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람시에게로
칼 보그 지음, 강문구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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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 하면 떠오르는 '헤게모니'다.  나는 '헤게모니'하면 먼저 두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하나는 그 단어를 처음 접했던 대학 신입생때 일,그리고 다른 하나는 세기말인가, 세기 초인가 월간조선 조갑제가 '그람시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라고 곡을 외쳤던 칼럼이다.

대학 들어가서 처음 들었던 수업에서 강사는 '헤게모니'란 말이 있는데 아냐고 물었을 때, 찍기 세대인 우리들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강사는 칠판에 축구장을 하나 그렸다. 그리고 가운데 하프라인을 그렸다. '상부구조'와 '하부구조',그리고 '헤게모니'는 모두 축구장에서 알게된 용어다. 나중에 같은 과 딴따라 동기는 락 밴드를 하나 만들었는데 그 이름이 '헤게모니'였다. 그 친구는 아직 결혼도 안하고 기타 치고 있다.

네이버 검색에 친절하게 나오는 그람시의 '헤게모니'를 그대도 옮겨보자.

" 안토니오 그람시는 《옥중수고 Prison Notebooks》에서 계급간의 관계, 특히 부르주아계급이 노동자계급에게 행사하는 통제의 의미로서 헤게모니를 설명하였다. 그가 말하는 헤게모니는 한 계급이 단지 힘의 위력으로써만이 아니라 제도, 사회관계, 관념의 조직망 속에 동의를 이끌어냄으로써 자신의 지배를 유지하는 수단이다. 다시 말하면 성공적인 헤게모니는 지배계급의 이해()를 표현할 뿐만 아니라 종속집단인 피지배계급으로 하여금 이것을 자연스러운 것, 또는 상식적이며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당시 '동의'라는 말과 '상식적으로 받아들인다' 라는 말은 대학 신입생인 내게 자다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 만큼 충격적이었다. 저 말은 내가 지금 믿고 내가 지금까지 따라왔던 '상식'이라는 토대가 사실은 일부 세력들이 자신들의 이해를 위해 만들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 생활을 하고 있을 때 봤던 조갑제의 칼럼에 배꼽을 잡았던 기억도 난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조갑제는 소련의 붕괴 이후 갈피를 못잡고 있는 좌파들이 신좌파라는 이름으로 그람시라는 유령의 깃발 아래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이해하고 가장 잘하는 저질스런 방식으로 그람시에 대해 설명했다. 아마 결국 폭력혁명하자는 맑스파의 불순분자들의 중간 오야붕쯤으로 이야기했을 것이다. 배꼽 찾는데 한참 걸리게 해준 사람은  카랑카랑하던 진중권이었다. 그는 먼저 조갑제에게 애써서 좌파들이나 보는 그람시를 읽어준 노고에 감사했다. 그런데 진씨는 조씨가 헛다리도 한참 뒤에 잡고 있다고 비웃었다. 뒷북도 저정도면 예술수준이라는 것이다. 좌파들은 오래전에 그람시를 떼고, 푸코와 데리다를 건너 들뢰즈에 이르고 있다고 했다. 뭐 뒤의 학자들이 더 대단하다는 것은 아니라 조갑제의 놀라운 발견이 사실 구태의연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조갑제 선생은 결국 21세기 명동거리에서 환한 얼굴로 유레카를 외치며 '지구가 둥글다고...너희들 몰랐지...지구가 원형이란 말이야" 라고 외치신 거다.

 그런데 조씨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내가 21세기가 시작된지 8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그람시를 봤다. 결정적인 계기는 '촛불집회'였다. 촛불집회의 긍정성에 대해서 박수를 보내면서도 한편 그 한계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촛불 집회의 결말이 어떡게 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신 최초의 '무중심성'과 '소박한 시민참여'에 대한 뜨거운 거리의 흥분이 성찰의 벽에 부딪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명박산성 앞에서 5시간 토론을 했다는 것도 사실 그 집회가 대중동원력을 가지면서 예견되었던 일이다. 나는 책방의 서재 앞을 어슬렁 거리다가 구석탱이 보이지도 않는 곳에 있는 칼보그의 <다시 그람시에게로>를 골라들었다. 얇은 책이다. 요즘 두꺼운 책보느라고 심신이 지쳤는데 두께도 시의적절하고 내게 며칠 전부터 그람시가 필요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영민해보이는 청년 그람시의 사진이 있는 1만 5천원짜리 위의 책이 아니다. 91년도에 나왔던 3천5백원짜리 책이다. 역자와 제목, 출판사,저자가 같은 걸로 볼 때 동일한 책이다. 다른 것 보다 먼저 45%가량 상승한 책 값에 놀라게 된다. 하기야 내가 대학들어 갔을 때 생맥주 500cc 한 잔에 500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람시의 이론이 가진 위치는 맑스의 경제주의적 속성과 레닌의 전위당 중심의 자코뱅적 성격을 극복하는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칼보그의 말대로 하자면 경제적 성향이 강했던 맑스의이론에 정치의 우위성을 부각시킨 것이 레닌이다. 그리고 그 지평을 이어받돼 한층더 다층적인 차원과 개방적인 차원에서 맑시즘을 비약시킨 것이 그람시다. 그람시는 엘리트주의적인 레닌의 혁명론에서 조금 더 비켜나있다. 물론 그 역시 조금 다른 차원에서 당의 역할에 대해 중요시했다. 하지만 레닌의 당이론과 조금 성격이 다르다. 그람시의 혁명론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모든 혁명은 인간 존재의 모든 차원을 포괄하는, 즉 총체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접근때문에 그람시를 '문화혁명' 주창자로 만든 것이며 우리 강사 선생은 '문화론'시간에 그람시를 언급한 것이다.

