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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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이 책이 주위사람들이 다 읽는 트렌디한 책이 되었다. 처음에는 생물학책인지 지질학인지 구분이 안되고 주인고의 잡다한 이야기가 많아 지루함을 느꼈다. 그러다 읽다보니 점점 주인공에 감정입이 되어간다. 

미국 작가, 예술가, 그리고 과학 기자인 룰루 밀러(Lulu Miller)는 과학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David Starr Jordan)에 대해 그는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대신 소매를 걷어붙이고 찾아다녔다라며 새로운 종의 물고기를 식별하는 데 헌신한 조던에 관한 이야기를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Why Fish Don't Exist)에서 소개했다. 조던은 박물학자인 루이 아가시(Louis Agassiz) 밑에서 훈련을 받은 후 어류학자가 되어 어류를 목록화하고, 어류 분류학에 자연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명명하였다. 밀러가 조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밀러의 아버지는 열역학 과학자로 자신과 여동생에게 일어난 왕따와 자살 시도의 사건에 대해 냉혹하고 무관심하였다. 밀러는 이러한 아버지의 인생관에 낙담하여 아무 소용이 없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관심을 조던에게로 돌렸다. 그래서 조던 인생의 서사를 자신의 성장스토리와 비교했다. 그녀에게 조던은 일종의 롤모델이 된 셈이다.

조던을 연구하던 밀러는 조던의 삶에서 허점을 발견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물고기는 분류의 구성원이 공통 조상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 분류가 그 공통 조상의 모든 자손을 포함하지는 않는 생물 분류인 측계통군(Paraphyly)이다. 이 경우 물고기의 조상에서 유래한 다른 모든 척추동물 그룹을 제외하고, 분류학적 관점에서 볼 때 그런 그룹의 이름은 유효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것은 반전의 내용으로 조던이 일생을 바친 집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적이고 냉혹한 사실이다. 밀러는 조던의 삶에서 바다의 모든 생물을 물고기라 명명하고 배열한 오만의 흔적과 함께 우생학적 사고에 기초하여, 다른 생물은 인간의 지배하에 존재한다는 인간의 위대함을 드러낸 일종의 구별짓기를 한 것을 알게 된다.

밀러가 조던에 대해 알게 된 것처럼 우리도 우리가 안다고 또는 알고 있다고 느끼는 지식에 대한 오해가 존재할 것이다. 잃어버린 것과 훔친 것을 연구하는 데 주저앉지 말고 실제로 이것을 혁신을 위한 순간으로 사용하라는 밀러가 얻은 교훈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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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8
헨릭 입센 지음, 안미란 옮김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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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유명한 작품이라 당연히 읽어야하는 필독서로 여겨 읽게 되었다.

헨릭 입센(Henrik Ibsen)<인향의 집>에 나오는 여 주인공 노라는 페미니즘의 대명사가 되는 인물이고, 인형의 집이라는 제목보다 노라로 더 유명하다. 이 극은 세 명의 아이들과 은행장인 남편의 보호를 받으며 종달새같이 현모양처의 모습을 가진 그녀가 대출 사건으로 인해 각성하고 문을 쾅 닫고 집을 뛰쳐나갔다는 내용이다

이후 노라의 뒷이야기가 궁금한 많은 작가들은 노라 그 후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여성의 성공을 질시하는 작가는 집 나간 노라가 온갖 고생을 다하고 결국 울면서 집으로 다시 돌아와 남편에게 사과한다는 버전부터, 처음에는 고생을 했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나, 작가로 데뷔하게 되었다는 성공 스토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버전을 탄생시켰다

