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보리행론 역주
샨띠데바 지음, 최로덴 옮김 / 하얀연꽃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이 고요하지 못하다. 덩달아 마음도 평화롭지 않다. 바람 앞에 촛불이 팔랑 거리듯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 씩 마음이 거칠 거칠 해진다. 벌겋게 달아오른다. 벽돌을 비벼댄 사포처럼 너덜거린다. 커다란 바위돌을 발목에 묶고 물 밑으로 던져진 듯 계속 내려만 간다. 이제는 한숨 마저도 얼어 버릴 깊이까지 왔는지도 모른다.  

어떤 선배는 최근에 가끔 악몽을 꾼다고 피식 웃으며 말한다. 나는 어젯 밤 악몽은 아니었지만 꿈 속에서도 평화롭지 못했다. 

올해의 마지막 책으로 티벳 대승불교경전인 <입보리행론>을 읽었다. 나는 불교도는 아니다. 그러나 가끔 마음이 심란할 때는 불경을 몇 구절을 읽으며 도움을 받기는 한다. 가끔 순간적인 치유의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일종의 진통제처럼.  

마음은 메아리보다 빨리 울려 퍼지니/지키기 어렵고 다스리기 어렵다/지혜로운 사람은 그 근본을 바르게 하니/ 그의 현명함이 더욱 깊어진다. -<법구경> 심의품- 

어리석은 사람이 하는 일은 몸에 근심을 불러일으키니/거리낌없는 마음으로 악행을 저질러 스스로 무거운 재앙을 부른다 -<법구경> 우암품-  

고통을 벗어나려는 마음은 있지만/고통의 수렁 속으로 똑바로 질주하고/행복을 바라지만 너무나 어리석어/ 자신의 행복을 적인양 부숴버린다 -<입보리행론> 공덕품 

사실 이런 경전의 글들은 문자적 이해를 넘어선다. 부처께서도 중생의 구제를 위해 문자를 이용하셨을 뿐 열반의 도가 문자로 말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셨다. 가끔 가다 한번 걸음을 멈춰 읽는 이런 책들에서 그 중심된 생각을 내가 함부로 말해서는 안될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이 책이 주의하는 끊임없는 분별심이 발동했다는 점을 말해야겠다.  불교의 경전 속에 나타나는 극단적인 세속 부정에 불편한 마음도 생겼고, 유물론적인 입장에서 철학적 인식론에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부수적인 일이었다. 

수천 겁을 쌓아 온 보시와/ 선서께 올린 공양들 모두/ 선행이라 할 만한 것은 모두/ 단 한 번의 분로로 무너진다. - <입보리행론> 인욕품 

무언가 원인없이는 생겨나지 않으며/무언가 있어야 생겨난다/적들이 바로 인용긔 원인이라면/어떻게 이 적들을 장애라고 하리오 -<입보리행론> 인욕품 

어떤 중생도 아만으로 무너지나니/번뇌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때문이다/ 자신감 있는 이는 적의 힘에 굴복하지 않고/ 그들은 오히려 아만의 적을 다스린다 -<입보리행론> 정진품  

노련한 전사인 적과 함께/ 전장에서 칼끝을 마주친 것처럼 번뇌의 무기를 조심해서 피하며 번뇌의 적들을 붙잡아 매야 한다. - <입보리행론> 정진품  

불교는 기본적으로 현실계를 부정하는 인식론을 가지고 있다. 쉽게 말하면 이 세계는 윤회의 법에 의해 고통받는 곳이고 올바른 인식견해와 수행을 통해 떠나야할 그런 곳일뿐이다. 우리의 육체 역시 근원적으로 구더기의 먹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대승의 진리는 인식론적 초월에만 있지 않다. 설령 그 곳이 허상의 땅이고 우리의 몸이 그저 가피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원리의 측면에서 본 것일 뿐이다. 모든 공양과 계송에서도 '회향'이 빠지지 않는 이유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입보리행론>에서도 '회향'을 마지막장에 배치한다. '중생의 구제' 라는 것은 대승의 중요한 원칙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위해 '나와 남을 바꾸어 보는 수행'이라고 말한다. 공자는 '인'을 이야기하면서 '역지사지'를 이야기했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이와 함께 중생을 어머니로 생각하여 어머니의 사랑을 기억하는 평등심을 통해 모든 이의 이익을 위해 깨닫고 펼쳐나가라고 말한다.    

세상의 행복을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모든 것은 남의 행복을 빌어서 생기며/세상의 고통을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모든 것은 나만의 행복을 원해서 생긴다/ 

많은 말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어리석은 이는 자신을 위해서 일하고/ 부처는 남을 위해 일한다./이 두 가지의 차이를 잘 보라. -<입보리행론> 선정품 

미혹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의 이익을 위하여/ 집착과 두려움의 극단에서 벗어나게 하고/ 윤회에 머무는 자를 성취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공성의 열매이다. -<입보리행론> 지혜품

<입보리행론>은 문자 그대로 '부처의 도를 깨닫고 행하기 위한 입문서'이다. 티벳 대승 불교에서 기본 경전으로 읽히는 책이라고 한다. 달라이 라마 역시 자주 <입보리행론>을 가지고 설법을 하시기도 한다고 들었다. 책은 경전들이 그렇듯이 형식을 갖추어 구성되어 있다. 순서가 아주 논리정연해서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1장에서 보리심의 공덕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2장 <죄업 참회품>에서는 보리심 수행을 위해 장애가 되는것을 제거하는 방법이 나온다. 이어서 <불방일품>,<억념자각품>등이 있다. 여기까지가 일종의 예비수행단계라고 보면 된다.  이런 과정이 끝나면 6 바라밀 중 앞서 말하지 않은 4 바라밀의 내용으로 나아간다. <인욕품>,<정진품>,<선정품>,<지혜품>이 그것이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이 모든 깨달음을 중생과 함께 나누겠다는 <회향품>이 나온다. 이 책의 역자는 4행씩 구성된 경전 원문을 적고 조금 더 쉬운 문체로 다시 역자해주를 한다. 다른 첨가물들은 거의 없고 그냥 문맥을 풀어 쉬운 말로 정리한 정도이다.  

조금 구성이 특이한 장이 <지혜품>이다. 여기서는 앞의 것들과 다르게 불교철학에 대한 논쟁이 등장한다. 각 행 하나 하나가 상당히 깊은 철학적 성찰을 요구한다. 서양철학의 인식론 논쟁을 떠올리게도 한다. 여기서는 관념론적으로 가장 극단쪽에 있는 중관학파가 다른 실유론자들이나 유심론자들의 질문에 반박하는 형식을 취한다. ('일체유심조' 라는 마음의 실체라는 것 역시 중관학파의'공마저 공하다'는 무실체론에 맞부딪혀서 부정되는 식이다.) 앞서 말했듯이 한 문답이 인식론에서 논문 하나가 나올 만큼인 주제들이지만 그 외곽만 이해하는 선에서 읽어나가면 흥미롭다.    

한 해가 저문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 세계가 모두 힘들다. 그런 고통 속에서 우리는 서로 남이 아니다.  천주교 미사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주위 사람들에게 '평화를 빕니다' 라고 말해주는 의례였다. 나와 세계가 정의로운 속에 평화롭길 바란다. 여러분도... 

불타는 돌덩이와 칼날의 비도/ 이제부터는 꽃들의 비가 되고 

서로의 무기로 부딪치던 이들도/ 이 순간부터는 꽃을 던지게 하소서.  <입보리행론> 회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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