 보인다. 브릿지 야경은 더욱 멋지다는데 우리에겐 기회가 없었다. 





 

 

 

 

5.브르클린 브릿지 위다. 사람들 발 밑으로 차들이 다닌다.  다리 입구를 찾느라 월스트릿에서 맨하탄을 가로로 횡단할 만틈 한참을 거슬러 올라 가야 했다. 지도 상에선 그리 멀지 않았는데...이상하다.이상하다.굉장히 머네.남편 눈치를 슬금 슬금 봐야했던 초라한 기억.  먹은 것이라고는 아침 기내에서 먹은 시리얼과 우유뿐인 우리 가족의 희망은 오로지 다리 건너 피자집뿐이었다. /6.화덕 구이 피자집으로 아주 유명하단다. 굶주린 우리 가족에게 뭔들 맛이 없었겠냐만은 시장국밥집에서나 볼 수 있는 어마어마한 쟁반만한 피자 두 판을 마파람에 게눈감추듯 치워버려 주변인들의 놀라움을 샀다. 참고로 미국의 라지 피자는 우리나라 싸이즈의 1.5-2배 정도 된다. 사실 두 쪽 남아서 숙소에 와서 먹었는데,역시나 맛있었다. 이름값하는 피자였다. 

브루클린에서 지하철을 타고 타임스퀘어로 돌아왔을 때 그곳은 낮에 본 타임스퀘어가 아니었다. 사람 정신을 쏙 빼놓은 현란한 불빛과 인파들. 낮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타임스퀘어는 우리 가족이 매일 아침 저녁으로 거쳐가는 장소였지만 정작 제대로 구경을 하지 못했다. 뮤지컬 한 편 외에는. 첫날 우린 많이 지쳤고,생각했던 것 보다 이번 여행이 그리 만만치 않음을 알았고,실망도 있었다.  좀 더 우아하게 뉴욕을 만나는 건 다음에 하자는 혼잣말이 필요했다. 그나마 젊은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런 생고생을 하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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