그런데, 작가가 된 노라의 성공스토리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작가 노라의 이름을 실명이 아닌 필명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마치 조지 엘리엇(George Eliot)처럼 남성의 이름을 사용했다. 이는 시대상을 반영하고 여성에 대한 제약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노라의 성공이 페미니즘의 역사에 영향을 미친것은 사실이지만, 노라의 고생이냐 성공이냐, 가출 후 집으로 복귀냐 아니냐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원작에서 높이 살만한 부분은 노라가 안락하고 풍족한 곳이지만 자유가 없는 그런 곳을 떠났다는 점이다. 금수저 부모는 아니지만 나름 부족함 없이 편안한 집을 두고, 경제적 자립도 아니고 단지 자유만은 위해 그것을 찾아 집을 나간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며, 특히 결혼 후 겉으로 보기에 완벽해 보이는 가정에서 자신만의 자유를 찾아 나가는 여성은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구설수의 소재거리가 되기에 십상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자유를 찾으러 갔을까. 결혼한 가정에서는 자유가 없었을까. 남편이 심각한 문제가 있던것도 아니고 착한 아이들을 챙기는 삶은 대부분의 여성들이 현재도 하고 있고 때로는 원하는 삶이기도 한데, 그런 삶이 자유가 없는 삶일까. 누구나 자신의 잣대가 있으므로 잘잘못을 따질 수는 없지만, 안락한 집을 나간 후 경제적으로 피폐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대에 살았던 그녀는 밖에서 원하던 진정한 자유를 찾았을까.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노라 그 후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닌지.

나 역시 궁금하다. 노라 그 후 그녀가 찾은 자유의 색은 무슨 색인지. 그녀가 맡은 자유의 공기는 어떤 냄새인지. 어쩌면 노라의 집이 마치 <쇼생크 탈출 The Shawshank Redemption>에 나오는 그런 감옥이었는도, 그 안에서 오랜 정체된 생활에 대한 익숙함에 환멸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출소 후 현실 세계와의 괴리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쇼생크 탈출의 브룩스를 예견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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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2-05-01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유란...물리적인 조건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어쩌면 감각, 인식적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아용 ^^

Angela 2022-05-01 14:40   좋아요 0 | URL
그런 자유 아주 중요해요
 
[eBook] 오스카 와일드의 진지함의 중요성
오스카 와일드 / 디즈비즈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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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들에서 봄의 광채가 나고비 온 뒤 거리에 흩날리는 벚꽃잎의 춤을 보며이런 봄날 누군가와 봄비를 맞고 싶어 소개팅하고 싶다는 나에게자신은 소개팅은 하지 않는다는 친구는 진지하지 않은 것이 너무 많으면 인생이 허무하다고 한다주위의 진지한 일들진지한 사람들과 온통 진지한 것들에 숨이 막히는 나에게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친구가 되는 것이고 특히 즐거운 사람과 만남은 생활에 생동감을 준다그 친구에게 소개팅은 연애로 이어지고 그것은 평생을 같이해야 하는 일이다누구나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살기에 소개팅에 호불호를 가리고 싶지는 않다진지함은 무엇인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의 진지함의 중요성 (The Importance of Being Earnest)은 3막으로 구성된 극으로 19세기 영국 빅토리아조의 결혼에 대한 풍자를 했다와일드의 극 미학에서 그가 사용한 언어는 전통적인 이상적인 도덕에 대한 개념을 전복시켜 와일드만의 언어 유희로 진지함을 하찮게 또는 더욱 진지하게 보는 것을 시도했다여성 인물 세실리(Cecily)와 궨들른(Gwendolen)은 Earnest 라는 이름만 듣고 그와 허구적인 사랑을 꿈꾸었고와일드는 이렇게 맹목적인 진지함(극 중 인물 이름도 진지함)을 추구하는 사회를 비판했다자신의 내면은 채우지 못하면서 허위와 가식으로 가득 찬 외면만을 보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작가는 그 당시 사회를 비판한 것이다진실한 진지함과 맹목적인 진실함 사이에서 나도 때로는 우매한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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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2-04-19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 진짜 좋네요!! 🤦

Angela 2022-04-19 21:0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syo님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ㅎ
 
책 읽어주는 남자 시공사 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시공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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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1995)는 영화 <더 리더원작이고 영화로 유명하다전반부는 15세 소년과 36세 여인의 이야기지만그 배경에는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인생을 지배한 사랑가장 순수했던 사랑과 홀로코스트의 역사와 죄의식그리고 정의와 윤리에 관한 통찰이 담겨있다.

