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셋째날. 메트로 폴리탄 박물관 일정이 있는 날.
지하철을 몇 번 갈아 타고 목표로한 역에서 잘 내렸다. 헌데 지상으로 올라오면 동서남북을 분간하기 어려우니 또 묻고 물을 수 밖에. 지도상으로는 굉장히 간단한 위치였는데 걸어 가려고 하니 거리가 꽤 되었다. 심리적으로는 몇 시간 걸은 것 같은데 40분 정도 걸었을까. 아이들을 달래가며 좁은 인도와 많은 인파속을 걸어 우리가 예상한 지점에, 있어야 할 그 곳에 있어준 박물관. 보물섬이 이보다 반가우랴. 박물관 탐험은 시작도 안했는데 가족들은 지친 기색.
세계 4대 박물관중 하나라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대충만 둘러 본다고 해도 일주일 이상 걸린다고 한다. 엄청난 규모와 300만점 이상의 작품과 유물들은 모두 기증된 것들이란다. 수 천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일을 하고 있는데 아마 작품들을 보호하고, 미로같은 박물관 내를 안내하는 분들인 것 같다. 장담하건데 처음 방문한 방문객 길 잃을 확률 100%다. 길을 물을 때마다 손바닥 보듯 거침없는 그들의 안내가 존경스러웠다. 또 그 넓디 넓은 공간 어디서도 검은 제복을 입은 그들의 시선은 피할 수 없었는데 어린 아이들이 있는 우리가족 구성은 그들에겐 요주의 대상이었을 게다. 삼엄하다고 할만큼 촘촘한 그들의 감시 보호 시선이 우리가족에 머물렀으니.... 얌전하게 감상을 하면서 이동하더라도 우리를 쫓는 그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괜히 죄지은 것 같은 불안한 심정. 아마 애들 가진 부모맘쯤이었을까.

우린 한 두 시간 관람 후 옥상으로 올라 가서 잠시 쉬면서 준비해간 빵과 얼려간 물을 먹으며 점심을 때웠다. 옥상에선 센츄럴 파크의 푸른 숲과 뉴욕의 빼곡한 건물 숲을 훤히 내다 볼 수 있었는데 그 또한 큰 작품 같았다. 옥상 한켠에 빈벤치 하나를 간신히 차지하고 앉아 먹는 빵이 어찌나 맛있던지,땡볕따위는 가볍게 무시됐다. 내일 나올 때도 그 빵집에 가서 또 빵사가지고 나오자고 오랜만에 만장일치. 나중에 집에 와서 알아보니 그 빵집이 굉장히 맛있는 체인점이었고 뉴욕내에 많은 매장을 갖고 있었으며, 우리가 사는 텍사스엔 가장 가까운 매장이 휴스턴에 한 곳 있더라는 것.
역시 우리 아이들에겐 박물관이 역부족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만 더 보고 이동하기로 했다. 솔직히 나는, 조금만 더. 하나만 더. 이건 반드시 보고가야. 한다고 이곳 저곳 더 찾아다니기는 했지만 수시로 화장실에 가야겠다고 선포하는 아이들과 남편의 쳐진 어깨는 나의 의욕마저 점차 사그라들게 했다. 박물관에서 4시간 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뭘 보긴 보고 온건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허탈하고 그저 피곤했다.
여기서 센츄럴 파크를 가로질러 서쪽으로 이동해서 베트남 레스토랑에서 간만에 제대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식사 생각에 기운이 저절로 났을까, 숲을 걷는 것이 박물관내 건물을 걷는 것 보다 즐거웠을까. 생각보다 모두들 잘 걸어주었다. 동료 중에 센츄럴파크에 들어갔다가 길을 잃고 어마 어마하게 헤맸다는 말을 듣고 설마 했는데 정말 길 잃기 십상이었다. 파크 내에는 이정표가 거의 없었고,꼬불 꼬불 좁은 길들이 핏줄처럼 많이 갈라져 있어서 조금 걸으면 바로 갈림길이 나오니 무조건 서쪽으로만 가면 될거라고 밀어 붙쳤던 우릴 당황시켰다. 방법은 물어보는 것 뿐. 다행히 뉴욕엔 여행자들이 많기 때문인지 뉴욕 시민들은 굉장히 친절하게 길을 알려준다. 지도를 들고,그것도 구굴에서 프린트한 지도를 들고 머뭇거렸던 우린 여차하면 묻고 또 물으며 여행을 했더랬다.