 그람시는 혁명적 변혁을 창출해내는데 있어서 의식의 역할을 누구보다 강조했다. 이것은 역사적 결과물일 수 도 있는데 -길게 이야기하기 힘든 -'제2인터내셔널'의 테제에 대한 그람시 안티테제적인 성찰로 볼 수 있다. 그람시는 맑스의 국제주의에 대해서도 '지향으로의 국제주의'와 '현실적으로 민족주의' 동원의 힘을 구분했다. 즉 교조적으로 국제주의를 지지하지만은 않았다는 뜻이다.그람시에게 지배계급의 청룡도가 '헤게모니'라면 피지배계급의 장팔사모는 '대항 헤게모니'이다.그는 지배계급과 전체 인구의 다양한 부문들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유대를 끊어버릴 것을 요구했다. 내가 이번 촛불 집회를 보면서 지속성을 갖는 일종의 '대항 헤게모니'로 확산되기를 바라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람시는 헤게모니가 두 단계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먼저 지배적인 기존 체제의 허위적 세계를 관통하는 단계,그리고 인간해방을 목표로하는 새로운 사상과 가치의 세계를 창조하는 단계. 이번 촛불집회가 첫 번째 단계에서 짱돌 하나 던졌다면 이것이 더 큰 세계로 확산될 수 있도록 도모하는 것,그렇게 하기 위해 진보진영이나 그람시가 중요시 여기는 '유기적 지식인'들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야하는 것, 내가 이즈음에 그람시를 떠올렸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람시적인 의미에서 이번 촛불집회는 결코 '기동전'이 아니다. 이것은 '자발적이고 소아적인 투쟁'이다. 하지만 그람시는 과거 교주주의자들과 달리 이런 투쟁의 다양성에 대해 긍정했다.그람시를 비맑스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 하나는 그가 계급이라는 일원성보다는 시민이라는 다층성에 더 큰 주목을 했기때문이다. 그람시의 목표는 대중적이고 유기적인 혁명적 변혁 모델의 비전을 정형화하는 것이었다.그는 선재투쟁이라는 개념과 평의회,블록 등의 개념을 통해서 일상적 삶의 변혁혁을 포괄하는 혁명이론을 만들어낸다. 또한 과거 맑스주의자들이 벌였던 오류를 지적하면서 피억압계층의 '자발적' '초보적' 소요의 움직임을 높이 평가한다. 항쟁의 초기에는 불가피하게 '비순서적'이고 또한 '모순적'일 수 박에 없다는 점을 받아들인 것이다. 또한 항쟁의 최초 단계부터 '외부적'조정 없이 일관된 발전노선을 따르기를 기대하는 것은 교조적이라고 비판한다. 이번 집회의 문제점은 바로 그 역에 있다. 촛불집회의 시민적 순수성을 강조하면서 불행히도 '외부적' 조정 자체를 배타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말이다. 그람시의 문제의식은 그런 것과 맞닿아 있다. '어떻게 맹아적인 대중투쟁을 효과적으로 쌓아올릴 수 있을까? ' 하는 문제 말이다. 나오미 클라인은 시애틀 반세계화 시위를 경험하고 '자발적으로 시위하고 또 어느 정도 지나자 알아서 시위를 철수'하는 참가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무중심성'의 시위가 갖는 한계를 지적했다. 그물론 촛불집회의 성격과 양상을 그람시의 시대적 맹아와 동일시해서는 절대 안된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과거 역사에 비추어- 이런 대중의 힘의 규모를 파악하고 현 정세를 정확히 읽어 그 역량을 최대치화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역사는 그렇게 하지 못한 힘들에 대해 또 가차없는 보복을 가해왔다. 그람시는 피억압계급의 대변자가 되면서도 또한 다른 계급과의 관계의 앙상블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중재자로 '유기적 지식인'이란 개념을 창출한다. 이들은 하늘에서 뚝떨어지는 것은 아니다.이것은 그람시가 생산의 영역보다 이데올로기의 영역에서의 싸움을 준비했기 때문에 등장할 수 있는 개념인셈이다. '유기적 지식인'은 '대항 헤게모니'의 형성에 있어서 중요성이 강조된다. 그람시는 유기적 지식인의 총체적 형태를 '당'으로 파악했다.