한나는 폭격으로 유대인 여성들이 교회에서 죽은 사건에 대한 재판을 받는데, 보고서에 대한 필적감정을 거부해, 유죄를 받았다. 그녀는 계산하지도 않았으며 전략을 쓰지도 않았다. 그녀는 해명에 대한 재판부의 요구를 받아들였으며 단지 그 밖의 정체가 더 노출되는 것만은 원치 않았다”(p170)처럼 신을 변호하지도 해명하지도 않았다.

한나는 자신의 문맹이 드러나는 것을 감추고 싶어 모든 죄를 변론 없이 인정했다. 수치심을 지키면 무죄, 자존심을 지키면 유죄라면 어느 것을 택해야 할까. 물론 한나의 선택은 미하일과 관련된 것이다. 평생의 사랑에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어쩌면 그를 만난 후 그녀는 다시 태어났는지도 모르겠다. 한나처럼 순수한 사랑이 세상에 존재하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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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2-04-11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순수한 사랑이 있다고 믿습니다.. ㅎㅎㅎ

Angela 2022-04-11 21:39   좋아요 0 | URL
있겠죠? 믿어보아요~ㅎ

프레이야 2022-04-20 0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수한 악도 있지요^^

Angela 2022-04-20 07:46   좋아요 0 | URL
네~있죠^^
 
버마 시절 열린책들 세계문학 103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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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조지 오웰의 <버마 시절>을 읽을 기회가 생겼다. 읽다보니 내가 아주 좋아하는 조지프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이 생각났다. <버마 시절>에는 여러 이슈가 나오는데, 그중 눈여겨본 것은 우리가 약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검은 형제들을 계몽시키러 왔다는 거짓말이죠, 아주 자연스럽지요, 하지만 그 거짓말이 우리를 타락시키고 있소. 우리 스스로를 정당화하라며 끊임없이 충동질하고 괴롭히는 기질이 있소”(54)라는 오웰의 고백에서 보듯이 계몽이라는 미명아래 그들이 가진 좋은 자원들을 가져가는 전형적인 제국주의의 모습이다. <버마 시절>에서는 얼굴에 모반이 있어 백인임에도 백인의 주류사회에 소속되지 못하며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원주민에게 호의적으로 대하는 플로리가 있다. 깨어있는 생각으로 진보적 견해를 보이며 전제 정부인 영국에 반대의견을 갖고 버마인들과 어울려 지내려고 하는 모습이 보이지만, 결국 플로리도 버마인 하인을 두며 버마 여성은 사귀지만 결혼은 백인과 하려는 내면에는 지배 민족이라는 의식이 깔려있다. 영국인들 사이에서 아웃사이더지만 버마인들 위에 군림하려는 모순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태생적 우월감은 의식의 차이로는 극복이 불가한 것인가. 영국인들이 버미인들에게 갖는 우월감은 버마인들 중에 소위 식자층에 해당하는 몇몇 인물들의 대화에도 나타나 있다. “유럽인 클럽의 회원이 되는 것이 우리 원주민들에게 얼마나 큰 명성을 얻는 것인지 당신은 모르실 겁니다. 클럽 안에서 우리는 실제로 백인이며, 따라서 어떤 비방도 우리를 건드리지 못합니다. 클럽 회원은 신성불가침의 존재들입니다”(63). 소수 지배집단의 모임은 신성불가침의 장소이고 그런 집단의 멤버들은 그런 환경에서 자라고 교육받았다. 내재되어 있는 우월주의는 식민주의에 그들만의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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