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6개월전 일이다. 우리 가족이 뉴욕에 있었던 시간.
생각하면 그 날들이 정말 존재하기는 했었던 시간인지, 기억만으론 그때의 경험을 확신하지 못할 만큼 나의 세계와는 간극이 큰 도시였다. 지금도 매일 아침 생방송 NBC NEWS TODAY 에서 맨하탄의 락카펠러 센터 앞 스튜디오를 보면서 아! 내가 저 앞에 갔었지. 저기서 사진을 찍었지.라는 짧은 생각이 들곤 한다. 직접 체험했으면서도 뉴욕은 단지 TV 안의 세상일 뿐 실재하지 않은 곳같은 먼 느낌은 여전하다. 그때의 기억이 완전 휘발되기 전에 어떻게든 붙들어놔야 하는데..하는데 ..하다가 드디어 천천히라도,느리게라도 정리해 보고 싶어졌다. 무엇보다도 어떻게 그 더운 땡볕에 10살 5살 두 아이를 끌고 오로지 걷기와 지하철만으로 뉴욕을 누빌 생각을 했을까. 뭘 모르니까 겁대가리없이 덤볐지,알고 난 지금 다시 가라면 절대 못할것 같다.

타임 스퀘어 앞-스파이더맨이 슁슁 날라다니던. 삼성의 로고가 새겨진 광고판이 있는 곳.
지금 거주하고 있는 TEXAS에서 다섯 시간 정도 비행기를 탔다. 아침 여섯 시 비행기였으니까 새벽 3시부터 분주했었다. 긴장한 나머지 출발 전 잠을 못잔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배행기 안에서 피곤할 당일 일정을 잘 소화하기 위해 마신 커피 한 잔. 그 커피가 뉴욕에서 첫 날밤을 꼴딱 새게 만들지 정말 몰랐다. 한국에 있었을 때는 커피와 내 수면과 전혀 상관관계가 없었건만, 미국 와서 한 반 년 커피를 끊었다가 마시게 된 후, 커피가 내 수면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커피를 마시며 자유를 느끼는 게 큰 낙이었는데,그 즐거움을 잃었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첫 날 따라올 여행의 피곤이 카페인을 너끈히 이길 줄 알고 마신 새벽 커피 한잔은 똘망한 정신으로 하루밤을 꼬박 새게 만들었다. 괴로웠다.
첫 날 뉴욕의 남부.월스트릿과 브룩클린 브릿지 건너 피자집까지의 일정. 지도로는 뉴욕의 골목 골목을 다 누벼 봤다지만, 첫날의 뉴욕은 지도보다 훨씬 넓고,좁고,복잡했다.
뉴왁 공항에 도착해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뉴욕의 중심부인 포스 어써너티 버스 터미널 도착해서,링컨 터널 건너 숙소인 뉴저지 한인 민박집에 짐을 풀고 다시 버스를 타고 버스 터미널까지 나와서 근처 타임스퀘어를 대충 두리번 거려주고 거기서 지하철을 타고 월드 트레이드 센터-그라운드 제로까지 이동했다. 유모차를 밀고 우리 네 식구는 그때부터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땡볕에. 월스트리트 입구에 있는 작은 트리니티 교회안에 들어가 보고,월스트릿 증권 거래소,유명한 황소까지.


1.트리니티 교회.등지고 있는 철울타리 뒤로 유명인사들의 무덤이 빽빽하다. 교회 안은 번잡한 뉴욕이 아닌양 아주 고즈넉했다./2.월스트릿의 상징인 이 황소는 증권 거리소 근처 있는 줄 았는데 좀 생뚱맞은 곳에 있어 물어 물어 찾아갔다. 원래 저 자리가 소 시장이었단다. 지금은 경제의 중심이 된 뉴욕 증권거래소의 토대가 된 곳이라고 들었다. 저 황소 위에 올라타고 생쇼를 했다.


3. 월스트릿은 많은 고층 건물이 발뒤꿈치를 반쯤 들고 긴장상태로 서 있다. 옛날 팔각 성냥통의 성냥들처럼 빈틈이 없다. 그 사이 사이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골목들이 대견할 뿐이다./4.브루클린 브릿지다. 다리 길이만 500M가량 되는 가장 오래된 현수교라는데 아래층은 차들이 다니고 윗층은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이층 구조다. 사람들이 다는 곳은 나무 바닥이었는데 아래층 차도도 나무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세히 봐 둘걸...너무 배가 고파서. 내 발 밑으로 차들이 다는 모습이 나무와 나무 틈으로 보였다. 연인과 여유있게 거닐면 환상적일것 같다. 맨하탄을 한 걸음 떨어져서 볼 수 있고,멀리 손톱만한 자유의 여신상도 보인다. 브릿지 야경은 더욱 멋지다는데 우리에겐 기회가 없었다.


5.브르클린 브릿지 위다. 사람들 발 밑으로 차들이 다닌다. 다리 입구를 찾느라 월스트릿에서 맨하탄을 가로로 횡단할 만틈 한참을 거슬러 올라 가야 했다. 지도 상에선 그리 멀지 않았는데...이상하다.이상하다.굉장히 머네.남편 눈치를 슬금 슬금 봐야했던 초라한 기억. 먹은 것이라고는 아침 기내에서 먹은 시리얼과 우유뿐인 우리 가족의 희망은 오로지 다리 건너 피자집뿐이었다. /6.화덕 구이 피자집으로 아주 유명하단다. 굶주린 우리 가족에게 뭔들 맛이 없었겠냐만은 시장국밥집에서나 볼 수 있는 어마어마한 쟁반만한 피자 두 판을 마파람에 게눈감추듯 치워버려 주변인들의 놀라움을 샀다. 참고로 미국의 라지 피자는 우리나라 싸이즈의 1.5-2배 정도 된다. 사실 두 쪽 남아서 숙소에 와서 먹었는데,역시나 맛있었다. 이름값하는 피자였다.
브루클린에서 지하철을 타고 타임스퀘어로 돌아왔을 때 그곳은 낮에 본 타임스퀘어가 아니었다. 사람 정신을 쏙 빼놓은 현란한 불빛과 인파들. 낮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타임스퀘어는 우리 가족이 매일 아침 저녁으로 거쳐가는 장소였지만 정작 제대로 구경을 하지 못했다. 뮤지컬 한 편 외에는. 첫날 우린 많이 지쳤고,생각했던 것 보다 이번 여행이 그리 만만치 않음을 알았고,실망도 있었다. 좀 더 우아하게 뉴욕을 만나는 건 다음에 하자는 혼잣말이 필요했다. 그나마 젊은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런 생고생을 하겠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