  그람시에게는 대중적인 것과 엘리트적인것, 구조적인 것과 이데올로기적인것, 이론적인 것과 자발적인 것이 모두 유기적으로 결합된다. 나는 이번 촛불 집회에서 무너진 '정치'에 대한 분노로 '정치'를 부정하는 낭만적 레토닉을 많이 만난다. 그 대신 흥분에 찬 '시민적 순수성'에 대한 환호가 그자리를 채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문학'을 하는 것이 아니다.최고의 사상서들은 사실 문학적으로 씌여졌을지라도 '문학'으로 분류되진 않는다. '비폭력적인 시민들의 순수성'은 좋으나 그것만으로는 결국 부족하다. 나는 이번 촛불집회가 그람시가 말하는 유기적인 융합을 통해서 찻잔 속의 태풍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돌아선 자리에 남은 것은 추억뿐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리고 소박한 시민적 혁명이 전화되어 앞으로도 지속될 수많은 신자유주의적 탄압과 그에 대한 저항에 '대항 헤게모니'의 단초가 되주길 바란다. 그람시는 현실의 비참을 의지로 낙관하라고 했다.그런데 지금 거리에서 쏟아지는 현실의 낙관이 현실의 변혁이 될 수 있으려면 어떤 지향이 필요한가가 중요한 시점이다. 드디어 대책회의가 주도적으로 토론을 통해 방향을 결정하려는 듯 하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그 선택이 최선이었다는 결론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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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8-06-15 11:22   좋아요 0 | URL
이번 촛불 집회가 가진 가장 큰 힘은... 진중권과 노회찬 등으로 대표되는 인터넷 방송의 역할이 아닐까 합니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디지털 카메라의 힘도 크구요. 6월1일 폭력진압이 그대로 묻혀버렸다면... 이런 큰 파장을 몰고오진 못했겠지요.
그람시가 전선에 대해서 많은 시사점을 준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이런 파장이 큰 운동에 대해선 그람시가 펄쩍 뛰면서 놀랄 일이 아닐가 싶습니다.
한나라당으로 가고, kbs로 모이는 힘을 주는 것은 주최측이 아닌 인터넷 방송과 인터넷 상의 토론장이니 말이지요.
몇 명의 '선택된 시티즌'만이 참여하던 직접 민주주의가 이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시민'의 직접 민주주의로 발현된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점에서 중고생의 참여는 '우발적'이었다기보다는 '주체적'이었던 것 같구요.
학교 현장에 있는 저로서는 주체적인 학생들을 별로 찾아볼 수 없지만 말입니다. ㅠㅜ

드팀전 2008-06-15 12:33   좋아요 0 | URL
그람시가 말하는 혁명과 운동의 궁극적 지향은 '일상의 혁명'을 포함하는 사회주의 혁명입니다. 그람시 같으면 지금의 현상에 감격하기 보다는 이런 파장을 어떡게 하면 '헤게모니적 전환'까지 이어갈 수 있는 가 하는데 신경을 쓰겠지요.그람시의 계획은 촛불집회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 보다 더 큰 변혁의 비전입니다. 시대가 다르고 정세가 다르기때문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그 아이디어가 온고지신의 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람시의 이론적 비전과 이번 시위의 지금까지 나타난 현상과 또 앞으로 가능한 형태의 결과에 대해 같은 지평으로 이야기할 수 없을 듯 합니다. 그람시는 볼세비키 혁명을 목도한 세대입니다. 촛불집회가 물론 대단한 일이지만 러시아 혁명과 맞먹을만 할까요...^^

turk182s 2008-06-24 03:16   좋아요 0 | URL
촛불을 네그리하고 맞대는 글은 많이보았는데 그람시적으로도 해석이 가능하군요..덕분에 잘읽었습니다. 촛불은 진화하리라고 봅니다..예전에 미선효순보다는 지금의쇠고기 촛불이 더 의미가 크잖아요,,비록 요즘 집회참여자숫자가 하강하고있지만 이런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이 나중에 총체적 경제난국시 다시한번 거리로 나서게 되겠지요..그때는 지금처럼 얌전하지많은 않을겁니다. 사실 지금의촛불주도는 일반서민들보다는 그래도 먹고살만한 중산층들들이 주도적이라고봅니다.그러니까 계급적으로 30-40대 대기업직원,전문직종사자, 아이들 먹거리로 예민한 그들의 주부들,,거기에 이미 소규모자영업자로 내몰린 고학력 출신자들의 분노가 경제적인상황과 맞물려 터졌다고봅니다. 아직은 님말대도 헤게모니적인 투쟁이아니지만 조심스레사태를 지켜보면 민영화,임투,등등 노조들의 참여가 본격화되면 다시한번 새로운 양상이 될거라고봅니다. 68혁명도 고딩과 대딩들이 시작했지만 중간에 노동계급이 대거참여해서 양상이 바뀌듯이 말이죠,,뭐 끝에 노조가 배신을? 때리며 끝나긴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