센츄럴파크를 가로지르는 거리가 대략 800M정도 되는데 헤맬것이 당연하다고 미리 겁을 먹어서였는지 예상보다 쉽게 건너왔다. 일정에 여유가 좀 있었다면 우리들도 파크내 나무의자나 놀이터에서 좀 놀다 갈 수 있었으련만. 놀고 싶다는 아이들을 끌고 그냥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파크의 서쪽은 섹스 앤 더 시티에 나오는 주인공이 사는 주택이 있다고 들었는데 과연 건물들이 눈에 익은 것 같았다. 난간이 있는 계단을 올라가서 현관 입구로 들어가는 구조의 집들이 많았다. 그 드라마의 팬들은 그 집을 꼭 찾아가 본다는 말을 들었다. 우린 먹는게 급해서 패스. 식사는 접시가 깨끗이 드러나게 바닥까지 삭삭 닦아 먹고 ,락펠러 센터 전망대로 이동했다.
우리가 매일 아침 뉴스에서 보던 라디오 스튜디오는 생각보다 평범했고 스튜디오 바로 옆에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나르는 금조각상과 겨울엔 스케이트장으로 운영되는 작은 광장?은 더욱 소박했다. 우리가 방문했던 여름엔 그곳에서는 스케이트장대신 파라솔들이 빽빽했는데 노천 카페나 레스토랑인것 같았다. 거대한 트리가 세워진다는 골목도 역시 TV화면이나 영화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좁고 검소했다. 그날 이전에 내가 보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그저 왜곡이 심한 거울들에 비춰진 그림들이었다는 생각을 잠깐했다. 직접 체험하지 않은 이상 내가 보는 것들은 모두 어떤 형태의 필터로든 한번 걸러진 것들임을 의식하자.
락펠러 빌딩의 전망대로 올라갔는데 뉴욕에서 가장 인상깊은 곳이 아마 내겐 이곳이 아니었나 싶다.

락펠러가 아름다운 이유가 엠파이어가 있기때문이라고도 하는데,내 생각엔 락펠러는 그 존재 자체로 훌륭한 곳이었다. 순전히 나 혼자만의 편견인데, 빌딩이 세워진 동기부터 질투나 시기심이 연상되는 엠파이어와는 근본부터 다른, 정의와 젊은 혈기가 넘치는 듯한 기사가 떠오르는 듬직한 빌딩이다. 1928년 존 록펠러가 콜럼비아 대학으로부터 토지를 임대받아 원래는 오레라 하우스를 지을 예정이었으나 1929년 대공황이 닥치자 1931년에서 1940년 사이에 부근에 14개의 빌딩을 지으면서 대공황당시에 225000명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며 지금의 도시속의 도시형태의 세계 최초의 복합형 건축물을 건설했다고 한다. 현재 70층의 G.E빌딩을 중심으로 21개의 빌딩이 밀집되어 있다. 작년 말 미국 대선 투표결과 발표행사와 진행이 락펠러 빌딩앞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생겼던 근거없는 뿌듯함은 뭐였는지..
엠파이어는 건물전체가 수리중이었다. 외부 내부 모두 만신창이였고 전망대까지 올라가기 위해 대기하는 줄을 서는 공간들도 모두 공사판이었다. 그에 비해 락펠러는 최근에 지어진 건물마냥 초현대식이었고 정돈되어 있었다. 락펠러와 엠파이어 두 건물이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다는 사실이 당최.도저히.정말.믿어지지 않았다. 락펠러의 전망대는 넓직하고 쉴 수 있는 의자도 넉넉하고 유리가 난간 역할을 하게 되어있어 눈에 거칠 것이 없었고 한층 한층 위로 올라가면 그 유리보호막도 없어 탁트인 시야을 즐길수 있는 환상적인 곳이었다. 난간이 없는 것은 아니니 추락위험은 없어 안심.
왼쪽위 사진이 유리로 막혀 있는 전망대 첫층인데 아이들 뒤로 보이는 불켜진 뽀족한 빌딩이 엠파이어 빌딩이다. 왼쪽아래 사진이 전망대 두번째 혹은 세번째층인데 중앙에 바다처럼 보이는 부분이 센츄럴파크다. 남쪽으론 엠파이어를 북쪽으로는 센츄럴파크를 만날 수 있다. 센츄럴파크를 바라봤을 때 감탄의 환호가 나도 모르게 새어나오더라. 좀전에 우리가 저 곳을 가로질렀었는데...
밤이 아주 깊도록 우린 그곳에 머물렀었다. 우리가 운이 좋아서였는지 모르지만 한적하게 뉴욕을 느낀 곳이 아닌가 싶다. 어느새 6개월 전 이야기가 되었지만,사진 한 컷 한 컷을 넘기며 나름 뉴욕여행을 정리하다 보니,당시의 수고로움이나 경이, 환희의 결들이 부드러운 생명을 얻어 날 다시 뉴욕으로 데려다 놓는 것 같아 이 또한 신비롭다. 당시 여행을 마치고 여행에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은 의지따윈 전혀 없었고,나중에라도 메모해야겠다는 다짐도 전혀 없었다. 그저 힘들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난 지금 난 그날을 즐거이 기록하며 그때를 새로이 살려 낸다. 그러면서 여전히 내안에 고스란히 머물러 있는 그 감정들을 신통방통해 하고 있다.
이제 3일의 일정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